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8화 (19/254)

< 외계 행성 깔루 -2- >

대화를 마치고 파견대 밖으로 나왔다.

바히냐크 평원은 이그지트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 차원문을 통과한 게 방금 전이지만,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지혁은 쉬지 않고 ATV를 몰았다. 낙타와 하마를 섞어놓은 듯한 동물, 기추비추들의 틈을 누비며 달렸다. 수한도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갔다.

지구처럼 도로가 발전한 곳이 아니었기에 ATV가 계속 덜컹거렸다. 수한은 혹시라도 ATV 위에 실은 짐이 떨어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다.

공격대원들이 향한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높은 탑이었다.

특이하게도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접시 같은 넓은 아랫부분은 땅에 박혀 있고, 우산 같이 생긴 윗부분이 하늘 높이 부유 중이었다. 그리고 공처럼 둥근 중간 부분이 그 사이에 떠서 아래로 내려갔다가 위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마치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을 보는 듯한 광경.

깔루 행성에 존재한다는 비공정 탑이었다.

“우린 여기서 비공정을 타고 바히냐크 평원으로 갈 겁니다. 그곳에서 약 열흘 간 머무르며 변이체를 사냥한 뒤, 이그지트로 돌아옵니다. 돌아올 때는 비공정을 부르지 않겠습니다. ATV에 변이체 시체를 싣고 오겠습니다.”

예전엔 왕복 모두 비공정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깔루 행성인들이 욕심을 부려서 이젠 편도로만 이용하게 되었다. 전리품을 싣고 귀환하는 원정대가 공격 당하는 일이 왕왕 있었던 것이다.

수한은 그 사실을 생각해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탑에 가까이 다가가자 화려하게 치장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지혁이 두 팔을 벌려 적의가 없다는 뜻을 드러냈다.

[도∽니∽테르↗호↘루재↑이↑드↓]

투박한 세라프 어가 흘러나왔다.

지혁은 지원 17과에서는 가장 세라프 어를 잘했다. 그렇다고 해도 겨우 의사소통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손짓 발짓을 동원했다.

몇 마디 말을 나눈 뒤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비켜주자 공격대원들은 ATV를 몰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ATV나 수레가 지날 수 있도록 원형 통로가 빙글빙글 이어져 있었다. 그걸 타고 탑 하부의 끄트머리에서 기다리자, 금방 중간 부분이 아래로 내려왔다. 거기로 진입한 뒤 마법의 힘을 이용한 부유력으로 탑 상부로 들어갔다.

탑 위에 서서 얼마간 대기하자, 근처에서 거대한 배 한 척이 접근했다.

수한은 두 눈을 빛냈다.

말 그대로 한 척의 배였다. 지구에서는 중세에서나 쓰였을 법한 범선이 하늘을 미끄러졌다. 갑판에는 세 개의 나무 기둥이 줄을 지어 서 있고, 마법 문자가 써진 푸른 돛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선체 양 옆에는 기다란 메기수염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흐물흐물 빛을 뿌렸다.

쿠웅.

비공정은 탑 한쪽에 갑판을 접안시켰다.

두꺼비처럼 살이 찐 깔루 행성인 하나가 훌쩍 뛰어내렸다.

[붸↗이르↘쿠↓쟈↑]

깔루 행성인과 지혁이 두 손바닥을 세게 마주쳤다.

전통적인 깔루 행성의 인사 방법이었다.

둘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었다.

대화를 끝내고, 지혁이 공격대원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11대의 ATV가 천천히 비공정 위로 올라탔다.

깔루 행성인이 뭐라고 소리치자, 비공정의 선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곳곳에서 마법 주문을 외우니, 비공정이 빠른 속도로 하늘 위를 날아가기 시작했다.

수한은 갑판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공정이 진행하는 방향 정면에, 가시처럼 뾰족한 봉우리들이 무수히 솟아 있었다.

벨레즈 협곡.

빼곡한 봉우리들 때문에, 자연적인 미로가 형성된 곳이었다. 갈 때는 편하게 가지만, 올 때는 골치 좀 썩을 것 같았다.

지혁이 원정대 전체에게 말했다.

“6시간 정도 후면 바히냐크 평원에 도착할 겁니다. 기상 상황이 좋아서 더 빨리 도착할지도 모르겠다고 하네요. 그 동안 선실에 내려가서 쉬지요.”

도착하면 잠도 안 자고 사냥을 나서야 할 것이다. 이동하는 시간 동안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했다.

수한은 솔직히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말똥말똥 했다.

드르렁, 드르렁.

지원 17과 전체가 같은 객실에 머물렀다. 덕택에 다른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를 여과 없이 들을 수 있었다.

다섯 시간 정도 지났을까.

[깐↗뒤아∽쿠↘로↑메지↓우↓]

도착했으니 일어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한은 세라프 어 기술을 올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외계 행성에서는 공용어처럼 쓰이는 게 세라프 어니까.

모두 눈을 비비며 갑판 위로 나왔다.

“하!”

수한은 약하게 탄성을 질렀다.

별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자줏빛 뭉게구름이 위아래를 오락가락했다. 드넓은 평야에 물빛 갈대 같은 풀이 가득하고, 온갖 짐승이 어울려 풀을 뜯었다. 황금색 쟁반 같은 태양이 이글이글 저 먼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캬아앙!”

닭을 닮은 포식자가 초식동물들을 덮쳤다.

초식동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불운한 녀석 하나가 포식자에게 잡히자, 포식자는 새 부리 같은 입으로 녀석을 뜯어먹었다.

비공정은 하늘 위를 천천히 선회했다. 널찍한 공터로 하강하기 시작하자, 동물들이 기척을 느끼고 이리저리 도망쳤다.

지면에서 약 2미터 정도 위에 정지했다. 그 후 갑판에서 널찍한 판자 같은 것을 지면으로 길게 걸쳤다. 각도가 좀 가파르긴 하지만, ATV가 충분히 내려갈 정도였다.

가장 먼저 야영지부터 구축했다.

바히냐크 평원에는 위험한 동물이 많았다. 아까 보았던 닭을 닮은 녀석도 그렇고, 변이체가 자주 출현했다. 따라서 안전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수한씨랑 준표씨는 여기다 텐트부터 치세요.”

지혁이 17과와 13과 막내들을 불러 텐트를 치게 했다.

군용 24인 텐트.

수한도 부사관 시절 작전 나가면 지겹게 쳤던 텐트였다. 준표도 텐트 치는 것은 익숙했다. 둘이 힘을 합치자 겨우 30분 만에 텐트를 칠 수가 있었다.

그 사이, 선배들은 야영지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출입문을 만들었다. 소형 발전기로 고압 전류를 흐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다.

식당과 창고, 화장실도 만들고, 이능력자들이 사용할 소형 텐트 두 개를 치고, 변이체 감지기와 감시 초소도 설치하고……

단 2주 동안이지만 안전이 제일이었다. 이 정도는 만들어 놔야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모두 쉬고 계세요. 정찰 다녀오겠습니다.”

보조격인 13과가 먼저 정찰을 떠났다.

보급품은 모두 내려놓은 뒤였다. 무기와 3일 분의 식량, 그리고 무전기만 싣고 떠났다.

수한은 계속 삽질을 했다.

군대에서도 지겹도록 한 삽질이었다. 뚝딱뚝딱 해치웠다. 몇 시간 내내 삽질을 하고 말뚝을 박자, 겨우 야영지 공사가 끝이 났다.

“곧 해가 질 겁니다. 13과 돌아오면 바로 출발할 테니까, 수한씨랑 준표씨는 ATV 준비해주세요.”

“예!”

이능력자들은 2개의 텐트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한 자신은 몇 시간 째 땀을 뻘뻘 흘리는 중인데, 저들은 편히 쉬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이능력자들은 변이체 사냥의 핵심이었다. 목표인 B급 변이체들을 수십 마리 잡으려면 저들은 몇 번이나 사선을 넘어야 했다. 따라서 자신의 몸 상태를 최고로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몇 시간 뒤, 13과가 귀환했다.

전리품을 ATV에 제법 매달고 있었다. 운 좋게 하급 변이체 몇 마리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9시 방향에 B급 변이체 두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주위에는 C급 변이체도 다수가 있고요. 아마 원래는 한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혹시, 암수 한 쌍입니까?”

“예. 종류는 깔루 행성인들이 비르차라고 부르는 생물의 변종입니다.”

“알겠습니다.”

과장들끼리 쑥덕쑥덕 얘기를 하더니 13과는 야영지에 남고, 전투 3과와 지원 17과가 첫 사냥을 개시하기로 했다.

“주목!”

지혁이 전투 3과와 지원 17과를 불러 모았다.

“사냥 계획 변이체 종류별 세부 항목 9-38a 기억하시죠? 그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지원 17과의 요원들은 모두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전투 3과의 이능력자들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전투 3과 과장이 이능력자들에게 고글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양 눈을 완전히 감싸는 형태에, 작은 이어폰과 마이크가 달린 형태였다.

어차피 이능력자들은 싸움만 잘 하면 된다. 구체적인 전술 지시는 모두 지원 17과 과장인 지혁의 몫이었다.

“출발합시다.”

ATV 7대가 야영지를 떠났다.

B급 변이체들은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20분 정도 달리자 변이체들이 모인 곳에 도착했다.

작은 호수였다.

원래는 푸르렀을 호수가 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주변의 나무는 몽땅 다 말라비틀어야진지 오래였다. 괴상하게 생긴 변이체들이 호수 주위를 배회했다.

수한은 속으로 변이체의 숫자를 세었다.

‘B급 2마리, C급 5마리, D급 11마리.’

비르차의 변종.

독수리의 머리에, 사자 몸통,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이었다. 지금은 제멋대로 변형되어 머리가 둘 달린 놈도 있고, 몸이 뱀처럼 길쭉해진 놈도 보였다.

지혁이 대원들을 불러모았다.

“수가 많으니 C급 이하는 폭탄으로 날려버리겠습니다. 클레이모어부터 설치하죠.”

기관총 포대를 구축했다.

투명한 강화 플라스틱 방패를 전면에 깔고, 작은 구멍 사이로 기관총 총구만 내놓았다. 그 옆 수풀에 유탄발사기도 하나 설치했다.

계장 둘이 지휘하여 클레이모어를 깔았다. 대전차 지뢰도 몇 개 설치하자, 삽시간에 죽음의 땅이 완성되었다.

이능력자들은 말없이 자신의 무기만 쓰다듬었다.

계획은 간단했다.

지원 17과의 요원들이 변이체들을 저격하여 유인한다. 그 중간에 지뢰와 클레이모어를 이용해 하급 변이체들을 쓸어버린다. 그러면 B급과 C급이 남을 텐데 B급 이능력자들이 B급을 상대하는 동안 C급을 처리한다. 마지막으로 B급을 죽여 사냥을 끝낸다.

전투 3과는 B급 이능력자 2명, C급 이능력자 3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원 17과가 잘 해주어야 했다.

“시작합니다.”

조운재 대리가 요원 셋을 차출해 변이체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수한은 남았다. 신입이라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변이체 유인은 맡기지 않은 것이다.

“김 주임님이 유탄발사기 잡고, 준표씨는 기관총 잡으세요. 클레이모어는 제가 직접 격발하고, 마지막 유인도 제가 합니다. 수한씨는 소총으로 지원 사격하세요.”

“예!”

수한은 입안이 깔깔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났다. 보호복에 슥슥 문질러 닦았지만, 금세 땀이 맺혀 번들거렸다.

탕!

멀리서 총 소리가 들렸다.

시작됐다.

이능력자들이 얼굴을 굳히고, 요원들은 몸을 낮췄다. 저마다 다가올 전투를 대비했다.

탕! 탕탕!

다시 총 소리가 울렸다.

변이체 유인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번갈아 저격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총알에 피격된 즉시 변이체는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다. 그 전에 저격한 요원은 위장포와 은신 장비를 이용, 완전 은폐를 실시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 저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변이체에 의해 요원이 희생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캬아악!”

변이체가 울부짖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제는 육안으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지혁이 숨을 고르는 게 보였다. 엎드린 채 저격총을 변이체에게 겨눈 뒤, 어느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리고, 변이체의 몸 주변에서 불꽃이 튀었다.

방어막.

변이체들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수십 개의 눈이 기관총 포대를 노려보며 불을 뿜었다.

“캬아악!”

“캬아아앙!”

괴이한 소리를 내며 내달리자, 금세 거리가 좁혀졌다.

B급 변이체들은 덩치도 크고 속도도 빨랐다. C급, D급 변이체를 뒤에 놔둔 채 먼저 달려왔다.

이능력자들이 힘을 끌어올렸다.

그들이 빼어든 무기에 각기 울긋불긋한 빛이 어렸다. 변이체의 방어막을 전문적으로 파훼하는 이능력자 전용 무기의 공능이었다.

“내가 왼쪽을 맡지.”

“제가 오른쪽 잡을게요.”

전투 3과 과장이 검을 들어올렸다. 검에서 화끈한 빛이 타오르자, 변이체가 홀린 듯 3과 과장을 쫓아갔다.

한편 새미는 두 손을 교차하더니 번개를 뿌렸다. 그 뒤 가볍게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다. 구현 계열 이능력자이다 보니 시간을 끌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뒤이어 C급 변이체와 D급 변이체들이 뛰어들었다. 약간 거리 차이가 있긴 했지만, 클레이모어 유효 반경 안에 모두 들어와 있었다.

지혁이 스스로 구령을 붙였다.

“클레이모어 격발!”

꽈과광!

폭발이 세상을 휩쓸었다.

후폭풍이 몰아닥치고, 쇠구슬 수천 개가 변이체들의 몸을 갈가리 찢었다.

타타타탕! 투둥, 쾅쾅!

동시에 기관총과 유탄 발사기가 불을 뿜었다.

오렌지색 빛줄기가 빨랫줄처럼 쭉쭉 뻗어나갔다. 유탄이 경박한 소리와 함께 튀어나가 폭발했다.

집중된 화력은 무시무시했다.

10마리가 넘는 D급 변이체들이 이 일격으로 몰살당했다.

“캬아악!”

반면 C급 변이체들은 온전했다.

방어막이 조금 약해졌을 뿐, 여전히 흉흉한 기세를 뿌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두 마리가 지뢰에 걸렸다. 하지만 잠깐 멈칫했을 뿐, 별로 효과는 없었다. 내부에서 공격이 가해진다면 모를까, 방어막은 모든 방향의 공격을 다 막아내기 때문이었다.

이능력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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