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환 -2- >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이런저런 사정을 듣고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내뺀 거였으면 뒤집어 엎었을 것이다. 당장 퇴사해서 다른 공격대를 알아봤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니, 뭐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이러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그래도……”
“사정은 이해합니다. 당장 부상자가 열 명이 넘게 발생했는데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요. 다 이해하니까, 이러지 마세요.”
그때야 태수가 얼굴을 폈다.
태수는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그러더니 둘을 보며 말했다.
“일단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죠. 2주 넘게 계시다 오셨으니, 각종 미생물에 감염되어 있을 겁니다.”
알바트로스에서 차량을 제공했다.
준표와 기문까지, 모두 병원으로 이동했다.
다들 기본적인 검사와 방역 조치를 받았다. 수한과 새미는 아예 입원을 했다. 알게 모르게 다친 곳이 많아서, 의사가 최소 2주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태수가 병원을 나가면서 한 마디를 남겼다.
“모든 치료비는 공격대에서 지불할 테니, 걱정 마시고 치료 받으세요. 그리고 퇴원 후 2주 동안 특별 휴가 드릴 테니까 푹 쉬다가 출근하시고요.”
위로금 명목으로 상당한 금액까지 쥐어주었다.
수한이 계산해 보니, 깔루 행성에 있는 동안 입금 됐을 첫 월급까지 해서 대충 1억 정도는 모은 것 같았다.
깔루 행성 원정 수당은 아직 얼마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휘니크로아의 심장은 지혁이 챙겼으니까, 그걸 감안하면 아주 적지는 않을 터였다.
이 정도면 대출 좀 끼어서 서울 근교의 아파트 전세를 얻을 수가 있었다. 지금처럼 출퇴근에 2시간씩 걸리는 고생을 안 하게 되는 것이다.
태수가 잡아준 병실은 1인실이었다. 좀 좁긴 했지만, TV나 냉장고 같은 건 다 있었다. 보조 침대도 있어서 동생들이 와 있기도 편했다.
입원 이틀째에는 온갖 진료과를 다 돌아다녔다. 오전에는 외과, 오후에는 내과를 거쳤다. 피를 뽑고 소변을 가져가고, 전신 X-ray 및 CT, 파장 검사기 등 별 검사를 다 했다.
저녁이 되자 진이 다 빠졌다.
차라리 벨레즈 협곡에서 헤맬 때가 더 편했던 것 같았다.
밤이 되어 병실로 찾아온 새미가 투덜거렸다.
“지구로 오니까 더 힘들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무슨 검사가 그리 많은지……”
“좀 푹 쉬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
다행히 둘 다 건강했다.
외상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외계 질병에 감염된 것은 없었다. 외계 기생충 몇 마리가 발견되긴 했는데 아직 유생 단계라 금방 치료했다.
며칠쯤 지나자 외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새미가 수한의 팔을 껴안더니 한쪽으로 잡아끌었다.
“오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겨우 지구로 돌아왔는데, 병원 밥부터 먹기는 그렇잖아?”
“우리 외출해도 된대?”
“간호사 쌤한테 물어봤어. 격리 병동 입원한 거 아니니까 외출 정도는 괜찮대.”
“나야 좋지.”
둘만 아니라, 둘의 가족들까지 동행했다.
인근의 고급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새미 가족이 평소에도 자주 오는 곳인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계산대를 지키던 사장이 알은척을 했다.
방 하나에 들어가자 금방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동생들이 그걸 보고 군침을 삼켰다.
한창 먹성 좋은 녀석들이었다. 수한이 그 동안 자린고비처럼 아끼고 아낀 탓에, 이런 진수성찬은 본 적이 없었다. 당장 아귀처럼 달려들지 않은 것만 해도 잘 참고 있는 거였다.
“많이 드세요. 여긴 더 달라고 하면 또 줘요.”
새미가 둘을 보고 말했다.
한참 배가 고플 때였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생들이 음식으로 돌진했다. 수한은 그것을 보며 느긋하게 이 음식 저 음식 맛을 보았다.
새미가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여기는 뭐가 맛있다느니, 여름에 오면 특제 빙수를 후식으로 주는데 그게 최고라느니 하는 하잘 것 없는 이야기들.
몇 번은 맛있는 음식을 수한의 앞쪽에 옮겨주기도 했다.
벨레즈 협곡에서 그렇게 주고받았던 터라 수한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보기에는 그게 예사롭지 않았나 보다.
새미의 부모님이 시선을 교환하고, 수한의 동생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깔루 행성 이야기가 나왔다.
둘의 가족들이 모인 자리. 굳이 숨길 게 없었다.
수한과 새미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신비로운 외계 행성의 풍경. 그곳을 노니는 생경한 동물들. 그리고 위협적인 변이체들……
가족들은 손에 땀을 쥐고 이야기를 들었다.
새미의 부모님이 또 수한에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된 겁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수한의 동생들도 마찬가지.
“누나, 고마워요. 우리 멍청이 형 구해줘서.”
인사를 또 나누느라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흠흠.”
새미의 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수한씨라고 했지요? 알바트로스 지원 요원이라고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 아직 어립니다.”
“올해 나이가 몇이나 되는데요?”
“스물다섯입니다. 부사관으로 전역했고, 알바트로스가 첫 직장입니다.”
“엄마. 오빠도 이능력자야. 그 덕에 살아난 거지.”
“뭐라고?”
새미의 부모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건실해 보이긴 했는데 이능력자라니?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놀란 것으로 따지면 수한의 동생들도 뒤지지 않았다.
자기들 형의 이능 적성이 얼마나 최악인지 잘 아는 둘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능력자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아닐 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더구나 아까 얘기할 때는 누락한 대목이었고.
막내 기한이 픽 웃었다.
“에이, 누나가 잘못 안 거예요. 우리 형 이능력자 아니에요. 이능 적성 검사에서도 각성 확률이 1억 분의 1이라고 했는데요?”
“맞아요. 우리 형이 이능력자였으면 왜 지원부에 들어갔겠어요? 전투부로 들어가지.”
새미는 생긋 웃었다.
둘이 알 리가 없었다.
벨레즈 협곡에서 이능을 각성했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레벨 업 도우미에 의해 초능을 개발한 것이지만.
수한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손을 탁자 위로 들어올렸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하나로 모이자, 능력을 활성화했다.
손이 붉게 물들었다.
총알이나 탄창을 손에 대지 않은 까닭에 그냥 빛만 뿌렸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확연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명한과 기한이 입을 쩍 벌렸다.
“저거 진짜야?”
“말도 안 돼!”
동생들은 여전히 믿기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반면 새미의 부모님은 그 빛을 본 순간 수한이 이능력자라는 사실을 믿는 기색이었다.
새미의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그럼 자연 각성한 거예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어머어머. 잘 됐네요! 자연 각성한 사람들이 꼭대기까지 올라간다던데! 등급은 얼마나 되요? E급? 혹시 D급?”
“엄마!”
“여보. 그런 건 초면에 물어보는 게 아냐.”
새미의 어머니가 묻자, 새미와 그 아버지가 얼른 제지했다.
드러내놓고 다닌다면 모를까, 본인이 밝히기 전에는 먼저 묻지 않는 게 예의였다.
새미의 어머니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내 아들 같은 느낌이 들어서 주책을 부렸어요.”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사실 저도 제 등급은 잘 모릅니다. 아직 등급 인증을 받아보지 못해서요.”
“그래요? 그럼 빨리 받는 게 좋을 거예요. 우리 새미 하는 거 보니까, 공격대에 인증서 제출한 다음에 연봉 협상을 하더라고요. 참, 혹시 아는 변호사는 있어요? 없으면 소개해 드릴게요.”
속사포처럼 말이 쏟아졌다.
수한은 귀를 쫑긋 세우고 머릿속에 그 말을 담아두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한 정보였으니까.
식사를 마치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새미가 당연하다는 듯 스마트폰을 내민 것이다.
“오빠,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서로 다른 층에 입원한 터라, 병원으로 돌아온 후 새미가 손을 흔들었다.
동생들이 옆으로 다가왔다.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데, 어째 수한을 보는 눈이 심상치가 않았다.
“형, 어디서 저런 예쁜 누나를 데려왔어?”
“응? 뭐가?”
“솔직히 말해 봐. 둘이 무슨 사이야?”
“뭐? 하하하. 오해하지 마. 아무 사이 아냐.”
“아무 사이도 아닌데 음식도 옮겨주고, 먼저 전화번호 달라고 해?”
“벨레즈 협곡을 함께 탈출한 정이 있으니까 그렇지.”
“흥, 가슴에 손을 얹고 말을 해 봐.”
“어휴, 나도 뭔가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수한은 농담처럼 내심을 슬쩍 드러냈다.
동생들이 눈을 빛내며 들러붙었다.
“한 번 잘 해 봐.”
“진짜 사귀게 될 줄 누가 알아?”
“상황도 좋잖아? 꼭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아!”
“낯선 외계 행성에 조난당한 두 남녀. 험한 길을 서로 의지하며 헤쳐 나온다. 그 사이 싹트는 사랑…… 캬!”
“아주 소설을 써라, 써.”
수한은 헛웃음을 지었다.
시간은 금방 흘렀다.
수한과 새미가 입원한 기간은 총 2주였다. 그 사이, 공격대 동료들이 한 번씩 문병을 왔다.
“수한씨, 괜찮아요?”
“그 새 얼굴이 반쪽이 됐네.”
“얘기는 들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뒤에 내버려두고 도망친 게 미안했는지, 두 손에 뭘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강성은 수한을 보더니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다친 데는 없어요?”
“예, 괜찮습니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요.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어요.”
수한은 대답 대신 한 번 웃어 보였다.
넉넉한 웃음.
하지만 둘 사이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은 수한도 알고, 강성도 잘 알았다.
최소한 같은 부서에서 일하기는 힘들겠지.
이능력자도 된 김에 재협상을 해서 부서를 옮길 생각이었다. 좋았던 기억도 없고, 굳이 지원 17과에 머물 필요는 없었다.
동료들은 1시간 정도 머물러 있다가 돌아갔다.
“그럼 가볼게요. 치료 잘 받아요.”
“얼른 나아서 봅시다.”
“네. 조심히 가세요.”
지원 17과 말고도, 지원 13과와 전투 3과도 문병을 왔다.
반대로 문병을 가기도 했다. 죄다 같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입사 동기들도 방문했다.
동휴, 유미, 권준, 지훈.
신입사원 연수에서 2주간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특히 유미가 펑펑 우는 바람에 수한이 좀 난감해졌다. 한 동안 달랜 다음에야 좀 조용해졌다.
“그런데 어쩌다 조난 당하신 거예요?”
동휴가 궁금하다는 투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눈을 빛내며 수한을 보았다.
굳이 숨길 필요 없는 일. 그래도 내밀한 사정까지 다 말하고 싶진 않았다. 수한은 적당히 각색해서 말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사냥이 암초에 부딪친 일, 휘니크로아의 출현, 그 새끼들의 공격, ATV를 타고 도망치다 새미와 자신이 낙오된 것……
권준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외계 행성 원정은 위험하네요. 그냥 지구에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관광은 한 번 가보고 싶지 않아요? 기계 괴수 다 잡은 행성은 안전하다면서요.”
“어휴, 그러다 외계인한테 사기 당하면 끝장이에요. 지구로 다시는 못 돌아올 수도 있어요.”
“그렇게 따지면 지구도 안전하지는 않죠. 범죄자는 어느 행성에나 있다고요.”
“어쨌든 다행입니다. 외계 행성에서 낙오되면 90%가 죽는다면서요? 소식 들었을 때, 저흰 수한씨 영영 못 볼 줄 알았어요.”
한 동안 수한에 대한 얘기를 나눈 뒤에는 다른 사람들의 근황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동휴가 고개를 휘저었다.
“어휴, 말도 마요. 요새는 술 먹는 게 일이에요. 아니 차원간 무역이 활성화된 게 몇 년 짼데, 영업은 쌍팔년도처럼 접대하면서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동휴씨가 술을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고요?”
“제가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매일 새벽까지 마시는 건 좀……”
활발한 동휴와 유미가 대화를 주도했다.
수한은 그저 느긋하게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유미가 말없이 앉아 있는 지훈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지훈씨. 지훈씨는 뭐 할 얘기 없어요? 요즘 통 보이지도 않고.”
“아, 저야 뭐……”
“들리는 소문으로는 우리 공격대가 대형 프로젝트 하나 땄다면서요? 국방부에서 나온 거라던데, 도대체 뭐에요? 혹시 기밀 사항이에요?”
“거기까지 소문이 퍼졌어요?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더니……”
유미가 지훈을 캐물었지만 지훈은 특급 기밀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 말에 유미도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
국방부에서 나왔다?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수한이 알기로 국방부 소속 연구소는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수호자 연맹 산하 연구소보다는 덜해도, 알바트로스의 연구소보다는 훨씬 컸다.
‘혹시 그건가?’
수한이 직접 찾았던 기계 괴수.
그리고 외계인 시체.
그 정도라면 국방부 연구소의 단독 연구가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워낙 덩치가 크고, 고도의 과학기술이 적용되어 있으니까.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왼쪽 손목을 더듬었다.
레벨 업 도우미가 깃든 손목을.
동기들은 한 동안 머물러 있다가 병실을 나섰다. 다음주에 한 번 더 오겠다고 했지만, 그 말은 실현되지 않았다. 병동 주치의가 퇴원이 가능하다는 소견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두 분 다 이제 퇴원해도 됩니다.”
안 그래도 답답하던 참.
수한과 새미 둘 다 얼굴을 활짝 폈다.
“아, 진짜요? 집에 가도 돼요?”
“예. 단, 퇴원 후 1주일 뒤 외래로 한 번 방문해주셨으면 합니다. 가끔 시간이 지난 다음 발병하는 병도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당장 퇴원 절차를 밟았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든 비용을 알바트로스에서 책임지기 때문이었다. 병동 간호사에게 퇴원하겠다고 한 마디를 하자,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최종적으로 원무과에서 확인을 하고, 짐을 가지고 나왔다.
3주일 만에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