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계 행성 깔루 -3- >
3대 5.
불리한 것 같지만 시간 정도는 끌 수 있었다.
강성은 유탄 발사기를 내려놓았다. 여기서 유탄을 쏴봐야 별 효과도 없고, 이능력자들이 폭발에 휩쓸릴 가능성이 컸다.
수한은 빈 탄창을 교체했다. 그리고 청색의 원통형 수류탄을 손에 쥐었다.
지혁이 17과 요원들에게 말했다.
“김 주임님, 수한씨 순으로 던집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이능력자들과 변이체들이 맞붙었다.
진형이 적당히 형성되자, 지혁은 개중 좀 둔한 변이체 하나를 지목했다.
“던져요!”
강성이 수류탄을 던졌다.
손에서 떠난 수류탄이 정확히 변이체를 직격했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일어나더니, 변이체의 방어막을 잠식해 들어갔다.
약화 수류탄.
이능력자들의 무기처럼 방어막을 파훼하지는 못한다. 대신 그 무기에 더 약해지도록 만들었다. 이걸 뒤집어쓰면 최소 2, 3배는 큰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전투 3과의 이능력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무기를 휘두르고, 이능을 발휘해 공격하자 변이체의 방어막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심지어 3과 대리도 멀리서 권총을 쏘았다.
“다음, 수한씨!”
수한은 지혁이 지목한 변이체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정확히 맞았다. 더구나 수류탄을 던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강성이 던졌던 수류탄의 위력이 다했다.
지혁의 지시는 칼날처럼 예리했다.
꼭 변이체 한 마리는 약화 효과가 걸려 있었다. 이능력자들이 버거워 보이면 준표에게 기관총을 쏘도록 했다. 실질적인 효과는 없어도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유인하기 위해 나갔던 요원들도 복귀했다. 그러자 전투는 더욱 쉽게 돌아갔다. 사방에서 총을 쏴서 변이체들의 신경을 긁었다.
찌이잉!
종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한 마리의 방어막이 완전히 소멸했다.
“집중 사격!”
7정의 소총과 1정의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방어막이 없으면 변이체쯤은 그저 질긴 고깃덩이에 불과하다. 녹색 체액이 뿌려지며, 변이체가 바닥에 몸을 누였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2마리가 남자 지혁이 사격 중지를 외쳤다.
수한은 기계적으로 총을 들었다. 탄창이 빈 것을 확인하고, 새로운 탄창을 꽂아 넣었다.
이능력자들이 남은 변이체를 단번에 토막 쳤다.
이제 B급 변이체 둘만 사냥하면 된다.
“좋아, 우리 할 일은 끝났어.”
옆에서 준표가 중얼거렸다.
B급 변이체는 약화 수류탄도 잘 통하지 않았다. 이능력자들이 자기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일.
12.7mm 저격총으로 지원 사격 정도는 했다. 실질적인 위력은 기대할 수 없지만, 눈앞의 방어막을 공격하면 불똥이 튀니 멈칫하는 효과는 있었다.
한편 주위 경계에 철저히 했다. 가끔 변이체 시체를 먹으려고 드는 놈이 있어 주의를 요했다. 그런 식으로 시체를 먹고 변이를 일으키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까.
약 30분 후, 모든 전투가 끝났다.
3과 과장이 붉게 타오르는 검을 변이체의 미간에 꽂았다. 변이체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다친 사람 하나 없이 무사히 끝이 났다.
이능력자들도 꽤 지친 기색이었다. 주변에 대충 널브러져 휴식을 취했다.
이제는 지원 17과가 고생할 차례.
지혁이 수한과 준표를 불렀다.
“준표씨랑 수한씨가 D급 변이체들 심장만 가져오세요. 나머지는 모아서 불태우고요.”
“예!”
지구 같았으면 D급 변이체 시체를 통째로 팔아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까지 챙겨서 차원문을 통과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심장만 챙겨가곤 했다.
수한은 커다란 가방과 기름통을 챙겼다. 준표는 전기톱과 예리한 칼을 가져왔다.
“예전에 해체해 본 적 있어요?”
“아뇨. 처음입니다.”
준표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더니 전기톱을 들었다.
“심장이 어디에 있는 줄은 알죠?”
“예, 압니다.”
“자, 보세요. 어렵지 않습니다. 갈비뼈만 절단하고 심장을 꺼내면 되요.”
준표가 시범을 보여주었다.
갈비뼈를 적당히 절단한 후 예리한 칼로 심장을 도려냈다.
수한이 전기톱을 잡았다. 한 번 해보니 어렵지 않아서, 금방 변이체 시체들의 갈비뼈를 절단했다.
절반쯤 한 후 역할을 바꿨다. 조금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긴 했지만, 수한은 금방 익숙해졌다.
둘이 함께 하니 속도가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D급 변이체의 심장을 모두 갈무리했다.
“이제 불 지릅시다. 한곳으로 모으세요.”
“네.”
수한은 육중한 변이체들을 들어다 한데 모았다. 굉장히 무거웠지만, 근력이 최근 강해진데다 준표가 도와줘서 금방 끝을 냈다.
대충 시체를 모은 후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까만 연기가 모락모락 나며 시체를 태웠다.
가방은 수한이 들었다. 준표가 다른 장비를 들고, 사이 좋게 기관총 포대로 돌아갔다.
강성이 둘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꽤 빠르네요. 준표씨도 이제 관록이 붙었나 봅니다.”
“아, 수한씨 손이 빨라서 덕을 좀 봤습니다.”
“호, 그래요?”
강성이 수한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수한은 그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 사이 뒤처리를 다 끝내놓고 있었다. B급 변이체와 C급 변이체의 시체를 ATV 위에 실었다. 너무 큰 것 같으면 몇 개로 절단하여 싣자 충분했다.
야영지에 도착하자 13과 요원들이 나와 17과를 맞이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박이네요!”
“다친 분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피곤하실 텐데 좀 쉬세요. 정찰은 저희가 나가겠습니다.”
13과 요원들이 반은 야영지에 남고 반은 정찰을 나갔다.
변이체 시체를 창고에 넣고 차단막으로 꽁꽁 싸맸다. 그렇지 않으면 변이체들이 그 기운을 느끼고 다가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수한은 텐트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야영지 구축에 전투, 뒤처리까지 연달아 했더니 무척 피곤했다.
한참을 달게 자는데, 누군가 수한을 흔들어 깨웠다.
“수한씨, 일어나요.”
“으음…… 아, 과장님?”
“불침번 차례에요.”
“아, 예!”
수한은 몸을 일으켰다.
같이 불침번을 서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성이었다. 강성은 잠이 덜 깼는지 하품을 쩍쩍 했다.
“수한씨가 모니터 보세요. 절대 졸면 안 됩니다. 알죠?”
“네, 걱정 마세요.”
“어휴, 중번초(불침번 중간 시간에 서는 근무자, 수면에 방해 받기 때문에 기피됨)라 아주 죽겠네요.”
“초번초(첫 근무자)랑 말번초(마지막 근무자)는 원래 선배님들이 하시나요?”
“그런 건 아니고 돌아가서 해요. 어떻게 한 명만 계속 중번초를 시키겠어요.”
“아하, 알겠습니다.”
“오늘 보니까 잘 하던데요? 심장 가져오는 것도 빠른 편이었고.”
“준표 선배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요..”
“하긴 준표씨는 좀 어리버리한 구석이 있어서 그렇지 성격은 좋아요. 원정 나왔을 때는 곧잘 하는 편이고…… 서류만 잘 처리해도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니 문제죠.”
몇 시간 후, 13과가 귀환했다.
13과 과장이 혀를 찼다.
“이번에는 별 소득이 없습니다. C급 10마리를 찾은 게 전부에요.”
“음…… 한 번 전투 3과 과장님이랑 얘기를 해보죠.”
C급 10마리라는 말에, 전투 3과 과장은 머리를 흔들었다.
“C급은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한 번 더 정찰을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 없으면 그때 잡도록 하지요.”
“좋습니다. 이번엔 저희가 정찰을 나가지요.”
지혁은 순순히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능력자들은 기계가 아니었다. 전투 후에는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해야 본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기껏 고생해서 C급을 잡았는데, 그 다음 정찰에서 B급을 발견하면 완전히 손해였다.
ATV 4대가 야영지를 떠났다.
지혁은 3시 방향을 선택했다. 아직 안 가본 곳이기도 했고, 변이체가 많다고 소문난 곳이기도 했다.
1시간 정도 달린 후, 지혁이 팀을 나누었다.
“계획서에 있는 대로 4개 팀으로 나누겠습니다. 1팀은 1시, 2팀은 4시, 3팀은 7시, 4팀은 10시 방향을 탐색해 주세요. 목표는 B급 변이체입니다. 위험하니까 항상 조심하세요.”
“걱정 마세요. 어디 한두 번 해 봅니까?”
“그런 분이 있으니까 그렇지요. 송 주임님하고 김 주임님이 신경 좀 써주세요.”
“예!”
수한과 강성은 4팀이었다.
10시 방향이면 지나쳤던 방향과 거의 비슷해서 변이체는 별로 없을 것 같았다. 1시간 달리는 동안 변이체라곤 아예 보질 못했으니까.
적당히 움직인 후 ATV를 멈췄다.
“여기서 하죠.”
수한은 싣고 온 짐에서 정찰용 드론을 꺼냈다.
조작은 강성이 했다.
강성이 드론을 날려 정찰하는 동안, 수한은 ATV 위에 걸터앉아 주위를 감시했다. 혹시 적대적인 동물이나 변이체가 출현할 수도 있으니까.
한참 원격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강성이 혀를 찼다.
“아주 씨가 말랐네요. 이렇게 없을 수도 있나?”
“C급 정도는 있지 않습니까?”
“D급은 많고, C급도 보이긴 하는데 그거 잡아봐야 손해니까요. 정 없으면 그거라도 잡아야겠습니다만……”
수한과 강성은 허탕을 쳤다.
약 1시간 정도 주위를 돌아본 후 17과에 합류했다.
모두 고개를 저었다. 4개의 팀 모두 시간만 허비한 것이다.
지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조사했던 것보다 변이체들이 더 없네요.”
“최소한 10마리는 잡아가야 손익분기를 넘길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일인지 씨가 말랐어요. C급하고 D급 변이체밖에 안 보이네요.”
누군가 바닥에 홀로그램 생성기를 내려놓았다.
생성기에서 3D 지도가 펼쳐졌다. 지혁은 그걸 보며 고민에 잠겼다.
수한도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바히냐크 평원은 끔찍하게 넓었다. 곳곳에 호수가 점점이 박혀 있고, 작은 숲이 몇 개 보였다.
“곧 귀환해야 할 시간인데…… 일단 조금만 더 돌아봅시다.”
2시간 정도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성과는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수한은 아주 작은 소리를 들었다.
키이이이, 하고 길게 흩어지는 소리.
전기 모터 소리와 바퀴 소리에 묻혀 하마터면 놓칠 뻔 했는데, 최근 감각이 날카로워진 덕분에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저 하늘 높은 곳에, 점 하나가 떠 있는 게 보였다.
새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가던 길을 가려는데,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수한을 엄습했다.
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한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고글의 배율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점의 정체가 보인다.
거대한 익룡처럼 생긴 녀석이다.
날개는 두 쌍으로, 큰 날개가 앞에 작은 날개가 뒤에 달려 있었다. 날개가 번갈아 펄럭이며 그 몸을 하늘 위에 띄웠다.
머리에는 드릴 같은 뿔이 줄을 지어 나 있었다. 뻐드렁니처럼 삐져나온 송곳니가 빛을 반사시켜 흉험하게 빛났다.
전신이 은색 비늘에 덮여 있어 상당한 위압감이 들었다. 배 아래가 붉게 빛나는 게, 아래쪽에서 보니 적색의 별이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놈인데……
수한은 금방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지원 17과가 작성한 사냥 계획에서 주의해야 할 변이체로 뽑은 놈 중 하나였다.
수호자 연맹 파견대에서 만난 백인 남자의 경고가 머릿속을 스쳤다.
“김 주임님!”
“무슨 일입니까?”
황급히 옆에 앉은 강성을 돌아보자, 눈을 감고 있던 강성이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수한은 하늘 위의 점을 손가락질했다.
“저길 보세요! A급 변이체가 있습니다!”
“뭐요? A급 변이체?”
강성은 급히 ATV를 멈췄다.
벗어놓았던 고글을 쓰고 하늘 위를 훑더니, 이내 낮은 신음을 흘렸다.
“휘니크의 지배자……”
바히냐크 평원 북부에는 휘니크 산맥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써 수십 년이 넘게 A급 변이체 한 마리가 공포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A급 변이체라면 진작 사냥당했을 터.
지능이 높고 눈치가 빠른 게 문제였다. 강한 공격대가 사냥하러 오면 도망치고, 약한 공격대가 지나가면 습격해 모조리 죽였기 때문이다.
깔루 행성인들이 휘니크로아라고 부르는 비행형 변이체.
곧 휘니크로아가 날개를 휘저어 저 멀리 사라졌다.
다른 요원들도 휘니크로아의 존재를 알아차렸나 보다. 저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하나둘 ATV를 정지시켰다.
다들 당혹감에 젖은 채,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저놈은 휘니크 산맥에서만 활동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 왜 여기까지 와서 난리래요?”
“어쩐지 변이체가 없다 했지.”
“저놈이 싹 잡아먹은 거 아니에요? 미치겠네.”
대부분의 변이체는 일단 활동 영역이 정해지면 거길 벗어나지 않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수한은 금방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새끼를 낳은 거겠지.
변이체도 생물이고, 간혹 번식이 가능한 개체가 있었다. 그런 변이체들은 새끼에게 먹이기 위해 고급 변이체를 사냥하곤 했다.
악재였다.
“일단 돌아갑시다.”
모두 얼굴이 어두웠다.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사냥인데, 왜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몰랐다.
너무 위험했다. 야영지에 감춰 놓은 B급 변이체와 C급 변이체 시체 때문이었다. 언제 그 존재를 눈치 채고 급습해 올 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차단막으로 특유의 기운을 가렸다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여전히 정찰은 나갔지만 B급 변이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휘니크로아를 발견하는 일이 더욱 빈번하게 벌어졌다.
심지어 휘니크로아의 새끼로 보이는 변이체들도 가끔 보였다. E급이나 F급은 물론, C급도 보이는 게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새끼를 낳아 기른 듯했다.
결국 철수 이야기가 나왔다.
더 늦기 전에 지금까지 사냥한 변이체 시체라도 챙겨서 돌아가자는 것.
그때, 수한은 깊은 장고에 빠져 있었다.
휘니크로아를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 가져온 것만으로?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