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도 -3- >
다른 배들에서도 소란이 벌어졌다.
C급 변이체의 출현을 알아차린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사냥꾼들은 모두 일반인이었다. 이능력자가 아니었다. C급 변이체부터 생성되는 방어막을 뚫을 방법이 전무하다는 뜻이다.
방어막 약화탄? 중화탄?
그런 고가의 물건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도망쳐!”
“빨리, 빨리!”
변이체 시체건 뭐건, 일단 자리를 떠야 했다.
사냥꾼들이 아우성을 쳤다.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이는데, 구형 어선이 대부분이라 금방 속도가 나지 않았다.
C급 변이체가 빠르게 접근했다.
변이체 시체가 밀집해 있는 곳을 향해 오더니, 시체 하나를 물고 수면 위로 힘껏 뛰어올랐다.
촤아악!
물보라와 함께, 변이체의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언뜻 보면 돌고래 같다.
그런데 둥글둥글 귀여운 형체는 어디 갔는지, 삐죽삐죽 날카로운 가시가 전신을 가득 덮고 있었다.
머리는 두 개에, 머리 중앙에 커다란 뿔이 났다. 지느러미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짓무른 피부에 역겨운 고름이 맺혀 썩는 냄새가 사방으로 풍겼다.
“캬아아악!”
변이체가 흉포한 울음을 터뜨렸다.
공중제비를 돌며, 입에 문 시체를 꿀꺽 삼켰다.
피부에 맺힌 고름이 폭발하듯 주변을 뒤덮었다. 고름에 닿은 시체들이 저절로 녹아내리더니 끈적끈적한 액체가 해수면을 타고 퍼져나갔다.
사냥꾼들이 그걸 보고 비명을 질렀다.
“독이다!”
“속도 좀 더 올려!”
“잡히면 끝장이라고!”
다행히 돌고래 변이체는 사냥꾼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바다 위에 널린 변이체 시체를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평소라면 죽어라 도망치고, 다른 변이체와 힘을 합쳐 대항해올 텐데 그런 것 없이 양껏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수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돌고래 변이체의 힘이 충만해지는 것이 직접적으로 보였다.
마치 어떤 커다란 항아리가 있어, 그 안에 변이체 시체에서 짜낸 것을 들이붓는 듯했다.
직감적으로, 수한은 이걸 그대로 놔두면 B급 변이체가 될 거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배 돌리세요.”
차갑고 단호한 말이 수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사냥패 대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응? 뭐라고?”
“배 돌리시라고요.”
수한은 고글을 벗었다.
황금색 형형한 눈빛이 사냥패 대장의 눈을 찔렀다.
사냥패 대장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다, 당신…… 이능력자야?”
“맞습니다. C급 이능력잡니다. 얼른 배 돌리세요. 저놈 저대로 놔두면 분명히 B급으로 진화합니다.”
“위험한데……”
사냥패 대장이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수한은 아낌없이 배팅을 했다.
“저놈 팔아서 남는 수익의 절반은 여러분한테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아, 그럼 얘기가 다르지! 선장, 배돌려!”
“괜찮겠어?”
“이 사람 눈 좀 봐. 이능력자잖아!”
“알았어!”
선장이 키를 돌렸다.
다른 배들은 적몰지에서 달아나려고 용을 쓰는데, 수한이 탄 배만 역주행하고 있었다.
주변 사냥꾼들이 미쳤냐고 욕을 하지만, 다들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능력자가 있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수한은 선수 쪽으로 나갔다.
거추장스러운 장갑은 벗어버리고, 소총의 탄창을 교환했다.
붉은 빛이 선명하게 반짝이다가 탄창 안으로 스며들었다.
현재 상급 속성 부여 레벨은 정확히 39. 힘의 결정으로 얻은 점수를 몽땅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2가지 속성을 더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나, 고작 C급 변이체 상대로 그런 걸 쓸 필요는 없었다.
덩치가 큰 것을 감안하여 파괴 속성을 선택했다.
게걸스레 시체를 집어삼키는 돌고래 변이체를 신중하게 겨냥했다.
거리가 조금 멀었다. 약 600미터 정도.
예전의 수한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거리였다.
그러나 미이바 행성에서 회색 송곳니 부족과 격돌한 후, 수한의 사격 실력은 물이 올라 있었다.
스코프를 장착하지도 않고, 소총 가늠좌를 겨눈 채 심호흡을 했다.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소총의 총알이 그릴 탄도 궤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쌩쌩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저절로 계산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이 돌고래 변이체를 꿰뚫었다.
“캬아악!”
변이체가 몸을 뒤틀었다.
세차게 꼬리를 친 탓에, 물보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사냥꾼들이 웅성거렸다.
“맞췄어?”
“방어막이 뚫렸다!”
“이 거리에서 어떻게?”
수한은 혀를 찼다.
워낙 거리가 멀어 맞추기만 했지, 급소에 명중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변이체가 지금도 펄쩍거리며 살아 있었다.
“더 접근하지요.”
“예!”
선장이 신바람을 내며 배를 전진시켰다.
변이체가 정신을 차리고 배를 노려보았다. 총알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눈치 챈 것이다.
몇 번 그 자리에서 맴을 돌더니 해수면 아래로 잠수했다. 몸을 놀려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바다에 숨은 터라 웬만해서는 정확한 사격이 힘든 상황.
수한은 선수 쪽으로 몸을 완전히 내밀었다. 탄창에 관통 속성을 부여한 뒤, 변이체가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
6백 미터, 5백 미터, 4백 미터……
3백 미터부터 사격을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정확하게 꽂아 넣었다. 빛의 굴절 때문에 처음에는 몇 발 빗나갔지만, 익숙해진 다음에는 몽땅 맞출 수 있었다. 관통 속성을 부여한 탓에 물속에서도 힘이 크게 줄지 않았고.
변이체가 지나는 자리로 녹색 체액이 점점이 번졌다.
덩치 큰 해양 변이체라 그런지 잘 버틴다. 육지 변이체였으면 진작 죽었을 텐데.
수한의 얼굴에 차가운 빛이 깃들었다.
빠르게 탄창을 교환했다.
변이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아주 잠깐 사격이 그친 틈을 타 번개처럼 짓쳐들었다. 수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수한을 덮쳤다.
수한은 냉정하게 그것을 보고 있었다.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수백 개로 분열한 총알이 변이체의 전신을 관통했다.
방어막?
그건 처음부터 의미가 없었다.
벌집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채, 변이체가 힘없이 낙하했다.
머리끝이 어선에 걸치는 바람에 어선이 크게 출렁였다. 사냥꾼 하나가 균형을 잃고 갑판 위에 나동그라졌다.
변이체의 눈이 힘없이 깜빡거렸다.
이미 치명상을 입은 상태.
“캬아악!”
위협적으로 소리를 질러 보지만, 사냥꾼들조차 변이체를 두려워하지 않은 지 오래.
수한은 허리에 찬 권총으로 단번에 머리를 날렸다.
퍼헉!
머리가 쪼개지며 녹색 액체가 튀었다.
정체 모를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휴!”
“죽는 줄 알았네……”
“역시 이능력자는 대단합니다.”
“어쩐지, 그제부터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이능력자였을 줄이야……”
수한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어제도 조심스러워 하는 기색이 엿보였지만, 지금은 아예 딴 세상의 사람 보는 듯한 눈빛.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일단 이놈부터 끌어올리죠. 말씀 드린 대로, 수익의 절반은 제가 갖겠습니다.”
“아, 물론이죠. 그런데 다른 놈들은……”
“그것들은 원래 얘기한 대로 하지요. 제 이능이 필요한 녀석들도 아니었으니까요.”
“좋습니다. 말이 통하는 분이시네요. 다른 이능력자들은 어떻게든 자기 이득만 챙기려고 야단인데.”
즐겁게 돌고래 변이체의 시체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다른 배들이 슬금슬금 돌아와 시체를 챙겼다. 이미 자기 자리를 이탈한 까닭에, 때 아닌 시체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건 우리가 잡았는데 왜 너희가 가져가느냐, 무슨 소리냐 바다 끝까지 도망쳤다가 늦게 돌아왔으면 그만이지 시체에 표시라도 해뒀느냐 등등.
수한이 탄 배는 느긋하게 시체를 실었다. 암묵적으로 이들에게는 다른 배들이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C급 1마리에 D급 10마리, E급 10마리.
시세를 따지면 수억이 넘어간다. 가만히 계산해 보니, 오늘 하루 만에 수한이 1억 가까이 번 셈이었다.
원정을 나갔을 때보다 더 쏠쏠한 결과.
하지만 C급 변이체의 출현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마라도에 도착하자마자, 수한은 사냥패 대장에게 배당을 받았다.
사냥패 대장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능력자님 덕분에 목숨도 구하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 아니었어도 별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마라도에 C급 변이체가 출현한 적이 있었나요?”
“예전에 기계 괴수 막 잡힌 뒤로 좀 있었는데 그 뒤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내일부터는 사냥하러 나가는 사냥패는 없을 겁니다.”
“하긴 그렇겠지요.”
“바로 모슬포로 돌아갈 건데, 이능력자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도 돌아가겠습니다. 조만간 원정 있어서 서울로 돌아가야 해서요.”
“그럼 저희 배 타고 가시죠. 안 그러면 2시간 기다려야 모슬포로 가는 배가 출발합니다.”
“좋습니다.”
모슬포의 분위기는 며칠 전과 좀 달랐다.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마라도에서 C급 변이체가 출현했다는 소식이 여기까지 전해진 탓이었다.
벌써부터 군인들이 돌아다녔다. 해군 함정이 한쪽에 정박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수호자 연맹에서 나온 것인지, 화려한 복장을 한 남녀도 한 쌍 있었다.
수한은 사냥패와 작별하고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이 수한을 보고 경계하는 표정을 짓자, 시선을 멀리 하늘에 두고 주시자의 눈을 사용했다.
그러자 수한의 정체를 깨닫고 안심했다.
“마라도에서 C급 변이체를 잡으셨다는 분입니까?”
“맞습니다. C급 이능력자,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B급 수호자, 김경조입니다.”
“박미리라고 해요. 저도 B급 수호자에요.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수호자 연맹 소속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수호자라고 칭하고 있었다.
인사를 나눈 뒤, 둘이 수한에게 요청했다.
“잠깐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일 공격대에 출근해야 해서, 오늘 내로 서울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러십니까? 그럼 저희가 비행기를 수배해 드리지요.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어디서 얘기를 할까요?”
“저희가 임시로 쓰는 건물이 있으니, 그곳에서 하시지요.”
수한은 자신이 아는 사항을 모두 얘기해 주었다.
두 수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뭔가 있네요.”
“마라도의 기계 괴수는 인양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X-0 농도가 옅어져서 변이체들이 줄어들어야 정상인데요.”
“수한씨의 말씀이 맞습니다. 확실히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이라도 저희가 직접 가봐야겠네요.”
이것으로 됐다.
남은 일은 수호자 연맹에서 알아서 할 터였다. 이능력자는 물론, 온갖 장비를 동원해서 바닷속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하겠지.
어차피 곧 원정을 나가야 하는 참이었다.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원정에 다녀온 뒤에는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일 테니까.
수한은 둘을 보며 말했다.
“전 가 봐도 됩니까?”
“예. 저희 소속 요원이 모셔다 드릴 겁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수한은 수호자 연맹 소속의 차를 얻어타고 제주시로 이동했다.
제주시에서 서울까지는 비행기를 타면 금방.
겨우 몇 시간 뒤, 세상이 어두워졌을 무렵에는 벌써 김포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수한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초능창에 나타난 정보를 확인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초능]
상급 속성 부여 : 총알 39.
주시자의 눈 28.
[개발 중]
[160] [200] [300] [400] [500]
여유 점수 : 20.
세 번째 초능.
또다시 고민을 할 때가 된 것이다.
개발이 끝나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아마 원정을 시작할 무렵에나 완료되겠지.
이번에는 어떤 초능을 선택할까?
생각에 잠긴 채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