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계 행성 깔루 -1- >
알바트로스 사옥 앞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모였다.
전투 3과와 지원 17과, 13과.
정확히 21명이다.
이들이 소지한 물건, ATV와 거기 실은 보급품, 그리고 이들의 육체까지 다 합친 무게가 딱 5톤이었다.
차원문을 여는 비용을 고려할 때, B급 변이체 사냥으로 가장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수치.
수한은 혹시 빠진 게 있나 확인했다.
깔루 행성은 사막 지형이 많은 곳이라, 누런 색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탄띠를 둘렀고, 탄띠에 주렁주렁 여러 물건들을 매달아 놓았다.
탄입대, 수통, 야삽, 대검집, 손전등, 구급낭 등등……
그런가 하면 전투복 주머니에 1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압축 건빵 9개를 넣어놓았다. 혹시라도 조난당하면 이것들이 생명줄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 무장만 하지 않은 상태.
수한은 다른 사람들과 통성명을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전투 3과의 이능력자 중, 눈에 확 뜨이는 미인이 있었다.
새미.
연수 때 본 적이 있었다. 2주 내내 남자 사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었지.
지금도 주변에 남자 사원들이 잔뜩 몰렸다. 어떻게든 시선을 끌어보려고 과장되게 웃는가 하면, 별 시답지도 않은 얘기를 커다랗게 떠들었다.
그렇게 관심 받고 싶을까.
수한은 그쪽을 한 번 보고는 자기 일에 열중했다.
어색하게 웃고 있던 새미가 수한을 발견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쪽으로 총총총 걸어온다.
“잘 계셨어요? 연수 때 보고 오랜만이네요.”
새미가 웃으며 수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한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하긴 이능력자가 둘씩 포함된 팀들을 압도하고 월등한 성적을 냈던 20팀의 주인공이니까.
수한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전 잘 지냈지요. 거의 2주 만인데, 잘 지내셨습니까?”
남자 사원들에게서 피신 온 게 뻔히 눈에 보였다.
수한은 적당히 응대해주며 시간을 벌었다.
대충 정리가 되자, 전투 3과 과장이 지혁을 향해 말했다.
“슬슬 출발하지요.”
지혁이 동의를 표했다.
“좋습니다. 10시에 차원문을 열어주기로 했으니까, 지금 출발하면 충분하겠습니다.”
“그럼 갑시다.”
전투 3과 과장이 손짓을 했다.
기이이잉.
ATV 11대의 전기 엔진이 일제히 돌아갔다.
애애앵!
선두에 선 전투 3과 과장이 ATV를 출발시켰다.
온갖 보급품을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마력과 토크가 상당한 물건이었다. 도로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수한도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11대 중 수한만 혼자 1대의 ATV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대신 조수석까지 짐을 몽땅 실어서 좀 둔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여의도의 도로는 차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알바트로스 마크를 새긴 ATV들이 일렬로 달려 나오자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시민들의 공격대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좋았다. 대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공격대가 한 번 출격할 때마다 막대한 재화가 들어오니, 호의적인 시선을 보낼 만도 했다.
수호자 연맹 대한민국 지부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겨우 5분 만에 ATV 11대가 모두 도착했다.
수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과 몇 달 전 이능 적성 검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때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저번에는 묵직한 위압감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여름의 숲과 같은 활기가 느껴졌다.
수호자 중 한 명이 마중 나왔다.
“딱 맞게 도착하셨네요. 알바트로스 공격대, 21명, 무게 5톤 맞지요?”
“예. 정확합니다.”
“전당으로 들어오세요. 10시 반에 예약이 또 있어서 바빠요.”
차단봉을 넘어, 지부 안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언급했듯이 지부의 규모는 크다. 거의 축구 경기장이나 야구 경기장을 방불케 했다.
여러 시설이 들어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세라프의 전당이었다.
차원문이 열리는 곳.
지부 중앙에 커다란 공간이 비워져 있었다. 원형의 공간으로,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벽을 쌓아 놓았다. 군데군데 거대한 사각 기둥이 있고, 기둥의 벽에서 신비로운 빛이 스며 나왔다.
수한은 바닥을 보고 눈을 빛냈다.
바닥은 기본적으로 흰 대리석을 깔아 만들었다. 그런데 그 대리석에 온통 금빛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런가 하면 요소요소에 루비며 사파이어,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 같은 진귀한 보석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거대한 마법진.
기둥과 바닥이 어우러져, 차원과 차원을 잇는 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0시에 정확히 차원문을 열겠습니다. 모두 준비하고 계세요.”
수호자는 그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쌩 사라졌다.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강성이 수한을 전당 구석으로 데려갔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수한씨. 깔루 행성, 아니 외계 행성에 들어가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게 있어요.”
“그게 뭡니까?”
“본인 목숨은 본인이 챙겨야 한다는 겁니다.”
수한은 의아한 눈빛을 했다.
그건 당연한 말 아닌가?
그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강성이 연이어서 설명했다.
“처음 외계 행성에 원정 가는 신입 요원들이 많이 실수를 하곤 합니다. 외계 행성은 지구와 달라요. 원정을 다니다 보면 피치 못할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누가 언제 어떻게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으음……”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수한씨가 낙오되었을 때, 만약 수한씨를 돕다가 제가 위험해질 것 같으면 전 수한씨를 버릴 겁니다. 저 자신부터 챙길 거예요. 이건 우리 지원 17과 모두 마찬가지고, 동행하는 13과와 전투 3과도 그렇습니다. 절대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말을 하는 강성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수한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군대에서는 전우가 없이는 나도 없다고 가르친다. 수한도 동료를 구한 적이 몇 번 있었고, 반대로 목숨 빚을 진 적도 존재했다.
다른 곳은 모르지만, 개마고원에서는 서로 간의 끈끈한 정 같은 게 존재했던 것.
그런데 위험해지면 그냥 버릴 거라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자, 강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격대와 군대는 다릅니다. 군대는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공격대는 그냥 이익 집단이에요. 목숨을 건 의리, 전우애, 이런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거 참 인간적이네요.”
갑자기 새미가 끼어들었다.
“김 주임님? 김 주임님이라고 하셨죠? 그럼 김 주임님은 지금 대부분의 공격대가 그러는 것처럼 외계에만 나가면 다른 공격대 뒤통수를 치고, 위험할 것 같으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봐요? 공격대는 이익 집단이니까?”
“아, 그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단 본인부터 살고 봐야지요.”
“흥! 어딜 가나 똑같네요. 전에 공격대도 그것 때문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퇴사했는데.”
새미가 고개를 흔들더니 멀찍이 가 버렸다.
강성이 입맛을 다시더니 새미가 못 듣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새미씨는 22살인데도 좀 순진하네요. 어쨌든 수한씨. 제 말 새겨들으세요. 외계 행성에서 믿을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절대 낙오되지 말고, 최대한 몸 사리세요. 괜히 나서지 말고요. 아셨지요?”
수한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3과 과장이 손짓을 했다.
“자, 어서 중앙으로 모입시다. 작은 차원문이라서 중앙 부분에서만 발동할 겁니다.”
모이는 건 간단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ATV들을 집결시켰다. 그 후 차분히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
기둥 끄트머리에 붉은색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적색 빛은 기둥 전체를 휘어 감았다. 그리고 주위 지면으로 번져나가, 금세 이 넓은 공간 전체로 퍼졌다.
“시작됐다.”
옆에 자리 잡은 준표가 중얼거렸다.
수한은 침을 꼴깍 삼켰다.
붉은빛이 지상에서 허공으로 올라왔다. 반투명한 비단 천처럼 너울거리며 눈을 가렸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때는 온 세상이 다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수한은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땅이 멀어졌다.
감각이 옅어졌다.
스스로의 존재가 소멸하는 듯한 느낌과,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세상이 확 다가왔다.
감각이 돌아왔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헉! 허억, 헉헉!”
수한은 숨을 몰아쉬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수한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참았다.
“우에엑!”
옆에서 준표가 구토를 하는 게 보였다. 언제 챙겼는지 검은 비닐봉투에 입을 벌리고 토사물을 쏟아냈다.
수한은 고개를 흔들며 ATV에서 내렸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자칫 다리가 풀릴 뻔 했지만, 겨우 균형을 잡았다.
강성이 얼굴이 창백해진 채 다가왔다.
“수한씨, 처음인데 괜찮으세요?”
“속이 좀 안 좋습니다.”
“휴, 처음인데 상태가 괜찮네요. 거의 대부분은 기절한 상태로 도착하는데.”
강성이 옆의 준표를 쳐다보았다.
“쯧, 준표씨. 이제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준표는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곤 씩 웃었다.
“그래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습니까? 예전에는 계속 기절했잖아요. 어휴, 저쪽은 신입이 아예 기절했네요.”
13과의 동기가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모두들 별 거 아니라는 듯 반응했다. ATV 조수석에 짐짝처럼 태웠다. 기절한 사람의 사수가 ATV를 운전하기로 했다.
수한은 그걸 보며 ATV에 실은 짐을 뒤적였다.
지구에서 가져온 무기를 꺼냈다.
소총과 권총, 룬 문자 단검, 각종 수류탄들.
외계 행성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본인 무장이었기 때문이다.
지원 17과와 13과의 요원들이 부산히 무장을 챙기는 사이, 이능력자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모두들 생생했다. 이능이 있으면 차원 이동 시에도 잘 견디는 모양이었다.
“얼른 나가죠. 언제 또 차원문이 작동할지 모릅니다.”
“좋습니다.”
대충 뒤처리가 끝나고 ATV를 출발시켰다.
전당은 지구와 다를 것이 없었다. 크기, 모양, 재질 모두 동일했다.
들어왔던 자리와 똑같은 곳에 있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외계의 신비로운 자태가 모습을 드러낸 탓이었다.
거대한 도시.
황토색으로 빛나는 건물들이 죽죽 솟아 있었다. 희한하게도 아래는 좁고, 위가 볼록한 형태였다. 더구나 아예 기둥이 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건물도 꽤 보였다.
“그우우!”
괴상한 동물 하나가 묘한 소리를 냈다.
낙타와 하마를 섞어 놓은 듯한 동물이었다. 그런데 다리가 없었다. 상부와 하부가 분리되다시피 한 채, 하부가 꿈틀거리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덕택에 진동이 상부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깔루 행성에서 교통수단으로 흔히 쓰이곤 했다.
“$^%^@&%&^*^(%^$”
도마뱀 가죽 같은 황색 피부에, 토끼처럼 펄럭이는 두 쌍의 귀, 세 개의 눈을 가진 외계인들이 지구인들을 보고 손가락질 했다.
깔루 행성은 변이체가 많이 서식해서 지구의 공격대가 많이 찾는 곳이었다. 그래도 전체에 흩어 놓고 보면 한 줌에 불과하니, 그들이 신기하게 여길 만도 했다.
수한은 짐짓 태연한 척 그들을 구경했다.
생각 같아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싶지만, 깔루 행성인들은 그런 행위를 매우 싫어했다. 정 찍고 싶으면 친분을 먼저 쌓은 후 정중히 부탁해야 했다.
“자, 파견대부터 갑시다.”
지혁이 공격대원들을 선도했다.
이곳은 깔루 행성에서도 3번째로 큰 도시, 이그지트였다. 이그지트에는 수호자 연맹에서 파견 나온 이들이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지구의 공격대들이 변이체를 사냥하고, 원주민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수호자 연맹의 파견대는 차원문 근처에 위치했다.
현대 지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금방 식별할 수 있었다. ATV를 근처에 대놓고, 초인종을 눌렀다.
키가 껑충하게 큰 백인 남자가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대한민국의 알바트로스 분들이지요? 깔루 행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여기 선물을 좀 가져왔습니다.]
지혁이 대표로 나섰다. 상대가 영어로 말을 걸어서, 지혁의 입에서도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미리 챙겨 온 꾸러미를 내밀자 백인 남자가 반색을 했다.
[오! 와인과 담배 아닙니까?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하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좀 바빠서요.]
[하긴 오랫동안 체류하기는 힘드실 테니…… 바히냐크 평원으로 가신다고 하셨죠?]
[예.]
[최근 들어 바히냐크 평원의 변이체가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간혹 변이체 잔해만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요. 위험 변이체가 진출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하필이면 지금…… 알겠습니다. 유의하겠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남자의 경고에, 지혁은 고개를 숙였다.
수한은 짧은 영어로 몇 마디만 겨우 알아들었다. 그래도 위험 변이체에 대한 내용은 이해했다.
사냥 계획서에 언급되어 있던 몇 마리의 변이체.
첫 원정인데 설마, 그런 고위 변이체를 만나게 될까?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