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환 -1- >
이그지트가 보이는 곳까지는 왔는데, 사실 거리가 꽤 멀었다. 도보로 갔다가는 하루가 꼬박 걸릴 터였다.
다행히 근처에는 깔루 행성인이 많았다. 요상하게 생긴 동물을 이용해 밭을 갈거나, 작은 수레에 뭔가를 싣고 움직이고 있었다.
인근을 지나던 깔루 행성인의 수레를 얻어 타기로 했다.
세라프 어를 할 줄 아는 자라 다행이었다. 수한은 즉석에서 세라프 어와 세라프 문자 기술을 10까지 올렸다.
순식간에 능숙해진 세라프 어로, 이그지트까지 태워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깔루 행성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공짜로는 못 태워준다!]
난감한 일이었다.
하긴 탐욕스럽기로 따지면 전 차원계 중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종족이다. 오죽하면 원정 종료 후 돌아갈 때 비공정을 안 타고 가겠나.
수한은 손전등을 내밀었다.
[이걸 드리겠습니다. 제법 쓸 만 할 겁니다.]
[어디? 흐음!]
새미가 가지고 있던 손전등이었다.
어떻게 켜고 끄는지 시범을 보였다. 빛이 안 나오면 흔들어서 충전하라고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걸 보고 깔루 행성인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수레에 얻어탔다.
수레는 이그지트에서 봤던 낙타와 하마를 섞어놓은 듯한 동물이 끌었다.
속도는 환장할 정도로 느렸다. 걷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른 정도였다. 지구 문명에 익숙한 둘에겐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나마 지친 몸을 쉬게 할 수 있어 좋았다.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 가지 잡다한 내용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해가 떨어지며 붉은 노을로 하늘이 물들 때가 되어 이그지트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까지다. 더 타고 싶으면 뭐든 더 내놓아라!]
[이걸로 충분합니다.]
둘은 손을 잡고 수레에서 내렸다.
열흘이 넘게 동고동락했더니 손 잡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힘들면 서로 부축하고, 적당한 동굴이 없으면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덥히며 잠들어야 했던 때도 있었으니까.
일단 이그지트에 도착하자, 그 다음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둘은 수호자 연맹의 파견대를 찾았다.
처음 보는 흑인 여자가 둘을 맞이했다. 전에 있던 백인 남자는 지구로 귀환한 모양이었다.
“오 마이 갓!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영어는 그리 뛰어나지 않은 수한이라,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대신 새미가 나섰다.
원어민을 방불케하는 유창한 영어가 튀어나왔다. 그 내용을 알아들은 흑인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커졌다.
“어서 들어와요, 어서어서.”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이그지트를 떠난 뒤로는 제대로 씻지 못해 둘 다 거지꼴이었다. 개울을 만날 때마다 세수는 했지만, 머리는 완전히 떡이 졌다. 더구나 옷을 한 번도 갈아입지 않아 퀘퀘한 냄새를 잔뜩 풍겼다.
흑인 여자의 배려 덕에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할 수 있었다. 씻고 나오자 갈아입을 옷까지 준비해 주었다.
둘이 밖에 나오자, 낯익은 얼굴이 둘을 맞이했다.
“수한씨! 새미씨!”
“어어, 준표 선배님! 기문씨!”
수한의 바로 윗 기수와, 지원 13과 동기가 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반가움에 서로 얼싸안았다.
준표가 얼굴을 실룩였다.
“우리는 두 분이 죽은 줄 알았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고생 좀 했습니다.”
“얼굴이 반쪽이 됐네요. 정말 고생하셨겠습니다. 밥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가져간 것도 없었는데요.”
“계획서에서 본 식용 식물 위주로 먹었습니다. 철모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없어서 그냥 구워 먹었지요.”
“햐, 그렇게 생존한 사람이 있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요.”
얘기를 나누는 사이 흑인 여자가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렸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식사 다운 식사였다.
배가 고프던 참이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래도 위가 놀랄까봐 적당히 조절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식사 후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겁니까? 다른 분들은요?”
“모두 지구로 돌아가셨습니다.”
“17명 모두요?”
“어쩜……”
새미가 차가운 표정을 짓자, 준표가 손사레를 쳤다.
“오해하지 마세요. 여러분을 버려두고 간 거 아닙니다. 사실 저희가 남는 것도 힘들었어요.”
“며칠 전에 드론이 날아다니는 건 봤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전투 3과 과장님하고 지원 13과 과장님이 크게 다치셨어요. 목숨이 위험할 정도였습니다.”
“예?”
“그래서 급하게 지구와 연락해서 다들 귀환했습니다. 두 분 말고도 다친 사람이 많았거든요. 중독된 사람도 많고. 당장 입원해야 될 사람이 10명이 넘었어요.”
“아……”
“원래는 총 4명이 남았어요. 전투 3과까지 합쳐서요. 처음 며칠은 벨레즈 협곡에서 드론으로 탐색을 했는데, 하필 이능력자분이 감기에 걸렸지 뭡니까? 이게 지구 감기인지, 깔루 행성 질병인지 몰라서 그 분도 지구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에는 벨레즈 협곡에 들어갈 엄두가 없어서 여기 남아 있었고요. 지원을
요청해도 인력이 없다고 그러고…… 우리 공격대도 특수 원정팀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그 사람들이 바로 와서 도와줬을 테니까.”
여러모로 곡절이 많았나 보다.
준표가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네요.”
“고생은요. 수한씨랑 새미씨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휴, 이번 원정은 정말 실패입니다. 과장님들이 별 일 없어야 할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둘은 어디 다친 곳은 없지 않나. 새미가 중간에 가벼운 배탈을 몇 번 앓았던 게 전부였다.
흑인 여자가 지구로 전갈을 넣겠다고 했다.
통신 같은 것은 통하지 않으니 차원문을 이용해야 한다. 그나마 가벼운 메모리칩 정도만 보내면 되니까, 별로 비싸진 않았다.
금방 지구에서 연락이 왔다.
이틀 뒤 귀환하라는 것.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한 것 같았다.
준표가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두 분이 돌아왔으니 한 시름 놨네요. 휴, 요 며칠 잠을 못 잤는데 오늘은 푹 잘 수 있겠습니다.”
“이틀 동안 저희는 이그지트나 구경하고 있겠습니다.”
“그러세요. 또 언제 올 지 모르니까.”
수한은 수호자 연맹이 제공한 숙소에서 실컷 잠부터 잤다. 그러면서 레벨 업 도우미의 정보도 확인했다.
[능력]
이름 : 이수한 나이 : 25 성별 : 남
신장 : 185cm 체중 : 81kg 상태 : 정상
종족 : 인간 진영 : 연합 행성 : 지구
레벨 : 48 계열 : 살육 계급 : 없음
근력 20 체력 23 민첩 18 재주 20 감각 21
초능 48 지능 18 직감 18 의지 21 위엄 18
여유 점수 : 0 경험치 : 11%
[기술]
언어 : 한국어 11, 세라프 어 10, 영어 5.
문자 : 한글 10, 세라프 문자 10, 영문 5.
사격 : 소총 사격 15, 권총 사격 12, 산탄 사격 13, 원거리 저격 12.
격투 : 단검 격투 12, 맨손 격투 11, 총검 격투 13.
함정 : 함정 설치 12, 화약 함정 12.
생활 : 삽질 12, 청소 8, 빨래 4.
전술 : 작전 계획 7, 전투 지휘 5.
생존 : 외계 취식 8, 외계 야영 8.
여유 점수 : 22.
[초능]
속성 부여 : 소총 총알 48.
[80] [100] [150] [200] [300] [400] [500]
여유 점수 : 0
레벨은 48이 되었고, 모든 능력치가 조금씩 상승했다. 더구나 기술 중에도 오른 게 있고, 생존 계열 기술이 새로 생겼다.
외계 취식과 외계 야영.
여기서 2레벨만 더 올리면 속성 부여 초능을 진화시킬 수 있다.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지금 수한은 몇 등급일까 하는 것.
최소한 F나 E는 아닐 거고, D나 C는 될 것 같은데……
아마 지구로 돌아가 이능 인증을 받아봐야 알 수 있겠지.
지구 귀환까지 남은 시간은 딱 하루.
그 동안 할 일도 없고, 이그지트 관광을 했다.
“우와, 저거 좀 봐!”
새미가 시장 한쪽을 가리켰다.
광대 하나가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지구에서였다면 하등 신기할 게 없는 광경.
하지만 깔루 행성에서 보는 것은 각별한 재미가 있었다. 둘이 짝을 지어 긴 막대 두 개를 마구 흔들어대는데, 그때마다 작은 고리 다섯 개가 둘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하다 못해 아이들끼리 공을 차는 광경도 신기했다. 작은 익룡 같은 것이 물똥을 갈겨서 기분이 나빴지만, 흐르는 물에 씻고는 금방 잊어버렸다.
시간이 금방 지났다.
“오늘 정말 재미 있었어.”
해가 질 무렵 새미는 수한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TV에서나 볼 법한 정도의 미인.
수한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벨레즈 협곡에서 함께 했던 때, 제대로 씻지 못했음에도 그 미모가 빛을 발하던 새미였다.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파견대에서 얻었는지 화장까지 하자 천사가 따로 없었다.
수한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정이 좀 당황스러웠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나도 즐거웠어. 지구에서도 가끔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어머,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응? 난 그저……”
“호호, 농담이야.”
새미가 깔깔 웃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세라프의 전당으로 이동했다.
이미 지구쪽에서 요금을 다 지불한 상태였다. 세라프의 전당을 지키던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넷은 널찍한 공간 가운데에 모여 앉았다.
새미가 수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조난당한 것 알았을 때, 난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사람이 그냥 죽으란 법은 없지. 이렇게 살아서 돌아가잖아?”
“다 오빠 덕분이야. 고마워.”
“고맙긴. 나도 너 덕분에 살았잖아.”
“서로에게 목숨을 빚진 거네?”
“하하, 그런 셈이지.”
어느새 붉은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차원문이 열리는 것이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살며시 눈을 감자 몸이 가벼워지며 붕붕 떠올랐다.
빛이 전당을 가득 메웠다.
그 빛이 그쳤을 때, 둘은 다른 공간에 와 있었다.
수한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약간 속이 메슥거리긴 했지만 견딜 만 했다. 첫날 고생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고무적인 일이었다.
끼이익.
전당의 문이 열렸다.
반가운 얼굴들이 달려왔다.
“형!”
“새미야!”
둘의 가족들이었다.
죽은 줄 알고 낙담하고 있다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단박에 달려온 것이다.
수한은 동생들을 끌어안았다.
이미 성인이 됐거나, 돼다시피 한 동생들이다. 하지만 10년 넘게 보호자 역할을 한 수한의 귀환 앞에서는 다섯 살박이 떼쟁이가 되어 버렸다. 수한을 껴안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새미가 옆에서 엉엉 울부짖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잘만 웃더니, 막상 부모님을 보자 눈물이 나오는 듯했다. 머리가 하얗게 샌 노년의 신사가 눈시울을 붉히고, 곱게 늙은 부인이 새미를 안은 채 통곡했다.
준표와 기문은 옆에서 그 광경을 어색하게 지켜보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모두 진정되었다.
새미가 자기 부모님에게 수한을 소개했다.
“엄마, 아빠. 여기는 지원 17과의 이수한씨라고 해. 수한 오빠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어. 오빠, 우리 엄마 아빠야.”
“처음 뵙겠습니다.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수한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신사와 부인이 호의 어린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이능력자들은 무력이 뛰어나지만, 생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홀로 외계 행성에서 조난 당하면 살아날 길이 없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만 했다.
두 사람이 수한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우리 딸을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허리를 하도 굽혀서, 수한이 그러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분위기가 좀 정돈되자 남자 몇 명이 앞으로 나섰다.
눈에 익은 자들이었다.
갈태수 사장과 이사진, 지원부장과 전투부장.
과장들만 빼고, 수한과 새미의 상사들이 총 출동한 것이다.
갈태수 사장이 둘에게 다가왔다.
“새미씨! 수한씨! 정말 다행입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전 괜찮아요.”
“다행입니다. 두 분이 낙오한 것을 알고 크게 걱정 했는데 이리 무사히 돌아오셔서……”
태수는 여러 소리를 늘어놓았다.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적당한 시점에 질문을 했다.
“혹시 먼저 귀환하셨던 분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준표 선배님에게 듣기로는, 많이 다치셨다고 들었는데요.”
“전투 3과 과장님과, 지원 13과 과장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지금은 입원 치료 중입니다. 1달 정도 치료하면 후유증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거랍니다.”
“다행입니다.”
“참 여러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두 분이 낙오된 것에 대해 공격대에서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살아 돌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태수가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