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사단 -2- >
지금 수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타이누 행성으로 쳐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당장 차원문을 관리하는 수호자 연맹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갈태수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가장 먼저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할 것이다. 누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아야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수호자 연맹을 통해 간접적인 방법만 사용할까? 아니면 조사단을 파견하는 등 직접적인 방법도 쓸까?
일체의 사감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따졌다.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능력자만 생각해도 A급 2명에 B급이 3명, C급이 2명이나 된다. 더구나 일반 요원까지 합치면 생목숨 35명이 걸린 문제였다.
소극적으로 대처했다간 공격대 전체의 사기가 떨어진다.
이능력자 한두 명이 낙오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
공격대측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제스처라도 취하려고 할 것이다.
‘내가 조사단에 포함될 수 있을까?’
아니, 이건 포함되고 포함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조사단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발만 동동 구르다가 마음이 닳고 닳아 십년은 늙어버릴 것이다.
수한이 조사단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세라프 어 때문이다.
수한이 알기로, 수한처럼 원어민 수준의 세라프 어를 구사하는 자는 알바트로스 공격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잘 하는 사람이 상군이나 지원 1과, 3과의 과장들 정도였다.
통역 기능 물품이 흔하다면 모를까, 변방 중 변방인 지구에서는 보기가 매우 힘들었다.
‘좋아, 해보는 거다.’
미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시끄럽던 사무실이 수한의 등장에 일순 조용해졌다. 몇 명이 입술을 달싹였지만, 차마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자기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수한의 얼굴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수한은 가장 먼저 상군에게 갔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상군이 고개를 들어 수한을 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과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수한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우리 공격대가 타이누 행성에 조사단을 보내게 되면, 거기서 통역을 맡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상군이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의자에 몸을 묻으며 깊이 한숨을 쉰다.
“하아…… 수한씨.”
“예.”
“저도 수한씨 마음은 짐작이 가요. 어지간하면 도와줄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죠. 타이누 행성 가서 뭘 어쩌려고요? 세르엘 종족들을 전부 쏴 죽이기라도 할 거예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과장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요?”
“세르엘 종족은 제가 알기로 잔인하고 과단성이 있되 호전적인 종족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변 종족들과 평화롭게 잘 공존한다고 들었습니다.”
“그야 그렇지요.”
“그런데 왜 우리 원정대를 공격한 걸까요? 아마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끼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수한씨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세르엘 종족은 그 미모 덕에 지구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가끔 개인 자격으로 타이누 행성을 방문한 이들이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은 아주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래서 상군도 내심 의아하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수한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표트르 공격대의 참변이 재현된 게 아닐까요?”
“수한씨!”
상군이 질책하듯 수한의 이름을 불렀다.
표트르 공격대는 수년 전 타이누 행성에서 세르엘 종족의 여자를 간살 했다가 전멸당한 공격대였다.
수한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공격대가 아니라 다른 공격대의 소행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지구인을 구별하기 힘들 테니, 덮어놓고 공격했을 수도 있지요.”
“후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조사단의 책임자분을 도와, 이번 일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싶습니다. 만약 원정대가 살아 있다면 안전하게 데려오고요. 제 세라프 어 실력이라면 도움이 될 겁니다. 말이 통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당장 미이바 행성에서도 크게 도움이 됐지 않나.
상군은 멀거니 수한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럼 우리 과 원정은 어떻게 하고요?”
“죄송합니다.”
수한은 고개를 숙였다.
상군이 책상 위를 집게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한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지금 원정 데려가 봐야 도움도 안 될 테고…… 수한씨, 차라리 제가 제 직권으로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쉬면서 머리를 식히는 게 어떻겠습니까? 수한씨는 지금 감정에 휩쓸려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고 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감이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제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전부가 아니다……”
“전 지원 요원으로서 생존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번에 깔루 행성에서 살아 돌아오기도 했으니 검증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이능력자이기도 하지요. 만약 무력 사용이 필요하게 된다면, 일반적인 이능력자보다 치명적인 활동이 가능할 겁니다. 원거리에서 저격하면 그만이니까요. 전, 변이체를 상대
하는 것보다 이능력자나 군인을 상대하는 게 더 쉬워요.”
“그건 그렇습니다.”
“지원 요원에 이능력자이고, 세라프 어에 정통한 사람이 저 말고 또 있습니까?”
수한의 말에 상군이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외적인 내용만 보자면 수한씨 말이 맞습니다. 문제는 수한씨가 냉정을 유지할 수 있냐는 거죠.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평정심을 잃으면 끝입니다.”
“제가 냉정을 잃을 일은 없을 겁니다.”
수한이 단언했다.
“그러면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질 테니까요.”
“으으음.”
상군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납득이 가는 점도 있고, 불안한 점도 있었다.
지금 장담하는 것처럼 냉정하게 행동해 준다면 수한이 가장 적격자였다.
하지만 막상 새미의 죽음을 확인한다면, 수한이 과연 냉정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굳이 내가 결정할 필요는 없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일개 지원 2과 과장이었다. 이번 일에 결정권 같은 것은 없었다. 지금 수한이 부탁하는 것도 타이누 행성으로 보내달라는 게 아니고, 조사단이 구성될 때 추천해달라는 얘기였다.
그 정도야 할 수 있지 않겠나.
결정은 높은 분들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원정에 데려가기도 힘들고, 본인이 이렇게 간절히 바라니 한 번 쯤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상군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만약 임원진에서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이 되면 수한씨를 추천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만약 조사단 파견이 없다면, 없는 일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일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럴 것까지야……”
하루 내내 공격대에는 정적이 흘렀다.
폭풍전야 같은 으슥함만이 사옥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오후 무렵, 수한의 예측처럼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조사단이라고는 해도 열 명도 안 될 것이다.
대표로 AA급 이능력자 중 한 명이 나서고, 수행원으로 이능력자 서너 명과 지원 요원 네댓 명 정도가 따라붙을 거라고 했다.
수한은 상군의 추천을 받아 가장 먼저 지원했다.
결정이야 갈태수 사장과 임원진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절실한 마음을 지원서에 꽉꽉 담아 제출했다.
퇴근한 뒤 용산에 들렀다.
변이체 사냥꾼 허가를 받으러 왔던 곳. 이곳에서 총기도 구입했었지.
새로운 총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 총만 전용으로 사용하는 총알도 상당히 많은 양을 샀다.
지구에서 양산되는 저격총 중 가장 정밀하고, 가장 사거리가 길다고 알려진 물건.
4천만 원이 넘게 들었다.
거의 고급 승용차 한 대 값.
아깝지는 않았다.
이런 물건으로 새미를 구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심정이었으니까.
알바트로스 실기시험장에 들러 영점을 맞췄다.
거리는 1500.
타이누 행성은 평야 지대가 많은 곳이라 저격총이 위력을 발한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주저하지 않을 터였다.
탕!
육중한 총소리를 들으며, 수한은 마음에 칼을 갈았다.
차마 상상하기 싫은 상황.
새미가 정말로 죽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왜 자신은 전용탄을 수천 발이나 구입했을까. 타이누 행성에 전부 가져갈 수도 없는데……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사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들어가 보니 갈태수 사장과 두 명의 이사들만 앉아 있었다.
원래 이사 두 명이 더 있지만, 그 이사들은 원정에 참가 중이라 참석하지 못한 것.
“안녕하십니까. 이수한입니다.”
“그래요, 수한씨. 거기 앉아요.”
이들이 무슨 일로 수한을 불렀는지는 뻔했다.
타이누 행성 조사단 문제 때문이겠지.
수한은 어떻게 설득할 지 고심했다. 이 세 명을 설득하지 못하면 말짱 황이었다.
뜻밖에도 갈태수 사장이 활짝 웃었다.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기쁜 소식이요?”
“원정대 사람들 모두 살아 있답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수호자 연맹에서 어제 밤늦게 알려온 소식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한은 벌떡 일어나 거푸 허릴 숙였다.
암담하게 물들어 있던 세상이 비로소 빛을 찾은 것 같았다. 머리가 후끈 달아오르며, 가슴이 쿵쿵 뛰었다.
갈태수 사장이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두 손을 흔들었다.
“하하, 제가 감사 받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상황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갈태수 사장도 몰랐다.
단지 원정대의 생사만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갈태수 사장이 수한을 불렀다.
“수한씨.”
“예.”
“보훈이에게 들었습니다. 세라프 어에 능통하시다면서요?”
“어디 가서 말이 안 통해 곤란하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
“하하, 그거 믿음직스러운 말입니다.”
호탕하게 웃던 갈태수 사장이 얼굴을 굳혔다.
더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한시가 급합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를 마치고 타이누 행성으로 떠나야 합니다.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하고 계세요. 조사단의 인원은 8명입니다.”
“알겠습니다!”
수한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갈태수 사장이 한 번 웃고는, 나가보라고 했다.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수한은 잠깐 멈칫했다.
스스로가 수상쩍게 여긴 쉬바 공격대 때문이었다.
한 가지 더.
세 생존자.
생각하기 싫은 가능성이지만, 그들 중 하나가 뭔가 일을 저지른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투시 계열 이능으로 마음속을 읽어내면 간단하지만 그건 범죄 행위였다. 본인 동의 없이 시행했다가는 고소 당하고 형사 처벌을 받는다.
그 얘기를 풀어놓자, 세 인물의 얼굴에 일제히 차디찬 냉기가 감돌았다.
“그 두 가능성은 저희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기 전까진 내색하지 않을 겁니다.”
“수한씨도 다른 곳에 가서 괜히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좋은 소리는 못 들을 테니.”
“예, 알겠습니다.”
조사단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빠르게 구성되었다.
고위 이능력자 세 명.
타이누 행성에 여행을 3번이나 다녀왔다는 정태규 주임.
얼굴을 잘 모르는 지원 요원 2명.
수한.
한 명 더 있었다.
“저도 동행합니다.”
태수가 선언했다.
태수야말로 알바트로스의 최강자이자, 대한민국 모든 이능력자 중 10번째 가는 강력한 이능력자였다. 본신의 무력은 AA급에 머물러 있지만, 5개나 되는 S급 장비 덕에 S급 이능력자들도 무시하지 못했다.
밤을 새어가며 면역 접종 등 모든 조치를 끝냈다.
새벽. 아직 어두컴컴한 시간.
평소 쓰던 ATV가 아니라, 방탄 처리된 SUV 2대가 차원문을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