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60화 (61/254)

< 기계 괴수 -3- >

상군과 함께 쿠시아르 시장에게 가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참모들과 지휘관들, 고위 이능력자들이 모여들더니 갑론을박했다.

[광선포가 너무 많습니다. 이것부터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주포의 공격 반경이 얼마나 될까요?]

[접근하면 저기 보이는 가시들을 쏴댈 것 같습니다. 기계 괴수들이 쏘는 가시는 백이면 백 폭발하니까, 그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생각 외로 만만치 않았다.

기세등등해서 출진했는데, 정면으로 맞붙으면 필패라는 분석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TAS 계열 기계 괴수는 그 덩치에 비해 과한 화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대응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TAS 계열 기계 괴수의 제일 큰 문제점은 기동력이 떨어진다는 것. 16개의 다리를 분지를 수만 있다면, 차츰 피해를 강요하다가 쓰러뜨릴 수 있었다.

[저 놈을 여기까지 유인하기만 하면 되요.]

시장이 대형 지도 한쪽을 짚었다.

바위산 세 개가 납작한 삼각형 모양으로 분포되어 있는 곳 가운데 지점이었다.

진지마다 장거리 마력포가 있다고 했다. 이능력자가 직접 조작하면 기계 괴수의 방어막도 관통하는 무기였다. 그걸로 단번에 다리를 부수고 돈좌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유인해온단 말인가?

서로 눈치만 볼 때, 케르베스 인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보아하니 나밖에 할 사람이 없어 보이는데? 내가 하지.]

[감사합니다, 할리온 대장님.]

[뭘. 그런데 나 혼자서는 불가능해. 가까이 접근했다간 광선포 얻어맞고 잿더미가 될 걸? 누구 장거리 공격 가능한 사람 없나? 한 8백 미옹 정도 됐으면 좋겠는데.]

8백 미옹은 지구 단위로 대략 1.2킬로미터.

그 정도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종족은 드물었다. 이능력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이고.

시장과 케르베스 인 지휘관들의 눈이 알바트로스 원정대를 향했다.

상군이 그것을 의식하고 항의하듯 말했다.

[이건 좀 너무 하지 않습니까? 정찰도 우리 원정대에 시키더니, 유인까지 해오라니요?]

[어쩔 수 없어요. 우리 종족도 그렇고, 다른 종족 중에도 그 정도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가 없으니까요. 할리온 대장님이 동행하실 테니, 별 일은 없을 겁니다.]

[날 믿으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사람은 빼낼 수 있소이다.]

할리온이 점잖게 말했다.

하지만 상군이 더 항의하자, 시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타협안을 제시했다. 차후 전리품을 분배할 때 알바트로스 원정대를 우선순위에 놓겠다는 것이다.

애초 목표가 그거였다.

상군이 납득한 척 수한을 향해 눈짓을 했다.

한숨이 나오지만, 사실 수한이 보기에도 자기 말고는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속성이 부여된 총알로도 기계 괴수의 방어막을 뚫을까 의문스러웠다. 일반 지원 요원들이 가봐야 콧방귀만 뀔 확률이 높았다.

[그대가 나와 함께 갈 이계인이오?]

할리온은 까만 무늬가 턱시도를 연상시키는 케르베스 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점잖은 분위기가 풍겼다.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망토를 입고 있었다. X-0를 정화시켜주는 능력이 있는 망토라던가?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 총알에 힘을 담을 수 있으니 유인하는 게 좀 더 쉬울 겁니다.]

[좋소. 이걸 받으시오.]

할리온이 작은 수정 구슬을 건넸다.

[이걸 깨뜨리면 지정된 좌표로 즉시 공간 이동 되오. 공격당하기 직전에 사용하시오.]

기껏해야 수한의 엄지 정도 크기였다. 수한은 구슬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이게 수한의 목숨줄.

목표 지점까지 유인해 온 뒤, 공간 이동해서 피하라는 것이다.

수한이 구슬을 받아들자, 할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자, 내게 업히시오.]

[업히라고요?]

[그래야 빨리 움직이지 않겠소? 말한 대로 8백 미옹까지 접근할 테니, 적당한 시점에 알아서 공격하시오.]

수한은 대물저격총과 권총 2개만 챙겼다.

할리온에게 업히자, 할리온이 꽉 잡으라고 한 마디를 한 후 출발했다.

네 발로 달린다.

무식하게 빨랐다.

바람에 수한의 머리칼이 나부꼈다. 정지해 있는 본대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수한은 속으로 기겁했다.

‘뭐가 이렇게 빨라!’

ATV 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미칠 듯한 속도감에 수한은 할리온을 꽉 껴안았다.

할리온이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제법 빠르지 않소?]

제법이 아니라 엄청 빠르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기계 괴수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방독면을 쓴 상태라 숨 쉬기도 힘들었다. 할리온의 움직임에 따라 전신이 들썩여서, 살짝 멀미도 났다.

할리온이 수한을 돌아보며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었지요?]

[하하하……]

수한은 맥없이 웃어 보였다.

저격 준비를 했다.

할리온도 저격할 때는 지극히 안정된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까처럼 내달리지 않고, 둘이서 기계 괴수에게 접근했다.

[여기서 하겠습니다.]

[좋소.]

언제 수한을 놀렸냐는 듯, 할리온이 진중한 기색을 보였다.

수한은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양각대를 펴고, 그 위에 총구를 얹었다.

고글도 착용했다.

1.2킬로미터 장거리 저격이었다. 컴퓨터의 도움이 필요했다.

부여한 속성은 관통.

신중하게 거미형 기계 괴수의 본체에 십자선을 맞췄다.

컴퓨터가 풍향과 습도, 총알의 탄도를 계산해서 결과를 내놓았다. 십자선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붉은 점이 표시되자, 그 점과 기계 괴수의 본체를 일치시켰다.

잠깐 심호흡을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기계 괴수의 본체 근처에서 불꽃이 튀었다.

수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기껏 맞추기는 했는데, 방어막을 뚫지 못한 것이다.

2차 진화까지 끝내, B급에 해당하는 공격 능력이 있어도 기계 괴수와 B급 이능력자 사이에는 바다보다 넓은 간격이 있었으니까.

기계 괴수의 본체에서 한 번 청색 빛이 반짝였다.

빛의 파장이 수한이 있는 쪽을 한 번 훑었는데, 그 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수한이 입술을 씰룩였다.

자존심이 상했다.

‘어디, 이것도 무시하나 보자.’

이번에는 상급 속성을 부여했다.

현재 수한이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속성은 유도, 약화, 실명.

그 중 약화.

두 번째 총알이 총구를 떠났다.

대기를 찢으며 비행했다.

기계 괴수의 방어막과 마주하자, 콩알처럼 팍 터졌다.

총알에 담겨 있던 어떤 힘이 근방의 방어막에 달라붙었다. 굳건한 방어막 안으로 흡수되더니, 흐물흐물 연약하게 만들었다.

세 번째 총알이 발사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연약해진 방어막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완벽하게 관통하여, 본체의 광선포에 박혔다.

기계 괴수가 홱 몸을 틀었다.

푸른빛이 섬뜩하게 둘의 몸을 훑었다.

할리온이 쾌재를 불렀다.

[갑시다!]

엎드려 있던 수한을 잽싸게 자기 등에 올려놓고는 내달리기 시작했다.

수한은 겨우 총을 챙기고, 할리온의 목을 껴안았다.

아까보다 더 빨랐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내달렸다.

기계 괴수가 지르는 소리가 어릿하게 들렸다.

“푸흐흐으으!”

그러더니 쿵, 쿵, 하며 땅이 울렸다.

수한을 쫓아오는 것.

그뿐이냐?

원거리에서 마구 포격을 가했다. 파괴 광선 수십 줄기가 쏟아지며 땅을 파헤쳤다. 할리온은 정말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했다.

할리온이 크게 소리쳤다.

[꽉 잡으시오! 본격적으로 달리겠소!]

여기서 더 빨리 달린다고?

수한은 아예 할리온의 등에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할리온이 경쾌한 소리를 질렀다.

몸 전체가 부르르 떨리더니, 투명하게 변했다.

마치 공기로 이뤄진 거대 고양이에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쭉 앞으로 튀어나갔다.

주변의 풍경이 휙휙 뒤로 지나갔다.

그 바람에 기계 괴수가 뒤로 좀 쳐졌다.

그러자 광선포와 미사일을 날리는 것을 중지했다. 16개의 다리에 힘을 집중했다. 더욱 강하게 땅을 박차고, 16개의 다리가 유동적으로 움직였다.

속도가 빨라졌다.

쿵쿵 거리는 속도가 점차 가까워졌다. 하도 땅이 울려, 할리온의 몸도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네 발로 뛰는 할리온보다, 공격을 중지한 기계 괴수가 아주 조금 빨랐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가다간 따라잡힌다.

수한은 급속 이동을 사용했다.

할리온의 속도가 조금 올라갔다. 그러나 언 발에 오줌누기,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아껴둔 게 있지.

초능 점수 20점을 몽땅 급속 이동에 투자했다.

이로써 급속 이동은 25레벨.

다시 급속 이동을 사용했다. 그러자 할리온의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할리온이 수한을 한 번 힐끔 보더니, 이를 악물고 더 빠르게 달렸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나중에는 거리가 제법 멀어져, 할리온이 속도를 조절해가며 기계 괴수를 유인했다.

급속 이동에 점수를 투자한 보람이 있는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한은 익숙한 광경이 보이는 것을 깨달았다. 바위산 세 개가 저 앞에 점점이 서 있었다.

한참을 더 달리자, 바위산 가운데 지점에 도달했다.

할리온의 투명한 몸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속도를 줄이더니, 그 자리에 정지했다.

수한은 뒤를 돌아보았다.

기계 괴수가 맹렬히 쫓아오고 있었다. 거리가 좀 벌어져 있으나, 금방 따라잡힐 듯했다.

“푸흐으으으!”

기계 괴수가 전신으로 뿜는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와 함께 녹색 연기가 또 뿜어졌다. 변이체 수십 마리가 일거에 생성되어 기계 괴수를 뒤따랐다.

기계 괴수가 다시 포격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할리온이 또 수한을 집어들고 달음질쳤다. 결국 포격을 포기하고 몸으로 밀고 들어왔다.

약간 빗나갔지만, 유인하기로 했던 지점.

기계 괴수는 일직선으로 수한에게 달려들었다.

다리가 땅을 찍을 때마다 지축이 뒤흔들렸다. 아까 전만 해도 꽤 떨어져 있던 거리가 금세 가까워졌다.

육중한 움직임이 그대로 세상 모든 것을 뭉개 버릴 것 같았다.

마침내 기계 괴수가 둘을 따라잡았다. 기계 괴수가 다리 하나를 높이 들어올렸다.

송곳처럼 뾰족한 다리 끝이, 언뜻 태양빛을 반사시켜 시퍼렇게 빛났다.

그 끝이 번개처럼 떨어질 때, 수한과 할리온은 주먹을 힘껏 쥐었다.

파직!

구슬이 깨졌다.

맑은 빛이 수한을 휘어 감았다.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눈앞의 기계 괴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수한이 멀찍이 공간 이동 되었다.

그와 동시에 굉음이 터져 나왔다.

꾸아앙, 쾅쾅!

바위산 진지에서 날려 보낸 포탄이 기계 괴수를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케르베스 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마력포.

그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단번에 기계 괴수의 방어막을 뚫고 다리를 직격했다. 상대적으로 연약한 다리가 두 조각 나며 기계 괴수의 몸이 흔들렸다.

기계 괴수가 멈칫했다.

또다시 마력포들이 불을 뿜었다.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본체에 달린 수백 개 광선포가 빛을 토했다. 엄밀하게 펼쳐진 화망에, 벼락처럼 날아들던 포탄들이 모조리 요격 당했다.

전투를 총지휘하던 시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리 절반 이상을 부러뜨리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기민한 대응에 3개를 부수는 것으로 그쳤다.

원정대로 복귀 중인 수한도 그것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도울 방도가 없을까?

아무리 마력포가 대단하다 한들, 원거리 공격 능력은 기계 괴수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기계 괴수가 반격을 시작하면 금세 박살날 터였다.

수한의 짐작대로였다.

기계 괴수는 한동안 방어하면서 마력포의 위치를 파악했다. 각종 탐지 방해 기술이 동원되었으나 소용없었다. 모든 마력포의 위치를 알아낸 순간, 반격이 시작되었다.

본체 아래 숨겨져 있던 주포가 빳빳이 고개를 쳐들었다.

맹렬한 빛줄기가 쏘아져나갔다.

청색 광선이 바위산 하나를 온통 휩쓸었다. 빗자루로 쓸어내리듯 샅샅이 훑었다. 그 한 번으로, 숨어 있던 마력포들이 몽땅 가루가 되었다.

“이런!”

케르베스 인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일그러졌다.

이렇게 된 이상, 포격전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이능력자들에게 출전 명령이 떨어졌다.

작전관이 수한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엄호를 부탁드립니다. 변이체들이 계속 생성되고 있는데, 그것들이 핵심 전투조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원정대의 이능력자들만 접근하기 시작했다.

지원 요원들은 뒤에 있기로 말을 맞췄다. 저격총으로 지원하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ATV를 몰고 달려와 탈출시킬 것이다.

모두들 탐지 방해 기술을 사용한 상태.

기계 괴수가 또 주포를 발사했다.

두 번째 바위산이 불꽃에 휩싸였다. 그곳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뻔했다.

마지막 바위산에서 발악하듯 마력포를 쏘아댔다.

소용없는 짓.

모조리 막혔다. 파편이 기계 괴수를 두들겼지만, 방어막에 흠집도 내지 못했다.

주포가 서서히 회전했다.

기계음과 함께, 멀리 떨어진 바위산을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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