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39화 (40/254)

< 결착 -1- >

“왔다! 왔어!”

김 대리가 벌떡 일어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보라색 새가 김 대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김 대리가 새들을 몸에 흡수하더니 펄쩍펄쩍 뛰었다.

“지도! 지도!”

소환 이능을 얼마나 사용했다고, 벌써 김 대리의 성격이 변하고 있었다. 이능 발휘를 최대한 억제하고, 지구로 돌아가자마자 정화 의식을 치러야 할 것 같았다.

수한이 급히 홀로그램 생성기를 꺼내왔다. 정교한 3D 지도가 펼쳐지자, 김 대리가 손가락 두 개를 지도에게 겨누었다.

팟!

보라색 빛이 튀어나갔다.

지도에 점이 하나 찍혔다.

남쪽.

점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셋이 아마테라스 원정대를 찾아가는 것이다.

“킥킥킥.”

김 대리는 실성한 것처럼 웃었다.

상군이 김 대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다른 일은 저희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지구로 귀환할 때까지 푹 쉬세요.”

A급 이능력자 하나가 이탈하는 건 아쉽지만, 김 대리는 할 일 다 했다. 여기서 더 외계의 힘에 오염되지 않게 도와주어야 했다.

김 대리는 ATV 조수석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 몸을 태아처럼 움츠리고 쿨쿨 자기 시작했다.

원정대는 야영지를 철거하고 출발했다.

지도의 점을 따라갔다.

김 대리가 퍼진 상태라 파랑새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대신 드론을 날렸다. 주변을 감시하면서 밀림을 달리고 달렸다.

처음에는 조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마테라스 공격대도 원정대가 추적해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반격을 해왔다.

그러나 보라색 점이 반전하는 것을 다 보고 있던 참이었다. 예의 세 AA급 이능력자가 앞장 서서 달려들었지만, 수한을 비롯한 지원 요원들이 총을 겨누자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속도를 올렸다.

역시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는 않았다. 금방 거리가 벌어졌다.

상군이 속도를 올릴 것을 지시했다.

“너무 뒤처지면 안 됩니다. 빨리 갑시다.”

그냥 가서는 쫓아갈 수 없었다. 밤중에도 조금은 이동을 했다. 길잡이들이 위험하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수한이 땅에다 조명탄을 쏜 뒤 그 빛을 이용했다. 그렇게 하자 조금씩은 이동할 수 있었다.

밤에는 드론으로 정찰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김 대리의 파랑새를 이용했다. 덕택에 김 대리의 상태가 계속 악화되었다.

그나마 파랑새 덕에 몇 번의 공격을 막아냈다.

아마테라스 지원 요원이 숨어 있다가 저격도 하고, AA급 이능력자들도 달려들었는데 그걸 죄다 격퇴한 것이다.

“오보에테로요!”

나카무라가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도망쳤다.

수한은 그것을 보고 차갑게 눈을 빛냈다.

처음에 봤을 때도 괴상한 외모이던 나카무라다. 그런데 그 사이 더 심하게 변형되었다. 지금은 변신을 풀어도 피부가 살색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탁한 백색을 띄고 있었다.

저러다 완전히 변질될지도 몰랐다. 살육신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으니, 인간을 벗어나면 그 즉시 폭주하여 주변 사람들을 학살하려 들겠지.

게다가 밀림 안으로 들어갈수록 변이체들이 자주 출몰했다. 은신하고 있다가 공격하기도 하고, 떼를 지어 습격하기도 했다.

모두 D급 이하의 하급 변이체들.

수한이 몽땅 처리했다. ATV 위로 올라가, 거치한 기관총으로 모조리 쏘아 죽인 것이다.

레벨도 제법 오르고, 기관총 사격 기술이 생성되더니 그 레벨도 쭉쭉 올랐다.

어느새 60레벨이 되었다. 베루아를 잡고, 아마테라스 공격대와 시비가 붙고, 하급 변이체를 잡느라 경험치를 꽤 번 것이다.

초능창에 쓰여진 2번째 숫자, 80까지는 20레벨이 남은 셈.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밀림을 파고들었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따라가면 잡을 것 같았다. 거기다 효과적으로 반격을 분쇄하면서, 아마테라스 공격대는 가랑비에 옷 젖듯 전력을 잃었다.

이제 지도 상으로 겨우 수 킬로미터 거리에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위치했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묘했다.

간혹 습격해 오던 변이체들이 자취를 감췄다. 온갖 독물도 덤벼들지 않았다. 오직 싸늘한 적막만이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정지.”

이상함을 감지한 상군이 손을 들었다.

묵직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김 대리의 이능을 속이고 접근해 오는 걸까?

“꾸어어어어!”

멀리서 뭔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맥이 탁 풀렸다. 수한은 소총을 단단히 쥔 채 침을 삼켰다.

듣는 순간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블루이크.

아직 먼 곳에 있어야 할 AA급 변이체가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것이다.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뭔가 수작을 부린 모양.

수한은 다람쥐처럼 잽싸게 근처 나무 위를 기어올라갔다. 고글로 주위를 살피자, 블루이크가 먼 곳에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땅이 쿵쿵 올렸다.

몸을 날릴 때마다 나무가 부러져 나뒹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도에 표시되는 보라색 점이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살짝 포물선을 그리는 게, 블루이크 뒤로 비잉 돌아가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원정대가 블루이크와 싸운 후, 혹은 싸우는 중 난입하여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는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한다?

이렇게 끌려가서는 곤란하다. 전리품도 잃고, 목숨도 잃을 테니까.

블루이크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상군은 원정대를 둘러보다가 눈을 빛냈다.

그 시선의 끝에 수한이 걸려 있었다.

“수한씨! 여기 이쪽으로 와요!”

“예, 과장님!”

수한은 ATV 천장을 뛰어넘으며 선두를 향해 달렸다.

상군은 자신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이사 중 구현 계열인 박균정을 옆에 태웠다.

둘을 보며, 다짐 하듯 말했다.

“두 분 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압니다.”

“제가 뭘하면 됩니까?”

상군의 계획은 간단했다.

블루이크 쪽으로 파고든 뒤, 수한이 총을 쏴서 아마테라스 공격대 쪽으로 유인하자는 것. 균정이 있어서 가능한 얘기였다.

수한은 힐끗 블루이크가 있다는 방향을 보았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십여 분 정도 지나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늦다.

상군이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기이잉!

전기 엔진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상군이 지원 12과 과장에게 소리쳤다.

“김 과장! 우리가 블루이크를 아마테라스 공격대에게 유인할 테니까 뒷일을 부탁합니다! 너무 늦으면 안 됩니다!”

“저희 걱정은 마시고, 조심하세요!”

ATV가 빠르게 튀어나갔다.

거대한 나무가 금방 눈앞으로 다가왔다. 곧 나무와 충돌할 것 같았다.

조수석에 탄 균정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휘황한 빛이 일어났다. 빛이 나무를 후려치자, 우지끈 소리와 함께 나무가 박살났다. 그리고 그 옆으로 ATV가 지나갈 자리가 생겼다.

셋을 태운 ATV가 빠르게 밀림을 주파했다. 균정이 아낌없이 이능을 퍼부은 덕에 최고속도인 60km로 달릴 수가 있었다.

순간, 수한은 나무 틈 사이로 녹색의 괴수를 한 마리 목격했다.

집채 같이 거대한 육체에, 머리가 세 개인 괴수.

머리마다 쭉 찢어진 눈이 여섯 개씩 달려 있었다. 살짝 벌어진 입에선 진득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통나무보다 두꺼운 다리를 내리찍을 때마다 땅이 진동하며 용틀임 쳤다.

등 위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가시들이 삐죽삐죽 나 있었다. 거기에 박쥐 날개의 피막 같은 게 들러붙어 있는데, 그게 뭘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블루이크의 머리 하나가 이쪽을 향했다.

균정이 빛을 뿜으며 내는 소음 때문이었다. 나무가 부러지고 땅이 파이니, 자극 받지 않을 래도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수한이 총을 쏘았다.

탕!

섬광 속성.

백열하는 빛이 블루이크의 머리 바로 앞에서 터졌다.

“꾸어어어어어!”

블루이크가 고통에 찬 괴성을 질렀다.

방어막?

아무리 방어막이라 해도 이런 간접적인 공격은 못 막는다. 깔루 행성에서는 눈앞의 방어막에 총알을 명중시켜 생기는 불꽃으로 변이체의 시야를 방해한 적도 있지 않나.

그래도 AA급은 AA급.

블루이크는 눈 깜짝할 사이 회복되었다.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자신을 공격한 이를 찾아냈다.

수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속성을 바꾼 후 블루이크 주변에 총알을 마구 갈겼다. 총알이 명중한 곳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나오더니, 그 주변을 완전히 차단했다.

연막 속성.

상군이 그것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좋습니다! 더 뿌려요!”

수한은 탄창을 교체했다.

블루이크는 시각에만 의존하는 괴수가 아니었다. 청각도 제법 발달해 있었다. 연막만 믿고 도망쳤다간 오히려 금방 따라잡힐 것이다.

수한은 반대쪽을 향해 총을 겨눴다. 폭발 속성을 부여한 뒤, 띄엄띄엄 쏴댔다.

꽝! 꽝! 꽝!

수한이 목표로 삼은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폭음이 엄청났다. 블루이크가 그곳을 노려보며 쿵쾅대며 뛰어갔다.

공교롭게도,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있는 방향.

아니, 이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수한이 그렇게 유도한 것이다. 아까 지도에서 보았던 아마테라스 공격대의 위치부터, 현재 위치를 계산한 뒤 그쪽을 향해 총알을 쏘았다.

블루이크가 폭발이 일어난 자리를 향해 돌진하면 아마테라스 공격대와 마주칠 수 있도록.

상군이 조심스럽게 ATV를 정지시켰다.

블루이크는 충분히 원정대로부터 멀어졌다. 한참을 뛰어가다가, 아마테라스 공격대를 발견했다. 세상이 떠나가라 괴성을 지른 후 아마테라스 공격대를 덮쳤다.

아우성이 울려 퍼졌다. 온갖 괴이한 소리가 솟구치며, 형형색색의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전투에 돌입한 것이다.

상군이 수한을 올려다보며 격려했다.

“수한씨, 최곱니다! 센스 있는데요?”

“이 정도야 보통이죠!”

이렇게 되면 굳이 후퇴할 필요가 없다.

균정이 낸 길을 따라서, 원정대 전원이 합류했다.

홀로그램 생성기를 내려놓자 지도가 펼쳐졌다. 두 개의 보라색 점이 한 군데 뭉쳐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훈이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상군에게 물었다.

상군은 차갑게 웃었다.

“잘 아시잖습니까? 끝장을 봅니다.”

ATV는 한 군데 잘 숨겨 두었다. C급 이능력자 중 2명, 지원 요원 6명과 길잡이 3명만 남겼다. 그들이 은신한 채 짐을 지키고, 나머지 30명은 도보로 이동했다.

수한은 저격총을 챙겼다. 사람을 상대할 때는 저격이 더 무서울 때도 있는 법이니까.

“놈들도 우리 의도를 알고 있을 겁니다. AA급 3명이면 블루이크를 잡아놓을 수 있으니, 다른 놈들은 우릴 상대하려고 할 거예요.”

무턱대고 들어가면 피해가 크다.

상군이 보훈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저만 믿으세요.”

보훈이 묵직하게 말했다.

상군은 자신의 고글을 조작하여 원정대의 진형을 지시했다. 그에 따라 몇 패로 갈라져서, 블루이크와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맞붙은 곳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여기 맞죠?”

“모두 조심하세요. 아마테라스 공격대 지원 요원들이 숨어 있을 거예요.”

전장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능력자들은 지면에서 대기하고, 수한을 비롯한 지원 요원들은 거대한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뭇잎 사이에 몸을 숨기고, 소리가 나는 쪽을 살폈다. 아마테라스 공격대와 블루이크가 치열하게 싸우는 게 보였다.

그런데 수가 너무 적다.

겨우 7명.

AA급과 A급 이능력자들만 보였다. 나머지는 어딘가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수한은 초조함을 느꼈다.

요주의 대상인 B급 투시 계열 이능력자가 보이지 않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알바트로스 대원들의 모든 위치를 알아낼 수도 있는 거니까.

“쯧!”

옆에 있는 상군도 그 생각을 했나 보다.

혀를 한 번 차더니 고글에다 대고 작전 중지를 외쳤다. 모두 후퇴하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수한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수한씨. 뭔가 좋은 생각 없어요? 지금 우리 원정대에서 가장 변수가 될 만한 사람은 김 대리랑 수한씨인데, 김 대리는 저 모양이니……”

아직 80레벨이 아닌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80레벨이 되어 초능 80을 달성했다면 두 번째 초능이 개방되었을 것이다. 그럼 그걸 활용해서 아마테라스 공격대에게 본때를 보여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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