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착 -2- >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격.
쉽게 말해 지금 블루이크와 싸우는 아마테라스 공격대 이능력자들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럼 숨어 있는 이능력자와 지원 요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얘기를 하자 상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염기 부착하고, 이사님들 오면 시작하죠. 저격 후 바로 이탈해야 합니다.”
이미 피를 본 상황.
그냥 간단히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군은 근거리 통신을 통해 재배치 명령을 내리는 한편, 근처에 있던 두 AA급 이능력자를 불러왔다.
약 5분 후 배치 작업이 끝났다.
수한은 대물저격총을 들어 전장을 겨냥했다.
이능력자들이 워낙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그들을 맞추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다고 블루이크를 맞추면 아마테라스 공격대를 도와주는 셈이 되니, 땅바닥에 꽂아 넣을 생각이었다.
부여한 속성은 섬광.
마침 60레벨이 된 까닭에 진화한 속성 부여도 10레벨이 되었다. 그래서 소총 말고 다른 총으로도 섬광 속성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탁한 총성이 울리며, 묵직한 진동이 수한의 몸을 흔들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이탈했다.
퍽! 퍽퍽!
나무 아래로 뛰어내린 순간,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심장에 총알이 박힐 상황.
안간힘을 다해 달렸다. 수풀 사이를 헤치고, 바위와 두툼한 나무를 엄폐물 삼아 다리를 놀렸다.
아마테라스 공격대는 집요하게 수한을 쫓았다.
한 번은 총알이 머리칼을 스치며 나무에 박혀서, 간이 콩알만 해졌다.
수한은 이를 으득 갈았다.
‘이능이구나!’
투시 계열 이능력자가 어떤 이능을 이용해서 자신을 계속 주시하는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이 울창한 숲 속에서 이렇게 정교하게 총알이 날아온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걸 눈치 챘는지, 상군과 두 이사가 살짝 거리를 벌렸다.
여전히 총알은 수한을 향해서만 날아오고 있었다.
이대로 달리다간 실수 한 번만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질 것이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수한은 왼손으로 권총을 꺼내 들었다.
탄창 전체에 속성을 부여한 후, 앞쪽을 향해 연달아 쏘았다. 총소리가 몇 번 울리고,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인근을 온통 뒤덮었다.
연막 속성을 이용해 연막을 만든 것이다.
그 안으로 몸을 날려, 미리 봐둔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총알이 수한의 진행 방향 쪽에 몇 번 박히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수한은 겨우 숨을 돌렸다.
간헐적으로 총소리가 몇 번 더 울렸다. 이번에는 아마테라스 공격대 측이 아닌 원정대 쪽에서 난 소리였다. 아스라이 비명 소리가 울리더니, 총소리가 뚝 끊어졌다.
소강상태.
상군이 급히 채널로 수한을 찾는 게 들렸다. 수한은 입을 가리고 자신은 괜찮다고 속삭였다.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누굴 노리는지 모르니까, 지금은 연막 속에 숨어계세요.]
[알겠습니다.]
다행히 원정대에서 다친 사람은 없었다. 아까 들린 비명소리는 아마테라스 공격대에서 낸 것 같았다.
수한은 눈치를 살피다가 포복으로 원래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연막이 가장 짙은 쪽의 바위 사이에 몸을 숨겼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다.
‘답답헤 죽겠네.’
보이는 것은 없고, 들리는 것은 블루이크와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투닥이는 소리뿐.
수한은 고개를 쳐들고 나가고 싶은 욕망을 꾹 억눌렀다.
공격대 대 공격대의 싸움은 저격에서 결판이 난다. 그리고 저격전은 인내심 싸움이었다. 이미 위치가 노출되었는데 고개를 내밀다간, 염라대왕과 면담을 해야 할 것이다.
꾸앙!
갑자기 범종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보훈이 보란 듯이 몸을 드러냈다. 더구나 황동색 광채까지 줄기줄기 뿜어내서, 나 여기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속는 자는 없었다.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길 만도 한데, 보훈의 정체를 알아채곤 무시해 버린 것이다.
대신 다른 짓을 했다.
보훈의 몸 전체가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자체로 해를 끼치진 않았지만, 어딘가 좀 꺼름칙했다.
앞으로 치고 나가려던 보훈이 주춤했다.
무슨 이능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돌진할 수는 없지 않나. 심리적인 장애물이 보훈의 발을 묶어 버렸다.
다시 대치.
수한이 한방 먹였었다면, 이번에는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원정대의 의도를 효율적으로 분쇄한 것이다.
그걸 보고 수한은 답답함을 느꼈다.
저 이능이 빛 좋은 개살구인지, 위험한 함정인지만 알 수만 있어도 좋을 것을……
상군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들렸다.
[이사님. 전진하세요. 지금 이사님을 위협할 수 있는 건 AA급과 A급 이능력자들 밖에 없는데, 그 중 저런 이능을 발현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좋습니다. 과장님만 믿겠습니다.]
[한 가지 주의하실 게 있습니다. 정신 계열 이능력자만 조심하세요. B급이니까 주의만 하시면 될 겁니다.]
보훈이 천천히 전진했다.
기관총을 하나 들고 아무 데나 쏘아댔다. 마치 영화 속 람보를 보는 듯한데, 적을 맞추려고 하는 건 아니고 시선을 끌려고 하는 거였다.
수한은 연막이 옅어지자 더욱 몸을 낮췄다. 곧 바람이 불어오면서 시야가 확 트였다.
다른 사람들이 슬금슬금 전진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들킬세라 바닥을 벅벅 기었다. 몇 미터 전진하고 쉬고, 몇 미터 전진하고 또 쉬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수한은 눈치를 보다가 나무 위로 기어올라갔다.
유독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였다. 이 나무라면 쉽게 관측되지는 않을 터였다.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만 내밀고, 블루이크가 있는 쪽을 보았다.
이능력자들과 블루이크가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거리가 멀고, 격렬히 움직이고 있어 명중시키기 힘들었다.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하이하라도 오지 않는 한은 구경하는 게 고작이었다. 거길 향해 총을 쐈다간 총구의 불꽃 때문에 위치가 노출될 테니까.
이곳에는 시모 하이하가 없다.
그러나 수한에게는 레벨 업 도우미가 있었다.
현재 12인 원거리 저격 기술.
그걸 20까지 끌어올렸다.
저격총을 겨누었는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0점을 더 투자했다.
그러자 맞출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굳이 시간 끌 필요가 있나?
칼날을 전신에 두른 이능력자에게 십자선을 겨냥했다. 고글 안에 내장된 컴퓨터가 지시하는 대로 과녁을 수정했다. 워낙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쉬지 않고 새로운 지점이 설정되는데, 그걸 지켜보다가 감각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탄이 나카무라의 가슴에 박혔다.
눈부신 빛이 터졌다.
부여할 수 있는 속성이 제한되어 있어, 섬광 속성이라도 부여하고 날린 것.
상관 없었다.
12.7mm 탄환을 쓰는 대물저격총이었다.
막대한 충격이 나카무라를 후려갈겼다.
꾸앙!
거대한 소리가 터졌다.
나카무라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아무리 살육신의 권능이라 해도 대물저격총까지 완벽히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총알에 맞은 나카무라의 가슴이 움푹 들어갔다. 그래도 AA급 이능력자라고 즉사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것으로 수한의 안배가 끝났다.
급히 저격총을 거두고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빠르게 아래쪽으로 기어내려갔다.
퍽! 퍽퍽!
방금 전만 해도 수한이 있던 자리에 총알이 박혔다.
나무 옆 바위 뒤에 엄폐했다. 납작 엎드린 채,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졌다.
“끄아아악!”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위치한 방향쪽이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칼날처럼 긴장되어 있던 대기를, 한 차례 거대한 술렁임이 휩쓸고 지나갔다.
“으아아!”
“다스케떼!”
아마테라스 공격대에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비명 소리가 연속해서 났다. 더구나 총 소리도 울리고, 번쩍번쩍 빛이 번뜩였다.
거기 어울려 블루이크도 자꾸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아마테라스 공격대와 싸우면서 지르던 폭력 어린 고함이 아니라, 공포에 찬 비명이었다.
멀리 떨어져서 숨어 있던 김 대리가 히죽거렸다.
“키키키. 저것들 야단났네. 살육신이 내려왔잖아.”
살육신!
수한이 의도한 대로였다.
나카무라 타케시가 자신의 이능에 먹혀 버린 것이다.
상군이 급히 원정대를 불러모았다. 더 이상 은신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모두들 부리나케 달려 한 곳에 모였다.
“나카무라가 완전히 변질된 것 같습니다. 조심하세요. 일단 인간을 벗어난 이상,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해집니다. 김 이사님, 김 이사님밖에 나카무라를 저지할 사람이 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블루이크도 당했는지 대지가 한 번 크게 들썩였다.
비명소리가 계속 들렸다. 더구나 그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
이런 밀림에서는 원정대의 기동력이 극도로 제한된다. 따라서 금방 오염된 나카무라에 의해 따라잡힌다. 그때는 반항도 제대로 못하고 당할 것이다.
보훈이 푸른 약병을 꺼내 한번에 들이켰다. 길게 심호흡을 하자 머리 위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이능력자의 힘을 회복시킨다는 물약.
기력을 차린 보훈이 앞장 섰다. 균정과 전투 2과 과장, 그리고 B급 이능력자들이 그 뒤에 늘어섰다. C급 이능력자들과 지원 요원들은 후미에 자리를 잡았다.
수한은 저격총을 놔두고 소총을 들었다. 미리 속성을 부여해 두었다.
“끄끄끄끄끄……”
괴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칼날을 마찰시켜 내는 듯한 기이한 소리.
나카무라가 어느새 원정대에게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았다.
아마테라스 공격대가 벌써 나카무라에게 전멸한 것일까?
얼음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나카무라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시선만이 날카롭게 원정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김 대리가 손을 뻗었다.
꺼질 듯 희미한 노란색 새가 한 마리 날아올랐다. 새는 원정대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돌더니 한쪽 방향을 향해 몸을 던졌다.
파직!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허공에서 괴물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보면 사람 같았다. 그런데 팔이 네 개에, 손은 없이 큰 칼만 달려 있었다. 다리는 시꺼먼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상체는 그나마 인간의 것에 가까웠다.
“쏴!”
수한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쏟아지는데, 괴물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바람처럼 몸을 날려 원정대의 외곽을 휘휘 돌았다. 보훈이나 균정 등 위협적인 인물들을 피해, 원정대의 배후로 파고들었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너무 빨라!”
괴물이 스치듯 지나며 팔을 휘저었다.
지원 요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겨우 피했다.
수한은 그때를 노려 두 발을 박아 넣었다. 적갈색 걸쭉한 피가 튀면서, 괴물이 수한을 노려보았다.
철컥, 철컥.
총알이 바닥났는지 쇳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탄창을 교환하는데, 괴물이 수한을 향해 일직선으로 덤벼들었다.
탄창을 갈 시간이 없었다.
수한은 번개처럼 손을 움직였다.
소총에서 손을 뗐다.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권총의 총알에 속성을 부여했다. 손잡이를 잡고 빼어들었다.
그 모든 동작이 단 한 순간에 이뤄졌다.
권총 두 개가 나란히 불을 뿜었다. 총알이 괴물의 몸을 폭풍처럼 두드렸다.
괴물이 정지했다.
수한의 바로 코앞.
길게 내민 손의 칼날이 수한의 바로 코앞에 멈춰 있었다. 수한의 코끝이 베어져 핏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괴물의 상체에 구멍이 정확히 15개 뚫려 있었다.
새미에게 선물 받은 드워프 권총이 제 역할을 한 것. 반면 미국제 권총의 총알은 전부 튕겨나갔다.
“이놈!”
보훈이 노호하며 달려들었다.
몸을 낮추어 괴물을 들이받았다. 괴물이 나가떨어지더니, 언제 그랬냐 싶게 일어나며 보훈을 칼로 공격했다.
깡깡깡깡!
보훈의 황동색 광채 위에서 불똥이 튀었다.
수한은 소총을 집어들었다. 새로운 탄창을 결합시키고, 관통 속성을 부여했다.
그 사이 괴물의 상처가 빠르게 재생되었다.
상처 부위가 꾸물거리더니 탄환이 똑똑 흘러나왔다. 구멍이 메워지고, 표면에 거울 같은 광택이 비쳤다.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창이 모두 바닥날 때까지 쏘았다. 관통 속성이 걸린 총알 수십 개가 머리에 박혔다.
괴물의 머리통이 완전히 박살났다.
그 지경이 되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괴물이 뒤로 넘어갔다. 네 개의 팔, 두 개의 다리를 뻗은 채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