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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커맨더-48화 (49/254)

< 회색 송곳니 부족 -1- >

타이누 행성은 낮이었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태규가 일행을 보며 말했다.

“타이누 행성에는 수호자 연맹의 파견대가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합니다.”

“골치 아프네요.”

“원정대 생사를 확인해준 곳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 그러면 되겠습니다.”

수호자 연맹은 지구의 조직이지, 전 차원계에 걸친 조직은 아니었다. 대신 세라프의 전당, 즉 차원문을 매개체로 다른 행성의 조직들과 연락을 취하곤 했다.

수한 일행이 도착한 도시의 차원문은 붉은 꽃잎 전사단이라는 조직이 관리하고 있었다.

필경 이들이 원정대에 대한 소식을 전했을 터였다.

[저희 단장님을 뵙고 싶다고요?]

차원문을 관리하는 자에게 요청하자, 관리인은 일행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수한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예. 얼마 전 유디니아 초원으로 저희 동료들이 변이체 사냥을 갔는데, 3명만 돌아와서 무슨 일인지 파악하러 왔습니다.]

[흠, 단장님은 바쁘십니다.]

[그러시면 굳이 단장님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을 뵐 수는 없겠습니까?]

[흠.]

관리인은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수한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숙였다.

관리인은 그들을 한번씩 보며 고민하는 눈치더니, 일단 말이라도 해보겠다고 하고 잠시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돌아와 손짓을 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관리인은 세라프의 전당 옆 건물로 인도했다.

작은 성을 보는 듯 웅장한 건물이었다. 붉은 꽃잎 전사단의 본부이면서, 조사단이 도착한 도시를 지배하는 곳이기도 했다.

건물 깊숙이 들어갔다. 언뜻 보면 지구인을 닮았지만, 확연히 골격이 다른 종족들이 신기한 눈으로 조사단을 보며 스쳐 지나갔다.

[이곳입니다. 들어가세요.]

관리인이 작은 방 하나를 가리켰다.

문은 없었다. 안이 훤히 들어다 보였다.

사자처럼 머리를 산발한 여자가 서류를 보고 있었다. 눈도 사자 눈이고, 어깨가 떡 벌어져 강맹한 분위기를 풍겼다.

수한은 책상 위에 명패가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세라프 문자와 타이누 행성의 문자 중 하나가 병기되어 있었다.

수한의 세라프 문자 레벨은 10.

충분히 명패의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3 부단장, 샤르미나 루드 기티오.]

이름은 루드, 성은 기티오, 출신지는 샤르미나.

태수가 대표로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갈태수라고 합니다. 미력하게나마 알바트로스의 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대로 통역하자, 루드도 정중히 인사했다.

[붉은 꽃잎 전사단의 3 부단장, 샤르미나의 루드입니다. 그런데 사장이라는 게 뭡니까?]

태수는 그 말을 듣고 쩔쩔맸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얼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수한이 나섰다.

[저희 알바트로스에선 사장님이 가장 높습니다. 붉은 꽃잎 전사단으로 치면, 단장님과 같은 위치입니다.]

[그렇습니까?]

[또한 AA급 신속 계열 이능력자이십니다.]

[호오!]

세라프 종족이 보급한 이능 체계는 종족 연합 전체가 공유하고 있었다.

루드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태수를 쳐다보았다.

집무실에서 잠깐 얘기하려 했는데, 그럴 정도의 손님이 아닌 것이다. AA급이라고 하면 이 도시에서도 단 한 명, 전사단의 단장밖에 없으니까.

그 자신이 무를 숭상하는 베낙 종족에, 전사단도 강한 전사를 우대하는 분위기다 보니 태도가 아예 달라졌다.

근처의 응접실로 직접 데려갔다. 행성 특산의 다과를 대접하며, 송구한 표정을 지었다.

[귀한 손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궁색하더라도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닙니다. 융숭한 대접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평소 같으면 단장님께서 직접 대접하셨을 텐데…… 요즘 시끄러운 일이 계속 벌어져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 도시를 다스리시는 분인데, 바쁘실 수밖에 없지요.]

수한의 통역으로, 태수와 루드는 잠깐 한담을 나누었다.

오랫동안 그럴 수는 없었다. 시간이 없었으니까.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빨리 원정대를 구하러 가야 하는 것이다.

태수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저희는 저희 동료들을 찾아왔습니다.]

[유디니아 초원으로 갔던 원정대 말씀이지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루드가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차원 간 무역이 활성화된 지금은 타이누 행성에서도 보기 힘든 양피지였다. 품질이 조악해서, 여기저기가 헤지고 글씨는 몽땅 번져 있었다.

읽으라고 주긴 했는데, 타이누 행성 토착 문자 중 하나라 수한이라고 해도 알아보는 게 불가능했다.

[뭐라고 써져 있는 겁니까?]

[유디니아 초원에 사는 세르엘 종족 중 회색 송곳니 부족에서 보낸 통보문입니다. 피의 제전을 망치고 부녀자를 간살한 이방인들을 이 달 내로 처형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통역하던 수한의 목소리가 부르르 떨렸다.

지칭한 이방인들이 누굴 뜻하는지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알바트로스의 원정대, 35명.

특히 새미.

도대체 무슨 일을 벌였기에 처형하겠다는 걸까?

피의 제전을 망치고 부녀자를 간살했다라……

아무래도 수한이 우려했던 게 현실로 나타난 모양.

[그렇다면 언제까지입니까? 저희가 이곳 날짜 관념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종족마다 다른데, 세르엘 종족은 일곱 달의 운행에 따라 날짜를 헤아립니다. 이 달 내라고 했으니, 이틀 전 만월이었던 이시테가 사라지기 전까지 약 열흘 남았습니다.]

타이누 행성의 하루는 약 25시간 30분.

고작 300시간 정도 남은 것이다.

그것도 달이 질 때 처형하는 게 아니고, 이 달 내라고만 했으니 언제 끝이 날지 모른다.

수한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유디니아 초원까지 가는데 닷새가 걸린다. 회색 송곳니 부족이 사는 곳을 찾으려면 며칠이 더 걸릴지 몰랐다. 자칫 잘못하다간 늦을 수도 있었다.

태수도 그 생각을 했나 보다.

[최대한 빨리 회색 송곳니 부족에게 가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루드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섣불리 가셨다간 여러분도 같이 처형당할 겁니다. 피의 제전을 방해한 이상, 그들은 절대 타협하지 않으려고 들 테니까요.]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루드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길잡이를 붙여드리고 싶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니……]

[혹시 회색 송곳니 부족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유디니아 초원의 쥬메 산 기슭에 있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지도를 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단번에 거절당했다.

루드는 조사단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밀 사항을 유출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중재 역시 마찬가지.

둘 사이의 일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알바트로스 공격대와 이렇다 할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조사단이 가지고 있는 지도에 표시는 해주었다.

여행자들이 기억을 더듬어 그린 지도.

정확도는 믿을 수 없고, 유디니아 초원은 대충 뭉뚱그려 표시한 지도였다. 도시 위주로 그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찍힌 점만 가지고 찾아가려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유디니아 초원에 도착한 다음이 관건이겠습니다.”

“여기서 유디니아 초원 초입인 상기르까지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좀 밟으면 이삼일 내로 도착해요. 원래는 닷새 거리로 잡지만, 그건 ATV 기준이잖아요?”

“그렇겠네요. 서두릅시다. 언제 놈들이 우리 대원들을 죽이려고 들지 몰라요.”

하지만 바쁘다고 바늘허리에 실 꿰매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얼마 간 탐문을 했다.

다들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편지 내용 정도만 알고 있었다. 거리도 멀고, 상대적으로 오지에 있어 소식이 잘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피의 제전이 뭐냐고? 세르엘 종족이 숭배하는 핏빛 달이 뜰 대 서로의 피를 마시는 의식이야. 아름답긴 한데, 참 섬뜩한 족속이지.]

[예전에는 그저 종교적인 의식에 불과했는데 최근에는 좀 달라졌지. 서로의 힘과 지혜를 나눌 수 있게 됐다던데?]

[불치병에 걸린 이나, 수명이 다 된 자들은 그때 스스로 자기 심장을 들어낸다고 하오. 그럼 그 후계자가 심장을 씹어먹고 그자의 능력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오.]

[회색 송곳니 부족? 작지만 옹골찬 부족으로 알고 있소. 잘못 건드렸다간 큰일 날 거요.]

[지구인들이라고? 저리 가! 나는 당신들하고 나눌 얘기가 없어.]

수한이 탐문하고 다니는 동안, 나머지 셋은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태규가 주도했다.

보급품은 충분했다. 예물로 줄 물건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하지만 지구의 물품만으로는 부족하니, 세르엘 종족이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추가로 구입했다.

“출발합시다.”

“잘 돼야 할 텐데요.”

“최선을 다해 봐야죠.”

기이이잉!

전기 엔진이 울음을 토하며, 시꺼먼 SUV 두 대가 튀어나갔다.

혹시 몰라 소형 발전기도 가져온 참이다. 밤마다 충전시키면 외계 행성에서도 거뜬했다.

상기르까지는 예측대로 정확히 사흘이 걸렸다.

지구만큼은 아니어도 길의 포장이 잘 되어 있었다. 네모반듯한 돌들을 깔아놓았던 것이다. 행인들이 있어 속도를 못 낼 때가 많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대한 빨리 달렸다.

상기르에서 여관을 잡고 휴식을 취했다.

타이누 행성인들이 조사단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작은 도시다 보니, 외계인들을 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도 어떤 감정이 깃들어 있는 것 같은데, 외계인이라 판별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세 분은 쉬고 계세요.”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이런 작은 도시에서 저랑 수한씨를 동시에 위협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A급 이능력자 한 명이 수한에게 따라붙었다.

수한은 상기르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행인에게도 묻고, 저번에 미이바 행성에서 배운 대로 신전과 경비대도 한 번씩 방문했다.

신전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얻었다.

[쥬메 산은 라비카 강의 발원지입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닿을 수 있을 겁니다.]

라비카 강은 유디니아 초원을 흐르는 여러 강 중 하나였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사시사철 초원을 흘러 몇몇 종족은 그 강을 이용해 농사를 짓기도 했다.

수한은 환전해 온 돈을 기부하여 감사를 표시했다.

이후엔 시장을 돌아다녔다.

시장에는 세라프 어를 제대로 하는 이가 없어 좀 고생스러웠다.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겨우 의사 소통을 했다.

알음알음 거래되는 지도를 한 장 구했다. 길잡이를 구하려고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이미 회색 송곳니 부족과 알바트로스 원정대 사이의 일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관으로 돌아와 다른 사람들과 의논했다.

“사흘에서 나흘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아슬아슬하겠네요.”

“초원에는 가끔 변이체가 출현한다고 합니다. 내일부터는 조심해야겠어요.”

“그나저나, 이곳 사람들이 우릴 피하는 것 같지 않아요?”

“당연하죠. 회색 송곳니 부족에게 그런 일이 있었으니 기분 나쁠 만도 합니다.”

“단지 그것 때문에는 아닌 것 같아서요.”

수한도 그렇게 느꼈다.

말을 걸어도 무시하거나, 적의어린 몸짓을 하며 쫓아내는 주민들이 많았던 것이다.

알려진 게 다는 아니라는 것처럼.

다음날 새벽 일찍, 해가 뜨자마자 출발했다.

상기르를 벗어나자 여태까지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삭막한 바람이 부는 드넓은 초원이 시작되었다.

나무는 찾아보기 힘들고, 기껏 발목 높이의 키 작은 풀들만 대지를 덮고 있었다. 양이나 사슴을 섞어 놓은 듯한 동물들이 풀을 뜯다 말고 조사단을 쳐다보았다.

SUV는 거침없이 초원을 질주했다.

운전대를 잡은 태규가 좀 긴장한 기색이었다.

“여기부터는 저도 처음 오는 곳이에요. 안전한 곳으로만 다녔거든요.”

“일단 라비카 강만 찾으면 됩니다. 그러면 쭉 거슬러 올라가면 되요.”

“타이누 행성인들한테 물어보는 게 좋겠네요.”

“그렇겠죠? 말이 통해야 할 텐데요.”

수한은 변이체 탐지기를 꺼냈다.

타이누 행성인 마을을 찾기 전, 변이체부터 찾을 작정이었다. 이곳에서도 변이체의 시체는 상당한 값어치가 있을 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변이체를 몇 마리 발견했다.

커다란 물소처럼 생긴 변이체였다. 머리가 두 개에, 산양처럼 굽어진 뿔을 가지고 있어 꽤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래봐야 D 등급 정도.

수한은 저격총을 꺼내 원거리에서 모조리 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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