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2화 (23/254)

< 탈출 -1- >

대강 정리를 한 후,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캬악! 캬악!”

변이체들이 울부짖는 게 참 귀에 거슬렸다.

전투 3과 과장이 하늘을 한 번 보더니 말했다.

“이번 원정은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대공 장비도 하나 없으니……”

“저놈들 참 영악하네요. 가까이 접근하면 기관총이라도 쏴서 죽일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다행인 것은 휘니크로아의 시체를 회수했다는 거였다.

많은 부분이 손상되긴 했어도, 흔치 않은 A급 비행형 변이체의 시체였다.

당초 목표를 초과해서 달성한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지혁이 사냥 종료를 선언했다.

“아직 깔루에 도착한지 나흘 밖에 안 되었지만, 이번 사냥은 여기서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휘니크로아의 시체를 무사히 옮기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간단히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어차피 제대로 된 해체 작업은 지구에서 가공부가 알아서 할 터였다. 지금은 ATV에 실을 수 있도록 토막 치는 것으로 충분했다.

덩치가 너무 커서 네 조각으로 나누었다. 각자 신축성이 뛰어난 큰 보퉁이에 넣고, 마무리로 차단막까지 둘러쳤다.

간단히 식사를 한 뒤, 지혁이 모두를 불러 모았다.

“이제 출발할 겁니다. 벨레즈 협곡을 통과해야 하니까, 모두 긴장하시기 바랍니다.”

“저놈들은 어떻게 하죠?”

“달고 가는 수밖에 없지요. 어디보자, 지금 ATV가 9대 남았으니까……”

ATV에 탈 인원을 재배치했다.

막내인 13과의 신입사원과 수한이 ATV 위에 타기로 했다. 아예 기관총까지 대공 삼각대를 이용하여 거치했다. 휘니크로아의 새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수한은 박살난 고글을 대신해 예비 고글을 하나 착용했다. 배율을 적당히 조절하고, 하늘 위의 변이체들을 감시했다.

원래 이그지트까지는 비공정으로 6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러나 ATV로는 최소 48시간은 소모되었다. 바히냐크 평원은 일직선으로 주파하면 그만이지만, 벨레즈 협곡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혁이 짝짝 박수를 쳤다.

“이제 출발합시다!”

9대의 ATV가 차례로 출발했다.

수한은 ATV 위에 몸을 잘 고정시켰다. 그걸 확인하고, 강성이 ATV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중간에 휴식을 취해가며 달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저 멀리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벨레즈 협곡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캬악! 캬악!”

변이체들은 여기까지 따라왔다.

C급 3마리에 D급 5마리, E급 3마리였다. 정면으로 싸우면 원정대의 필승이지만, 멀리서 소리만 질러대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총을 겨누면 도망치고, 잠시 후 다시 날아와 소리를 지르고, 또 겨누면 다시 도망치고……

“지겨운 것들.”

누군가 넌더리를 냈다.

어느덧 밤이 찾아와 있었다.

지혁이 원정대를 정지시켰다.

이대로 벨레즈 협곡에 들어가는 것은 현명하지 않았다. 곳곳에 소형 변이체들이 숨어 있다가 기습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야영을 하고 가겠습니다. 과장님들은 잠시 모여주세요.”

과장들끼리 회의를 하는 동안 수한은 텐트를 쳤다.

24인용 텐트와 이능력자용 텐트는 전소되었다. 그래도 각자 조난을 대비하여 비상용 초경량 2인용 텐트는 가지고 있었다. 설치하는 것도 간단했다.

밤을 도와 휘니크로아의 새끼들이 공격해올 줄 알았는데,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원정대에겐 희소식이었다.

야영 준비가 끝나자 식사부터 했다. 오래 준비할 시간은 없어서, 비빔밥 형태의 전투식량이 전부였다.

해가 지자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해가 뜨는 대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최소한의 안전 확보를 위해, 변이체 탐지기를 몇 개 설치했다. 불침번도 평소처럼 2명만 서는 게 아니라 4명으로 늘리고, 이능력자들도 참여했다.

수한은 이번에도 중번초.

곤히 자다 깨려니 꽤 피곤했다. 수한은 굳은 몸을 풀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하암, 잘 주무셨어요?”

새미가 먼저 나와 있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지만, 은색의 보호복과 흰빛이 감도는 장갑이 유독 눈에 띄었다.

수한의 뒤를 따라 나온 강성이 새미를 보고 반색했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게 불침번이지만, 새미 같은 미인이 옆에 있으면 심심하진 않을 터였다.

“잘 잤습니다. 새미씨가 3번초이신가 봅니다.”

“3번초요? 어…… 3번째 불침번인 건 맞아요.”

“하하, 그걸 저희는 3번초라고 합니다.”

13과에서는 수한의 동기가 졸린 눈을 비비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넷은 모닥불 근처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더 이상 변이체들이 보이지 않아 긴장이 좀 풀렸다. 탐지기도 쥐 죽은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밤 동안에는 공격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강성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순찰 돌아야 할 시간이네요. 음, 어떻게 할까요?”

“제가 돌죠. 근방 한 바퀴만 쭉 돌면 되잖아요?”

앉아 있기 무료하던 참이었다. 수한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뜻밖에도 새미도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저도 같이 갈게요.”

“어, 새미씨까지 같이 갈 필요는 없어요. 변이체 잡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앉아 있으려니까 심심해서요. 가죠!”

새미가 사뿐사뿐 먼저 걸음을 옮겼다.

하긴 기껏해야 10분 정도 주위를 둘러보는 게 고작이었다. 수한은 강성에게 고개를 숙이고 새미의 뒤를 따라갔다.

“공기가 참 맑네요, 그쵸?”

수한이 옆에 따라붙자, 새미가 말을 걸었다.

“깔루 행성은 지구처럼 환경오염이 심하지 않으니까요. 오죽하면 외계인들도 지구에 오는 것을 기피하겠습니까?”

“그건 그래요. 언제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외계 행성에 놀러가고 싶네요.”

“새미씨는 돈 많이 버실 텐데 외계 행성 여행은 충분히 다니실 수 있지 않나요? 들어보니까 헤븐이나 비스티아, 미드가르드가 유명하다던데요.”

“많이 벌긴 하는데 그만큼 많이 써요. 힘의 결정 하나 사려면 기본이 몇 억이잖아요.”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원정대가 야영하고 있는 곳 주위를 쭉 돌았다.

슬슬 방향을 틀어 돌아가려는데, 수한의 눈에 뭔가 움직임이 잡혔다.

무심코 걸어 나가던 새미의 팔을 붙잡았다.

새미가 깜짝 놀라 수한을 돌아보았다.

“어…… 왜 그래요?”

“쉿! 뭔가 있습니다.”

어둠 속에 어렴풋이, 거대한 닭을 닮은 물체들의 윤곽이 언뜻 보였다.

비공정을 타고 올 때 봤던 깔루 행성의 토착 육식동물.

다섯 마리나 될까.

야영지에 호기심을 느끼고 접근해 온 것이다.

수한은 산탄총을 들어올렸다.

새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을 노려다보더니, 손을 들어 수한을 제지했다.

“제가 처리할게요.”

든 손을 그대로 쫙 펴자, 장갑 전체에 흰 빛이 어렸다.

번갯불이 튀었다.

장갑에서 뻗어나간 흰 번개가 어둠을 찢었다. 번개가 자기들 발밑을 훑고 지나가자, 동물들이 화들짝 놀랐다.

“끼이익!”

부산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뒤뚱뒤뚱 도망쳤다.

새미가 수한을 보며 살짝 웃었다.

“총알 쓰면 아깝잖아요?”

“하하하.”

수한은 그저 웃고 말았다.

동물들이 낸 소리 때문에 강성이 급히 뛰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이거 무슨 소리에요?”

“기치캬들이 접근했습니다. 새미씨가 쫓아냈어요.”

“그래요? 새미씨, 수고하셨습니다.”

“뭘요. 여기 수한씨가 먼저 닭들을 발견했는걸요? 수한씨가 아니었으면 전 그냥 지나쳤을 거예요.”

순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한 번 뜨거운 맛을 보여준 뒤에는 접근하는 것들이 없었다. 지루하게 시간을 보냈다가 2시간이 지나 불침번을 교대했다.

“휘니크로아 새끼들은 어디 갔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2시간 내내 탐지기에는 안 잡혔습니다. 아마 멀리 간 모양입니다.”

“그냥 포기할 리가 없는데……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수한은 텐트로 들어와 누웠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이번에도 전투식량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텐트를 다 걷어 ATV에 실은 후, 천천히 길을 떠났다.

지혁이 원정대 전체에 주의를 주었다.

“벨레즈 협곡에는 기괴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상급 변이체는 없지만, 하급 변이체는 꽤 많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특히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공격하곤 하니까, 절대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수한씨랑 준표씨는 탐지기 계속 보고 있고요.”

“알겠습니다.”

원정대가 협곡으로 진입했다.

협곡은 참으로 황량한 곳이었다.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었다. 거친 질감의 모래가 잔뜩 깔려 있고, 보이는 것은 붉고 검은 바위뿐이었다.

봉우리들이 수직으로 솟아 있었다. 이건 봉우리가 아니라 기둥을 보는 듯했다. 산악 지형이 아닌, 도심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수한을 사로잡았다.

“봉우리 사이에 구멍 같은 게 가끔 있지요? 이곳 생물들은 그곳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그리고 바닥에 보면 유독 색이 짙은 곳이 있을 텐데, 그것 이곳 생물들이 파놓은 굴이니까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공격을 당할 수도 있어요.”

지혁의 설명을 들은 다음에야 바닥의 거뭇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돌을 하나 집어 휙 하고 던졌다.

돌이 거뭇한 부분에 닿자, 커다란 집게발이 튀어나왔다. 집게발은 돌을 잡고 금방 땅속으로 사라졌다.

수한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저게 돌이 아니라 사람이었으면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제가 선도하겠습니다. 저 따라오세요. ATV 운전 조심하시고……”

지혁이 가장 앞장서고, 13과 과장이 중간을, 전투 3과 과장이 후미를 지켰다.

바닥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전진 속도가 느렸다. ATV의 최고 속도는커녕 그 반의 반도 못 내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아마 내일 밤이 다 되어서야 이그지트에 도착할 듯했다.

수한은 눈을 깜빡였다.

탐지기 모니터에 빨간 점이 하나 찍혔다.

변이체가 가까운 곳에 출현한 것.

수한은 잽싸게 탐지기를 조작했다. 거리와 방향, 등급을 알아낸 후 큰 소리로 외쳤다.

“방향 11, 거리 500, E급 변이체입니다!”

“그래요? 그럼 수한씨가 처리하세요.”

강성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수한은 소총을 집어들었다.

11시 방향이니까 진행 방향에서 살짝 왼쪽에 변이체가 보여야 한다. 그런데 고글을 찬 채 아무리 배율을 조절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한은 금방 실수를 깨달았다.

시선을 위쪽으로 옮겼다. 과연 희끄무레한 괴물 하나가 봉우리 중간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진 시점.

탕!

묵직한 총성이 대기를 갈랐다.

총알은 정확히 변이체의 미간을 꿰뚫었다. 변이체가 비틀거리더니 툭 하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강성이 엄지를 치켜 올렸다.

“굿! 원샷원킬이네요.”

“에이, 이 정도야 우리 공격대 요원이면 다 하지 않습니까? 겨우 거리 300에서 쐈는데요.”

“흐흐, 보니까 못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 말을 끝으로, 강성은 ATV 운전에 집중했다.

점심은 건빵과 물로 때웠다. 식사 시간마저 아까웠던 것이다.

절반 정도 협곡을 지나자 해가 졌다.

휘이이잉. 휭휭.

봉우리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소리가 꼭 유령이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 솜털이 잔뜩 일어나고, 몸이 저절로 움츠려들었다.

텐트를 칠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별 수 없이 ATV들을 잘 늘어놓고, 침낭만 편 채 자리를 잡았다.

“불침번 분들 경계 잘 해주세요. 이곳은 바히냐크 평원이랑은 달라서 변이체나 육식동물의 출현이 잦습니다.”

“걱정 마세요.”

“저번에도 통과한 적 있잖습니까? 이번에도 별 일 없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수한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휘니크로아의 새끼들이었다.

차라리 계속 따라왔으면 조심을 할 텐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괜히 불안감만 증폭되었다.

침낭 안에 누웠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정신이 말똥말똥하고, 가슴이 아까부터 계속 두근거렸다.

꼭 뭔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을 반복했다.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수한은 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묵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낯선 별자리들이 빼곡했다. 지구의 밤하늘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묘한 감흥이 일어났다.

개중 특이한 게 있었다.

하늘 한쪽에, 붉은 별 무리가 점점이 떠 있는 게 보였다.

꼭 핏물이 흐르는 것 같다.

어젯밤까지는 저런 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잠깐만.

별이 붉다고?

수한은 재빨리 침낭에서 기어 나왔다. 벗어두었던 고글을 쓰고, 배율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이런……”

별들을 본 수한이 탄식을 토했다.

별이 아니었다.

익룡을 닮은 괴수였다.

너무 높은 곳에 떠 있어, 미처 경보 장치가 발동하지 않았던 모양.

수한은 급히 불침번 중인 지혁에게 달려갔다.

“과장님! 하늘을 보세요!”

“예? 하늘이라니요?”

“하늘에 휘니크로아의 새끼들이 떠 있습니다!”

“뭐라고요?”

지혁만이 아니라, 같이 불침번을 서던 사람들이 홱 고개를 꺾었다. 각자 고글을 조작해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가 늘었잖아!”

“서른 마리가 넘어!”

“B급도 좀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소리쳤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수한은 곤히 자고 있던 사람들을 흔들어 깨웠다.

무슨 일이냐며 묻더니 고글로 괴물들을 확인하자 잠이 확 달아난 모양이었다. 근처에 놓아두었던 무기를 집어 들고, 탄창을 몇 개씩 챙겼다.

탐지기를 확인하여 변이체들의 수와 등급을 알아냈다.

“거리 500! B급 2마리, C급 7마리, D급 12마리, E급 11마리입니다!”

“이런 젠장.”

“총 32마리나 돼?”

“미친!”

B급 변이체가 2마리만 되어도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것들 말고도 30마리나 있다고?

휘니크로아가 살면서 낳았던 새끼들이 몽땅 몰려온 모양이다.

사람들의 얼굴에 암담함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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