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 괴수 -1- >
지원 2과가 쉬는 동안, 정보부에서 몇 개의 원정 계획서를 만들었다.
회의를 거쳐 목적지를 확정지었다.
“이번 목적지는 케르베스 행성입니다.”
“아, 고양이 인간들이 사는 곳이요?”
“그러고 보니 수한씨 면접에서 케르베스 행성 잿빛 학살자를 다뤘던 것 같은데, 맞아요?”
“맞습니다.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네요.”
잠깐 몇 달 전 기억이 떠올랐다.
용산역 앞 수호자 연맹 지부에서 만났던 고양이 아가씨.
희귀한 통역 이능이 걸린 목걸이를 소지하고 있었더랬지.
지금쯤은 고향 행성으로 돌아갔을까?
어쩌면 이번에 얼굴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막상 만난다고 해도, 고양이 아가씨가 수한을 기억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목표는 A급 변이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원정을 출발하기 바로 전 날, 세 번째 초능도 개발이 끝났다. 정확히 96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24시간, 두 번째에는 48시간, 이번엔 96시간.
정확히 2배씩 늘어나고 있다.
수한은 개발이 완료되자마자 한 가지를 선택했다.
[급속 이동]
설명 : 일시적으로 이동 속도를 올린다. 본인의 민첩 능력치에도 영향을 받는다. 1번 사용할 때마다 일정 시간이 지나야 재사용이 가능하다. 등급이 오를수록 더 빨리 움직이게 되고, 지속 시간도 길어지며 재사용 시간이 짧아진다. 뭔가에 탑승해 있는 경우, 탈것의 이동 속도도 빨라진다.
능력 : 일정 시간 동안 빠르게 이동 가능.
제한 : 50 레벨까지 육성 가능.
계열 : 전광석화.
레벨 : 20.
진화 : 급속 행동, 천리 주행, 쾌속 주파.
공격 능력도 탐지 능력도 갖췄다. 세 번째로 신속 계열 초능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공격과 회피, 일상생활 등 모든 측면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으니까.
마라도에서 번 돈으로 신속 계열 E급 힘의 결정도 사서 흡수했다. 이능 인증은 거치지 않았지만, 혹시 쓰게 될 일도 있을지 몰랐으니까.
이것으로 급속 이동의 레벨은 5.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드디어 원정 당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출근했다.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원정대의 출발 시간은 9시. 그 전에 준비를 해야 하니 8시까지는 도착해야 했다.
“자, 서두릅시다. 9시에는 출발해야 됩니다!”
“ATV 18대 모두 준비 끝났습니다!”
“보급품 수량 확인 됐습니다!”
“준비 완료!”
“다 끝났습니다!”
“그래요? 쉬다 와서 그런지 다들 빠릿빠릿하네요. 시간 좀 남았으니까 좀 쉽시다.”
9시가 가까워지자 전투 2과도 도착했다.
새미가 수한을 보고 달려들었다.
“오빠! 새해는 잘 보냈어?”
“응. 동해는 어땠어?”
“좋았지. 오빠는 어디 갔다 왔어?”
“마라도 갔다 왔지. 배 위에서 변이체 잡는 게 좀 특이하더라.”
“마라도면 이번에 C급 변이체 나타난 곳 아니야?”
“맞아. 나 있을 때 나타나서 내가 그냥 잡아버렸어. 나올 때 보니까 해군이랑 수호자 연맹에서 조사 나왔더라. 아마 곧 원인이 밝혀지겠지.”
“지구에서 C급 변이체 나타나는 곳은 얼마 없는데……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
“그러게 말이야.”
둘은 서로를 얼싸안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주위 사람들이 눈꼴 시리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9시가 되자, 모두들 ATV에 탔다. 새미는 자연스럽게 수한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차원문을 통과하여 케르베스 행성에 도착했다.
케르베스 행성은 지구처럼 단 하나의 지성종족이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고양이 인간.
언젠가 수한이 알바트로스 면접에 이야기한 것처럼, 눈동자에 박힌 점의 색깔에 따라 그들의 인종을 구분한다.
노리베 족, 기앙카 족, 헤뮴 족, 로바카 족, 플루오라 족.
그 중 알바트로스 원정대가 가는 곳은 헤뮴 족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쿠시아르였다.
눈동자에 박힌 붉은 점이 특징적인 헤뮴 족.
개체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기온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예전에 수한이 용산역에서 만났던 고양이 아가씨도 헤뮴 족에 속했다.
“이야, 도시가 신기하네요.”
“지저도시네?”
어딜 가든 그렇지만, 쿠시아르는 다른 외계 행성 도시와 비교해도 참 희한한 곳이었다.
커다란 공동에, 조그마한 동굴이 수도 없이 뚫려 있었다. 공동이 다른 공동과 연결되어 있어 개미굴을 연상시켰다.
가장 먼저 인근 수호자 연맹 파견대를 찾았다.
그런데 파견대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안 좋은 때에 오셨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쿠시아르 근방에 어제 차원문이 열렸거든요.]
[설마, 제국 차원문 말입니까? 세라프의 차원문이 아니라?]
[맞습니다. 지금 대피해야 된다고 케르베스 인들이 아주 야단입니다.]
[허,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영어로 대화를 나눈 상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한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제국의 차원문이 열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기계 괴수를 이용, 케르베스 행성을 침략하기 위해서였다.
보나마나 쿠시아르 인근 말고도 행성 전역에 차원문 수십 개가 열렸을 것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차원문을 통해 기계 괴수들이 쏟아져 나오겠지.
머리를 맞대고 회의에 들어갔다.
“어쩌죠? 그냥 철수할까요?”
“그럼 너무 손해를 보는데요? 인근에 널려 있는 B급 변이체라도 잡아가야 차원문 여는 비용이라도 벌어가죠.”
“일단 상황을 봅시다. 케르베스 행성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기계 괴수 사냥에 한몫 껴서, 그 부산물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아주 대박입니다.”
“차원문 지키는 세력이랑 미리 얘기를 맞춰놔야겠네요.”
“이사님들이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어떤 기계 괴수가 나타날지도 중요했다.
소형 기계 괴수가 나오면 방어할 가능성이 높았다. 쿠시아르는 변이체가 많기로 소문나서, 차원 각지에서 이능력자들이 몰려드는 곳이니까. 만약 대형이나 초대형 기계 괴수가 나오면 바로 대피해야 한다.
“수한씨, 같이 시청에 다녀옵시다.”
“예. 통역이 필요하신 거죠?”
“하하, 그런 셈이지요.”
“그럼 저희는 숙소에 짐을 풀겠습니다. 당분간 쿠시아르에 머물러야 될 것 같으니까요.”
수한과 상군이 함께 길을 나섰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 ATV를 이용했다. 주변의 케르베스 인들이 ATV가 신기한지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쿠시아르의 시민들은 이미 피난을 떠나기로 한 모양이었다. 당나귀를 닮은 짐승에 짐을 잔뜩 부려놓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여긴 정말 난리 났네요.”
“케르베스 행성도 제국의 침략을 겪은 적이 있으니까요. 지구는 기계 괴수들을 완전히 전멸시켰고, 고위 변위체도 찾아볼 수 없게 됐지만 케르베스 행성은 그렇지도 않잖아요? 지금도 살아 있는 기계 괴수가 몇 있으니, 제국에 대해 느끼는 게 우리보다 더 심각할 겁니다.”
“하긴 그렇겠습니다.”
시청은 쿠시아르의 공동 중 가장 큰 곳 바닥에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그저 동굴 중 하나로 보였다. 헤뮴 문자와 세라프 문자가 병기된 표지판이 아니었으면 지나쳤을 지도 몰랐다.
안은 굉장히 넓었다. 작은 체육관 크기는 되는 듯했다. 그 안을 고양이 인간들이 발에 불이 붙은 것처럼 뛰어다녔다. 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시청은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러웠다.
둘을 보고 케르베스 인 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지구인들이 시청에는 무슨 일입니까? 다른 이계인들처럼 고향 행성으로 돌아가려는 겁니까?]
이미 몇 개 종족은 귀환한 모양.
수한이 통역해주자, 상군이 고개를 흔들었다.
[당장 귀환하지는 않을 겁니다. 거들 수 있으면 거들려고 합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별로 믿지는 않는 눈치였다.
어차피 위험해지면 바로 도망칠 거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직원은 기대하지 않는 눈으로 물었다.
[그래서 전력이 얼마나 됩니까?]
[A급 이능력자 2명, B급 이능력자 4명, C급 이능력자 2명입니다.]
[그래요? 꽤 도움이 되겠습니다.]
생각보다 이능력자의 수가 많고 등급이 높은 까닭에, 직원의 눈빛이 바뀌었다.
[차원문이 언제 완전히 열리는지는 모릅니까?]
[파악 중입니다. 하지만 이틀 이후, 일주일 내로 열릴 거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차원문 인근에서 벌써부터 X-0가 검출되고 있으니까요.]
[하루만에요? 그럼 소형이나 중형일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그야 그렇지만, 장담은 못 합니다.]
제국 차원문의 위치와 함께,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받아왔다.
생각보다 쿠시아르의 방어 태세가 철저했다.
S급 이능력자가 셋에, AA급 이능력자도 10명이나 되었다. A급 이능력자 23명에 B급 이능력자 58명을 확보하고 있어서, 충분히 자웅을 겨뤄볼 만 했다.
일개 도시가 아니라, 한 국가와 맞먹었다.
하긴 기계 괴수들이 공격해 오기 전 쿠시아르는 인근의 광대한 영역을 다스리는 왕국의 수도였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 저력은 지금도 여전했다.
그 외에 수많은 방어 장비가 있고, 여차하면 쿠시아르 전체를 거대한 함정으로 쓸 계획이 있다고 했다.
기계 괴수를 대하는 케르베스 인들의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까.
이런 정보들을 가지고 수호자 연맹 파견대로 돌아왔다.
전투 2과 과장이 냉정하게 평가했다.
“소형 기계 괴수면 해볼 만하고, 중형 기계 괴수면 위험할 겁니다. 그 이상이면 무슨 수를 써서든 도망쳐야지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3명의 과장들 의견이 일치했다.
그럼 문제는 과연 어떤 기계 괴수가 나타나느냐는 것.
상군이 능숙하게 일을 분배했다.
“지원 14과는 숙소에 상주하면서 현지 정보 파악에 주력해주세요. 전투 2과와 지원 2과는 차원문에 접근해 보겠습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최소 이틀 동안은 안전할 겁니다. 어차피 X-0 탐지기는 설치해놔야 되고요.”
“아, 그러네요.”
“차원문이 케르베스 인 기준으로 하루거리에 있답니다. 케르베스 인은 하루에 120킬로미터를 이동하니까 우리 기준으로는 두세 시간이면 도착할 겁니다. 한시가 급하니 1시간 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중요한 물건만 챙겼다.
ATV 14대가 일제히 출발했다.
대로가 피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덕분에 쿠시아르를 벗어난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지상으로 나오자 붉은 황야가 드넓게 펼쳐졌다.
군데군데 험준한 바위산이 뾰족하게 솟았다.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이, 적색 모래만 보였다.
유독 크고 밝은 태양이 이글대며 타오르고 있었다. 잠깐 태양을 마주했는데도 열기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준비해 온 방열복을 뒤집어썼다. 최첨단 방열복인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쿠시아르가 왜 지하에 있는지 이해가 갔다.
다시 길을 재촉했다.
약 1시간 정도 달리자, 저 멀리 푸른색 빛 무리가 보였다.
화창한 하늘에 지그재그로 금이 가 있었다. 꼭 가뭄에 비쩍 마른 땅의 균열 같았다. 그 금에서 선명한 청색 광채가 흐릿하게 빛을 뿌렸다.
앞에서 달리던 상군이 크게 소리를 쳤다.
“X-0 수치 확인해 봐요!”
“아직 검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실시간으로 확인해 주세요.”
“예!”
푸른색 차원문을 향해 계속 달렸다.
1시간이 더 지나자, 차원문 코앞까지 도착했다. 평탄한 지형이 이어져서 쏜 살 같이 내달린 까닭이었다.
시청 직원의 말대로 X-0가 검출되기 시작했다.
아주 미약한 수치.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모두 방독면과 장갑, 장화를 착용했다. 벌써부터 들이마셔서는 곤란하니까.
“X-0 탐지기와 변이체 탐지기부터 설치합시다.”
“여기서 야영합니까?”
“아뇨. 해가 지기 전에 철수하겠습니다. 돌아가면서 중계기를 설치하도록 하지요.”
“시간이 빠듯하겠네요.”
가져온 탐지기를 몇 군데에 설치했다. 야생 동물이나 변이체가 공격하지 않도록 위장도 했다.
중간에 변이체 몇 마리가 원정대를 습격했다.
이능력자들을 충분히 데리고 온 참이었다. 가볍게 죽여 버리고 망외의 소득을 얻었다.
설치를 마치고 철수했다.
“X-0 수치가 점점 올라갑니다.”
“차원문이 안정되나 보네요.”
“벌써 그러면 소형일 가능성이 높겠는데요? 끽해야 중형이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