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사단 -1- >
뭐라고?
정신이 멍했다.
말뜻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타이누 행성 원정대가 어떻게 되었다고?
수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3명, 3명이라고요?”
간신히 내뱉는 말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상군이 안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지원 15과에서만 귀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요?”
“아직 정확한 사태는 모릅니다만, 선례를 생각하면 아마도……”
그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수한씨, 괜찮아요?”
어느새 동료들이 수한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뒤늦게 출근한 동료들이 소식을 듣고는 불안한 눈으로 수한을 바라보았다. 뭔가 말은 하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 없어 멀찍이 서 있기만 했다.
수한은 이를 악물었다.
“그 귀환한 분들 어디 계십니까? 직접 듣고 싶습니다.”
“지금 사장실에 계실 겁니다. 부장님들 이상 임원진 모두 비상 회의에 들어갔어요.”
수한은 그 말을 듣자마자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사장실 앞에 내린 뒤 그 앞을 서성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새미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귓가에 맴돌던 목소리와 입술에 닿던 부드러운 감촉이 이렇게 선한데, 다시는 새미를 볼 수가 없다고?
말도 안 된다.
최소한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정말로 죽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전까진 인정할 수 없었다.
터질 듯한 가슴을 쥔 채 사장실 앞을 오락가락했다.
비서실에서 비서 한 명이 밖으로 나왔다.
“수한씨? 무슨 일 있으세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괜찮은 척 말을 꺼냈는데, 막상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북풍처럼 삭막하기만 했다.
비서, 미현이 뭔가를 생각해냈는지 멈칫했다.
“새미씨 때문에 그러세요?”
묵묵부답.
대답을 하기조차 힘들었다.
미현이 손짓을 했다.
“회의는 좀 길 거예요.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그래도 얼굴을 아는 사이라고,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
수한은 비서실로 들어가 구석에 앉았다. 미현이 커피를 한 잔 타다 주었다. 그걸 받아들고 마시려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미현이 그걸 보고 안쓰러운지 한 마디를 했다.
“아직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에요. 힘내세요.”
수한은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저도 흘려들은 거긴 하지만 세 분이 다른 분들 죽는 것을 확인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냥 습격당한 다음에 도망치시면서 본 게 다래요.”
“좀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수한은 필사적인 눈으로 미현을 보았다.
미현은 조금 망설이더니, 수한의 앞에 의자를 하나 가져와 앉았다.
“제가 아는 것만 말씀드릴게요.”
약 2시간 전, 수호자 연맹을 통해 긴급한 연락이 들어왔다고 한다.
세르엘 종족에게 타이누 행성 원정대가 습격당했다는 것.
무사히 달아난 사람은 겨우 셋.
지원 15과의 김정기, 박기태, 이창희.
셋은 최대한 빨리 귀환을 희망했고, 소식을 들은 갈태수 사장이 수호자 연맹과 협의하여 셋을 귀환시켰다. 그리고 지구로 귀환하자마자 셋을 동석시킨 가운데 비상 회의를 연 것이다.
거기 어디에도 누가 죽었다는 말은 없었다.
“죽지는 않았다는 거지요?”
“그건 몰라요. 확인해봐야 알죠. 하지만 세르엘 종족이잖아요. 식인 풍습도 있는 종족인데……”
세르엘 종족도 타이누 행성의 다른 종족들처럼 온화한 편이었다. 하지만 잔인한 면도 있어서, 일단 적이 되면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쨌든 새미가 살아 있을 확률이 조금은 있었다.
‘제발, 제발, 살아있기만 해.’
수한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때 사장실의 문이 열렸다. 갈태수 사장을 비롯하여 AA급 이능력자인 이사들, 그리고 각 부서 부장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가장 뒤쪽에 초췌한 얼굴을 한 3명의 남자가 따라갔다.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다.
이창희.
수한과 동기로, 처음 인사를 했던 사이다. 이능력자가 2명이던 8팀 소속이었고, 보자마자 음담패설을 해서 가벼운 느낌을 받았었다.
오래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미현이 수한에게 속삭였다.
“지금이에요.”
“고맙습니다.”
수한은 주먹을 꽉 쥐고 비서실 밖으로 나갔다.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던 사람들의 눈이 수한에게 온통 집중되었다. 수한은 갈태수 사장에게만 꾸벅 인사를 하고 창희를 향해 다가갔다.
창희가 수한을 보고 흠칫 놀랐다.
수한과 새미의 관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수한을 대하는 게 좀 껄끄러웠다.
“창희씨. 오랜만입니다.”
“아, 예. 오랜만입니다.”
창희가 어물거리며 눈을 피했다.
수한은 창희의 한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이미 일반 성인보다 훨씬 더 강한 근력을 갖춘 수한이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힘을 주자, 창희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일.
그만큼 수한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지원부장이 수한에게 호통을 쳤다.
“사장님 앞에서 이 무슨 추태입니까!”
수한은 지원부장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지원부장의 몸이 굳었다.
그 또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지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수한의 눈에는 뭔가 다른 것이 서려 있었다.
광기라고 할까. 간절함이라고 할까.
수한은 손에서 힘을 뺐다.
창희가 급히 몸을 빼더니 어깨를 주물렀다.
수한은 창희를, 그리고 다른 두 명의 남자와 임원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전투 2과의 윤새미씨가 제 여자친굽니다.”
“음!”
“허어.”
“그래서 제가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듭니다. 죄송합니다.”
평온한 척 말은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수한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눈은 벌겋게 충혈 되고, 힘껏 쥔 주먹은 새하얗게 질렸다. 학질 걸린 사람 마냥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갈태수 사장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수한을 보았다.
이사들과 눈을 맞추더니, 창희를 포함한 세 명에게 말했다.
“잠깐 얘기하고 오세요. 저희 먼저 수호자 연맹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예.”
“그럼 수한씨. 묻고 싶은 것은 다 물어보세요.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아직 희망이 있으니까 낙담하지 말고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수한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임원진들이 그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문이 닫힌 다음에는 수한과 세 남자, 그리고 멀찍이 바라보는 미현만 남았다.
수한은 고개를 들었다.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다.
남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수한은 창희를 보며 물었다.
“새미는 죽었습니까?”
“어, 그게……”
창희가 대답을 못하고 어물거렸다.
대신 그 옆에 서 있던 김정기가 대답했다.
“그건 저희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저흰 원정대가 습격당하는 것을 본 게 전부여서요.”
“습격당하는 것을 봤다고요?”
“예. 정찰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세르엘 종족이 원정대 야영지를 습격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불침번들까지 곯아떨어져서, 저희가 가세한다 해도 반전시킬 수가 없었어요. 차라리 공격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부랴부랴 몸을 뺐습니다. 그나마 죽이지는 않고 모두 생포하는 것을 확인했
습니다.”
수한은 물끄러미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왜 도망쳤느냐고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남자의 행동이 맞았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았으면 알바트로스는 원정대의 소식조차 몰랐을 것이다. 한 달은 더 지나야 이상함을 알아차렸겠지. 그러다 실종처리 한 후 잊혔을 테고.
수한은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세르엘 종족이 왜 원정대를 공격한 겁니까? 세르엘 종족은 잔인하긴 해도, 여간해서는 먼저 공격하는 일이 없는 종족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정기는 고개를 저었다.
“하아……”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박기태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우리 원정대을 공격한 것은 세르엘 종족 중 회색 송곳니 부족입니다. 처음 사냥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전혀 적대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냥 시작 후 사흘 째 밤, 갑자기 저희를 공격했지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얘기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짐작 가는 게 없습니다. 세르엘 종족을 공격한 적도 없고, 금기를 범한 것도 없는데……”
기태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한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근처에 우리 공격대 말고 다른 공격대는 없었습니까?”
앞에 서 있던 셋이 일제히 자기들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하지 않아야 하는 태도.
수한은 절박한 태도로 말했다.
“뭔가 아는 게 있으면 제발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음…… 좋습니다. 실은 인도의 쉬바 공격대가 와 있었습니다. 저희가 도착하기 2주 전부터 사냥을 하고 있었지요. 다행히 저희가 목표로 한 것과는 다른 변이체를 잡았고요.”
쉬바 공격대!
수한의 눈이 깊어졌다.
인도에서 상당히 잘 나가는 공격대였다. 대한민국의 타이탄 공격대와 그 위치가 비슷했다.
그런데 규모는 쉬바 공격대가 타이탄 공격대보다 더 컸다. A급 이상의 고위 이능력자 수는 둘이 비슷한데, B급이나 C급 이능력자의 수는 쉬바 공격대가 훨씬 많았다.
“혹시 그들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요?”
수한의 말에, 생존자들이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모릅니다. 저희가 사냥을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서 쉬바 공격대는 사냥을 끝냈거든요. 야영지를 걷고 철수하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장담할 수는 없지요. 우리 공격대의 누군가가 일탈 행위를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정기가 수한을 보고 당부했다.
“수한씨, 아시겠지만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됩니다. 원래는 말씀드리면 안 되는데 수한씨가 안쓰러워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예, 감사합니다.”
“우리 추측이 맞으면, 지금 당장은 우리 원정대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거예요. 세르엘 종족은 비록 잔인하긴 해도 사리를 따질 줄 아는 자들이니까요.”
“우리 대원들이 뭔가 일을 치른 게 아니길 빌어야죠. 만약 그랬으면…… 으으, 끔찍합니다.”
“세 분 모두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한은 셋에게 거듭 사의를 표했다.
셋은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이 정도 가지고 뭘요. 어쨌든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곧 조사단도 만들어질 거라고 하니까, 새미씨를 곧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다 무사할 겁니다, 걱정 말아요.”
“감사합니다.”
셋은 수호자 연맹으로 가보겠다며 수한을 지나쳤다. 수한은 그 뒤에서 계속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대로 꼼짝 없이 새미를 떠나보내는 게 아닌가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정확한 사정은 알아봐야 한다.
쉬바 공격대가 그랬을 거라고 100% 단정할 수는 없지 않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해 봐야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미현이 환하게 웃었다.
“수한씨, 다행이네요! 아직 원정대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휴, 정말 다행입니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다들 살아있을 거예요. 곧 조사단이 파견될 테니까, 살아만 있으면 조사단이 그들을 데려올 거예요.”
“조사단…… 맞아, 그렇겠네요.”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에 번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