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1화 (22/254)

< 휘니크로아 -2- >

재수가 없었다.

ATV 11개 중에 하필 이쪽이라니?

쌔애액!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수한의 귀청을 때렸다.

옆에서 강성이 욕설을 내뱉었다.

수한은 이를 악물었다.

무릎 사이 끼어놓았던 산탄총을 세게 움켜쥐었다. 액셀러레이터를 있는 힘껏 밟아댔다.

강성이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순간, 커다란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수한은 왼쪽으로 힘껏 몸을 날렸다.

꽝!

뭔가 수한의 오른쪽을 스쳐지나갔다.

간발의 차이.

육중한 물체가 ATV를 직격했다. 경량화 때문에 속이 텅텅 빈 ATV가 으깨지며 파편이 이리저리 날아갔다.

“쿨럭!”

수한은 몇 바퀴나 바닥을 굴렀다.

어디에 맞아 다쳤는지, 뜨끈한 액체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고글도 깨져서 앞이 제대로 안 보였다.

얼른 고글을 벗어 던졌다.

강성이 말했던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낸 덕에, ATV에서 금방 멀어졌다.

어떻게 됐나?

굳이 뒤를 돌아볼 것도 없었다.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하늘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익룡을 닮은 A급 변이체.

휘니크로아.

놈이 급강하하여 수한의 ATV를 박살내 버린 것이다.

“제기랄……”

수한은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개활지에서 휘니크로아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뭔가 엄폐물이 필요한데,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휘니크로아가 다시 하늘 위를 선회하기 시작했다. 또 야영지를 한 번 보더니, 뿔뿔이 흩어지는 대원들을 일별했다.

그 시선이, ATV가 아닌 두 발로 열심히 뛰는 수한과 강성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개중 더 빠르게 움직이는 수한에게 관심이 간 것일까.

눈에 광폭한 빛이 감돌았다.

날개를 크게 펼치더니, 어느 순간 팡 하고 떨쳤다. 그 거대한 몸이 기울어지며 폭풍처럼 낙하하기 시작했다.

“수한씨!”

“어떻게 해!”

다른 대원들이 기겁했지만 그들도 자기 코가 석자였다.

수한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목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망칠 수 없다.

몸을 돌렸다.

휘니크로아의 몸이 확대된다.

세상 전체를 무너뜨릴 것만 같은 기세.

너무 빨랐다.

수한은 이를 악물었다.

비릿한 피가 배어나와 입 안을 감돌았다.

‘이대로 끝인가?’

지난 10년 동안의 세월이 눈앞을 스쳤다.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서, 이제 겨우 살만해 졌는데……

두 동생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여기서 죽으면 동생들은 어떻게 하지?

아냐, 잘 살 것이다.

보험도 빵빵하게 들었고, 보상금도 따로 나올 테니까. 남자놈들이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나.

그렇다고 이렇게 죽어줄 수야 없는 일.

여기서 죽어 자빠지려고 그렇게 열심히 산 게 아니란 말이다!

수한은 눈에서 불을 토했다.

산탄총을 들었다.

타타탕!

탄창을 모두 비웠다.

총구가 미친 듯이 불꽃을 뿜었다.

쇠구슬 수백 개가 휘니크로아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소용이 없었다. 모조리 방어막에 막혔다.

오히려 휘니크로아가 성을 내며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수한은 산탄총을 내팽개쳤다. 이를 갈며 소총을 휘니크로아에게 겨누었다.

막 연발로 갈기려는데,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렸다.

“뭐하는 거예요! 도망치지 않고!”

번쩍!

번개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강맹한 전기 다발이 휘니크로아를 직격했다.

휘니크로아가 깜짝 놀라 날개를 휘저었다. 간발의 차이로 수한을 비껴가더니, 인근 땅에 착지했다.

ATV 한 대가 수한에게 달려오더니 앞에 멈췄다.

여인 한 명이 그 안에 타고 있었다.

모두 도망치는 판에, 그녀가 구하러 올 줄이야……

절망 끝에서 다가온 희망.

바람에 나부끼는 검은 머리칼과 흰 얼굴, 그리고 양손에 깃든 흰 번개가 수한의 뇌리에 화인(火印)처럼 새겨졌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새미씨?”

“얼른 타요!”

감상은 나중에.

수한은 총만 챙겨서 ATV 뒤에 매달렸다. 새미가 페달을 꽉 밟자 ATV가 쭉쭉 달려 나갔다.

“캬아아악!”

흉성이 폭발한 휘니크로아가 길게 소리를 질렀다.

뒤뚱거리며 달려오더니, 날개를 펄럭여 하늘에 몸을 띄웠다. 속도를 빠르게 올리자 금세 ATV가 휘니크로아에게 따라잡혔다.

파직! 파지직!

새미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번개를 날렸다.

휘니크로아의 몸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탕탕!

수한은 산탄총을 쏘았다.

휘니크로아의 눈 바로 앞을 노리고 쏜 참이었다. 눈앞에서 불똥이 튀자 휘니크로아의 몸이 더 불안정해졌다. 변이체도 생물인 이상, 본능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니까.

ATV를 따라오던 휘니크로아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포기한 건가?

아니다. 장기인 급강하 공격을 하려는 거였다.

수한은 새미에게 외쳤다.

“금방 옵니다! 뛰어내릴 준비 하세요!”

“알았어요!”

새미가 차가운 표정으로 하늘 위를 힐끔거렸다.

수한은 ATV 위로 기어 올라갔다. 소총과 산탄총 둘 다 탄창을 간 후, 하늘 위의 휘니크로아를 살폈다.

휘니크로아가 날개를 떨치는 게 보였다.

벼락 치듯 맹렬하게 떨어져 내렸다. 공기가 찢어지며 비명을 지르고, 거대한 그림자가 ATV 위에 드리워졌다.

“지금!”

수한과 새미가 나란히 몸을 날렸다.

둘이 거친 바닥에 뒹구는 것과 함께 ATV가 박살났다.

몸을 가눈 뒤 산탄총을 쏘려고 했지만, 휘니크로아는 이미 하늘로 날아오른 뒤였다.

“새미씨! 괜찮아요?”

“네! 전 괜찮아요. 수한씨는요?”

“저도 다친 곳은 없습니다. 저쪽으로 피하죠!”

마침 커다란 바위가 하나 보였다.

새미가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ATV를 몰았던 것.

수한은 새미를 데리고 그 뒤에 숨었다. 휘니크로아가 착지해서 공격한다면 모를까, 급강하 공격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캬악!”

다행스럽게도 휘니크로아는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했다. 불길이 거의 창고까지 다가간 까닭이었다.

하잘 것 없는 벌레들이야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먹이를 삼킨 다음 짓밟아도 충분했다. 지금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맛난 먹이를 챙기는 게 급선무였다.

천천히 날개를 휘저어, 야영지 위로 날아들었다.

수한과 새미는 바위 뒤에 숨어 그걸 똑똑히 지켜보았다.

관심 없는 척, 휘니크로아의 눈알이 둘을 한 번 훑어보고 지나갔다. 수한의 등줄기에 소름이 좌르륵 돋았다.

격발기는 지혁과 13과 과장이 갖고 있었다.

작전이 통해야 할 텐데……

“잘 되겠죠?”

새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한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

사실은 수한도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휘니크로아가 창고 앞에 내려앉았다.

그 앞에 서서 가볍게 날개를 쳐냈다. 가벼운 창고 골조들이 단번에 무너졌다. 창고가 쓰러지며, 그 안에 보관된 변이체 시체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확히 20마리.

그 중 중요한 것은 딱 둘.

각자 두 토막이 난 B급 변이체 시체였다.

그걸 본 휘니크로아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목울대가 꿈틀거리는 게, 군침을 삼키는 것 같았다.

“구르륵, 구륵.”

묘한 소리를 낸 다음 그대로 변이체 시체를 집어삼켰다.

하나, 둘, 셋, 넷.

시체 토막 전부였다.

성공이다.

수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폭탄을 매설해 놓은 네 개의 시체 토막이 모두 휘니크로아의 몸에 들어갔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나 보다.

휘니크로아는 남은 시체들을 몽땅 먹어치웠다. 덕분에 날렵하던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캬아악!”

휘니크로아가 홰를 치며 묘한 소리를 질렀다.

배가 불러 흡족하다는 태도.

주변을 불길이 휘어 감고 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뻐억!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빵빵하게 부풀어 있던 휘니크로아의 배가 폭발했다.

녹색 체액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고기 조각이 야영지 전역에 우박처럼 쏟아졌다.

“성공이네요!”

옆에 서 있던 새미가 환호성을 질렀다.

수한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짜릿한 쾌감이 수한의 전신을 관통했다. 입가에 저절로 흐뭇한 웃음이 떠올랐다.

A급 변이체라도 이 정도 타격을 입으면 견디지 못한다.

몸통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두 쌍의 날개가 찢겨 나갔다. 그나마 두 개의 다리와 머리, 목, 그 아래 가슴 정도만 온전히 붙어 있었다.

그런데 완전히 죽지는 않았나 보다.

녹색 체액 웅덩이에서 휘니크로아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머리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하여간 질긴 생명력이다.

새미가 손에 다시 번개를 만들었다.

“저거 확인 사살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버려 두세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방어막은 이미 소멸되었다.

굳이 위험하게 가까이 가서 이능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멀리서 총알 몇 방만 박아 넣어도 끝장낼 수 있었다.

수한의 생각대로였다.

탕! 탕!

멀리서 총 소리가 울렸다.

땅에 쓰러진 휘니크로아의 몸이 들썩였다.

총알이 박힐 때마다 녹색 체액이 터졌다. 구멍도 뻥뻥 뚫려서,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다.

수십 발의 총알을 얻어맞자, 더 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꼼짝달싹 하지 않고 드러누운 채, 녹색 걸쭉한 체액만 진득하니 흘렸다.

ATV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판단하고, 야영지로 돌아오는 것이다.

수한은 새미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새미씨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이, 뭘요. 같은 공격대 소속인데 서로 돕고 살아야죠.”

말이 쉽지, 실제로 그렇게 몸을 던져 다른 사람을 도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수한은 새삼스럽게 새미를 보았다.

강성에게 비인간적인 공격대라고 쏘아붙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그렇게 따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으로 직접, 자신이 말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으니까.

수한은 거푸 감사 인사를 했다. 새미가 부담스럽다고 그만하라고 손을 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목숨 빚이다.

뭔가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 수한으로서는 인사 밖에 할 것이 없었다.

잠시 후 바위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야영지는 아직 전소되지 않았다. 많은 손실이 발생했지만, 지금이라도 불을 끄면 아쉬운 대로 며칠 더 머무를 수는 있었다.

그 후 휘니크로아의 시체만 잘 챙겨 가면 엄청난 이득을 챙길 터였다. 모르긴 몰라도 B급 변이체 십여 마리를 잡아가는 것보단 낫겠지.

원정대원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반대쪽으로 도망쳤던 강성도 합류했다.

“새미씨! 괜찮아요?”

“수한씨! 다친 곳은 없습니까?”

“괜찮습니다!”

“전 괜찮은데 수한씨 머리에서 피가 나요!”

“어디 한 번 봅시다.”

사태를 주시하던 원정대가 모두 귀환했다.

몇 명은 둘의 상처를 살피고, 몇 명은 불을 끄기 시작했다. 모래를 뿌려 불을 끄느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수한은 상처를 치료하며 레벨 업 도우미의 창을 펼쳤다.

‘드디어!’

저절로 환호성이 나왔다.

40레벨이 되어 있었다.

B급과 C급 변이체를 잡으면서 37레벨이 되었는데, 휘니크로아를 잡았더니 3레벨이 더 오른 것.

능력치도 몇 개가 올랐다. 민첩, 감각, 의지, 직감이 각각 1씩 상승한 것이다. 며칠 동안 사냥과 정찰을 반복하고, 휘니크로아를 상대한 게 반영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

능력 점수를 초능 능력치에 찍어서, 초능이 40이 되었을 때 초능창에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숫자만 우르르 보였는데, 한 가지 항목이 추가된 것이다.

[초능]

[개발 중]

[80] [120] [160] [200] [300] [400] [500]

여유 점수 : 39

수한은 여기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개발 중이라고?

무엇을?

가슴이 뛰었다.

개발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초능, 즉 이능을 사용하게 되겠지.

이능력자.

연봉도 연봉이거니와, 변이체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는 게 가장 컸다. 지금처럼 보조적인 역할로 끝나는 게 아니라,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 것이다.

새삼스레 초능창의 숫자들에 신경이 쓰였다.

원래는 40, 80, 120, 160, 200, 300, 400, 500이라고 쓰여 있던 숫자들.

초능이 그 숫자에 도달할 때마다 하나씩 개발되는 게 아닐까?

두고 봐야겠지만, 추측한 게 맞을 거라고 확신했다.

초능창의 변화를 봐서일까.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결렸지만 수한의 몸놀림은 가볍기만 했다. 불을 끄는데 한 몫 거들고, 남은 물건들을 추슬렀다.

사실 이렇게 모든 일이 다 끝나는 줄 알았다.

섣부른 생각이었다.

하늘을 뒤덮으며 괴물들이 여럿 나타났다.

“캬아악!”

“캬악, 캬악!”

익룡처럼 생긴 변이체들.

크고 작은 두 쌍의 날개와, 붉게 발광하는 뱃가죽이 특징적이었다.

약 10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 무리.

놈들은 야영지의 하늘 위를 떠돌았다.

휘니크로아의 새끼들.

그것들이 제 어미의 기색을 읽고 여기까지 날아온 것이다.

복수를 위해서?

아니다. 변이체들의 세상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

변이체들은 야영지 구석에 놓인 휘니크로아의 시체만 노려보고 있었다.

A급 고위 변이체의 시체.

최고의 별미이자, 진화의 원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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