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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커맨더-41화 (42/254)

< 처리 >

푸들푸들 떨던 괴물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숨통이 끊어진 것.

수한은 방심하지 않았다. 심장에 탄창 한 개 분의 총알을 다시 박아 넣었다. 그런 다음에야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괜찮아?”

새미가 얼른 뛰어왔다.

놀랐는지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냐며 수한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구급낭에서 소독약을 꺼내 코끝에 발라준다, 부산을 떨었다.

수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난 괜찮아.”

다른 사람들도 수한에게 뛰어왔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수한과 괴물을 번갈아 보았다.

상군이 수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한씨. 잘 하셨습니다. 수한씨가 아니었으면 피해가 컸을 겁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아니라 실력이지요. 정말 잘 하셨습니다.”

언제까지나 한담만 나눌 수는 없었다.

괴물의 생명력은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재생 중이었다. 머리가 다시 제 형체를 갖추고, 가슴의 구멍이 계속해서 메워졌다.

그것을 보고 균정이 앞으로 나섰다.

두 손에서 맹렬한 빛을 하염없이 토해냈다. 빛이 지우개처럼 괴물의 몸을 조금씩 지워버렸다.

이것으로 정말 끝.

원정대는 자리를 옮겼다.

사방을 경계하며 블루이크가 있던 쪽으로 갔다.

“다 죽었나 봐.”

새미가 수한에게 속삭였다.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허리를 잘라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켜 놓았는가 하면, 원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도 꽤 보였다.

블루이크의 시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어찌나 격전을 치렀던지, 주변의 나무가 몽땅 부러지고 날아가 커다란 공터가 만들어졌다.

그 공터에도 사람 시체가 널렸다. 그리고 아마테라스의 ATV들이 한쪽에 모여 있었다.

뒷정리를 했다.

시체의 수를 일일이 확인했다.

정확히 42개. 지구인 시체가 39개이고, 미이바 행성인 시체가 3개였다.

1개는 균정이 태워 버렸으니까.

기세등등하게 원정대를 압박했던 것치고는 참으로 허무한 최후였다.

“이능 물품도 벗겨요. 그것들도 처리할 거예요.”

“지구로 가져가실 겁니까?”

“그랬다가 오늘 있었던 일이 알려지면 큰 일 납니다. 저들을 통해서 처리해야지요.”

상군은 기쁜 기색이 역력한 길잡이들을 가리켰다.

그들도 뒷정리에 한 몫 거들었다. 동족들이 죽어 나갔는데도 시체에서 각종 값비싼 물건을 벗겨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한은 블루이크 시체 절단에 들어갔다.

전기톱은 오늘도 수한의 몫이었다. 왜앵 하는 소리와 함께 체액이 무지막지하게 튀었다. 그래도 난도질당한 시체를 뒤지고 물건을 벗겨내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싶었다.

상군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빨리빨리 합시다! 이러다 해지면 여기서 야영해야 돼요!”

“히익!”

“과장님, 그건 좀!”

수십 명이 몰살당한 곳이었다. 여기서 자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결국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작업을 끝냈다. ATV에 가득 짐을 싣고 공터를 떠났다.

아마테라스 공격대의 ATV와 시체는 한 곳에 쌓아 두었다. 아마테라스 공격대의 보급품 중 기름을 꺼내 그 위에 몽땅 끼얹었다. 거리를 상당히 벌린 후, 수한이 소총을 꺼내 쏘았다.

화염 속성을 부여한 후 날린 사격이었다. 금세 불이 붙었다. 기름이 타오르며 시꺼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아마테라스 공격대의 보급품 중 폭발물이 폭발한 모양이었다.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야영을 했다.

상군이 원정대를 모아놓고 말했다.

“일단 뮈노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원정대를 둘로 나눈 후, A급 변이체 사냥에 들어가겠습니다.”

모두들 찬성했다.

아마테라스 공격대와 접전을 벌이고 났더니 피로도가 쌓였기 때문이었다. 단 며칠만이라도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더구나 김 대리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김 대리만이라도 먼저 지구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카무라처럼 외계의 힘에 오염되어 괴물로 변할 수가 있었다.

돌아가는 길도 험난했다.

블루이크의 존재감이 스러지자, 사방팔방에서 변이체들이 달려든 까닭이었다.

그나마 차단막으로 블루이크의 시체 조각을 감싸서 이 정도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험로가 아니라 혈로를 뚫어야 했을 것이다.

수한은 자청해서 변이체 사냥을 맡았다.

ATV 위에 있다가, 접근하는 변이체를 쓰러뜨리는 것을 도맡아서 했다. 중노동이라면 중노동이지만, 그 과정에서 레벨을 엄청나게 올렸다.

온 길을 되짚어 가는 것이니 전진 속도도 빨랐다. 약 닷새가 지나자 도시 뮈노에 귀환할 수 있었다.

‘좋았어!’

수한은 속으로 환호했다.

아마테라스 공격대와 싸우고, 변이체들을 혼자 잡았더니 레벨이 엄청나게 올랐다.

무려 74레벨.

나카무라가 변형되어 탄생한 괴물을 잡은 게 가장 컸다. 그게 아니었으면 74레벨은커녕 70레벨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 추세대로면 미이바 행성에서 80레벨을 찍을 것 같다.

2번째 초능.

그것이 수한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극한 상황을 경험해서 그런지 능력치가 대부분 올랐다. 재주와 감각, 직감은 2씩 오르고, 나머지도 초능을 제외하곤 전부 1씩 상승했다.

더구나 기술도 변화가 있었다. 주로 사용한 소총 사격은 2, 권총 사격이 1 올랐고,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시체 해체라는 기술이어서 별로 쓸모는 없었지만, 최소한 없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먼저 뮈노로 돌아왔다.

상군이 ATV 조수석에 늘어져 있는 김 대리를 보더니 말했다.

“일단 김 대리님을 지구로 돌려보내야겠습니다.”

“이히히!”

김 대리는 자기 얘기를 하는 줄도 모르고 히죽히죽 웃었다.

머리카락 끝이 총천연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성격만이 아니라, 외모도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한이 상군의 말을 받았다.

“블루이크랑 베루아의 시체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귀환할 게 아니면요.”

“그래야겠습니다.”

뮈노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세라프의 전당을 통해 지구로 편지를 보냈다. 김 대리가 벌써 변질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리고, AA급 변이체 시체와 A급 변이체 시체, 그리고 밀림을 오가며 잡았던 변이체들의 심장을 보내겠다고 했다.

한편으로 아마테라스 공격대에게 얻은 전리품을 처리했다. 그것들을 지구로 가져가기는 위험 요소가 컸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파느라 헐값에 팔아치웠다. 힘의 결정을 대금으로 받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익이 상당했다. 다 합쳐 놓고 보니 블루이크 시체를 팔아 얻게 될 배당금과 거의 맞먹었다.

수한은 감탄하며 말했다.

“이거 상당하네요. 변이체 사냥보다 원정대 사냥이 더 이익이 되겠는데요?”

“이계 원정 초기엔 그러는 공격대들이 많았어요. 수호자 연맹이 처벌 수위를 높여서 많이 사그라지긴 했는데, 아마테라스 공격대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일을 처리하고, 원정대는 다시 사냥을 나갔다.

뮈노 주변을 돌아다녔다. 경비대를 뻔질나게 찾아가 변이체의 위치를 파악하고, 주로 A급 변이체들을 목표로 밀림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잡은 A급 변이체만 4마리나 되었다. B급 변이체도 20마리나 사냥했는데, ATV에 시체를 실을 공간이 없어 심장만 빼왔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더구나 예방 접종의 효력이 다하는 4주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슬슬 원정을 종료해야 할 때였다.

원정대는 숙소로 돌아와 축배를 들었다.

“이번 원정은 완전 대박이네요!”

“우리가 도대체 몇 마리를 잡은 거예요?”

“AA급 1마리에, A급 5마리니까……”

“B급 변이체 심장은 왜 빼먹어요?”

“아차, 그걸 안 셌네요.”

“이번 원정 배당은 기대해 볼 만 하겠습니다.”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2배는 훨씬 더 나오겠어요. 우와, 휴가 내고 어디 외계 행성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봐요.”

“하하. 어차피 귀환은 3일 뒤에나 하니까 그 동안 이 근처 놀러다니면 되죠. 뮈노 근처에도 관광지는 많대요.”

수한도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편하게 사냥을 한 까닭에 능력치는 오른 게 없지만, 레벨이 80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초능창에도 변화가 생겼다.

개발 중이라는 단어가 뜬 것.

이제 시간만 지나면 된다. 그러면 12가지 계열 중 새로운 초능을 얻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1가지 이능을 자연 각성하는 사람은 왕왕 존재했다. 그래서 수한도 속성 부여 능력을 자연 각성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2번째 능력까지 자연 각성했다고 한다?

대번에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지구인 중에서는 유래가 없는 일이니까.

지나치게 주목받는 것은 피하는 게 상책.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힘의 결정을 구입하면 된다. 같은 계열의 초능을 개발한 후, 그 힘의 결정을 잘 처리하면 누가 알겠나.

돈을 써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무슨 능력을 선택할까?’

생각만 해도 즐거운 상상이었다.

수한은 만면에 웃음을 지은 채, 흥겹게 술잔을 기울였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고, 원정대는 지구로 귀환했다.

아마테라스 공격대의 전리품을 처분하고 받은 힘의 결정은 공격대에서 전매하기로 했다. 시세에 따라 값을 매긴 후, 전리품처럼 각자의 배당율에 따라 나누기로 한 것이다.

지구로 돌아온 뒤, 수한은 코를 벌름거렸다.

벌써 10월 말.

가을의 상쾌한 공기가 수한의 폐를 자극했다.

무덥고 찐득한 미이바 행성에 있다가 오니, 상당히 싸늘하게 느껴졌다.

현재 대한민국 시간은 오전 9시.

원정대원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들었다.

“역시 지구가 최고야.”

“벌써부터 집에 돌아온 느낌이에요.”

“으, 얼른 씻고 자고 싶네요.”

“빨리 퇴근합시다.”

원정대는 병원으로 직행했다.

ATV는 마중 나온 사람들이 챙겼다. 혹시라도 원정대가 뭔가 전염성 질병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온갖 검사를 다 받았는데, 다행히 이상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다음에 또 봐요.”

검사를 다 받고 나니 벌써 오후 늦은 시간이 되었다.

새미가 수한에게 다가왔다.

“오빠, 내일부터는 뭐할 거야?”

“내일은 출근해야 돼. 보고서 써야 하니까.”

“지원 2과는 분석부에서 거의 대신 해주지 않아?”

“맞아. 그래도 진술 정도는 해야지. 동영상이랑 사진만 가지고 보고서 쓰는 건 한계가 있어.”

“에이, 뭐야 그게.”

새미가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여기저기 놀러 다닐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있었는데, 그게 안 된다고 하니 낙심했나 보다.

수한은 겨우 새미를 달랬다. 진술이 끝나면 바로 전화하겠다고 한 것이다.

“꼭 전화해야 돼. 알았지?”

“그래. 알았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다른 거 하고 있어.”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마테라스 공격대와 얽혔던 것 때문이었다.

원정 보고서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적는 게 원칙이지만, 이번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언제 어떻게 사실이 새어나갈지 모르는 것이다.

덕택에 지원 2과와 지원 12과가 직접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흘 동안, 꼼짝 없이 보고서 작성에 매달렸다.

고생 끝에 작업이 끝이 났다.

진실을 담은 비밀 보고서가 하나, 외부에 조금 알려져도 괜찮을 더미용 보고서가 하나.

수한은 실소를 흘렸다.

‘레벨이 올랐네? 얼씨구, 지능이랑 재주도 올랐어?’

레벨이 81을 찍었다.

더구나 능력치 중 재주와 지능이 1씩 올랐다. 전후 보고라고 새로운 기술이 생겼다. 새로운 초능의 개발도 끝이 났는데, 하도 바빠서 미처 고르지는 못했다.

상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퇴근들 합시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특별 휴가 끝나고 봐요!”

사람들이 썰물처럼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수한도 그 틈에 섞여 밖으로 나왔다.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아무도 모르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초능창이 활짝 펼쳐지며 글자들이 퐁퐁 솟구친다.

거인의 힘부터 영혼 제어까지, 12가지 항목들.

수한은 흐릿하게 웃음을 지었다.

보고서를 쓰며 고대했던, 2번째 초능을 선택할 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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