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36화 (37/254)

< 밀림에서 -1- >

수한은 가장 앞에서 ATV를 몰았다. 그 옆에는 원정을 총괄하는 상군이 탔다.

[말씀하신 지점까지는 약 엿새가 걸릴 겁니다. 그 사이 베루아의 영역을 통과하게 됩니다.]

[베루아도 저희 목표 중 하납니다. 중간에 마주치면 잡고, 굳이 잡고 지나가지는 않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발견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길잡이들은 커다란 갯지렁이 같은 동물을 타고 달렸다. 속도는 느리지만, 밀림 안에서는 이만한 교통수단도 없다고 했다. 특히 지나간 자리에 깊은 자국이 남기 때문에, ATV가 그 뒤를 따라가는 것도 가능했다.

오전 내내 평탄한 길을 달렸다. 그런데 점심을 먹을 때쯤 수풀이 우거지더니, 커다란 강 하나가 나타났다.

강 너머에 녹색 밀림이 펼쳐져 있었다.

까악! 까악!

새가 우짖는 소리가 어째 불길하게 들렸다.

“점심 먹고 갑시다.”

“이제 고생 시작이네요.”

“모두 준비하세요. 벌레 퇴치 스프레이 꺼내시고, 해독제 확인하시고요. 독벌레랑 독사들 천국이니까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해독제 드세요.”

점심은 전투식량으로 때웠다.

길잡이들은 자기들끼리 사라지더니 뱀 같은 생물을 잡아와 구워먹었다.

달콤한 냄새가 풍겼지만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지구인에겐 치명적인 독을 품은 생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독은 제거할 방법도 없었다.

“옛날 생각난다. 그지?”

새미가 곁에서 수한에게 속삭였다.

깔루 행성에서 조난을 당했던 게 생각났나 보다.

“그러게. 그게 1달 전이었지?”

“이번에도 오빠만 믿고 갈게!”

“이거 힘내야겠는 걸?”

식사를 끝내고 잠깐 둘러앉았다.

상군이 할 이야기가 있다며 원정대를 불러 모은 것이다.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원정대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무난하게 사냥을 할 수도 있고, 정말로 아마테라스 공격대와 맞부딪치게 될 수도 있다.

하나둘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일단 놈들의 상태를 잘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 아마테라스는 하이에나 같은 무리에요. 언제 어떻게 뒤통수를 칠지 몰라요.”

“뭔가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정대의 의견은 한결 같았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상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넋 놓고 있다가 당할 수는 없지요.”

“그런데 어떻게 하죠? 우리는 투시 계열 이능력자가 없는데요.”

새미가 걱정을 하자, 상군이 씩 웃었다.

“대신 소환 계열 이능력자가 있지요. 김 대리님? 잘 부탁합니다.”

“끄응.”

더벅머리를 한 남자가 머리를 박박 긁었다.

전투 2과 소속.

팔색조(八色鳥) 이능을 가진 남자였다. 그걸로 방어와 공격은 물론, 탐색도 해내곤 했다.

김 대리는 상군을 보며 말했다.

“탐색을 원하세요, 아니면 추적을 원하세요?”

“추적이 좋겠지만 벌써부터 김 대리님의 이능을 소모할 수는 없지요. 탐색으로 합시다. 혹시 우리 원정대 주변에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접근하면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김 대리가 작고 투명한 파랑새 한 마리를 불러냈다. 손짓을 하자 파랑새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원정대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슬슬 도강을 시작했다.

ATV는 가벼웠다. 미리 준비해온 고무 튜브에 공기를 채워 장착하자, 충분히 물에 떴다. ATV를 한데 엮은 후, 미이바 행성인의 거대 갯지렁이가 선두에서 ATV 무리를 끌었다.

속도는 느리지만, 안정적으로 강을 건넜다.

포식자가 없는 강이라 쉬웠다. 밀림 안에서는 이렇게 편한 도강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기이잉, 기잉.

본격적으로 밀림 안을 달리기 시작했다.

최고 속도를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무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그래서 길잡이들의 거대 갯지렁이를 앞세웠다. 세 마리가 땅에 길게 상처를 남기면, ATV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조심하세요!”

한참을 달리다, 누군가 경호성을 질렀다.

커다란 나무 위에 나뭇잎처럼 매달려 있던 생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곤충과 도마뱀을 섞어놓은 것처럼 기묘하게 생긴 놈이었다.

놈은 원정대 앞쪽에 있는 수한을 노렸다. 수한은 급히 허리춤에 찬 권총에 손을 가져갔다.

“어딜?”

옆에 앉은 상군이 코웃음을 쳤다.

허공에다 대고 주먹질을 하자 웅장한 파동이 일어났다. 그 파동이 녀석을 후려치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이 팍 터져 버렸다.

체액은 파동에 밀려 바깥쪽으로 쓸려갔다. 덕분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수한이 새삼스런 눈으로 쳐다보자, 상군이 에헴 헛기침을 했다.

“내가 옆에 있으니 습격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고위 변이체라면 모를까, 일반 생물에게 당할 제가 아닙니다.”

“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전진하면 할수록 밀림이 짙어졌다.

덥고, 습하고, 벌레들이 앵앵대고…… 정말이지 3중고가 따로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토착 생물들이 자꾸 공격한다는 것.

수한을 공격했던 동물은 약과였다. 주먹보다 큰 말벌들이 떼를 지어 달려들었다. 커다란 두더지처럼 생긴 생물이 파놓은 구덩이에 ATV가 빠지기도 했다. 한 번은 작은 새가 학주를 물어 해독제를 먹인다, 상처에서 독을 빼낸다, 아주 난리가 났다.

저녁이 되자 야영을 했다.

길잡이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벌레나 위험한 생물이 없는 공터를 하나 찾았다. 인근에 시냇물이 흘러 물을 구하기 쉬운 곳이었다.

다만 한 가지를 경고했다.

[불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이곳은 끼치르들의 영역이라 불을 보면 떼로 모여들어 공격합니다.]

끼치르는 미이바 행성의 위험한 토착생물 중 하나였다. 생기기는 지구의 박쥐와 피라니아를 섞어놓은 듯했다. 밤마다 하늘을 날다가 불빛을 보고 몰려드는 습성이 있어 조심하는 게 좋았다.

밤이 되자 기온이 위협적으로 떨어졌다.

낮에 그렇게 무더웠던 게 거짓말 같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허연 김이 뿜어졌다.

그렇다고 불을 피울 수도 없고.

별 수 없이 찜질주머니 몇 개로 견뎌야 했다. 몸 곳곳에 넣고, 손을 녹이며 잠자리에 들었다.

“춥다!”

불침번 때문에 밖에 나왔다가, 수한은 몸서리를 쳤다.

대한민국의 한겨울을 방불케 하는 추위였다. 낮에는 한여름 같았는데, 밤에는 한겨울이 되어 버리니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내의와 방상내피, 야전상의까지 껴입은 상태였다. 처음엔 왜 이런 보급품이 나오나 했는데, 직접 몸으로 겪은 다음에야 실감하게 된 것이다.

같이 불침번을 서게 된 민수가 씩 웃었다.

“춥죠?”

“그러게요. 원래 밀림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나요?”

“모르겠어요. 아마존도 일교차가 심하다는 얘긴 언뜻 들었는데……”

몇 마디 투덜거린 다음에는 둘 다 말이 없었다.

얼굴을 안 지 겨우 1주일이 넘은 사이였다. 둘 다 서로가 서먹했다. 더구나 불을 피우지 않아 몸까지 추우니, 입을 다물고 주변을 살피기만 했다.

고글의 야시경 기능 때문에 보초 노릇은 어렵지 않았다. 심심하면 잠깐 하늘을 봤다가, 주변에서 일렁이는 그림자를 확인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수한은 어째 속이 답답했다.

뭔가 신경을 긁는 것 같았다. 송곳 끝으로 목덜미를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수한의 감각을 자극했다.

“이상하네……”

“뭐가요?”

흘리듯이 내민 말에, 옆에 서 있던 민수가 수한을 돌아보았다.

수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냥 기분이 영 불쾌합니다.”

“추워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누군가 꼭 저흴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음……”

과민한 것일 수도 있지만, 확인해보는 게 좋았다.

이곳은 밀림 한 가운데.

위험한 생물이 많은 지역이었다. 더구나 아마테라스 공격대도 있었다. 드넓은 밀림에서 벌써 조우할 가능성은 낮지만, 아예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수한은 소총을 꼬나 쥐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개구리처럼 생긴 생물이 수한의 기척에 놀라 뿔뿔이 흩어지기만 했다.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오자, 민수가 수한을 쳐다보았다.

“뭐 없죠?”

“네. 아무 것도 없네요.”

“여긴 처음 오니까 과민해져서 그럴 거예요.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세요. 우린 밀림에서 최소 3주 이상은 있어야 해요.”

머릿속으로는 민수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부를 자극하는 그 묘한 느낌을 지우지는 못했다.

밤새 그랬다. 불침번이 끝나고 나서도 그 느낌 때문에 잠을 못 이뤘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오빠, 얼굴이 왜 그래?”

새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밤새 노심초사한 까닭에 수한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상당히 초췌해졌다. 눈 밑에는 검은 기운이 끼고, 얼굴이 언뜻 봐도 푸석푸석했다.

수한은 어색하게 웃었다.

“긴장해서 잠이 안 오더라.”

“긴장했다고? 오빠가?”

새미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깔루 행성에서 조난당했을 때도 시종 여유를 잃지 않던 수한이었다. 그 모습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초조해 하나 싶은 것이다.

역설적으로, 수한은 새미의 그런 기색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불안할까? 무엇 때문에?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18에 이른 직감 능력치.

예지 같은 투시 계열의 능력은 없지만, 이 능력치가 뭔가 효과를 발휘하는 게 분명했다.

수한의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갔다.

사냥 계획서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 근처에는 원정대를 위협할 존재가 없었다. 기껏해야 AA급 변이체 블루이크가 고작인데, 놈을 만나려면 최소 닷새는 더 가야 했다.

토착 종족? 이 밀림 안에 그런 게 어디 있겠나. 있었다 해도 변이체들에게 모두 몰살당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침내 이 불안함의 정체에 근접하는데 성공했다.

아마테라스 공격대의 B급 투시 계열 이능력자.

처음 신상명세를 봤을 때부터 마음에 걸렸다. 아직 그 자라고 판명할 수는 없지만, 수한은 자신의 추리에 기이할 정도의 확신을 가졌다.

수한은 주위를 살피며, 상군을 한쪽으로 불러냈다.

자신의 추측을 털어놓자, 상군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수한씨. 변조 계열 이능력자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직감, 직감이라. 거 참……”

섣불리 믿기도, 믿지 않기도 애매했다.

기본적으로 근거가 너무 박약했다. 투시 계열 이능력자거나, 감각 계열 이능력자라면 몰라도, 그렇지가 않으니까.

상군은 김 대리가 자고 있는 천막을 한 번 돌아보았다.

뭔가 접근했다면 김 대리가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최소한 이 근처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힘들다.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근처에 있고, 투시 계열 이능력자를 보유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상군은 판단을 보류했다.

“주위를 더 자세히 살피는 것으로 합시다. 이사님들께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로 투시 계열 이능력자가 우릴 살피는 것이면 뭔가 조짐이 나타날 겁니다.”

수한으로서는 아쉬운 답변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능력자로서의 등급이 높거나, 입사한지 오래되어 직급이 높았으면 어찌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 정도가 한계였다.

상군이 이사 둘에게 뭔가를 속삭이는 것이 보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들이었다. 그들이라면 뭔가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오늘 하루는 밀림을 헤매야 했다. 내일은 베루아의 영역을 통과할 테고, 이후 사나흘 정도 더 가면 블루이크가 있는 곳에 도달하겠지.

낮 동안에는 수한의 감각을 자극하는 시선이 옅어졌다. 정신을 집중해야 느낄 수 있었고, 그나마 띄엄띄엄 사라지기 일쑤였다.

이동 중에 이사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수한이 느낀 시선을 알아차렸다는 것.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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