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61화 (62/254)

< 기계 괴수 -4- >

“이야압!”

할리온이 기합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두 손에 든 둥글둥글한 물체를 던졌다. 던진 즉시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잽싸게 달아났다.

번쩍!

폭탄이 맹렬한 빛을 토했다.

빛이 지우개처럼 방어막을 소멸시켰다. 그 바람에 기계 괴수의 주포가 완전히 노출되었다.

다른 신속 계열 이능력자가 달려들었다. 폭탄을 주포의 포구에 던져 넣으려고 했는데, 기계 괴수의 광선포가 일제히 쏟아졌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가루가 되었다.

주포에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할리온이 암담한 눈으로 주포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다시 가서 폭탄을 투척하기엔 이미 늦었다.

이렇게 마력포가 모두 박살내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하나?

기계 괴수 공략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할 때, 날카로운 총성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탕!

주포의 포구 안 깊은 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불꽃?

아니다, 맹렬한 폭발이 일어나 주포를 집어삼켰다.

단발도 아니었다. 연속으로 꽝꽝 울렸다. 결국 주포에 어린 빛이 폭주하며 그 큰 쇳덩이를 집어삼켰다.

거대한 원통형 주포가 이리저리 우그러들었다. 얼핏 보기에도 심각한 손상이었다.

할리온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그 끝에, 대물저격총의 탄창을 갈아 끼우는 수한의 모습이 보였다.

수한은 차가운 눈으로 기계 괴수를 쳐다보았다.

할리온이 자신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는 게 보였다. 가볍게 손만 흔들어 준 뒤, 다시 원정대를 향해 이동했다.

케르베스 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기계 괴수는 주포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체 전체가 울긋불긋 달아오르더니, 온전한 다리를 본체 쪽으로 움츠렸다.

다리에 잔뜩 나 있던 가시들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이능력자들은 그것들을 쳐내거나 막으며 돌진했다.

“키하악!”

“캬악!”

변이체들도 많았다.

이제 막 생성된 탓에 대부분 하급 변이체였다. 위협적이진 않고, 거치적거렸다.

알바트로스 원정대가 그들을 처리했다. 수한이 원거리에서 진행 방향의 변이체들을 먼저 잡고, 나머지 인원은 뒤쪽을 차단했다. 기계 괴수와 이능력자와의 싸움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푸흐으으윽!”

기계 괴수가 또 X-0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러자 변이체 생성에 가속도가 붙었다. 심지어 기존 변이체들이 자기들끼리 융합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변이를 마치고 C급으로 변모했다.

여기저기서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전투조에게 못 가게 막아!]

[모조리 죽여!]

[아악, 살려줘!]

수한은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겼다.

혼돈의 도가니였다.

해일처럼 몰려드는 변이체들이 이능력자들을 하나둘 사냥했다. 수가 너무 많았고, 기껏 죽여 놔도 다른 변이체가 그걸 먹고 더 강해지기 일쑤였다.

기계 괴수와 싸우는 이능력자들을 살폈다.

잘 몰아붙이고는 있었다. 다리 대부분을 폭파시켰고, 본체에도 흠집을 꽤 냈다. 광선포들만 걷어내면 직접 타격이 가능해질 것 같았다.

문제는 변이체들에게 이능력자들이 밀리고 있다는 것.

수한이 고심할 때, 본진에서 큰 북소리가 울렸다.

쿠시아르 군대가 진군을 시작했다.

하급 이능력자와 잘 훈련된 직업 병사들로 이뤄진 군대였다. 무장 상태가 충실해서, 하급 변이체 정도는 처리할 수 있었다.

그들이 투입되자 숨통이 트였다. 적어도 수에서 밀리지는 않는 것이다.

대신 죽어나가는 이들도 늘었다.

일반인은 일반인.

C급 변이체가 난입하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었다. 이능력자가 투입될 때까지는 속절없이 당했다. 그나마 그들의 지휘관 중 이능력자가 몇 명 있어, 몰살당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대로는 끝이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위 이능력자들이 기계 괴수 몸의 아래쪽부터 광선포를 하나하나 제거하는 중이었다.

문제는 속도.

너무 느렸다. 1시간은 지나야 작업이 완료될 듯했다.

번쩍!

광선포 하나가 수한을 노리고 빛줄기를 뿜었다.

수한은 겨우 몸을 날려 피했다.

케르베스 인들이 온갖 방해 결계를 펼쳐 놓은 까닭에 피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일격에 사망했을 것이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얼른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변이체 하나가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총을 겨눴다.

변이체가 한 발 더 빨랐다.

그대로 수한을 들이받았다. 막대한 충격이 전신을 뒤흔들며, 순간 의식을 잃고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간신히 눈을 뜨니, 변이체의 흉측한 아가리가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 순간, 흰 번개 다발이 변이체를 후려쳤다.

변이체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수한은 겨우 자리를 피한 뒤, 변이체에게 총알을 박아 넣었다.

새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조심해!”

수한은 짧게 한숨을 쉬고 소리쳤다.

“고마워!”

한 가지 사실을 뼈에 사무치게 익혔다.

기계 괴수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것.

지금은 변이체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그렇다면, 변이체들을 어떻게 쓸어버릴 방법이 없을까?

한 가지 영감이 번뜩였다.

수한은 급히 근거리 통신으로 말했다.

[추 계장님, 추 계장님!]

[무슨 일입니까?]

[ATV 위에 기관총 거치해서 가져와 주세요!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아, 맞아. 그런 방법이 있죠?]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추 계장이 ATV를 몰고 달려왔다. 주임 한 명이 자청해서 부사수 역할을 하겠다고 따라왔다.

수한은 가볍게 도약하여 ATV 위로 올라왔다.

상군이 수한의 구상을 눈치 채고 소리 질렀다.

“원정대 모여요! 이리로 모여!”

알바트로스 원정대가 수한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수한은 총알 상자 전체에 속성을 부여했다.

단일 대상에게는 가장 강한 파괴 속성.

붉은 빛이 상자에 스며들기가 무섭게, 기관총이 성난 불길을 토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탕!

변이체들이 녹색 체액을 뿌리며 나동그라졌다.

소총에 비해 기술 레벨이 낮아 묘기에 가까운 정확도는 발휘할 수 없었다. 그래도 변이체의 수를 줄이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수한이 탄 ATV가 한 번 지나가면 시체 밭이 그득하게 생겨났다.

수한은 중간에 속성을 바꿔 화염을 뿌렸다. 시체가 순식간에 타올라, 고위 변이체가 출현하는 것을 방지했다.

이곳에 나타나는 변이체는 기껏해야 C급.

수한은 물 만난 고기처럼 종횡무진 전장을 휩쓸고 다녔다. 그런 수한의 활약에 힘입어, 변이체들을 막아내는 방어선이 안정을 되찾았다.

한편, 기계 괴수의 피해가 점차 누적되었다.

바위산 하나가 남아 있는 게 컸다. 거기서 간헐적으로 쏘는 포탄에 광선포가 우르르 무너졌기 때문이다.

마침내 최후의 광선포까지 제거했다.

“푸흐흐흐!”

기계 괴수가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녹색 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보였던 모습.

하지만 그 양이 달랐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연기가 뭉클뭉클 쏟아졌다.

그 의미를 알아챈 S급 이능력자 하나가 소리쳤다.

[폭주한다! 도망쳐!]

모두 등을 돌렸다.

그게 아니더라도, 연기를 잘못 마셨다간 X-0 과다 흡수로 괴물이 되게 생겼다.

미친 듯이 도망쳤다.

대기하고 있던 ATV들이 달려와 사람들을 실었다. 근방의 케르베스 인들이 살려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그들을 태운 뒤,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행히 연기는 멀리까지 퍼지진 않았다. 운 나쁜 십여 명만 그 연기에 삼켜졌다.

“끝난 거야?”

먼지를 온통 뒤집어쓴 새미가 수한을 보고 물었다.

수한은 주시자의 눈을 끌어올리고 녹색 연기 안을 들여다보았다.

기계 괴수가 간헐적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그때마다 다리가 하나씩 끊어졌다. 종국에는 피라미드 형태 본체만 남았다.

본체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음 상황을 직감한 수한이 벼락처럼 소리쳤다.

“모두 엎드려! 곧 터진다!”

비슷한 외침이 사방에서 울렸다.

너 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엎드렸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기계 괴수가 무지막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염이 세상을 휩쓸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대지가 흔들렸다.

돌가루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흙먼지가 저 높은 하늘까지 솟구쳤다.

수한은 한 동안 엎드려 있다 고개를 들었다. 녹색 연기는 폭발에 휘말려 사라지고, 뿌연 먼지만 가득 했다.

“쿨럭, 쿨럭!”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방독면 벗지 마세요. X-0 수치 지금도 높아요.”

대원 한 명이 기침을 하다 방독면을 벗으려고 하자 급히 제지했다.

다들 몸을 일으켰다.

일단 원정대부터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모두 멀쩡했고, 몸을 감싼 화생방 장비도 온전했다.

기계 괴수는 완전히 침묵한 상황.

시장이 군대를 뒤로 물렸다. 그리고 각 행성의 원정대 대표들만 대동하고 기계 괴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아주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16개의 다리가 폭발에 휘말리면서 멀찍이 날아가 박혀 있었다. 본체는 그 원래 형체를 찾아보기가 힘들고, 금속 파편들만 주위를 굴러다녔다.

[이거야 원……]

누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하니 자폭형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그나마 최후의 순간 각종 결계로 폭발력을 약화시켜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여기 있던 이들 모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시장이 먼저 잔해 더미로 다가갔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작은 무더기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손을 가볍게 털자 무더기가 무너지며, 커다란 구형 물체 하나가 나타났다.

반쯤 부서지고, 구멍이 송송 뚫렸지만 지금도 푸른빛을 뿜는 물체.

시장과 동행했던 이들의 눈이 번쩍 빛났다.

기계 괴수의 동력핵이었다.

[상태는 나쁘지 않네요.]

시장이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모두 마른 침을 삼켰다.

기계 괴수의 동력핵을 가공하면 100% S급 힘의 결정을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이 동력핵은 막대한 가치를 가졌다.

S급 변이체의 심장으로도 제작이 가능하지만, S급 변이체는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기계 괴수를 사냥하여 S급 힘의 결정을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시장을 따라온 상군과 수한은 무덤덤했다.

어차피 동력핵은 쿠시아르 측에서 가져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바위산의 마력포도 그렇고, 참가했던 이능력자들의 면면을 봐도 쿠시아르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종족들이 못 듣게 보안 채널로 얘기를 나눴다.

[다리 하나 정도는 더 요구해도 되겠지요?]

[광선포도 몇 개 챙겨가죠. 정찰에 유인까지 하고, 변이체도 가장 많이 잡았잖습니까? 케르베스 인 병사들도 수십 명이나 구해줬고요.]

[흠, 한 번 주포까지 요구해볼까요? 말 잘 하면 줄 것도 같은데.]

[그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주포와 광선포 몇 개, 다리 1개 가져가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거 목표로 협상해 봅시다.]

동력핵만 거둔 뒤 일단 철수했다.

군대의 일부와, 이능력자 몇 명이 남았다. 그들이 이곳에 가득한 X-0를 정화하고, 기계 괴수의 잔해를 수거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변이체를 청소하겠지. 족히 대여섯 해는 변이체들과 드잡이질을 해야 좀 조용해질 테니까.

이곳까지 올 때는 급했지만, 돌아가는 길은 여유로웠다. 아니, 의식적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X-0 때문이었다.

이동하면서 옷에 묻은 X-0를 최대한 정화했다. 조금씩 치료도 받았다. 지구로 돌아가면 한 동안 정양해야겠지만, 어쨌든 쿠시아르로 들어갈 정도는 되었다.

그 동안 수한은 레벨 업 도우미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레벨이 쭉쭉 올라가 있었다.

수한이 한 일이 얼마나 많았나.

그 덕에 하루 동안 무려 15레벨이 올라갔다.

기관총 기술 점수도 15에서 17로 오르고, 민첩과 재주, 감각이 1씩 더 높아졌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

수한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자, 새미가 무슨 일 있느냐며 물어보기까지 했다.

쿠시아르에 도착한 것은 이틀이 지난 후.

대대적인 환영식이 열렸다.

아리따운 고양이 아가씨들이 나와 꽃잎을 뿌렸다. 시민들이 지르는 환호성에 귀가 먹먹했다. 기껏해야 허리 아래까지 오는 꼬마들이 달려와 고맙다며 얼굴을 비벼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시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유령도시 같던 쿠시아르였다. 소식이 전해지자, 피난 갔던 이들이 모두 돌아온 것이다.

수한은 기분 좋게 환영식을 즐겼다.

고양이 아가씨들이 수한에게 몸을 비볐다. 노골적으로 속살을 보여주는 아가씨도 있었다. 커다란 고양이가 재롱떠는 것 같아 웃어 넘겼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새미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좋았나 봐?”

“응? 뭐가?”

“흥!”

새미가 아니꼽다는 듯 콧바람을 훙훙 불었다.

수한은 쓰게 웃었다.

왜 그러는 지 알 만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질투할 대상이 없어서 외계 고양이 아가씨들에게 질투를 하다니……

수한은 새미를 한참이나 달래 주었다. 그제야 새미가 기분을 풀고 다시 방긋방긋 웃었다.

도시 입구에서 시청까지 행진한 후, 뿔뿔이 흩어졌다.

며칠 동안은 휴식을 취했다.

모두들 피로가 쌓여 있었다. 지금 당장은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정신을 좀 차렸을 무렵, 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기계 괴수의 잔해 수거가 끝났으니, 분배를 해보자는 것.

칼과 총으로 하는 전쟁은 끝이 났다.

이젠, 혀로 하는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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