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56화 (57/254)

< 마라도 -2- >

수한은 남쪽 해안에 자리를 잡았다.

대야에서 정리해 놓은 살점을 꺼내 바다를 향해 던졌다.

몇 개는 바닷물에 잠기도록, 몇 개는 해안에, 또 몇 개는 수한의 바로 앞에.

효율은 떨어지지만, 배를 빌릴 필요가 없어 간편했다.

잠시 기다리자 반응이 왔다.

커다란 게 몇 마리가 바닷물 밖으로 기어 나온 것이다.

탕탕탕!

총을 쏘자 게들이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게들의 시체에 총알을 몇 발 더 박아 넣었다. 체액이 진득하니 흐르며, 바다가 녹색으로 물들었다.

요즘 마라도의 변이체가 늘긴 는 모양이었다. 끊이지 않고 변이체들이 덤벼들었다.

비록 대부분이 F급이고, E급은 몇 마리에 불과했지만.

사냥꾼들이 모여 그것을 구경했다.

“히야, 돈을 아주 쓸어 담는구나.”

“그런데 좀 많은 것 같지 않아? 얼마 전에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마라도 남쪽 해안에 온갖 변이체 시체가 가득 쌓였다.

거의 백 마리에 가까워서, 수한 혼자 들고 갈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될 줄 알고 기름 한 통을 가져온 거였다.

해안가로 내려가 시체를 한 군데로 쌓자, 주위에 운집해 있던 사냥꾼들이 황급히 수한에게 다가왔다.

“그거 혹시 태울 겁니까?”

“예.”

“차라리 저희한테 파시죠. 상태도 좋은데, 모두 매입하겠습니다.”

“뭐, 좋습니다.”

요새 시세가 내려간 탓에 많이 받진 못했다. 그래도 쏠쏠하게 챙길 수 있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경험치가 많이 오르지 않았다는 점.

F급 변이체는 너무 약했다. 거의 백 마리 가까이 학살한 것 같은데, 기껏 117레벨 50%에서 멈춰 있었다.

최소한 E급이나 D급은 잡아야 된다는 소린데……

벌써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밤 동안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뒤처리를 한 후 선착장으로 철수했다.

잠은 마라도의 사냥꾼 숙소에서 잤다.

섬은 작지만, 숙소는 꽤 컸다. 서울 도심의 모텔 정도는 되어 보였다. 요즘 변이체가 많아서 사냥꾼도 몰려드는 바람에, 겨우 방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숙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뭔가 해서 보니, 사냥꾼 하나가 자랑스럽게 흉측한 심장 하나를 들어 보이며 자랑했다.

“어때? D급 변이체의 심장이야! 다금바리에서 변이됐던 녀석인데, 우리 배를 노리고 달려드는 것을 산탄총으로 정확히 날려 버렸지!”

“마라도에서 D급 안 나온 지 오래 됐는데?”

“어허, 그럼 이걸 내가 개마고원에서라도 잡아왔단 말이야? 눈깔이 있으면 봐! 물고기 심장인지, 멧돼지 심장인지!”

수한의 귀가 쫑긋 섰다.

사냥꾼이 든 심장을 살폈는데, 정말 D급인 것 같았다. 크기가 제법 컸다.

D급 변이체를 떼거지로 잡는다면 3레벨을 올리는 것도 가능할 터. 육지라면 어림도 없는 얘기지만, 바다 위에서라면 다를 것이다.

수한은 관심 없는 척 식사에 전념하면서도 사냥꾼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사냥꾼이 저리 떠들어 대는 것에는 따로 의도가 있었다.

혼자 덜렁 배를 타고 나갔다가 변이체들이 몰려들면 그대로 수장당하기 일쑤였다. 주변에 다른 배들이 많은 게 유리했다. 그래야 위험할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바다라서 그런지, 사소한 정보 하나도 독점하려고 했던 지리산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벌써부터 사냥꾼들이 들썩였다.

“내일 해 뜨면 바로 출항한다!”

“장비 챙겨! 이상은 없는 지 확인하고!”

“해군이 한 발 걸치기 전에 한 탕 치고 떠야겠어!”

수한도 끼어들었다.

혼자 바다에 나가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기존 사냥패에게 한시적으로 합류했다.

수한에게 F급 변이체 시체를 사 간 사냥꾼 중 한 명이었는데, 껄렁껄렁한 태도로 배당율 반몫을 제시했다. 돈은 아무래도 좋아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내일 동이 트면 바로 출발할 거요. 추울 테니까 두껍게 입고, 선착장으로 바로 나오쇼.”

“좋습니다.”

새벽 같이 일어나 선착장에 갔는데, 벌써 사냥꾼들이 우글우글 했다. 기껏해야 10만 평 넓이의 작은 섬에 무슨 사람이 이리 많나 싶었다.

수한이 타게 된 것은 작은 어선.

사냥패는 수한을 포함해서 여섯 명이 전부였다. 다섯 명은 사냥꾼이었고, 한 명은 어선의 선장이었다.

“출발합니다.”

선장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말했다.

힘겹게 시동이 걸렸다. 어선이 털털 거리는 소리를 내며 남하하기 시작했다.

사냥패 대장이 수한에게 주의를 주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적몰지라고 해서 예전에 기계 괴수가 죽은 장소요. 변이체도 많고, 가끔 소용돌이가 발생하곤 해서 무척 위험하지. 바다는 육지와 달라서 까닥 잘못하면 바로 사망이니까, 본인 몸은 본인이 챙기쇼.”

“알겠습니다.”

어선이 선착장을 떠났다.

수한이 탄 배 말고도 다른 배들이 분분히 바다 위를 달렸다. 어제는 배가 이렇게 많이 없었는데, 그 새 모슬포나 그 인근에서 끌어 모은 듯했다.

선장은 배를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배들과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나아갔다.

적몰지에 도착한 것은 약 2시간 후.

참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바다가 제멋대로 꿈틀대고 있었다.

소용돌이가 곳곳에 생겼다가 사라졌다. 뜬금없이 높은 파도가 생성되는가 하면, 구덩이처럼 푹 꺼졌다.

수한은 바다 아래를 노려보았다.

불투명한 고글을 쓴 상태.

솔직히 필요는 없지만, 주시자의 눈을 쓸 때 보이는 황금빛을 감추기 위해 쓴 거였다.

변이체들이 보였다.

대부분 F급이었지만 E급도 꽤 보였다. 가끔 D급도 보이는 게, 개마고원보다 변이체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원래 이랬을 리는 없고, 최근에 많아졌을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기계 괴수 시체에서 뿜어지는 X-0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마라도를 벗어나면 바로 수호자 연맹에 제보해야 할 사항.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그 변이체들을 보지 못하는 사냥꾼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미끼는 다 준비됐어?”

“아, 진작 끝냈지. 들이붓기만 하면 돼.”

“선장! 다른 배들이랑 거리 좀 벌려! 너무 가깝잖아!”

“보채지 좀 마! 하고 있잖아!”

다른 배에서 미끼를 뿌리기 시작했다.

F급 변이체의 살점들.

수한의 눈에 수면 아래 변이체들이 동요하는 게 똑똑히 보였다. 개중 크기가 작고 덜 흉악하게 생긴 변이체들이 지느러미를 휘저으며 수면으로 돌진했다.

탕! 타타타탕!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물보라가 수도 없이 튀었다. 변이체들의 몸에 구멍이 뚫리며 녹색 체액이 번졌다.

“서둘러! 보고만 있을 셈이야?”

사냥패 대장이 닦달을 했다.

수한이 탄 어선도 준비가 끝났다.

사냥꾼들이 미끼를 배 주변으로 열심히 던졌다. 수한도 거기 동참하자, 배 주변에 변이체 살점 조각이 둥둥 떠다녔다.

변이체들이 반응했다.

탐지기를 들여다보던 사냥패 대장이 소리쳤다.

“온다! 준비해!”

사냥꾼들이 산탄총을 집어 들었다.

수한만 소총을 들고 있었다. 사냥패 대장이 그걸 보고 한 마디 하려다, 변이체 하나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것을 보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총소리가 더 요란해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적몰지 주위에 뜬 배 사이마다 변이체 시체가 둥둥 떠올랐다.

대부분이 F급이고, 듬성듬성 E급이 섞여 있었다. 자연히 수한도 경험치 측면에서는 별 이득을 보지 못했다.

D급 변이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

힘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먹이들이 충분히 확보되자, 무거운 몸을 일으킨 것이다.

탐지기에도 그 움직임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경고하는 목소리가 터졌다.

“D급이다!”

“모두 조심해! D급이면 배를 침몰시킬 수도 있어!”

사냥꾼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깃들었다.

수한 혼자만 여유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변이체의 움직임을 한 눈에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은 눈이 벌게서 산탄총을 쏴대 겨우 한두 마리를 잡는데, 수한은 소총 한 발로 변이체의 급소를 맞춰 일격 필살시키곤 했다.

알게 모르게 오른손에서 붉은 빛이 반짝이지만, 국방색 장갑을 낀 탓에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다만 실력이 대단한 것을 깨달았다. 주변 사냥꾼들이 수면을 향해 총을 쏘면서도 수한을 자꾸 힐끔거렸다.

사냥꾼들이 워낙 많이 몰려와서, 희생당한 사람은 없었다.

중간에 배 몇 개가 뒤집어졌지만 금방 구조된 것.

적몰지에 변이체 시체가 가득 찼다. 수면 아래에도 살아 있는 변이체는 얼마 보이지 않았다.

사냥꾼들이 쾌재를 불렀다.

“대박이다!”

“만선일세!”

“간만에 지갑이 두꺼워지겠어!”

주변에 널린 변이체 시체를 건져 올렸다.

워낙 시체가 많아 배에 다 싣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D급과 E급 위주로 먼저 싣고, 남는 자리에 F급 시체를 실었다.

배가 많이 오긴 했어도 변이체 시체를 다 가져갈 정도는 아니었다. 배들이 머리를 돌려 회항하는 것을 보고, 수한이 사냥패 대장에게 물었다.

“시체 뒤처리는 안 하는 겁니까?”

“아, 여기서는 그런 거 할 필요 없어요.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없어집니다.”

사냥패 대장이 좀 더 정중하게, 하지만 여전히 불퉁한 태도로 대답했다.

알아서 없어진다고?

다른 변이체들이 먹어치우거나, 바다 생물이 뜯어먹고 새로운 변이체로 거듭나는 거겠지.

수한은 왠지 불길한 느낌에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최근 들어 급증했다는 마라도의 변이체. 그리고 뒤처리에 무심한 사냥꾼들. 이들이 어울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기분이 자꾸 들었다.

배에 싣고 온 시체는 D급이 5마리, E급이 12마리, F급이 20마리였다.

사냥꾼들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 아주 대박인데?”

“지리산에 있었으면 몇 달 동안 산을 타야 벌 수 있는 걸 하루에 벌었어!”

“배당이 얼마나 떨어질까?”

“모르지. 대장! 이거 어디에 넘길 겁니까? 오늘 바로 넘기면 개손해 볼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육지 업자들한테 연락해 놨어. 배 통째로 사고, 원래 시세대로 쳐주기로 했지. 아마 3억은 넘게 받을 걸?”

수한이 받는 배당은 정확히 1/14. 2천만원이 넘어갔다.

다른 사냥꾼의 경우에는 적어도 4천만원을 받으니, 일당으로 따지면 C급 이능력자와 비슷하게 번 셈.

많이 벌긴 했지만,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모두 눈치 채고 있었다.

사냥패 대장이 주의를 주었다.

“내일까지만 낚시 나갔다가 난 마라도를 뜰 거야. 뭔가 심상치가 않아. 이럴 때는 몸을 피하는 게 상수지.”

“좀 아까운데……”

“내일도 이 정도는 벌 텐데 그만하면 됐지, 욕심 부리면 안 돼! 그러다 젯밥 얻어먹는 수가 있어!”

“쳇, 알았수다.”

수한은 레벨을 확인했다.

118레벨 85%.

잘 하면 내일 120레벨을 찍을 것 같았다.

사냥패가 술 한 잔 하자고 했지만, 수한은 고개를 젓고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그럴 시간 있으면 휴식을 취하는 게 훨씬 나았다.

일요일에도 어선을 탔다.

어제 탄 것과 동일한 어선이었다. 제대로 치우지를 않아 살점 조각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오늘은 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다들 조심해.”

사냥패 대장의 말과 함께 어선이 출발했다.

어제보다 배가 2배 가까이 늘었다. 어느새 소문이 퍼져서, 사냥꾼들이 한 탕을 노리고 몰려든 것이다.

방법은 어제와 같았다.

적몰지에 도착한 후 준비해온 미끼를 뿌린다. 미끼에서 풍기는 기운에 변이체들이 달려들면, 총을 쏴서 죽인다. 시체들이 바다에 가득해지면 점차 고위의 변이체가 덤벼든다.

오늘은 어제보다 변이체가 훨씬 많았다. 등급도 높아서, 사냥꾼들의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졌다.

수한만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어제 느꼈던 불길한 기운이 계속 수한을 자극했다. 뒤통수를 누군가 쿡쿡 찔러대는 것 같았다.

결국 사단이 났다.

사냥이 마무리될 때쯤이었다.

무료한 얼굴로 탐지기를 보던 선장이 갑자기 눈을 치떴다. 자기 눈을 비비더니, 다급하게 소리쳤다.

“C급입니다! C급 변이체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C급 변이체가 나타났다고, 도망쳐야 돼!”

선장이 급히 엔진의 출력을 높였다.

사냥패 대장이 총을 쏘다 말고 선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탐지기 모니터를 보더니, 흡사 귀신을 목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냥꾼들도 놀라 휴대한 탐지기를 들여다보았다.

정말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탐지기 모니터에 유난히 크고 밝은 녹색 점 하나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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