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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커맨더-49화 (50/254)

< 회색 송곳니 부족 -2- >

비록 원래 쓰던 대물저격총보다는 파괴력이 약했지만, 그거야 수한의 이능으로 보조할 수 있었다.

“한 마리면 되겠죠?”

“남은 것들은 몽땅 불태웁시다.”

준비해온 차단막으로 시체를 잘 싸맸다. 그리고 라비카 강이 있다는 북쪽을 향해 계속 달렸다.

밤에는 야영을 했다.

여섯 명이 차 안에서 자는 동안 두 명은 밖에서 사방을 살폈다. 황막한 바람이 불어닥쳤지만, 모닥불을 피우고 차를 등지자 견딜 만 했다.

푸드득, 푸득!

거대한 새처럼 생긴 변이체가 달려들었다.

수한은 소총을 3연사하여 변이체를 잡았다.

비록 E급의 하급 변이체이지만, 비행형 변이체다 보니 굉장히 위험한 녀석이었다.

가끔은 변이체가 떼로 덤비기도 했다.

귀찮은 것들.

결국 밤새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자러 들어갔을 때도 밖에서 푸닥거리는 소리가 계속 났기 때문이었다.

“내일부터는 토착 종족 마을에서 신세를 져야겠습니다. 이거 야영은 힘들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변이체가 많다는 소린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해가 질 무렵 마을을 하나 찾았다. 전신에 털이 수북하고, 저마다 짐승의 뼈로 만든 칼을 하나씩 든 종족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들이 놀라지 않게 SUV에서 내려 천천히 다가갔는데, 별안간 화살이 쏟아졌다.

수한은 크게 소리쳤다.

[여러분을 공격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룻밤 신세를 지고 싶습니다!]

몇 번이나 외쳤지만, 화살만 날아왔다.

보다 못한 태수가 힘의 장갑을 발동시켰다. 날아오던 화살들이 모조리 흩어졌다.

그러자 촌장이 나왔다.

[꺼져라, 지구인들아! 또 누굴 죽이려고 기어들어오느냐!]

의미심장한 말이다.

몇 번 더 대화를 시도했지만 소용 없었다. 화살을 날리는 것으로 모자라, 칼과 창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뻔히 상대가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얼굴이 비장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세르엘 종족으로도 모자라, 다른 종족과도 갈등을 빚을 수는 없었으니까.

문득, 수한은 마을을 둘러싼 목책을 눈여겨 보았다.

시꺼멓게 그을린 자국이 몇 군데 있었다. 구멍이 뚫리거나 아예 다시 만든 곳도 여기저기 보였다.

전투의 흔적.

'설마……'

다른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외곽에 전투를 벌인 흔적이 남아 있고, 다가가면 화살이 날아왔다. 그런가 하면 조사단을 노려보는 행성인들의 얼굴에는 뜻모를 슬픔과 분노의 흔적이 명확하게 엿보였다.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

태수가 혀를 찼다.

"이거, 제대로 분탕질을 친 모양인데요?"

그러면서도 묘하게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짐작이 맞는다면, 어쨌든 최악은 피한 거니까.

그나저나 이 행성의 문명이 낙후되긴 낙후된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뻔한데, 그 사실이 인접한 도시에도 잘 알려지지 않을 것을 보면 그러했다.

상그리에서 시민 중 몇몇에게 이상한 기색이 보이긴 했지만, 기껏해야 일부에 지나지 않았나.

다음날 해가 질 무렵, 조사단은 쥬메 산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회색 송곳니 부족의 표식이 곳곳에 보였다.

바위를 깎아 만든, 송곳니를 드러낸 세르엘 종족의 형상을 한 신상.

상기르에서 알아낸 바로는, 회색 송곳니 부족 근처에는 다른 종족들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유독 토질이 척박하고, 고위 변이체가 많은 까닭에 버티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회색 송곳니 부족이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경계를 확인한 후 조금 물러나 야영을 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샜다. 변이체들의 공격도 공격이지만, 언뜻 멀리서 일행을 살피고 사라지는 그림자들 때문이었다.

“회색 송곳니 부족이 우릴 발견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나올까요?”

“지금까지 만난 타이누 행성인들 말로는 우릴 제압한 뒤 같이 처형할 거랍니다. 그래서 길잡이도 못 구했잖습니까?”

“대화를 해도 대등한 입장에서 해야지, 무릎 꿇은 채 얘기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어떻게 해야 하나……”

무턱대고 무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조사단은 물론, 잡혀 있는 동료들도 위험해질 테니까.

수한은 쥬메 산을 보자 입이 바싹바싹 탔다.

저곳에 새미가 있다고 했다.

마음은 벌써 훨훨 날아가고 있는데 몸은 여기서 뭉그적대는 신세이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 마음을 꾹 억누르며 말했다.

“일단 편지라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편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마침 배달부들이 오고 있는데, 그들을 이용하면 되지요.”

수한은 황금빛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현재 수한의 감각 능력치는 23. 그리고 주시자의 눈 덕에 더 멀리까지 보는 게 가능했다.

그런 수한의 눈에 날씬한 염소처럼 생긴 동물을 타고 달려오는 세르엘 인들의 얼굴이 보였다.

수는 약 서른 남짓.

다들 잘생겼다.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싸늘한 기세를 폴폴 풍긴다.

두 눈에는 차가운 빛이 이글거리고, 활과 고삐를 쥔 양 팔에 지렁이 같은 굵은 힘줄이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뚜렷한 적의가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대화를 하러 오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고글을 조절해 수한이 보는 방향을 살폈다.

다들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수한이 태수를 보고 말했다.

“공격해올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태수의 얼굴에 난감한 빛이 스쳤다.

“곤란하네요. 그냥 당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격하자니 대원들이 걱정되고.”

“저한테 맡겨 주시겠습니까?”

“수한씨한테요?”

“예.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수한은 빠르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아직 거리가 수 킬로미터 밖이었다. 잠깐 얘기할 시간은 있었다.

얘기를 들은 태수가 허락을 했다.

“조금 위험한 것 같지만 그 방법이 최선이겠습니다. 좋습니다. 한 번 해보세요.”

수한은 저격총을 들고 SUV 위로 올라갔다.

작정을 한 상태였다.

수한의 생각은 간단했다.

대화를 거부한다면 무릎 꿇려놓고 대화하겠다는 것.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기술창에서 사격 관련 항목에 점수를 퍼부었다. 소총 사격은 30, 권총 사격은 20으로 올렸다.

수한은 잘 몰랐지만, 이 정도면 기예에 가까운 사격이 가능한 레벨이었다.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고, 달려오는 세르엘 전사들을 겨냥했다.

“으르르르르!”

세르엘 전사들도 그 기색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처럼 직선으로 주파하는 것이 아니라, 짐짓 땅을 구르며 지그재그로 엇갈려 달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수를 쓴 건 지 먼지가 잔뜩 피어올라 그들의 모습을 가렸다.

총에 대해 지식이 있는 모양.

수한의 입가에 냉소가 걸렸다.

주시자의 눈을 쓴 탓에 먼지 정도로는 수한의 시야를 가릴 수가 없었다. 수한은 신중하게 총을 겨냥한 뒤, 어느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소리와 함께, 전사 하나가 고꾸라졌다.

직접 총알에 맞은 것은 아니었다. 타고 있던 동물의 머리가 터져 나간 거였다. 세르엘 전사는 몸을 굴려 겨우 바닥에 착지했다.

수한은 총을 연달아 쏘았다. 그때마다 전사 하나가 땅을 굴렀다.

전사들도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달았다.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하지만, 수한은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번개처럼 탄창을 갈면서 서른 명 모두를 낙마시켰다.

그 다음 SUV 조수석에 탔다.

“죽인 건 아니죠?

먼지 때문에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던 태규가 수한을 보며 말했다.

수한은 고개를 흔들었다.

“염소들만 죽였어요. 쫓아가죠. 편지 배달부 정도로는 써먹을 수 있을 겁니다.”

SUV가 전사들에게 접근했다.

전사들은 도망치려다가 몸을 돌렸다. 달려봐야 곧 잡힐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죽지는 않겠다는 듯 활에 화살을 쟀다. 달려오는 차를 향해 활을 겨눴다. 화살에서 섬뜩한 핏빛이 새어나왔다.

태규가 SUV를 정지시켰다.

화살을 날려봐야 피해를 주기 힘든 거리. 하지만 화살에 이능이 깃들어 있어 장담하긴 어려웠다.

태수가 차에서 내렸다. 가까이 다가가자 지레 겁먹은 전사들이 화살을 날렸다. 그러자 은빛 보호복에서 투명한 방어막이 일어나 화살을 죄다 튕겨 버렸다.

태수는 편지를 하나 던져주고 차로 돌아왔다.

“이 정도로 될까요?”

“굳이 자극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일단 후퇴하죠.”

태규가 차를 후진시켜 자리를 벗어났다.

전사들을 그것을 보더니 보훈이 던진 편지를 집어들고 쥬메 산 쪽으로 이동했다. 마을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들의 뒤를 밟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곧 포기했다.

차를 가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황량한 초원에서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저 그들과 싸웠던 곳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오후가 되자, 또 회색 송곳니 전사들이 찾아왔다.

수가 약 일백여 명.

이번에도 모두 염소를 타고 있었다. 더구나 흉흉한 기세를 잔뜩 뿜어냈다.

오전에 당했던 것에 독기를 품은 듯했다.

이번에도 수한이 상대했다. 지붕에 올라가 저격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전사들이 작정하고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을 것을 아는 태도였다.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가장 선두에 선 전사 둘은 언뜻 보기에도 심상치가 않았다. 한 명은 몸에서, 한 명은 들고 있는 커다란 칼에서 붉은 기운이 폭풍처럼 치밀어 올랐다.

이능력자.

심지어 보이지도 않는 총알을 칼로 쳐내기까지 했다.

그래봐야 헛것이었다.

염소의 발목을 겨냥해서 총을 쏘았다. 바닥에 낮게 깔린 총알까진 쳐내지 못했다. 염소의 구슬픈 비명과 함께 땅을 구르며, 먼지를 뒤집어쓰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느라 거리가 좀 가까워졌다. 전사들이 기괴한 고함을 질렀다.

수한은 소총을 꺼내들었다.

탕! 탕!

한 발에 하나.

결국 백여 명의 전사들이 모두 바닥을 나뒹굴었다.

다른 사람들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수한 혼자 이뤄낸 일.

수한은 냉엄한 시선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전사들이 이를 갈았다.

화살을 날리지만, 사정거리가 턱없이 모자랐다. 덧없이 땅에 꽂히고 말았다.

“$%^@#$!”

전사 중 하나가 악을 지르며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전사도 있었다.

굴욕적이기도 할 것이다.

제대로 접근조차 못 해보고 몽땅 당했으니까. 그것도 겨우 수한 1명에게.

수한은 묵묵히 탄창을 교환했다.

지구의 현대 화기와 두 가지 이능으로 무장한 수한에게, 기마병 1백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엄폐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한을 압도할 이능을 가진 자도 없었으니까.

태수가 차에서 내려 다가갔다.

악에 받친 전사 몇 명이 태수에게 덤벼들었다.

소용이 없었다.

태수는 귀찮다는 듯 주먹을 흔들었다. 힘의 장갑이 발동하며 전사들을 튕겨냈다. 수한이 세라프 문자로 작성한 편지를 개중 지위가 높아 보이는 전사에게 주고 차로 돌아왔다.

[모욕하지 말고 차라리 죽여라!]

이를 갈며 소리치지만, 태수는 이해를 못한 것인지 어쩐 것인지 태연한 기색이었다.

전사들은 한 동안 울고 웃다가 편지를 들고 돌아갔다.

다음에는 어떤 수순을 밟을까?

더 많은 전사들을 보낼까? 아니면 협상하려고 할까?

‘더는 힘든데……’

정확히 말하면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독심을 품고 이능을 본격적으로 써야 될 지도 몰랐다. 폭발 속성을 부여하고 연발로 갈겨버리면, 수백 명이라도 학살할 수 있었다. 잡혀 있는 대원들 때문에 못하는 거지.

다음날 아침, 해가 뜰 무렵 회색 송곳니 부족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조촐했다.

겨우 대여섯 명 정도.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이 하나와 미모의 여성 하나, 그리고 건장한 사내 셋이 전부였다.

수한은 슥 웃음을 지었다.

노림수가 성공한 것이다.

회색 송곳니 부족 일행은 조사단의 SUV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사내들만 무장을 하고 있는데, 호신용의 짧은 칼 한 자루씩이 다였다.

“이능력자가 끼어 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계열일까요?”

늙은이와 여자는 이능력자였다.

수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을 보니, 희미한 느낌이 간질거렸다. 개미 한 마리가 피부 위를 지나는 것처럼 흐릿한 느낌이었다.

주시자의 눈을 발휘하여 그들을 보자 좀 확실해졌다.

“영혼 계열과 투시 계열이네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하, 수한씨 이능을 썼나 보네요.”

“등급은 모르시겠습니까?”

“예. 계열만 알겠습니다.”

“만만하지는 않겠네요. 일단 나가봅시다.”

두 무리는 서로를 향해 접근했다.

서로의 얼굴에 난 주름까지 살펴볼 정도로 접근하자, 먼저 세르엘의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표자가 누구냐?]

또렷한 세라프 어였다.

세라프 어를 모르는 태수를 대신해, 수한이 말했다.

[이 분이 저희와 알바트로스 공격대를 대표하십니다. AA급 이능력자이시며, 저희 공격대의 장인 갈태수 사장님이십니다.]

“갈태수라고 합니다.”

[회색 송곳니 부족의 장을 맡고 있는 렌토다.]

[회색 송곳니의 무녀, 가리올라입니다.]

통성명을 마쳤는데, 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통역을 거쳐야 하는 게 마뜩치 않았던 것이다.

조사단을 한 번 훑더니, 수한을 보고 말했다.

[그래, 그대가 우리 전사들을 제압했다는 자인가?]

[맞습니다.]

[차라리 죽일 것이지, 그런 수모를 줘서 보낸 이유가 뭔가?]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 오셨지 않습니까.]

수한이 전사들을 살려 보낸 것은 일종의 시위였다.

나는 언제든 너희를 모조리 쳐 죽일 수 있다. 그러니 멸족하고 싶지 않다면 나와서 대화에 임하라.

회색 송곳니 부족의 수는 기껏해야 수백. 어제 수한이 제압했던 1백 전사는 회색 송곳니 부족 전력의 태반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회색 송곳니 부족은 모욕감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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