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38화 (39/254)

< 밀림에서 -3- >

모두 AA급 이능력자.

나카무라 타케시, 스즈키 카네코, 사토 미노루.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수한은 인근의 가장 높은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나뭇잎 사이에 몸을 숨기고 망원경으로 7시 방향을 보았다.

울창한 나무 사이, 언뜻 빛을 반사시키는 물체들이 빠르게 접근해 오는 것이 보였다.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속도가 빠릅니다. 10분 후에는 도착합니다!”

“이런!”

모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상군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지원 요원들 모두 은신하세요.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총알 날려요. 책임은 제가 집니다. 이능력자들! 전원 한 곳으로 모이세요. 김 이사님이 이능력자들을 보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곳으로 달려오는 이들은 각각 외능, 강체, 신속 계열이었다. 셋 다 자신의 이능으로 사격을 막거나 회피할 수 있었다.

빠르게 포진했다.

시간이 없었다. 자칫 늦장을 부렸다간 천추의 한을 남길 터였다.

수한은 망원경으로 계속 셋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생각보다 더 빨랐다. 겨우 5분 만에 1킬로미터 거리까지 접근했다. 이후 제 자리에 멈춰 있는 게,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이었다.

정적이 밀림을 뒤덮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무기를 쥔 채 귀만 열어 놓았다. 뭔가 소리만 들리면 바로 방아쇠를 당길 작정이었다.

어느 순간, 한 명이 튀어나왔다.

지독히 빨랐다.

땅을 박찼을 때, 벌써 수백 미터를 단축해 버렸다.

수한은 급히 소리쳤다.

“옵니다!”

쿠아앙!

굉음이 터졌다.

한 남자가 공터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어찌나 세게 달려들었는지 몰랐다. 착지한 자리가 움푹 파이면서 흙더미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이능력자들이 모여 있는 곳 바로 몇 발짝 앞.

보훈이 얼굴을 굳혔다.

반사적으로 황동색 광채를 뿜어냈다. 비산하던 흙먼지가 광채에 밀려 난입한 남자에게 쏟아졌다.

남자가 차갑게 웃었다.

유독 하얀 이가 드러나며, 섬뜩한 광채를 뿜었다.

“나카무라! 이게 무슨 짓이지?”

보훈이 낮은 목소리로 추궁했다.

나카무라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사방에서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지만, 태연자약한 태도였다.

그럴 만도 했다.

이능을 극도로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육신의 권능.

전신이 예리한 칼날에 뒤덮인 상태였다. 꼭 비늘 갑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손은 커다란 칼로 변했고, 다리는 큰 송곳으로 변했다.

인간이 아니라 괴물.

이 상태에선 어지간한 총알 정도는 무시한다.

나카무라는 킬킬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시선이 베루아의 시체에 꽂혔다.

“호오, 벌써 한 건 하셨군.”

능숙한 한국어.

손을 휘저으며 깔보는 눈빛을 했다.

“저걸 갖고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 목숨은 보존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내 경고를 무시하면, 너희들 모두 이곳에서 뼈를 묻을 거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음험하게 울려퍼졌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림자 하나가 은밀하게 날아들었다.

모두 나카무라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상황.

그림자는 공터 외곽에 숨어 있던 한 지원 요원을 덮쳤다. 길게 내민 칼이 섬뜩하게 빛났다.

“조심해요!”

탕탕탕!

격렬한 총성이 울렸다.

수한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애초부터 이상했다. 저렇게 대놓고 시선을 끄는 것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터 전체를 감시했는데, 그 덕에그림자가 날아오는 것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다.

총알은 흙바닥에 박혔다. 그림자가 허공에서 덜컥 정지하더니, 관성을 무시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림자는 인근 나무 위에 올라갔다. 긴 검 한 자루를 쥔 채, 공터를 내려다보았다.

냉막한 인상의 애꾸 여인.

그 눈이 은신한 수한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반응이 빠른데? 다시 봤어.”

나카무라가 애꾸 여인, 스즈키 카네코를 보며 투덜댔다.

“뭐야, 그것도 제대로 못 해?”

“난 총알을 몸으로 버틸 수가 없어. 맞을 뻔 했다고.”

둘은 알바트로스 원정대를 무시하고 보란듯이 입씨름을 했다.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지금 눈앞에 모여 있는 이능력자들과, 여기저기 은신한 지원 요원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

강력한 도발이었다.

더구나 강체 계열 이능력자가 접근해 오고 있었다. 몇 분 뒤면 도착할 것이다.

이렇게 끌려가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

수한은 나카무라를 향해 총을 쏘았다.

탕! 깡!

허벅지 부위.

칼날 갑옷을 뚫지 못했다. 불똥만 튀기며 튕겨 나왔다.

그것으로 입씨름이 끝을 맺었다.

나카무라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보았다.

상처는 없다. 고통도 없다.

그러나 총알에 맞았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고개를 들어 수한을 보자, 그 눈에 서서히 광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수한은 오른손을 활짝 펴셔 나카무라에게 보여주었다.

나카무라가 미친 놈 보듯 수한을 보다가, 문득 얼굴을 굳혔다.

수한의 손에 붉은 빛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이능 발현.

이어 손을 탄창으로 가져갔다.

적색 광채가 자연스럽게 탄창으로 스며들었다.

속성 부여 계통 이능이라는 것.

일반적인 총격으로는 나카무라의 이능을 뚫을 수가 없다. 하지만 속성 부여라면 어떨까?

속성 부여 발현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 생각을 나카무라의 머릿속에 쑤셔넣은 것이다.

다시 소총을 겨눴다. 언제 달아놓았는지 레이저 사이트가 차가운 빛을 뿌렸다.

나카무라의 이마에 붉은색 점이 찍혔다.

수한과 나카무라의 눈이 마주쳤다.

불꽃이 튀었다.

강렬한 눈빛이 서로를 찍어 눌렀다.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둘을 보는 사람들이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꼈다. 본인도 모르게 목깃을 헐겁게 하고,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나카무라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칙쇼!”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들려고 했다.

꾸앙!

보훈이 나카무라를 후려쳤다.

아무리 외능 계열이 강력하다 해도 정면대결에선 강체 계열이 한 수 위.

나카무라가 저지당했다.

수한도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나카무라의 왼쪽 허벅지에 꽂혔다.

관통 속성.

철갑만으로는 방어가 불가능했다. 피가 솟구쳤다.

애초에 방어보다 공격에 특화된 이능이었다. 부가적으로 얻은 방어력으로는 일반적인 소총 사격을 막는 게 한계였다.

“크윽!”

나카무라가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다시 붉은 점이 나카무라의 이마에 찍혔다.

스즈키가 급히 나카무라의 옆으로 내려왔다. 검은 어느새 허리에 꽂고, 대신 권총 두 자루를 뽑아들었다.

권총을 겨누며 앙칼지게 소리친다.

“접근하지 마! 접근하면 다 죽여 버릴 거야!”

수한은 가소롭다는 눈으로 스즈키를 쳐다보았다.

코앞에 보훈이 있었다. 대물저격총으로도 흠집을 내기 힘든 막강한 이능력자였다. 그런데 기껏 권총으로 위협하고 있으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총구를 나카무라의 이마에 겨누고 있는데, 보훈이 수한을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저게 무슨 뜻이지?

보훈이 둘을 보며 말했다.

“꺼져라.”

나카무라가 고개를 들었다.

싸우려면 싸울 수 있지만 이미 기세가 죽은 상황이었다. 싸워봐야 전세를 뒤집기는 힘들었다.

그 괴상한 얼굴에 치욕스럽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보훈은 코웃음을 쳤다.

“네깟 놈들에게 당할 우리 알바트로스가 아니다. 꺼져라. 꼴도 보기 싫다.”

이대로 놔주는 건가?

스즈키가 나카무라를 부축하고 얼른 물러났다. 때마침 도착한 강체 계열 이능력자도 사정을 듣더니 바로 몸을 돌렸다.

“저들을 그냥 보낼 겁니까?”

수한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제공격을 당했고, 그걸 뒤집어 결정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다 잡은 고기인데 왜 놓아준다는 말인가?

보훈을 대신하여 상군이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려면 완벽히 해야지요. 아마테라스 원정대 40명을 다 잡을 수 없으면, 살인은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수호자 연맹에서 공적으로 지정되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요. 더구나 처음에 스즈키가 총이 아니라 검으로 공격했으니, 그쪽은 그냥 위협만 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나올 겁니다.”

“허, 그게 말이 되나요?”

“당연히 말이 안 되죠. 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우기기 시작하면, 결국 힘에서 밀려요. 한 번 시작하면 여기서 완전히 끝장을 봐야 합니다.”

수한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능력이 상식으로 통하는 세상이다. 증인 1명, 유품 1개만 건져가도 진실이 까발려진다. 완전 범죄를 할 게 아니면, 일단은 여기서 접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한다.

총을 거뒀다. 납득했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알바트로스라고 마냥 당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상군이 한 명을 불렀다.

“김 대리님. 잘 처리하셨지요?”

김 대리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손에 옅은 보라색이 머물러 있었다.

팔색조의 추적 기능.

김 대리가 외계의 영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으려고 여태 아끼고 있었다. 그러다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자, 주저하지 않고 꼬리를 붙인 모양이다.

어느새 시간이 더 지나 있었다.

오후 4시.

어중간한 시간이어서 이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텐트를 치고, 모닥불도 하나 피웠다. 조명 장치를 달고, 변이체 탐지기와 경보기도 모두 설치했다.

어제까진 끼차르의 영역 안이라 불을 못 피웠는데, 이곳은 베루아의 영역 안이라 가능하다고 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불가능해지고.

“그런데 놈들이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걸까요? 저희가 이미 영상 수신 매개체를 제거했는데요.”

균정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상군이 몸을 움찔했다. 갑자기 지원 요원들을 닦달해 ATV를 살폈다.

지원 요원 중 하나가 작은 발신기를 찾아냈다.

참 교묘하게도 숨겨 놓았다. 크기도 아주 작아, 작정하고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웠다.

상군이 이를 갈았다.

“이런 멍청한 실수를……”

영상 수신 이능은 함정이었던 것이다.

진짜는 위치 추적기.

이능까지 부여된 것 같았다. 그 덕에 외계 행성에서도 써먹을 수 있었다.

상군은 신경질적으로 위치 추적기를 밟아 부쉈다.

다행히 이거 말고는 다른 위치 추적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자! 모두 모여보세요!”

야영 준비를 마치자마자, 상군이 소리를 질러 원정대 전원을 불러 모았다. 길잡이들만 ATV와 자기들의 갯지렁이를 지키고 있고, 원정대는 그곳에서 좀 떨어진 폭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콰아아아아!

폭포 소리에 묻혀, 목소리도 제대로 안 들릴 지경이었다.

아예 근거리 통신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암호화된 채널을 통해, 상군이 한 가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들 느끼셨겠지만, 이번 원정은 좀 고달플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특히 그 나카무라라고 하는 놈은 더 그렇고요.]

[언제는 안 그랬나요. 저도 다른 행성에서 몇 번 이런 일을 겪어본 적 있습니다.]

[거참, 결국은 수호자 연맹에게 공적 선포 당할 걸 왜 그리 욕심을 못 채워서 안달인지……]

[자기들은 완전 범죄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사실 그대로 묻히는 게 들통 나는 것보다 더 많긴 하고요.]

잡담이 늘자, 상군이 그만 하라고 손을 저었다.

[자, 그런 얘기는 나중에 지구 돌아가서 합시다. 지금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당부를 하고 싶습니다.]

[당부시라면……]

[이미 아마테라스 공격대와 충돌을 했습니다. 이대로 일이 끝난다면 좋겠지만, 상황을 보면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상군은 냉혹한 표정으로 대원들의 얼굴을 한 번씩 보았다.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긴 지구가 아닙니다. 끝까지 갈 겁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면, 절대 망설이지 마세요.]

그 한 마디로 끝이었다.

모두들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칼을 한 자루씩 품고 있었다.

대전쟁.

인류의 1/3을 사망하게 한 대재앙.

그때의 참혹한 기억 때문이었다.

수한은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아직 살인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방금 전 나카무라의 허벅지에 총알을 박아 넣지 않았나.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인간의 탐욕은 어떤 짐승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다.

[이의 있으신 분?]

상군이 원정대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저 늑대 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기만 했다. 대원들의 눈 한 편에 시퍼런 살기가 맺혀 있었다.

밤이 지났다.

보라색 새가 날아왔다.

김 대리가 일본인들에게 붙여놓았던 꼬리.

이젠 알바트로스가 한 방 날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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