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테라스 공격대 -2- >
“게다가 새미씨면 우리 공격대에서 제일 미녀잖아. 노리던 사람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다들 닭 쫓던 개 신세 됐네.”
셋이서 아주 신나게 떠들었다.
수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남의 일에 뭐 그리 관심을 갖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목적 없이 걷다 보니 그것도 시들해졌나 보다. 서서히 화제가 끊기고 침묵이 찾아왔다. 주변에서 미이바 행성인들이 셋을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미이바 행성 언어 할 줄 아는 사람은 없죠?”
병재가 확인하듯 질문을 던졌다.
있을 리가 없지.
학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세라프 어는 몇 마디 할 줄 아는데…… 그 정도로는 안 되겠죠?”
“몇 마디 하는 정도로는 안 되지. 나도 SPT 6급 밖에 안 되는데, 큰일이네. 채 주임은 어때?”
“전 그나마 5급은 땄는데, 의사소통은 안 돼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암초에 걸렸다.
말도 통하지 않으면 정보 수집을 어떻게 하겠나.
수한이 손을 들었다.
“제가 세라프 어를 할 줄 압니다. 거의 원어민 수준이에요.”
“오, 그래요? SPT 몇 급인데요?”
“최근에 실력이 는 거라서 SPT 급수는 낮아요.”
“그래요? 어디……”
SPT 5급이라는 민수가 씩 웃었다.
[어디 가서 정보를 수집할까요?]
세라프 어다.
발음이 어색했다. 성조도 이상했다. 세라프 어 문외한들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릴 듯했다.
수한은 능숙한 세라프 어로 답변을 했다.
[글쎄요. 주점이나 여관 같은 곳이 좋지 않을까요? 모험 소설들 보니까 그런 곳에서 술 한 잔 돌리면 주인장이 정보를 펑펑 쏟아놓던데.]
“이야, 정말 원어민 수준이네요.”
“우린 수한씨만 믿고 가면 되겠는데?”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완벽한 발음에, 세 명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얘기는 수한이 하기로 하고, 이제 장소를 정해야 했다.
“주점이나 여관에서 정보 탐색하는 거, 솔직히 말해서 소설에서나 나오는 얘기에요. 세라프 어로 떠들어도 못 알아들을 판에 행성 원주민 언어를 어떻게 알아듣겠습니까?”
셋 중 가장 원정 경험이 많은 병재가 그렇게 말했다.
“그럼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합니까?”
“행성마다, 종족마다 달라요. 중요한 건 그 도시를 지배하는 세력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다는 거죠.”
그러면서 세 개를 꼽았다.
경비대, 신전, 암흑가.
어느 행성을 가든 이 세 개만 잘 찾아내면 정보 수집은 어렵지가 않다고 했다.
“여기선 경비대가 좋을 겁니다. 경비대가 군대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어서, 권력이 무시무시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곳에서 정보를 얻으려면 돈을 줘야 하지 않나요?”
“돈은 없지만 다른 게 있지요.”
병재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들었다.
지구에서 흔히 보이는 필터 담배.
병재가 담배 갑을 흔들며 웃었다.
“미이바 행성인들은 모두 골초입니다. 이거 하나면 깜빡 죽어요. 품종은 다른데, 각별한 맛이라고 평하더라고요.”
다른 요원들도 담배 몇 갑씩은 가져온 모양이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학주도 그랬다.
경험에서 나온 지혜라고 할까.
수한은 이번 경험을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두었다.
넷은 경비대 본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경비대 본부는 도시의 중앙 남쪽에 있었다. 작은 성벽이 주위를 두르고 있어 작은 성채를 보는 듯했다.
지구인들이 다가오자, 경비병들이 바짝 긴장했다.
좀 더 화려하게 치장한 경비병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딱딱한 투의 세라프 어로 말을 걸었다.
[이계인들이 성채에는 무슨 일이냐? 볼 일이 있다면 너희의 외교관들에게 가라.]
외교관?
수호자 연맹의 파견대를 말하나 보다.
수한은 친근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적의가 없다는 뜻으로 양 손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오히려 경비병들이 더욱 경계했다. 한 손에 받쳐놓았던 창을 두 손으로 들고 수한에게 겨누었다.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긴 지구가 아니었다. 지구의 몸짓은 통하지 않았다. 하려면 미이바 행성의 것을 해야 했다.
수한은 몸을 살짝 틀어 엉덩이가 경비병들 눈에 보이게끔 했다. 그렇게 하자 경비병들이 긴장을 풀었다. 미이바 행성인은 꼬리를 손처럼 쓸 수 있어서 생긴 제스처였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무슨 용건이냐?]
[저희는 삼두 도마뱀 블루이크를 잡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블루이크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정보를 얻고자 합니다.]
[블루이크를 잡으러 왔다고?]
경비병들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골칫거리를 치워주겠다고 선언한 셈인데, 어째 반응이 영 떨떠름했다.
그때, 성채의 문이 벌컥 열렸다.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밖으로 나왔다. 수한 일행처럼, 권총과 소총 등 총기류로 무장하고 있었다.
아마테라스 공격대의 지원 요원들.
수한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들도 이쪽을 보더니 긴장하는 눈치였다. 멜빵만 메고 있던 소총을 두 손으로 잡는가 하면, 권총 손잡이에 슬쩍 손을 올려놓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두 무리는 서로를 쏘아보며 천천히 비껴갔다.
거리가 충분히 멀어진 다음에야 분위기가 풀렸다.
수한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경비병에게 물었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기다려라. 대장님에게 보고하겠다.]
차림이 단출한 경비병이 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러더니 일행을 보고 꼬리를 탁탁 쳤다.
들어가라는 뜻.
성채 안은 겉에서 보기보다 규모가 작았다. 창문이 거의 없어 어두컴컴하고, 흐린 등잔불이 꺼질 듯 깜빡이고 있었다.
미이바 행성인들과 마주쳐가며 좁은 복도를 지났다. 2층으로 올라가자 경비병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곳이 나왔다. 경비대장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또 지구인들인가?]
화려한 갑옷을 입은 미이바 행성인이 거드름을 피웠다.
다른 이들과는 좀 달랐다. 비늘에 은백색 광택이 흘렀다. 눈은 금색이고, 눈 양쪽으로 작은 뿔 같은 게 나 있었다.
가볍게 인사했다.
[지구의 알바트로스입니다. 경비대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흠, 아까 지구인과는 다른 무리인가? 비슷해 보이는데.]
인종이 다르다면 모를까, 한국인과 일본인은 미이바 행성인이 보기에 거의 같아 보일 것이다.
수한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예. 이웃 나라 사람입니다. 이곳 기준으로 보면 옆 도시에 거주한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니 대장님이 보시기에는 비슷해 보이실 겁니다.]
[내 생각이 맞았군. 그래, 어쩐 일인가?]
수한은 용건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잘 풀렸다.
당초 목표했던 블루이크의 위치만이 아니라, 주변 늪지대를 떠도는 A급 변이체 몇 마리의 위치도 추가로 알아냈다. 어느 방향으로 가면 B급 변이체가 분포해 있는지도 전해 들었다.
수한의 유창한 세라프 어가 한 몫을 했다.
만약 더듬더듬 손짓 발짓을 했다면 이런 결과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블루이크가 어디쯤 있는지 아는 게 고작이었겠지.
답례로 담배를 몽땅 내주었다. 경비대장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받아들었다. 그러더니 비닐 포장을 뜯고는, 한 개비를 꺼내 자기 코에 꽂는다.
불을 댕기자 흰 연기가 모락모락 났다.
[크흐흐! 지구 담배는 이게 좋다니까. 맛이 순해서 코로 마실 수가 있어!]
수한은 고소를 머금었다.
근엄하게 일행을 맞이했던 경비대장인데, 코에 담배를 꽂고 즐거워하는 걸 보니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경비대장이 입에서 흰 연기를 뻐끔뻐끔 뿜으며 물었다.
[그래, 블루이크는 언제쯤 잡을 생각인가? 놈이 얼른 잡혀야 우리도 늪지대 깊이 들어갈 수 있는데.]
[저희 대장님이 결정하시겠지만, 늦어도 1달이 지나기 전에는 시도할 겁니다.]
[1달? 아까 그 무리랑 비슷한데? 둘이 힘을 합칠 건가 보지?]
[하하. 그야 두고 봐야 알죠.]
아마테라스 공격대도 비슷한 일정으로 왔나 보다.
블루이크를 잡고, 남는 시간에는 A급 변이체를 추가로 사냥하고……
1달 내내 그들과 부대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필요한 정보를 얻었으니, 성채 밖으로 빠져나왔다.
동행했던 세 명이 수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야, 수한씨 대단하던데요? 완전 원어민 발음이었어요!”
“SPT 2급도 무난하겠어요. 휴, 세라프 어 잘 하는 사람 정말 부럽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숙소로 돌아갔다.
수한 일행이 첫 번째였다. 상군이 그들을 맞이한 후, 알아온 블루이크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했다.
다른 이들도 속속 도착했다.
수한 일행처럼 정확한 정보를 가져온 이들은 없었다. 아예 허탕을 친 자들도 있었다. 그래도 정보를 모두 모아놓고 나니 블루이크가 어디 있을지 추정이 가능해졌다.
“이곳에서 닷새 거리네요.”
“더 걸릴 겁니다. 밀림 지형이에요. ATV 끌고 가려면 빙빙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요.”
“아마테라스 공격대는 어쩌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돌아오기 전에 다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을 봤습니다. 정보를 모아온 모양입니다. 그들도 우리가 얻은 정보는 다 얻었을 거예요.”
“그렇겠죠.”
“아마테라스 공격대의 전력은 알아보셨어요?”
“객관적으로 봐서 우리보다 앞서 있습니다. 40명 중에 이능력자가 17명이나 됩니다. AA급 3명, A급이 4명인데 그 이하는 모르겠습니다.”
“하아, 차이가 좀 심하네요.”
B급과 C급의 수는 모르겠지만, AA급과 A급이 1명씩 더 많았다. A급부터 초인의 경지에 든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력 차이가 아찔하다 못해 끔찍할 정도였다.
정면 대결을 한다면 필패.
상군이 작은 태블릿 PC를 꺼냈다. 홀로그램 생성기를 이용해, 여섯 명의 사진을 공중에 띄웠다. 그 옆으로 빼곡이 그들의 정보가 떠올랐다.
이름, 나이, 이능, 계열, 등급 등등.
처음 파견대에 들어오면서 봤던 괴상한 남자의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AA급 외능 계열 이능력자, 나카무라 타케시.
수한은 내심 탄성을 질렀다.
언젠가 일본의 이능력자들에 대해 다룬 특집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다.
원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으나 이능을 각성한 뒤로는 잔혹 무도한 성품이 되었다고 했지.
그럴 만도 하다.
외능 계열 이능력자들은 외계의 존재에게 힘을 빌린다.
대개는 신, 혹은 마왕.
그러다 보니 그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성격이 변화하고, 아예 해당 존재의 권속으로 종족 자체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나카무라의 경우에는 그게 이계의 살육신.
하도 이능을 많이 발휘한 까닭에, 지금은 인간의 경계를 반쯤 벗어났다고 했다. 조만간 인간의 탈을 벗고 살육의 화신으로 변화할 가능성도 있었다.
다른 아마테라스 원정대원들의 정보도 확인했다.
이능 계열이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었다. 다만, 유독 B급 투시 계열 이능력자가 마음에 걸렸다.
투시 계열에는 예지나 천리안, 물체 투시 같은 이능이 포함된다. 활용하기에 따라선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정확히 어떤 이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좋을 텐데, 그것까진 정보에 없었다.
“C급은 없나요?”
“우리가 가진 정보에는 없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모르는 고위 이능력자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네요.”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지요.”
일단 출발 준비를 했다.
출발 시간은 내일 아침. 길잡이 역할을 할 미이바 행성인이 그때 도착한다고 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옆 동에 머무는 아마테라스 공격대도 그럴 요량인 것 같았다.
파견대에서 일을 벌일 리는 없으니, 그 날 하루는 편하게 잠을 잤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모든 ATV의 시동을 걸었다.
[이것들을 가져간다고요?]
[예. 안 됩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대신 시간은 오래 걸릴 겁니다.]
[감수해야지요.]
[그럼 저희가 쭈레삐라를 타고 앞장서면서 길을 만들 테니까, 그 뒤만 잘 따라오세요.]
수한은 미이바 행성인 길잡이와 얘기를 나눴다.
원래는 상군의 몫이었지만, 수한의 세라프 어 실력을 전해 듣고는 아예 맡겨버린 것이다.
알바트로스 공격대 옆에서, 아마테라스 공격대도 출발 준비를 끝냈다.
그들도 미이바 행성인 길잡이를 고용한 모양이었다. 다만 수한처럼 능숙하게 세라프 어를 구사하는 인물이 없어, 의사소통은 좀 힘겨워 보였다.
그에 힘입어, 알바트로스가 조금 더 빨리 출발 준비를 거의 끝냈다.
수한은 상군을 돌아보았다.
이대로 출발할 겁니까?
그렇게 눈으로 묻자, 상군이 슬쩍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테라스 공격대를 뒤에 달고 출발하는 것은 그리 좋지 않았다. 습격당할 가능성이 적긴 해도 분명 존재하니까.
상군이 눈으로만 지시를 내렸다.
은밀한 손짓이 오가며, 분주하던 원정대의 손이 살짝 느려졌다. 눈치 없는 몇 명이 물색없이 손을 놀렸지만, 대세에는 영향이 없었다.
덕택에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먼저 출발했다.
“오쿠뵤우모노!”
먼저 출발하면서, 일본인들이 비웃음을 날렸다.
알바트로스 원정대의 수작을 간파했던 것.
일본어를 알아들은 대원 몇 명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누군가 이를 갈며 두 손을 걷어붙였다.
“저 새끼들이!”
“참아. 지금은 놈들이랑 얽히면 안 돼. 결판은 밀림에서 날 거야.”
“제길. 블루이크 못 잡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이윽고 알바트로스도 출발했다.
블루이크는 도시의 남동쪽에 있었다. 더 정확히 따지면 7시, 즉 남쪽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아마테라스 공격대는 도시의 남문으로 나갔고, 알바트로스는 살짝 돌아서 동문으로 나갔다.
동문을 나서면 평탄한 대로가 펼쳐진다.
하지만 편히 달리는 것은 고작해야 몇 시간 뿐.
그 뒤로는 밀림이 나온다.
때로는 지구의 아마존과 비견되고, 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할 지도 모르는 미이바 행성의 밀림.
38명의 지구인과, 3명의 미이바 행성인은 그곳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