< 원정 준비 >
2주가 지났다.
여름이 절정을 맞이했다.
매미들이 맴맴 노래를 불렀다. 쨍쨍한 햇볕이 대기를 불사르고, 여인네들이 흰 속살을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했다.
수한은 주말에 집을 갖다온 것을 제외하면 내내 공격대 사옥에 머물렀다.
야근하거나 특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휴게실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2주 동안 거의 그곳에서 잤다. 숙식을 아예 사옥에서 해결하니, 어느새 휴게실 죽돌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때쯤 되자 수한도 업무에 좀 익숙해졌다. 강성이 뭘 시키지 않아도 일을 척척 했다.
월요일 아침, 지혁이 17과 전원을 불러 모았다.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 과에서 제출한 계획서가 통과됐습니다.”
“우와!”
“노력한 보람이 있네요!”
“이게 얼마만이야!”
17과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수한은 무슨 일인지 몰라 잠자코 서 있었다.
지혁이 그걸 보고 싱긋 웃었다.
“수한씨는 잘 모르겠네요. 김 주임님이 잘 가르쳐주세요. 아, 아직 검사랑 연맹 서류 안 끝났죠?”
“예, 아직 안 들어갔습니다.”
“2주 뒤에 원정 시작입니다. 서둘러 주세요. 김 주임님은 당분간 수한씨한테 집중하고, 다른 업무는 송 주임님이랑 준표씨가 맡아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모두 뭘 할지는 알죠? 이번 원정은 전투 3과, 지원 13과, 지원 17과가 참가하지만 우리가 모두 주도합니다. 지금부터 움직여야 해요. 계획서는 다 갖고 있을 테니, 보급부터 철저히 준비해주세요.”
“예!”
지원 17과는 힘차게 대답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수한도 무슨 일인지 눈치 챘다.
원정, 그리고 계획서라고 했다.
17과에서 그 동안 작업한 사냥 계획이 통과된 것 같았다. 그에 따라 조만간 외계 행성으로 나가 변이체를 사냥하게 된다.
그 계획서의 대략적인 내용은 수한도 알고 있었다.
외계 행성 깔루.
그곳에서 2주 간 시간을 보내며 B급 변이체를 사냥한다. 그것들을 수거하여 공격대까지 가져오면 끝.
수한은 가만히 날짜를 계산했다.
오늘이 8월 3일 월요일이다. 2주 후라고 했으니 17일에 출발할 테고, 2주 일정을 잡으면 대략 8월 31일에 귀환할 것 같았다.
강성이 수한을 툭 쳤다.
“수한씨, 무슨 일인지는 알겠죠?”
“예. 계속 회의하시던 깔루 원정 건 아닙니까?”
“맞아요. 그냥 복사만 하지는 않았나 보네요? 어쨌든 할 일이 많아요. 얼른 움직입시다.”
차원문을 통과하려면 처리해야 할 게 많았다.
우선 기본적인 신체검사부터 받았다. 그 다음에는 인근의 거대 종합 병원에 들렀다.
정신 검사와 유전 변형 물질 반응성 검사, 외계 특이 파장 피폭량 검사 등등.
필요한 검사를 받자 하루가 쏘옥 지나갔다.
예방 접종도 맞았다.
깔루 행성에 특화된 약이었다. 이걸 맞으면 최소 1달 동안은 각종 병원균이나 바이러스, 기생충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각종 외계 질환에 그대로 노출되겠지만.
병원을 나오면서, 강성이 수한에게 말을 붙였다.
“수한씨는 이번이 첫 원정이죠?”
“예. 생전 처음입니다.”
“혹시 변이체 사냥꾼 자격증은 있어요? 입사 서류에서는 그런 얘기가 없었던 것 같은데.”
“실기 시험 전에 지리산에서 1달 정도 사냥한 경험이 있습니다. 자격증은 전역하자마자 땄고요.”
“그래요? 잘 됐네요. 차원문 통과하려면 최소한 사냥꾼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되거든요. 안 그러면 수호자 연맹에서 아예 안 들여보내요. 일거리 하나 줄었네요.”
모든 검사가 끝나고, 강성은 파김치가 되어 퇴근했다.
수한은 명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무슨 일이야?]
[응. 나 17일부터 31일까지 원정 가기로 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원정?]
[이능력자들이랑 외계 행성으로 원정 나간대. 변이체 잡으러 가는 거야.]
[뭐? 진짜? 위험한 거 아냐?]
[걱정 마. 난 신입이라 선배들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돼.]
[다행이다. 절대 앞에 나서면 안 돼. 알았지?]
[하하, 알았어.]
[그리고 나간 김에 기념품 사와야 돼. 알았지?]
[어이구, 왜 그 소리 안 하나 했다.]
다음날부터는 서류를 썼다.
차원문 통과를 위한 각종 서류를 꾸미는 중에도, 갖가지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했다. 중요한 일은 과장을 비롯한 선배들이 직접 챙겼지만, 잡일은 여전히 수한의 몫이었다.
강성이 도와주는 덕에 서류는 빠르게 진척되었다. 하루나 이틀 정도만 더 고생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지혁이 수한을 불렀다.
“예, 과장님. 부르셨습니까?”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수한씨 지금 무장 상태가 어떻게 됩니까?”
“소총 1정, 권총 1정, 미국제 룬 문자 단검 1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격총이랑 산탄총은요?”
“아직 못 샀습니다.”
“그럼 공격대에 비치된 거 대여라도 하세요. 산탄총이야 그렇다 쳐도 저격총 영점은 반드시 맞추고요. C급 변이체부터는 방어막 때문에 총이 잘 안 통하지만, 유인하기에는 원거리 저격만한 게 없어요. 우리 이능력자가 위험할 때 잠깐 도와줄 수도 있고요.”
“알겠습니다.”
수한은 강성과 함께 공격대 무기고를 찾았다.
무기고는 그리 크지 않았다. 크게 셋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강성은 그 중 가장 큰 곳으로 수한을 이끌었다.
권총으로 무장한 경비들이 무기고를 지키고 있었다. 지혁이 직접 작성하고 사인한 서류를 보고, 전화를 걸어 확인한 다음에야 문을 열어주었다.
“총이 많네요?”
수한은 무기고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개인화기란 개인화기는 죄다 모아 놓은 듯했다.
권총과 소총, 산탄총, 저격총, 기관총, 유탄발사기 등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대전쟁 전 같았으면 꿈도 못 꿨을 일.
단 1년 간 벌어졌던 대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하긴 인류의 1/3이 사망했을 정도니……
강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많기야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3번 무기고에 있어요.”
“3번 무기고요?”
“예.”
따로 설명해줄 생각은 없나 보다.
강성은 얼른 저격총과 산탄총 하나를 고르라고 재촉했다.
다양한 종류의 총이 있었지만, 수한은 손에 익은 놈으로 골랐다.
미국제 12.7mm 대물 저격총.
12게이지 산탄을 쓰는 국산 자동 산탄총.
부사관 시절 몇 번 만져 본 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언제든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수한이 총을 고르자 강성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둘 다 명품이죠. 변이체 상대하기에 충분한 화력을 가지기도 했고. 그래도 변이체 방어막에는 효과가 없으니까 너무 맹신하지는 마세요.”
“알겠습니다. 전투는 대부분 이능력자들이 하나 보죠?”
“그래야죠. 그래도 방어막을 벗겨낸 다음에는 우리한테도 기회가 있을 겁니다. 자, 이제 영점 맞추러 가죠.”
“서류는요?”
“중요한 건 거의 다 끝냈잖아요? 어차피 이번 주 내로만 끝내면 돼요.”
영점을 잡으려면 의정부시에 위치한 알바트로스 실기시험 장까지 이동해야 했다.
실내 사격장에서 영점을 맞출 수는 있지만 그러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정확한 영점(far zero)이 아닌 부영점(near zero)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저격총은 조금만 빗나가도 치명적일 수 있으니, 정확하게 영점을 맞추는 게 필요했다.
강성이 차를 운전했다. 상당한 연봉과 배당을 받는 공격대 지원 요원답게, 값비싼 외제차를 가지고 있었다.
“차가 멋지네요.”
“하하, 고마워요. 제 보물 1홉니다. 공격대 들어오고 처음 산 게 차였거든요. 참, 수한씨는 차 안 사요? 곧 있으면 첫 월급 들어올 텐데.”
“아, 집부터 사려고요. 출퇴근하는데 2시간씩 걸립니다.”
“아하, 그럼 오피스텔이라도 얻지 그래요? 여의도에는 힘들어도, 인근 지하철역 중에 찾아보면 괜찮은 곳 많아요.”
“동생들이랑 같이 살아야 해서요. 오피스텔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
차는 굉장히 많이 막혔다.
대전쟁으로 서울도 타격을 입었었다. 그러나 최근의 대호황으로 인구 집중 현상은 극도로 심해지고 있었다. 지금 서울의 인구는 대전쟁 전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었다.
의정부의 실기 시험장에 도착한 것은 1시간이 훌쩍 지나간 뒤였다.
강성이 웃으며 말했다.
“사원이 된 다음 시험장에 돌아온 기분은 어때요?”
“그냥 좀 묘하네요.”
“자, 얼른 하고 돌아갑시다. 할 일이 많아요.”
실기시험장 중, 저격 시험을 봤던 곳으로 갔다.
강성은 컴퓨터를 조작해 600 미터 과녁만 하나 작동시켰다.
실기시험 때와는 달리, 밋밋한 흰색 과녁이었다. 다만 동심원들이 겹겹이 그려져 있었다.
“600으로 영점 맞추도록 하죠. 변이체 유인할 때 최소한 500은 넘는 거리에서 저격해야 안전하거든요. 안 그러면 숨기 전에 따라잡혀서 공격당할 수도 있어요.”
“그럼 800이나 1000이 낫지 않습니까?”
“더 근거리에서 저격할 일도 왕왕 생기니까요. 제가 해보니까 400에서 800 사이를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600이 제일 좋습니다. 200 정도는 스코프 눈금으로 조절할 수 있잖아요?”
“알겠습니다.”
자세는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수한은 적당한 곳에 엎드리고 받침대를 설치했다.
강성이 한 마디 첨언했다.
“한 발 쏘고 난 다음에는 바로 도망쳐야 합니다. 그걸 항상 염두에 두세요.”
수한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스코프에 그려진 십자 눈금 중앙을 과녁 가운데에 맞추었다. 자세를 안정시킨 후, 어느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이 대기를 꿰뚫었다.
강성은 옆에 있는 모니터를 돌아보았다.
수한은 세 발 연속 사격을 했다. 강성이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멍 세 개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대신 가운데에선 좀 벗어나서, 약간 좌상탄이 났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영점 조정을 계산했다. 모니터에 우3 하3이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탄착점 훌륭하네요. 컴퓨터가 하라는 대로 조정하고 다시 쏴 보세요.”
“네.”
수한은 스코프를 조정한 후 다시 3발을 쐈다.
과녁 정중앙에 구멍 세 개가 박혔다. 워낙 정확하게 쏴서, 커다란 한 점처럼 보일 정도였다.
강성이 박수를 쳤다.
“훌륭합니다!”
영점을 잡는 것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1시간이 넘게 달려온 것 치고는 좀 싱거웠다.
초장거리 저격이면 바람과 습도 등 제반 사항을 다 고려해야 하지만, 12.7mm 탄환으로 600미터 거리 저격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았다. 정 필요한 경우에는 고글에 내장된 초소형 컴퓨터로 계산하면 그만이고.
“갑시다. 총 다시 넣어놔야 해요. 월요일에 다시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절차가 복잡하네요.”
“그러니 개인 소유 총기를 권장하죠. 본인 입맛대로 개조도 할 수 있고요.”
도로를 달려 알바트로스 사옥으로 돌아왔다.
일거리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기본적인 서류는 다 꾸며 보냈다. 나머지는 2주 동안 쓸 보급품을 준비하는 거였다.
지혁이 17과의 막내 둘을 불렀다.
“준표씨, 수한씨. 창고에 가서 ATV 11대 받아서 대기실에 갖다 놓으세요. 준표씨,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죠?”
“예, 압니다.”
알바트로스에서 ATV라면 2인승 산악용 사륜 바이크를 뜻했다.
기본적으로 차원문을 열 때는 이동하는 무게에 따라 그 부담이 커진다.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막대한 양이 소모되었다. 따라서 최대한 가벼운 운송 수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각 공격대에서는 ATV를 애용했다. 차체는 최대한 경량화시키고, 마력은 최대한 올린 종류였다.
물론 기계 괴수를 사냥할 때는 ATV보다는 대형 트럭을 동원했다. 그래야 최대한 많은 양을 가져올 수 있고, 기계 괴수의 부산물은 막대한 가치를 가졌으니까.
수한은 준표와 함께 창고로 갔다.
준표는 입사한지 겨우 반년이 지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실수가 잦고 많은 것이 서툴렀다. 원정에 나가선 자기 몫을 하는데,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던가.
창고 담당자가 둘을 보고 혀를 찼다.
“17과가 바쁘긴 바쁜가 보네요. 신입 둘이 오셨네.”
“전 신입이 아닌데요?”
“6개월이면 신입이죠. 자, ATV는 다 준비해 놨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준표가 발끈했지만 담당자는 무시하고 한쪽을 가리켰다.
녹색과 갈색으로 칠해진 ATV들이 주르륵 서 있었다. 최대한 가볍게 만든 까닭에, 꼭 아이들이 타고 노는 장난감 차 같아 보였다.
“전 뭘 하면 됩니까?”
“아, 간단해요. 시동 걸고 한 바퀴씩 돌아보면 돼요. 이 주임님, 엔진 확인은 다 하셨죠?”
“당연하죠. 모두 정격 출력입니다. 고장 난 것도 없고요.”
수한과 준표는 ATV 11대를 모두 확인했다.
사옥 출구에 가까운 대기실에 ATV를 운전해 모두 갖다 놓았다. 그 후 배터리 충전량을 확인하고, 보조 배터리도 살펴보았다.
그 다음에는 짐 나르기의 연속이었다.
2주 동안 먹을 음식은 물론 탄약, 클레이모어, C4 폭탄, 각종 수류탄, 섬광탄과 연막탄, 조명탄 및 의복, 정찰용 드론, 소모품들을 모두 챙겨야 했다.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되고, 더해져서도 안 된다.
짐을 나르고, 수량을 맞추고, 안 맞으면 지혁에게 가서 보고하고……
계획서도 몇 번이나 읽었다.
아무리 신입이라 해도 수한 또한 지원 요원. 모든 계획을 다 암기하고 있어야 했다.
지형, 식생, 변이체 분포, 깔루 행성인들의 성향……
그 중에는 사냥터가 될 바히냐크 평원 근처의 유명 변이체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출현 즉시 철수를 고려해야 하는 강력한 존재들.
휘니크 산맥의 비행형 변이체 휘니크로아, 1년 주기로 바히냐크 평원을 찾는 거대 변이체 도베로이드, 지하에 틀어박혀 있다가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모든 생명을 잡아먹는 주체무 등등.
수한은 머릿속에 이 정보들을 똑똑히 박아 넣었다.
그러는 사이 17일이 되었다.
수한의 레벨이 정확히 30을 찍은 시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구가 아닌 저 멀고 먼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