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62화 (63/254)

< 전리품 협상 >

총으로 하는 싸움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의해 원정대 수익이 결정된다.

3명의 과장, 그리고 통역을 할 수한이 시청으로 향했다.

시청의 대형 회의실에는 이미 다른 원정대의 대표들이 모여 있었다.

총 9개 종족.

개중에는 며칠 전 전투에서 존재감이 없던 종족도 있었고, 상당한 활약을 펼친 종족도 있었다.

수한은 3개 종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메뚜기를 닮은 곤충형 인간, 오르페 행성인.

몸 전체가 액체로 이뤄져 고정된 형체가 없는 슈뒤 행성인.

네 개의 다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야토브 행성인.

오르페 행성인은 AA급 이능력자 둘을 기계 괴수와의 전투에 투입했다. 슈뒤 행성인은 케르베스 행성인들 다음으로 많은 이능력자를 동원했다. 야토브 행성인 중 한 이능력자가 기계 괴수 광선포 공격을 방해하여 피해가 줄어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다른 종족들이야 신경 쓸 것 없는데, 이들은 주시하는 게 좋았다.

그들도 더 많은 전리품을 확보하려고 할 테니까.

[모두 오셨네요. 자, 앉으세요.]

시청 직원들이 차를 내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라색의 차인데, 냄새가 아주 향긋했다. 정화 작업까지 해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었다.

분위기가 정돈되자, 시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기계 괴수의 잔해 수거가 끝났습니다. 먼저 목록부터 보실까요?]

각 공격대마다 종이 한 장씩을 나눠주었다.

수한은 과장들과 함께 종이에 적힌 내용을 살폈다.

세라프 문자로 적혀 있어서, 전투 2과 과장을 위해 하나하나 읽어주었다.

동력핵 하나, 주포 1문, 광선포 4백여 문, 가시 발사기 3백여 개, 다리 16개, 동력 설비, 탐지 장치, 인공지능 부품, X-0 생성기 및 확산기, 방어막 생성기와 몸체를 구성하는 금속판 등등.

폭발에 휘말린 탓에,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해당 부품을 몽땅 찾아놨으니 시간만 투자하면 복구가 가능할 듯했다.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다.

“보존 상태가 생각보다 좋은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다 박살났을 줄 알았는데.”

“무기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탐나는 게 많습니다. 동력 설비나 인공지능 장비도 노려볼 만 하겠어요.”

“일단 케르베스 인들이 선택하는 걸 보고 결정해야겠습니다. 우선권은 이들에게 있으니까요.”

소란스러워지자, 시장이 발톱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 소리를 들은 아홉 종족이 입을 다물고 시장을 돌아보았다.

[전리품 분배는 관례대로 기여도에 따라 나누겠습니다. 이의 있으신 분?]

있을 턱이 없다.

대원칙에 대해 합의하자,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쳤다.

각 종족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기계 괴수를 직접 상대한 이들의 기여도가 가장 크다, 무슨 소리냐 외곽에서 변이체들을 안 막아줬으면 잡을 수나 있었겠느냐, 우리 종족은 기계 괴수를 잡으려고 원정대의 절반이나 죽었다, 하는 이야기들.

시장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치화 시켜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짧은 시간에 그렇게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하나씩 짚어보지요. 이번 기계 괴수 사냥에서, 우리 쿠시아르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맞지요?]

[맞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저희, 쿠시아르의 기계 괴수에 대한 지분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시장이 나머지 종족들을 둘러보았다.

수한은 속으로 곰곰이 따져 보았다.

전투에 참가한 이능력자 중 2/3 가량이 쿠시아르 소속이었다. 기계 괴수와 직접 싸웠던 S급과 AA급으로 국한하면, 무려 86%가 넘어간다.

어디 그 뿐이냐.

바위산의 마력포도 그렇고, 동원한 군대도 그렇고 쿠시아르가 큰 역할을 했다.

아무도 말이 없자, 시장이 천천히 말했다.

[우리 쿠시아르가 기계 괴수의 지분 90%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원한 이능력자나 군대의 비율, 각종 장비를 다 따져야 하니까요.]

당장 반론이 쏟아졌다.

[90%? 그건 너무 과합니다.]

[생각해 보시죠. 우리 여덟 종족이 없었으면 쿠시아르 단독으로 기계 괴수를 잡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게 가능했어야 90%를 주장할 수 있는 거지요.]

[당장 세 바위산 진지 가운데로 유인도 못 했을 텐데요? 마력포의 지원 포격 없이 귀측의 능력만으로 기계 괴수와 싸웠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변이체들에게 밀려 끝내 실패로 돌아갔을 겁니다.]

[물론 귀측의 지분이 가장 크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지분이 절대적인 것이라곤 보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70% 정도가 적당할 것 같네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73% 정도는 기여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기여도를 후려치자, 시장의 얼굴에 잠깐 붉은 빛이 감돌았다. 금방 냉정을 되찾고 입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억지로 기계 괴수의 잔해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종족 연합에서 퇴출당할 테니까. 아직 기계 괴수가 행성 곳곳에 남아 있는 케르베스 인들로선, 종족 연합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격론 끝에 쿠시아르 측의 지분은 77%로 결정되었다.

유인할 때 수한이 저격해서 데려온 것과, 주포를 봉쇄한 것, 그리고 변이체들에게 진형이 뚫릴 뻔한 것을 막은 게 가장 컸다. 그것 때문에 여덟 종족의 도움 없이는 전투에 실패했을 거라는 주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쿠시아르 측 지분을 확정하자, 옅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교롭게도 쿠시아르 측 지분을 줄인 이유 모두에, 수한의 이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두 번째로 알바트로스 공격대에 대해 의논했다.

쿠시아르를 상대할 때는 함께 입을 맞췄는데, 이젠 그들의 화살이 지구인을 향했다.

[사실, 유인해 오는 것은 할리온님께서 다 하셨지요.]

[맞습니다. 그 먼 거리를 도망쳐서 기계 괴수를 데려 오는 게 어렵지, 공격 한 번 하는 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주포를 망가뜨렸다? 그건 인정합니다. 마력포 하나를 건졌고,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 말고는 많이 기여를 했다고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동의합니다. 변이체를 상대할 때도 그래요. 기껏해야 변이체들에게 상처만 입힌 거 아닙니까? 변이체들을 실질적으로 끝장낸 것은 지구 공격대가 아니라 우리들이었어요.]

어떻게든 알바트로스 공격대의 활약을 깎아내리려고 했다.

그래야 자기들의 지분이 늘어나니까. 사실 그대로 인정했다가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전리품은 제대로 챙겨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들의 말을 들으니 속에서 슬금슬금 열이 올라왔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고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상군이 수한을 한 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유인은 할리온님이 다했다라……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겠지요. 그래서 우리 공격대 수한씨처럼 8백 미옹 밖에서 유인할 수 있는 자가 또 누가 있습니까?]

[아, 그거야 뭐……]

[우리 수한씨가 본인의 이능을 최고조로 발휘한 다음에야 기계 괴수가 달려왔습니다. 그냥 공격만 해서는 소용이 없었다는 얘깁니다. 다들 아시지요? 할리온님이 증언한 사항이니까. 그래, 그때 기계 괴수를 잡기 위해 나섰던 이능력자 중 8백 미옹 밖 기계 괴수의 방어막을 뚫어서 유인할 수 있던 게 수한씨 말

고 또 누가 있습니까?]

다른 원정대의 대표들이 입을 우물거렸다.

뭐라 할 말이 없었으니까.

이능력자는 많지만, 1.2 킬로미터 밖까지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상군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한 게 없다고요? 수한씨가 없어서, 기껏 2백 미옹에서 유인했다간 할리온님과 함께 사망했을 겁니다. 어디 반박해 보시죠.]

몇몇이 꿍얼거렸지만 제대로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할리온의 유령 질주 이능을 발동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군이 쐐기를 박았다.

[우리 수한씨의 원거리 저격 능력과 할리온님의 장거리 질주 능력이 합쳐져서 기계 괴수를 유인한 겁니다. 둘 중 하나만 있었으면 가능했을 것 같아요? 택도 없는 얘깁니다.]

[그렇다고 해도 할리온님이 더 기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공격만 한 번 한 것과,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목표 지점까지 데려온 것이 같습니까?]

[아니지요. 거 자꾸 본질을 호도하시는데, 그래서 우리 수한씨 대신 유인을 도울 수 있는 자가 있기는 했습니까? 우리 수한씨와 할리온님 중 1명이라도 없었으면 유인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시지요.]

[끄응!]

한 마디도 물러서지 않는 설전이 오갔다.

수한은 그 뉘앙스 하나까지 통역을 하면서, 상군의 논리를 인상 깊게 들었다.

더구나 듣고 있던 할리온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도망치고 있을 때, 저 지구인이 신속 계열 이능을 발현했소. 그 이능이 내게도 영향을 미쳐서 도망칠 수 있었소. 그게 아니었으면 나와 지구인 모두 그 자리에서 뼈를 묻었겠지.]

급속 이동으로 벌렸던 티끌 정도 차이.

결국 수한이 없었으면 아무리 할리온이 날고 기어도 유인은 못했을 거라는 얘기다.

'수한씨가 신속 계열 이능도 있었나?'

세라프 어를 투박하게나마 할 줄 아는 과장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

일단은 묻어두었다. 나중에 원정대끼리만 있을 때 물어봐도 충분하니까.

그렇게 유인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 다음은 변이체를 상대했을 때의 문제.

주포 봉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부분은 다들 인정하고 있으니까.

수한이 직접 해결했다.

홀로그램 생성기에다, 전투 당시 보호복에 부착하고 있던 카메라를 꽂았다. 영상을 재생시키자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기관총이 변이체들을 갈기갈기 찢고, 불꽃으로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하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눈으로 직접 보여줘 버리니, 천 마디 말보다 더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상군에게 당하고, 통역하러 온 수한에게도 당하자 더 이상은 다른 종족들이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알바트로스 공격대의 기여도는 11%로 결정되었다.

조금은 아쉬웠다.

이능력자들이 더 있었다면 더 올릴 수 있었을 텐데, 참가한 이능력자의 수가 너무 적었다. AA급 이상의 이능력자가 있어서 기계 괴수를 직접 공격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11%.

적은 것 같다고?

그렇지가 않다. 11%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기계 괴수의 시체가 가지는 가치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소형이라도, 기계 괴수의 시체는 1조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게 정설이니까.

비록 여기저기 부서졌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원정대가 가져가는 것은 최소 9백억 원 가량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모두 판매했을 때의 가치가 그 정도였다. 연구소에서 기계 괴수의 부품을 연구하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 그 부가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가 없었다. 사실 이런 선진 기술을 얻어내려고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협상을 하는 거였다.

대박.

기계 괴수를 잡으면서 얻은 레벨, 능력치, 기술도 대박인데, 돈도 대박을 터뜨렸다.

그렇게 알바트로스 공격대까지 기여도가 결정되자 다른 종족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쿠시아르가 77%, 알바트로스 공격대가 11%.

그렇다면 이젠 12%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어떤 종족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배당을 받고 손만 빨아야 할 수도 있었다.

수한은 다른 종족들이 설전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미 충분한 몫을 확보했기 때문에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해가 질 때까지 회의가 지속되었다.

마라톤 회의 끝에, 종족마다 명암이 갈렸다.

웃은 종족도 있고 운 종족도 있었다.

가장 실속을 차린 것은 알바트로스 공격대.

11% 지분을 확보한 이상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내일 결정되겠지만, 기존 TAS 계열 기계 괴수들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1차 회의가 끝나고 원정대끼리만 모이자, 상군이 수한에게 신속 계열 이능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새로운 이능을 각성한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아직 보고를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한씨. 수한씨한테 신속 계열 이능도 있었습니까?"

"예. 새해 연휴에 마라도 갔다 온 건 아시죠?"

"알죠. 뉴스에서 봤으니까."

"거기서 번 돈으로 E급 신속 계열 힘의 결정을 구입해서 흡수했습니다. 미처 이능 인증은 못 받았는데, 신속 계열 이능 하나를 각성한 것 같습니다."

"허어, 그래요?"

"예. 도망치다가 혹시나 싶어서 발현해봤는데, 할리온님에게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도망칠 수가 있었지요."

"하늘이 도왔네요."

"그럼 지금 수한씨는 이능이 3개나 되네요? 휴우, 정말 대단하네요. 1개 각성하기도 힘든데 3개라니……"

"수한씨. 이번에는 일이 잘 됐지만 다음부터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상황에 대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제 부하 직원들 이능은 알고 있어야지요."

"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지요. 어쨌든 축하합니다. 자연 각성자라 그런지 각성하는 이능이 많네요."

한편, 요구할 품목을 확정지었다.

헌데 쉽지가 않았다.

알바트로스의 첫 번째 목표가 기계 괴수의 주포였는데, 쿠시아르 측에서도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시장이 강경하게 말했다.

[지구인 여러분이 이번 전투에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저희도 주포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우리 도시만이 아니라, 우리 종족 전체에 유용하게 쓰일 테니까요. 더구나 TAS 계열 기계 괴수의 주포는 그 기계 괴수의 가치 중 10% 정도에 해당되지 않습니까? 지구인 여러분이 주포를 가져가겠다

는 건, 솔직히 지나친 욕심인 것 같습니다.]

[정 주포를 가져가시려면, 다른 건 모두 포기해야지요.]

[맞습니다.]

어제 한 방 먹어서일까.

다른 종족들도 쿠시아르 측에 손을 들어주었다.

수한을 비롯한 지구인들은 입맛을 다셨다.

분위기로 봐서 포기해야 할 성 싶었다. 하긴 부서진 주포 하나만 덜렁 가져가느니 다른 부품들을 여럿 가져가는 게 더 나을 터였다.

[좋습니다. 주포는 포기하지요. 대신 다른 부품들을 가져가겠습니다.]

상군이 여러 품목을 제시했다.

인공지능 칩과 탐지 장치 중 온전한 것 몇 개, 거의 손상되지 않은 다리 2개, 수리하기 용이한 상태의 광선포 20문, 방어막 생성기와 X-0 생성기 중 일부.

충분히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11% 지분을 정확히 지키면서도, 다양한 부품을 포함했으니까.

회의에 참가한 종족들이 얼마간 떠들더니 동의했다.

[적당한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찬성하겠습니다.]

[저희도 찬성합니다.]

[그럼 지구인 여러분의 몫은 그렇게 처리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종류도 여럿에, 상태가 좋은 것을 받기로 했으니 알바트로스 입장에서도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반면, 만족하지 못한 종족들도 있었다.

시기와 불만으로 가득 찬 시선이 알바트로스 원정대를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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