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능 개발 -1- >
수한의 눈이 커졌다.
개발 완료.
이게 무슨 뜻이겠나.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작은 글자들이 거품처럼 퐁퐁 솟았다.
[거인의 힘] [강철 육체] [전광석화] [초감각]
[우월한 정신] [절대 의지] [염력 구현] [이계 접촉]
[개문 소환] [만물 변환] [만상 투시] [영혼 제어]
총 12가지.
수한은 글자들을 보는 순간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능의 12가지 계통.
거력·강체·신속·감각·정신·의지·구현·외능·소환·변조·투시·영혼.
단어만 다르지, 그게 분명했다.
왜 이렇게 나열되는 것인지도 알아차렸다.
선택하라는 것.
레벨 업 도우미의 초능 개발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듯했다.
이제 됐다.
지금까지 쌓아 놓았던 초능 점수 39점을 잘 활용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캬아악!”
하지만 느긋하게 초능을 고르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변이체가 괴성을 지르며 목을 휘둘렀다.
급했다.
수한은 새미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변이체의 흉악한 아가리가 간발의 차이로 비껴갔다.
‘시간, 시간이 필요해.’
더 바라지도 않았다.
딱 1분.
그 정도만이라도 어떻게든 확보해야 했다.
수한은 새미를 안고 일어났다. 소총과 새미를 한꺼번에 품은 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봉우리 외곽을 타고 빙빙 돌았다. 뒤에서 변이체가 쿵쾅대며 쫓아오지만, 원래 비행형이다 보니 달리는 속도는 느렸다. 조금은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눈을 번뜩였다.
주위를 번개처럼 살폈다.
작은 동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몸을 굽히면 수한이나 새미는 충분히 들어가겠는데, 변이체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았다.
원래는 하급 변이체가 사는 곳.
그곳을 향해 달렸다.
“키아아악!”
변이체가 성을 내며 쫓아왔다.
약간 오르막길이었다. 조금씩 따라잡혔다. 나중에는 변이체가 목을 뻗으면 잡힐 거리가 되었다.
잡히기 직전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텁!
변이체가 내민 입이 허공을 깨물었다.
간발의 차이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목이 달아났을 터.
수한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키이익!”
안에 있던 변이체가 둘을 보고 이를 드러냈다.
동굴의 주인.
그래봐야 F급 변이체였다.
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자, 녹색 체액이 터졌다.
동굴은 제법 깊었다.
밖의 변이체가 머리를 들이밀었지만, 수한은 새미를 안고 동굴 끝까지 피한 뒤였다.
“후우!”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변이체가 그르렁 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는 동굴에서 뺐지만 어디 갈 생각은 없는 모양. 동굴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변이체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
수한은 조심스럽게 새미를 동굴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시야 한쪽을 차지한 12개의 항목을 최대한으로 확대시켰다. 눈에 힘을 주고 정신을 집중했다.
뭐가 좋을까?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보조적인 이능이 아니라, 변이체의 방어막을 직접 타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거력·구현·외능·소환·변조·영혼 이렇게 6가지 계열이 남는다.
수한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은 뭘까?
거력을 선택해서 근접 전투 능력을 올릴까?
구현 이능으로 새미처럼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것도 괜찮다.
외능? 소환? 그건 잘못하면 성격이 확 변하니까 보류. 둘 다 외계의 존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다 보니 꽤 위험했다.
변조는 괜찮을 것 같았다.
영혼은 지금 당장 활용하기가 힘들고.
거력, 구현, 변조.
일단은 세 가지로 압축.
그 중에서도 변조가 수한의 성향에 가장 잘 맞았다. 거력과 구현과는 다르게, 총기를 활용할 수 있으니까.
공격력만 따지면 거력이나 구현이 더 낫다. 그런데 수한이 지금까지 익힌 것을 활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기왕이면 5년 간 익힌 사격술을 써먹는 게 좋지 않겠나.
마침 손에 소총도 들고 있고.
만물 변환을 선택했다.
그러자 기존의 글자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 개의 항목이 우스스 나타났다.
[신체 변이] [사물 변형] [속성 부여].
세 항목을 확인한 수한의 눈이 커졌다.
속성 부여!
변조 계열 이능력자들이 꿈에서도 소망하는 이능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속성 부여 이능이 있다면, 일반적인 총기류로 변이체를 공격하는 게 가능해지니까.
그 이점은 무시무시했다.
우월한 사정거리, 연발 사격에서 나오는 가공할 화력……
즉시 속성 부여에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일반적인 속성 부여와는 다른 것 같았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양한 항목들이 또 나타났다.
칼, 총, 활, 총알, 화살, 창, 자동차, 벽, 기둥, 창문 등등.
모든 물체에 적용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걸 갖고 불평하는 것은 복에 겨운 소리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총알 항목을 골랐다.
한 번 더 항목이 분화되었다.
이번에는 권총, 소총, 산탄총, 저격총 등 온갖 총이 다 떠올랐다.
해당되는 총의 총알에만 속성 부여가 가능하나 보다.
총알을 공유하는 총들의 경우엔 어떻게 되는 거지?
내심 궁금해 하면서도 한 가지를 선택했다.
소총 총알.
지금 갖고 있는 게 소총과 권총이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자 왼쪽 손목이 갑자기 벌겋게 달아올랐다. 뜻을 알 수 없는 적색 문자들이 피부 위에 떠오르더니, 수한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아주 잠깐 동안 벌어진 일.
수한은 그것을 선명하게 인지했다.
동시에 초능창이 널찍하게 펴졌다.
[속성 부여 : 소총 총알]
설명 : 총알을 선택하여 속성을 부여한다. 여러 개에 동시 속성 부여가 가능하다. 속성이 부여된 총알은 본인만 사용할 수 있으며, 소총으로 발사했을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부여된 속성에 따라 여러 특수효과가 발동한다. 등급이 오를수록 위력이 더 강해지고, 새로운 속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능력 : 등급에 따라 부여 가능한 속성 추가
[1] 예광 [5] 조명 [10] 섬광, 연막
[20] 관통, 파괴 [30] 분열, 강타
[40] 화염, 빙결 [50] 폭발
제한 : 50 레벨까지 육성 가능.
계열 : 만물 변환.
레벨 : 1.
진화 : 상급 속성 부여 : 소총 총알, 속성 부여 : 총알, 속성탄 생성.
총알에 국한되어 있긴 한데, 상당히 강력했다.
하나하나 부여하는 게 아니고, 효과도 꽤 다양했다. 이 정도면 활용 여하에 따라 상급 이능 부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소총으로만 발현이 가능하지만, 나중에는 그 영역을 다른 총까지 넓힐 수 있었다. 혹은 더 강한 속성을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고.
수한은 모아 놓은 초능 점수 39점을 몽땅 다 여기에 때려 박았다.
일단은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소총을 꼬나 쥐고 동굴 밖을 노려보았다.
변이체와 눈이 마주쳤다.
“캬아악!”
광포하게 소리를 지른다.
뭐 어쩔 거냐는 태도.
결국은 밖으로 나올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머리가 좋은 놈이니……
왼손을 소총에 꽂아 놓은 탄창에 가져갔다. 그리고 속성 부여 능력을 활성화했다.
누군가 수한에게 묻는 것 같았다.
10가지 속성 중 무엇을 선택할 거냐.
수한은 감각적으로 하나를 골랐다.
관통.
아무리 상처 입었어도 B급 변이체였다. 막 능력을 깨친 자신이 방어막을 깨뜨릴 거라곤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관통 속성이 일종의 철갑탄 효과를 하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것이다.
수한의 손이 붉게 빛났다. 한 군데 뭉치더니, 한 마리 뱀처럼 탄창으로 스며들었다.
앞쪽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 변이체의 머리가 닿지 않는 곳에 서서, 변이체를 향해 소총을 겨누었다.
변이체는 조롱하는 듯한 눈으로 수한을 보고만 있었다.
총으로는 자신의 방어막에 흠집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치명적인 판단 실수.
수한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굉음이 터졌다.
총알이 변이체의 방어막 위를 두들겼다.
쩌적. 쩡쩡.
얼음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방어막 표면에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총알이 그 한복판을 통과하여 변이체에게 박혔다.
눈알이 터졌다.
얼굴 가죽이 갈가리 찢어졌다.
녹색 체액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캬아아아악!”
변이체가 몸을 뒤틀며 절규했다.
다른 변이체와 드잡이 질을 벌이면서 부상을 많이 입어 봤지만, 이 정도 고통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거였다.
변이체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등골 위로 치닫는 격통에, 몸을 버둥거리며 주변 바닥을 굴러다녔다.
수한이 눈에서 불을 토했다.
가볍게 몸을 날려 동굴을 빠져나왔다. 남은 탄창 수를 확인한 후, 벼락처럼 탄창을 교체했다.
적색 광채가 수한의 손에서 탄창으로 옮겨갔다.
이번에는 화염 속성.
소총이 불을 뿜고, 총알이 날아가 박혔다.
방어막은 이미 깨진 상태.
총알이 박힌 자리에서 거세게 불길이 일어났다. 전신을 태우기 시작하자 변이체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이글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수한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소총은 잠깐 바닥에 내려놓고 권총을 빼들었다.
남은 소총 탄창은 겨우 4개.
총알을 아껴야 했다. 이미 다 제압해 놓았으니 권총을 이용하는 게 나을 성 싶었다.
머리를 겨냥하고, 도합 여덟 발의 총알을 모두 발사했다.
아무리 권총의 위력이 약하다 해도 5미터 이내 지근거리였다. 단박에 두개골을 박살내고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변이체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활짝 펼친 날개가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불타던 눈에서 빛이 꺼지고, 육중한 몸이 천천히 쓰러졌다.
“후우. 끝났구나.”
맥이 탁 풀렸다. 답답하던 가슴이 비로소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수한은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땀이 아니었다.
진득하게 피가 묻어나왔다.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 다친 모양. 긴장이 풀리자 비로소 통증이 몰려왔다.
수한은 소이 수류탄을 하나 꺼내 던졌다.
폭염이 일며 변이체의 시체를 집어삼켰다.
이 근처에는 하급 변이체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시체를 가만히 놔뒀다가 그걸 먹고 진화라도 하면 골치 아팠다.
불꽃이 시체를 불사르는 장면을 감상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방금 전의 급박했던 순간, 자신이 이능력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손을 들여다보았다.
초능을 발휘하자 손이 붉게 물든다.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
그러나 그 빛을 보니, 자신이 이능력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
만감이 교차했다.
이능력자들을 보며 동경했던 게 몇 년째던가.
괜히 코끝이 찡했다.
수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감상은 이제 그만.
당면한 현실부터 해결해야 했다. 지구로 귀환한 뒤 다시 감상에 빠져도 충분할 것이다.
동굴로 돌아갔다.
새미는 아까 눕혀 놓은 곳에 잘 누워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물, 물……”
새미가 신음 소리를 냈다.
수한은 허리에 두른 탄띠에서 수통을 꺼냈다. 목마를 때마다 마셔서 절반 정도 남아 있었다.
뚜껑에다 조금씩 따라 먹였다.
새미는 잘 받아먹었다.
수한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걸 점검했다.
소총과 권총, 단검 한 자루, 수류탄 2개, 수통, 야전삽과 구급낭, 압축 건빵, 라이터, 인근 지형이 표시된 지도 등등.
기본적인 것은 새미도 가지고 있었다. 수한에 비하면 무척 단출해서, 압축 건빵과 수통, 구급낭, 손전등이 전부였지만.
이걸로 둘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구급낭을 열어 소독약과 붕대를 꺼냈다. 새미를 간단히 치료하고, 스스로도 치료했다. 이곳저곳이 쑤셔서 진통제도 하나 먹었다.
원정대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벨레즈 협곡은 상급 변이체는 거의 없으니 무사히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과연 구조를 하러 올까?
최소한 시체라도 확인하러 올 것 같긴 한데,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일단 구조가 없다는 전제 하에 움직여야겠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서 움직여야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시간이 꽤 지났다.
어느덧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으으음.”
태양이 눈꺼풀을 찌르자 새미의 눈꺼풀이 떨렸다.
신음 소리가 앵두 같은 입술 밖으로 빠져나오더니,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