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42화 (43/254)

< 힘의 결정 -1- >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들은 없었다. 학교에 가 있는 것 같았다.

밥을 먹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켜켜이 쌓인 피로가 푸근하게 풀렸다. 딱딱하게 굳은 근육들이 나긋나긋하게 이완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가지는 여유.

수한은 허공을 노려보았다.

레벨 업 도우미에서 비롯된 12가지 항목.

처음 초능을 개발했을 때는 B급 변이체가 눈앞에 있어 급하게 초능을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간이 넉넉했다. 신중하게 생각한 뒤 가장 최적의 초능을 고를 요량이었다.

무엇이 좋을까?

속성 부여가 있으니 공격력은 문제가 없다. 지금 수한의 공격력은 동급 최강이니까. 어떤 점에서는 상위 등급까지 능가하는 면모가 있고.

그렇다면 부족한 점을 보강해야겠지.

부족한 것은 많다.

우선 방어력이 약하다. 제대로 된 공격 하나만 허용해도 즉사할 가능성이 높았다.

더 있었다.

적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단적으로 이번 원정에서 원정대를 쫓는 시선은 알았지만 그 정체를 파악하진 못하지 않았나.

오염된 나카무라와 싸울 때도 그랬다.

빠른 움직임을 수한의 눈이 쫓아가지 못했다. 그저 직감에 의존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새미가 선물한 드워프 제 권총이 아니었으면 수한은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 가지.

방어 능력과 간파 능력.

그것을 보완하는 게 급선무였다.

‘간파 능력을 기르는 게 우선이야.’

그런 생각을 했다.

수한이 만약 근접 공격을 하는 이능력자라면 주저하지 않고 방어 능력을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기껏 속성 부여로 원거리 공격을 하면서 방어력을 올리는 건 초능 낭비다.

물론 방어 능력을 올리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뜻하지 않은 기습에서도 자유로워지고, 만약 그게 강체 계열이라면 총을 이용한 저격도 무시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방어 능력이 아니라 간파 능력을 선택한다고 해서 기습에 대해 대비를 못하는 건 아니다.

미리 알아채고 준비하면 되는 거니까.

수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먼저 보고, 먼저 쏜다.

그러자면 투시 계열이 제격이다.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은 여섯 가지.

[원경] [독심술] [물체 투시] [미래 예지] [과거 투영] [정체 파악].

정체 파악을 선택했다.

자신을 노리는 적의 정체도 알아낼 수 있고, 환상이나 투명화도 꿰뚫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 예지도 탐이 났지만, 이건 실제 전투에서는 응용하기 어려웠다. 몇 초 후의 미래를 즉각적으로 예지하는 게 아닌, 정신을 집중하며 몇 주에서 몇 달 후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어서였다.

[정체 파악]

설명 : 힘을 정신에 집중하여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다. 본인의 집중력이 바닥나거나, 스스로 그만둘 때까지 유지된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환상이나 위장 등 부자연스러운 것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특히 강점을 가진다.

능력 : 대상의 정체를 파악한다.

제한 : 50 레벨까지 육성 가능.

계열 : 만상 투시.

레벨 : 1.

진화 : 진실 간파, 환상 파괴, 주시자의 눈.

수한은 정체 파악을 선택하고 입맛을 다셨다.

초능 점수를 써서 정체 파악의 레벨을 올리고 싶었다.

그런데 초능 점수가 없다. 점수가 생기는 대로 속성 부여에 사용한 탓이다.

곤란하다.

80레벨이 되고 120레벨이 되면 또 새로운 초능이 개발된다. 그런데 1레벨 오를 때마다 초능 점수가 고작 1 오르니, 결국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터였다.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모르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수한은 욕조에서 밖으로 나왔다.

초능 생각은 다음에 하기로 했다. 머리만 싸매고 있어봐야 답도 안 나오니까. 대신 조금 있으면 들어올 미이바 행성 원정 배당금으로 생각을 옮겼다.

얼마나 들어올까?

수한의 배당률은 약 1.8%.

공격대가 50%를 가져가는 것을 생각하면 매출의 0.9%가 된다. AA급 이능력자가 두 명이나 참가한 탓에, 수한의 몫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래도 몇 억은 가뿐히 넘길 것 같았다. 어쩌면 10억 이상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쓸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힘의 결정.

다른 건 몰라도 투시 계열 힘의 결정이 필요했다. 그래야 이번에 새로 개발한 정체 간파에 대해 누가 물어봐도 변명할 수 있으니까.

속성 부여는 알바트로스의 인사부장에게 운을 띄워 놓은 것이 있었다. 곧 강화될 것 같다고 얘기했던 것이다. 그러니 넘어가더라도, 투시 계열은 그럴 수 없었다.

E급 힘의 결정은 대략 1억. D급은 3억 정도.

아깝긴 하지만, 안전과 금전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안전이 우선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의심할 상황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았다.

남은 돈은 미래를 위해 저축해놓는 게 좋겠지.

새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이제 끝났어?]

[응. 일단 집에 왔어. 너무 피곤해서.]

[고생하네. 차라리 오빠도 전투부로 오지 그랬어.]

[아직 배우고 싶은 게 많아서 그랬지.]

[배우는 대신 고생하잖아.]

[지금 고생하면 나중이 편해지니까. 혹시 알아? 내가 내 공격대를 차리게 될지.]

[하긴, 오빠라면 진짜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수한은 이불을 펴고 누워 한동안 새미와 통화를 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잠깐 통화하겠다고 전화를 건 게, 벌써 2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자꾸 눈이 감기려고 하는 것이, 슬슬 전화를 끊어야겠다.

[나 이제 좀 자야겠다. 저녁에 시간 있어?]

[있지, 그럼.]

[그때 영화나 볼래? 보니까 새로 영화 하나 개봉했던데.]

[좋아!]

6시에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수한은 알람을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데이트는 즐거웠다.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수한은 슬슬 때가 무르익는 것을 느꼈다.

배당은 금요일 점심에 나왔다.

수한이 받은 배당은 약 14억.

일반 지원 요원도 1억 원 가까이 벌었다는 얘기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수한은 퇴근 후 수호자 연맹 대한민국 지부로 찾아갔다.

힘의 결정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힘의 결정은 별관에 있는 수호자 백화점에서 팔고 있습니다.”

안내하는 아가씨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수호자 백화점으로 발을 옮겼다.

15층 규모의 제법 큰 백화점이었다. 지구의 물건은 없고, 오직 외계에서 건너 온 물건만 팔고 있었다. 이능력자만 출입이 가능한 곳인데도 사람이 북적북적했다.

여타 백화점이 그렇듯, 층별로 판매 품목이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힘의 결정은 13층부터 15층까지의 최고층에서 팔았다.

13층은 F급부터 C급까지. 14층은 B급과 A, AA급. 15층은 S급 이상.

수한은 13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투명한 유리관들이 곳곳에 보였다. 힘의 결정이 그 안에 담겨 색색의 빛을 뿌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날카로운 눈빛을 뿌리는 경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봉을 든 게, 그들도 이능력자인 것 같았다. 물론 고위 이능력자는 아니겠지만.

“어떻게 오셨어요?”

단아한 제복을 입은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힘의 결정을 사려고요. D급 중에 투시 계열로 사고 싶은데,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13층은 12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종업원은 수한을 한쪽으로 데려갔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저희 백화점이 보유하고 있는 투시 계열 힘의 결정은 총 5백 개에 달합니다. 그 중 대부분은 이곳 13층에 있고요, 고객님께서 찾으시는 D급 힘의 결정은 정확히 98개가 있습니다.”

“상당히 많네요.”

“예. 그리고 98개 중 33개는 기정 결정이고, 나머지는 무기정 결정입니다.”

기정 결정은 그 힘의 결정을 흡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능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을 말했다. 반면 무기정 결정은 무엇을 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수한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였다.

“무기정 결정으로 하겠습니다.”

“투시 계열 힘의 결정은 3억 정도로 시세가 형성되어 있어요. 한 번 보시겠어요?”

수한은 종업원이 가리킨 유리관을 들여다보았다.

주먹 크기의 돌처럼 보이는 작은 물건들이 둥둥 떠 있었다. 옅은 녹색 빛을 뿜었다가, 잦아들었다가를 반복하는데 꼭 심장이 뛰는 것처럼 보였다.

변이체의 심장을 가공하여 만드는 힘의 결정.

재수가 좋으면 한 마리의 심장만 가공해도 만들 수 있지만, 재수가 나쁘면 열 마리의 심장을 가공해도 못 만드는 물건이었다. 그러다 보니 꽤나 비쌌다.

저걸 가져가 세라프 종족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흡수하면 그 힘이 깃들며 이능을 각성하게 된다. 혹은 기존 이능을 진화시키는데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수한에게 적용되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

수한은 세라프 종족의 방법으로 이능을 각성한 게 아니라, 레벨 업 도우미를 사용하여 초능을 개발한 거니까. 자칫 무턱대고 흡수했다간 아까운 돈만 날릴 터였다.

“뭘로 하시겠어요?”

“이걸로 하겠습니다.”

수한은 시세 중간, 정확히 3억짜리를 선택했다.

5천만 원만 더 주면 가장 좋은 것을 살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연막용으로 사는 거니까. 사실 가장 싼 2억 5천만 원짜리를 사려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딱 평균치로 구입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결제까지 끝냈다. 그러자 종업원이 수한을 한쪽에 있는 휴게실로 안내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휴게실은 개인별로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소파에 앉아 종업원이 준비해준 커피를 마셨다.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원목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종업원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아까 수한이 택한 힘의 결정이 부드러운 천에 싸여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 인증서가 그 옆에 놓여 있고, 언뜻 잠금장치 몇 개가 보였다.

확인한 후, 수한이 직접 잠갔다. 수한만 아는 비밀번호에, 수한의 지문까지 필요하니 여간해선 훔쳐가기 힘들 것이다.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흡수는 어디서 하시겠습니까? 필요하시면 저희가 장소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배달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가져가지요.”

수한은 백화점에서 제공한 가죽 가방에 상자를 담아서 가지고 나왔다.

막상 백화점을 벗어나자,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무려 3억짜리다.

잠금장치를 했다곤 해도 푸는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안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보다 몇 배의 돈이 통장에 있지만, 없이 살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3억을 들고 간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목이 말랐다.

여의도에서 집에 갈 때까지, 수한은 계속 마음을 졸였다. 집에 들어온 다음에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어? 형, 그거 뭐야?”

명한이 가죽 가방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수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쇼핑 좀 해 왔어.”

“아, 그래?”

“그런데 너 오늘은 집에 빨리 왔다? 그 변호사분이랑은 안 만나?”

“오늘은 바쁘다고 해서 내일 보기로 했어.”

수한은 힘의 결정을 집 한쪽 구석에 놔두었다.

그런 다음, 한 가지 맹점을 깨달았다.

집에 놔둔다고 해서 안전하지는 않은 것이다. 오히려 힘의 결정을 노리고 침입하는 도둑이 생길 수도 있었다.

차라리 어디 유료 금고에 놔둘 것을 그랬을까?

아서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지 않나. 나중에 새로운 초능을 개발하고 나서도 유료 금고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더구나 유료 금고를 오래 쓰면, 수한이 힘의 결정을 쓰지 않고도 능력을 각성한 게 들통 날 가능성이 높았다.

레벨 업 도우미로 이능만 각성하면 세상 쉽게 살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밤늦게 기한이 돌아왔다.

수능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얼굴에 피로가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고생했어.”

“응. 나 먼저 잘게.”

“그래, 푹 자.”

고3이 잠을 자겠다는데 시끄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TV를 끄고, 불도 다 껐다. 수한도 거실에 이불을 펴고 편히 누웠다.

잠이 오질 않는다.

당장 내일 새미와 약속이 있는데, 그때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다. 명한은 여자 친구 만나러 나갈 테고, 기한은 주말이라도 학교에 가고 있으니까.

하루 안에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만, 그게 길어져서 한 달이 넘어간다면?

“어휴……”

수한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하게 어디다 파묻어 둘 수도 없고……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차라리 힘의 결정을 흡수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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