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0화 (21/254)

< 휘니크로아 -1- >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휘니크로아를 잡을 수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휘니크의 지배자라는 별칭이 붙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한이 생각해 낸 방법은 어찌 보면 아주 간단했다.

고전적인 방법의 응용이니까.

수한이 알기로 몇 번 성공 사례가 있었다. 위험해서 그렇지, 충분히 해 볼 만 했다.

지혁에게 가서 그 얘기를 꺼냈는데, 휘니크로아를 잡자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지혁이 고개를 저었다.

“수한씨는 신입이라 그런지 의욕이 넘치네요.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해요. 아무리 A급 변이체를 잡는데 성공해도 우리 21명 중 1명이라도 죽거나 중상을 입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하하, 매사가 생각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원정대는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그리고 이미 철수하기로 결정을 내렸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알겠습니다.”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하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

더구나 수한은 이제 입사한지 겨우 1달이 넘은 신입 사원이었다. 그런 신입 사원의 말만 듣고 위험을 감수할 공격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

24인 텐트를 막 철거하려는데, 13과 과장이 모든 작업을 중지시켰다.

“무슨 일입니까?”

“휘니크로아가 아무래도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

“놈이 계속 야영지 주변을 맴돌고 있어요.”

그 말 대로였다.

저 높은 상공 위를 휙 지나가거나, 멀리서 야영지를 보곤 어디로 날아가곤 했다.

흡사 고양잇과 맹수들과 비슷한 태도.

괜히 관심 없는 척 주위를 맴도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확신이 서면 확 덮치겠지.

이 상황에서 야영지를 철거했다간 큰 일 날 터.

최소한의 보초만 남겨놓고 회의가 열렸다.

수한은 운 좋게 회의에 들어왔다. 13과에서 경비를 맡은 까닭이었다.

“좋은 생각이 있는 분은 기탄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지혁이 그렇게 말했지만,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초조한 표정을 지은 채 주위 눈치만 살폈다.

전투 3과 과장이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일단 정면 대결은 힘듭니다. 저희 3과의 전력으로는 휘니크로아를 잡을 수가 없어요. 만약 휘니크로아를 잡으려면 최소한 사장님이나 다섯 이사님 중 한 분은 오셔야 합니다.”

“하긴 A급 비행형 변이체니까요.”

“비행형만 아니었어도 좋을 텐데요.”

“그럼 도망쳐야 한다는 얘긴데……”

“우리 ATV 속도가 겨우 시속 60에서 70 킬로미터 정도 나오는데 도망칠 수 있나요? 휘니크로아가 그보다 최소한 서너 배는 빠를 겁니다.”

“ATV로는 못 도망칩니다. 이그지트까지 꼬박 48시간은 걸려요. 벨레즈 협곡을 지나야 하잖습니까. 그 전에 다 잡힐 겁니다.”

“깔루 행성의 비공정을 부르면요?”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고 박살이 날 걸요?”

“하아……”

“어떻게 하지……”

막사 안이 무거운 침묵에 빠져들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새미가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한테 B급 변이체 시체 2개가 있잖아요. 아깝긴 하지만 그걸 던져주고 도망치면 어때요? 그 시체 먹느라 우리를 안 쫓아오지 않을까요? 변이체들은 노려도 같은 변이체를 노리지, 우리를 노리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수한이 생각해낸 방법과도 일맥상통하는 방법.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지혁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휘니크로아가 악명을 떨치는 이유가 있습니다. 놈은 굉장히 똑똑하고 포악해서, 먹이를 먹을 때는 반드시 안전을 확보합니다. 깔루 행성인이나 다른 행성인이 있을 때는 그들을 모조리 죽인 다음 먹이를 먹지요. 우리가 B급 변이체 시체를 내줘도, 먼저 우리를 추격해 죽인 다음 그걸 먹을 겁니다.”

“진짜요? 몰랐어요.”

새미가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맞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처지였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은 채 죽을 수도 없는 노릇.

수한은 손을 들었다.

죽음과도 같은 정적 속에서, 침울하게 가라앉은 눈빛들이 수한을 향했다.

지혁의 얼굴에 살짝 기대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아, 수한씨. 아까 좋은 생각이 있다고 했지요? 한 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좋은 생각?

칙칙하게 죽어 있던 사람들의 눈에 옅은 기대가 떠올랐다.

그러나 희망을 불태우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보는 수한은 그저 입사 1개월이 조금 지난 햇병아리에 불과했으니까. 그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한을 주시했다.

수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휘니크로아와 싸울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요? 함정을 파서, 휘니크로아를 잡아야 합니다.”

“흠, 그건 그렇지요.”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보급품 중에 클레이모어랑 C4가 있잖습니까? 그걸 휘니크로아의 입 속에 쳐넣어서, 한꺼번에 다 터뜨리는 겁니다. 방어막은 체외에 존재하니까, 내부에서 폭탄이 터지면 제아무리 휘니크로아라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허!”

그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일단 휘니크로아의 입 안에 넣기만 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전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한 자리 옆에 앉아 있던 강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어떻게 입에 폭탄을 넣겠습니까? 휘니크로아가 바보도 아닌데요. 고양이 목에 방울 매달기도 아니고,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수한은 슬쩍 웃었다.

“사람이 직접 해야 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지요.”

그러면서 맞은편에 앉은 새미를 주시했다.

새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두 손바닥으로 자기 무릎을 내리쳤다.

“미끼! 미끼를 쓰면 되겠네요!”

“미끼?”

다른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수한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가 가져온 클레이모어나 C4는 모두 무선 격발이 가능합니다. 그걸 B급 변이체 시체의 배를 가르고 그 안에 집어넣는 겁니다. 그런 다음 휘니크로아가 시체를 삼켰을 때, 일제히 격발시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허, 참!”

“맙소사……”

“과장님. 이거 가능성이 있겠는데요?”

조운재 대리가 지혁에게 속삭였다.

지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앉아 있던 13과 과장이 두 눈을 빛냈다.

“휘니크로아가 식사 전 주위를 청소하는 문제만 해결하면 되겠습니다. 수한씨, 혹시 생각해 둔 게 있습니까?”

“있습니다. 야영지에 불을 지르는 겁니다.”

“예?”

저게 무슨 소리람?

설마 폭탄을 설치한 시체 주변에 불을 지른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랬다가 터지면 어떻게 하려고?

13과 과장은 이 자식 이거 미친 거 아닌가 하는 눈으로 수한을 바라보았다.

수한은 차분하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휘니크로아의 지능은 거의 우리 인간과 비슷하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변이체를 잡고 다른 변이체가 먹지 못하게 화장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휘니크 산맥에서 C급 변이체를 잡은 공격대가 그걸 미끼로 던지면서 불을 붙인 적도 있고요. 뭐, 결국 먹이

부터 삼킨 휘니크로아의 공격에 다 전멸하긴 했습니다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이스라엘의 공격대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기록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어서 알려지게 되었지요. 휘니크로아의 지능이 예상보다 높다는 것을 아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혁의 언급에 수한은 살짝 눈인사를 보냈다.

“불이 붙으면, 휘니크로아는 그 먹이부터 삼킵니다. 먹이가 타면 먹어봐야 효과가 없다는 걸 아는 거지요. 하지만 폭탄을 설치한 시체에다가 직접 불을 지르는 건 너무 위험하니, 그 주변에만 불을 지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폭탄과 불이라……”

“송 과장님, 어떻습니까? 제가 듣기에는 꽤 그럴 듯해 보이는데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정 과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뭘 아나요. 지원부에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죠. 하지만 괜찮게 들리는 건 사실입니다.”

3명의 과장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혁이 눈을 빛냈다.

“좋습니다. 어차피 이대로 있어봐야 휘니크로아의 먹이가 되게 생겼으니, 한 번 수한씨 계획대로 움직여 봅시다. 우리 과가 변이체를 작업할 테니, 13과에서 방화 준비를 해주세요.”

“전투부에서 휘니크로아를 감시하겠습니다. 눈 밝은 사람이 많으니 그게 더 나을 겁니다.”

“그래주시겠습니까?”

회의가 끝나자마자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강성이 다가와 수한의 등을 팡팡 쳤다.

“수한씨!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습니까?”

“에이, 간단한 거잖아요. 솔직히 저 아니어도 누군가는 생각해냈을 겁니다.”

“어휴, 발상을 전환하는 건데 그게 어디 쉽습니까? 그게 쉬우면 콜롬버스의 달걀이라는 말이 생기지도 않았겠죠. 어쨌든 수한씨 덕에 한 시름 놨습니다.”

수한은 그저 웃기만 했다.

17과 전원이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변이체가 풍기는 특유의 파장을 차단하기 위해, 차단막이 창고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안에 B급 변이체와 C급 변이체의 시체가 보였다. C급 변이체의 시체는 온전하지만, B급 변이체는 덩치가 커서 두 토막으로 나눠놓은 상태였다.

지혁이 손짓을 했다.

“휘니크로아가 뭘 삼킬지 모르니 4개 전부에 작업하겠습니다. 오기 전에 나눈 팀별로 움직이죠.”

수한은 강성과 함께 작업을 했다.

둘이 맡은 것은 B급 변이체의 하반신.

허리가 잘라 놓아 작업은 쉬웠다. 내장을 파낸 후 그 안에 클레이모어와 C4를 매설했다. 그 후 내장을 그 위에 덮고, 꼼꼼하게 봉합했다.

혹시 금속 냄새가 새어 나갈까 봐 살짝 열을 가했다. 원래는 냉동시켜 놓았는데, 온도를 올리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4팀 끝났습니다!”

“2팀도 끝났습니다!”

“3팀도 끝입니다!”

금방 작업을 끝냈다.

겉으로 봐서는 안에 치명적인 폭탄이 매설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후각으로도 마찬가지. 이만하면 휘니크로아도 속아 넘어갈 듯했다.

밖에서 17과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저흰 준비 끝났습니다! 작업은 언제쯤 끝납니까?”

“저희도 끝났습니다!”

일단 모두 밖으로 나왔다.

13과가 ATV를 모두 준비시켜 놓았다. 그 동안 틈틈이 충전도 시킨 터라 달리는데 문제는 없었다.

“보급품 챙겨요, 3일 분씩!”

“얼른얼른 합시다!”

창고에 보관 중이던 식량과 탄약을 꺼냈다.

휘니크로아가 공격해 오기 전 출발해야 했다. 수한의 계획이 맞아떨어져 휘니크로아를 사냥하는데 성공하더라도, 최소 3일 분량의 보급품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까운 도시까지 갈 수 있으니까.

3일 분량의 보급품을 싣고, 수한은 하늘 위를 보았다.

휘니크로아가 하늘 저 편에서 길게 선회하고 있었다.

누군가 수한의 옆으로 다가왔다.

“곧 공격할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새미.

그 예쁜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옆에 서서 휘니크로아를 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잘 될까요? 휘니크로아는 정말 똑똑하다던데……”

“하는 데까지 해봐야죠. 그냥 죽어줄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래요.”

모든 준비가 끝났다.

원정대는 각자 ATV에 올라탔다.

ATV와 창고를 감싼 차단막을 연결해 놓았다. 이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차단막이 벗겨질 것이다. 그럼 B급 변이체의 기운이 휘니크로아를 자극할 테니, 그 사이 빠져나갈 요량이었다.

철조망도 군데군데 벗겨 길을 냈다. 이제는 달리기만 하면 된다.

수한은 준비를 단단히 했다.

산탄총은 무릎 사이에 끼우고, 소총의 멜빵을 어깨에 멨다. 최악의 경우라도 그냥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강성이 옆에서 당부했다.

“혹시 휘니크로아가 우릴 노리면 동시에 뛰어내리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요. 제가 지구에서 했던 말 기억하죠? 본인 목숨은 본인이 챙겨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대부분은 ATV에 2명이 같이 탔지만, 새미는 혼자 타게 되었다. 홀수 인원인 전투 2과에서 뽑은 제비에 당첨됐기 때문이다.

지혁이 크게 소리쳤다.

“출발합니다!”

기이이잉!

ATV들이 단번에 달려 나갔다.

차단막이 벗겨졌다. 그 즉시 변이체 특유의 기운이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그것을 느낀 휘니크로아가 길게 괴성을 질렀다.

날개를 펄럭이더니, 야영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11대의 ATV가 일제히 야영지를 빠져나왔다. 그 뒤에 매달려 있던 차단막이 하나둘 끊어져 땅 위를 뒹굴었다.

13과 과장이 나가며 불씨를 던졌다.

뿌려놓은 기름에 불이 붙었다. 불길이 성난 파도처럼 야영지 전체를 휩쓸었다.

금세 시꺼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격대원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운이 없어 휘니크로아가 함정을 피하기라도 하면, 그때부터는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수한은 뒤를 돌아보았다.

휘니크로아가 하늘 위에 정지해 있었다. 도망치는 공격대원들을 쫓을지, 아니면 불타는 야영지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먹이부터 삼킬지 고민하는 듯했다.

“캬악!”

한 번 괴성을 지르고는, 마음을 정했는지 몸을 날렸다.

“젠장.”

수한은 이를 악물었다.

계획이 빗나갔다.

휘니크로아는 야영지를 향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공격대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수한이 탄 ATV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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