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43화 (44/254)

< 힘의 결정 -2- >

운 좋게 레벨 업 도우미와는 별개로 이능을 각성하기라도 하면 대박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뭔가 영향을 받으면 그것으로도 좋고, 최악의 경우라도 3억을 날리는 것에 불과했다.

하긴, 3억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액수는 아니지만.

“모르겠다.”

수한은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썼다.

누군가 속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혼자 속을 끓이자니 참 답답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내일 수호자 백화점에 한 번 더 들르기로 했다.

왜냐고?

1억 가량 하는 E급 힘의 결정을 사기 위해서였다.

3억을 날리는 것은 좀 그렇지만, 1억 정도야 한 번 시험 삼아 써볼 만 했다.

수한은 그 생각을 하고 풋 웃었다.

1억이 시험 삼아 써도 될 액수가 되다니, 자신이 크긴 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수호자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가장 싼 8천만 원짜리 E급 투시 계열 힘의 결정을 구입했다. 그리고 백화점 측에서 제공하는 밀실에 힘의 결정만 가지고 들어갔다.

밀실에는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옅은 형광등 불빛이 방 안을 밝혔다. 스스로를 구속할 수 있게, 수갑과 족쇄 같은 게 몇 개 보였다.

힘의 결정을 흡수할 때는 고통이 심하니, 저걸로 자신을 묶으라는 뜻이다.

수한은 침대 위에 가서 앉았다.

힘의 결정을 흡수하는 방법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성공 확률이 문제인 거지, 시도 자체는 쉬웠다.

상자에서 힘의 결정을 꺼냈다.

E급이라 그런지 크기가 꽤 작았다. 손가락 두 개 크기에 불과했다.

그걸 두 손으로 꼭 쥐고, 잠깐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 후우.”

조금 긴장이 되었다.

듣기로는 힘의 결정 흡수는 상당한 고통을 수반한다고 했다. 그 고통에 져서 기절하면 완전히 실패하는 거고,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확률적으로 이능을 얻거나 진화한다.

옷은 한 곳에 벗어 두었다. 침대 위에 편하게 누운 후, 힘의 결정을 쥐고 가슴 위에 올렸다.

충분히 마음의 대비를 하고, 힘의 결정을 힘껏 쥐어짰다.

겉으로 보기엔 돌 같아 보이는 힘의 결정.

막상 힘을 주어 누르자 조금씩 일그러졌다. 동시에 투명한 액체가 결정 표면에 한 방울 두 방울씩 맺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르륵 흘러내렸다.

차가운 감촉이 수한의 가슴을 적셨다.

처음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새하얘지고, 전신에 힘이 들어가 힘줄이 올올이 일어났다.

냉기 다음에는 열기였다.

뜨거운 감각이 수한의 몸을 덮쳤다. 불가마 안에 들어간 것 같았다. 피부 전체가 벌겋게 달아오르고, 몇 군데에선 물집이 잡혔다. 머리카락 끝이 그슬리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헉헉.”

수한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나서 견딜 수 있었다.

이미 속성 부여 능력이 있어서 이 정도로 끝났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몇 시간이 넘게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겠지.

뭔가 변화가 있을까?

부디 헛고생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수한은 레벨 업 도우미의 창을 펼쳐놓고 꼼꼼히 살폈다.

과연 있었다.

[초능]

속성 부여 : 총알 31.

정체 파악 1.

[120] [160] [200] [300] [400] [500]

여유 점수 : 0.

만상 투시 점수 : 4.

만상 투시 점수!

없던 게 새로 생겼다.

눈치를 보아하니 투시 계열 능력에 쓸 수 있는 점수인 것 같았다.

수한의 생각대로였다.

정체 파악의 레벨을 올리자, 만상 투시 점수가 소모되었다.

기존에 레벨을 올리는 방법으로는 초능 점수가 부족하겠다 싶었는데, 이런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힘의 결정을 구하려면 돈이 드니까. 돈과 능력을 맞바꾸는 셈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힘의 결정 수십 개를 써도 이능을 진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수한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언뜻 거울을 봤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땀이 흥건하게 났고, 머리카락은 완전히 그슬리고, 입술은 완전히 부르터져 있던 것이다.

“손님, 괜찮으세요?”

종업원이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전 괜찮습니다.”

수한은 담담히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조금 있으면 새미와 만날 시간인데, 이 꼴로 만날 수는 없었다.

역시나, 수한을 처음 본 새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빠, 파마 했어?”

“아니. 방금 힘의 결정 흡수해서 그런가 봐. 많이 이상해?”

“우와, 진짜?”

새미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수한을 살폈다.

그러더니 슬쩍 머리를 기울이며 묻는다.

“잘 됐어? 표정 보니 좋아 보이는데?”

수한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마치 자기가 새로운 이능을 각성한 것처럼, 방방 뛰며 기뻐했다.

“잘 됐다! 오빠, 그럼 C급 이능력자가 된 거야?”

“모르겠어. 인증 받아봐야 알지. 일단 E급 투시 계열 힘의 결정으로 투시 계열 이능을 각성하는 건 성공했어. 집에 D급 사뒀으니까 그것도 한 번 흡수해 봐야지.”

“그럼 새로 E급이나 F급 이능 하나가 더 생겼다는 거네. 축하해! D급까지 흡수 잘 하면 좋겠다. D급 이능 2개면, 연봉 협상도 다시 해야겠는데?”

“그래야겠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축하도 할 겸, 내가 쏠게!”

“이거 매일 얻어먹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에이, 그제는 오빠가 샀잖아.”

새미가 수한의 팔을 잡아끌었다.

즐겁게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힘의 결정을 담은 가방은 어제 놔둔 자리에 잘 있었다. 동생들도 아침부터 일찍 외출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시간이 오후 5시.

4시까지 새미와 함께 있다가 들어왔는데, 동생들이 들어오려면 시간이 좀 있을 것 같았다. 둘 다 저녁 늦게 들어올 테니까.

그 전까지는 힘의 결정을 흡수할 시간이 나겠지.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상자에서 힘의 결정을 뺐다. 안방에 가서 벌거벗고 편히 누웠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힘의 결정을 두 손으로 쥐고 힘을 주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살갗을 통과하여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심장이 꽝꽝 얼어붙으며, 전신이 냉동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까 전과는 비교도 안 된다.

수한은 정신이 끼무룩 멀어지는 것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냉기 다음에는 열기, 그 다음에는 극렬한 통증이 찾아들었다. 전신을 칼로 난자하는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하도 주먹을 꽉 쥐었더니,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핏방울이 맺혔다.

이런 게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무게감 다음에는 냉기, 또 열기, 다시 통증, 그렇게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가 지나갔다.

“끄흐윽……”

수한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안방에 놔둔 거울에, 엉망이 된 모습이 비쳤다.

머리는 산발에, 입가에서는 핏물이 흘렀다. 눈에는 핏발이 서고 몸 곳곳에 멍이 시퍼렇게 나 있었다.

실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C급도 아니고, D급 힘의 결정을 흡수한 건데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A급이나 AA급, S급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수한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활개를 펴고 누운 채 손가락만 까닥였다. 그에 따라 펼쳐지는 초능창을 확인했다.

만상 투시 점수 12.

오전에 흡수했던 E급 힘의 결정 보다 높은 수치였다.

고생한 보람은 있는 것이다.

수한은 몸을 일으켜 안방을 살펴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점수를 얻은 것은 좋은데, 안방이 가관으로 변했다. 바닥에 깔았던 요에 핏방울이 떨어져 있고, 수한이 바닥을 구르는 바람에 집기들이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청소 해야겠네……”

동생들이 돌아오기 전에 빠르게 움직였다.

창고에서 다른 요를 꺼내 대신 깔았다. 원래 요는 빨래 바구니에 대충 넣어 놓고, 집기들을 원상 복귀 시켰다. 그나마 깨지는 게 없어서 다행이었다.

핏물을 몽땅 닦은 다음, 간단히 빨았다. 어차피 세탁기에 넣고 몇 번 돌려야 했다.

그런 다음 깨끗하게 샤워를 했다.

“어휴.”

샤워하면서 보니,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손바닥은 물론, 손등과 배, 가슴, 허벅지도 할퀸 상처가 보였다. 그런가 하면 턱도 아프고, 치아 전체가 아팠다. 머리에 작은 혹이 몇 개 나 있었다.

속된 말로 아주 발광을 한 모양.

다음부터 C급 힘의 결정을 흡수할 때는 구속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얌전히 일을 치를 테니까.

만상 투시 점수는 몽땅 정체 파악 능력에 투자했다.

이것으로 17레벨.

남은 돈을 털어 C급 힘의 결정을 구입했다. 밀실에서 스스로를 묶은 뒤 흡수했더니 만상 투시 점수 36점이 생겼다.

진화까지 끝마쳤다.

수한이 선택한 것은 주시자의 눈.

정체 파악이 범용성 있게 진화한 형태였다. 원경과 미래 예지, 물체 투시, 독심 모두 가능했다. 그 깊이가 얕다는 게 단점인데, 그야 진화를 몇 번 더 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보조용으로 선택한 능력이다.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려면 다재다능한 게 좋았다.

“형, 무슨 일 있었어?”

C급 힘의 결정을 흡수하고 돌아오자 동생들이 기겁 했다.

몸은 옷으로 가렸지만, 얼굴은 만신창이 그대로였다. 강도를 당했어도 지금의 수한보다는 더 나았을 것이다.

수한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힘의 결정 흡수하느라 그래. 엄청 힘들더라.”

“헐! 괜찮아? 그거 잘못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면서.”

“흡수는 잘 됐어? 뭔가 이능을 새로 각성한 거야?”

“응. 잘 됐어. 내일 수호자 연맹 지부 가서 이능 인증 다시 받아야겠다. 연봉 협상도 다시 해야지.”

“장난 아니다. 형 이러다 진짜 S급 이능력자 되는 거 아냐?”

“그거야 두고 봐야 알지.”

다음날 치른 이능 인증에서, 수한은 당당히 C 등급을 인증 받았다. 더구나 변조 계열만이 아닌, 투시 계열에서도 C 등급을 받았다.

그걸 보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화하지 않은 초능은 D급 이하로 판정 받는 듯했다. 진화를 1번 하면 C급이고, 1번 더 하면 B급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B급 이능력자라……

흔히 그때부터 고위 이능력자라고 불렀다. 공격대의 영입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도 그때부터였다.

주말이 지난 후, 수한은 연봉 협상을 요청했다.

인사 부장과 마주한 자리에서, 인사 부장이 수한의 이능 인증 결과를 보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새로운 이능을 각성하셨네요?”

“그렇게 됐습니다.”

“C 등급 투시 계열 주시자의 눈이라…… 허,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네요.”

속성 부여 이능만 해도 무척 도움이 된다. 그런데 투시 계열 이능까지 더해진다고?

말 그대로 완벽한 저격수 아닌가.

인사 부장은 기존 수한이 받던 15몫을 20몫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리고 연봉을 3억 6천으로 올렸다.

한 가지 옵션을 더 제안 받았다.

“만약 수한씨가 B급 이능력자가 된다면, 그때는 연봉 6억에 40몫으로 재계약하겠습니다.”

보통 B급 이능력자보다 높은 조건이었다.

하긴 그냥 B급 이능력자가 아니다. 원거리 공격과 찰떡궁합인 투시 계열 이능을 가진 자였다. 이 정도 조건은 받을 만 했다.

동석한 미현이 수한의 계약서를 검토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수한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계약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하, 재협상을 이렇게 자주 하는 건 알바트로스 들어와서 처음인 것 같습니다.”

수한이 새로운 이능을 각성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공격대 전체에 퍼졌다.

여기저기서 축하를 해주었다.

전화통에 불이 났다.

[수한씨, 축하해요!]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네요. 첫 이능 각성하고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두 번째 이능이라니……]

[곧 B급 이능력자가 되겠는데요?]

[수한씨가 내 동기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지원 2과, 전에 근무했던 지원 17과, 그리고 연수 동기들, 2차례의 원정을 함께 했던 타부서 사람들까지.

한 차례 떠들썩한 일상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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