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65화 (66/254)

< 도둑 -2- >

[아주 작정을 하고 왔나 보오. 여기 계시오. 내가 다녀오겠소이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직접 놈들의 짐을 확인해 보려고 하오.]

[조심하세요.]

[걱정 마시오.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니까.]

수한은 인근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가져온 소총과 저격총을 한쪽에 내려놓고, 실탄을 장전했다.

할리온이 허리띠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검은 그림자가 할리온을 뒤덮었다. 할리온의 까만 몸이 그림자와 동화되더니, 주위 환경에 동화되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할리온이 두 원정대를 향해 접근했다. 상당히 빠른 속도인데, 여간해서는 그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수한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할리온이 돌아왔다.

[안 들키셨네요?]

[훗, 한때는 쿠시아르의 그림자 손이라고 불렸던 몸이오. 제깟 놈들이 경계를 해봤자 나에겐 식후 운동 거리도 안 된다오.]

할리온이 손에 든 작은 주머니를 흔들었다.

바닥에 입구를 대고 탈탈 털자, 그 작은 주머니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물건 하나가 톡 튀어나왔다.

소형 광선포.

기계 괴수의 몸체에 달려 있던 것 중 하나였다.

아울러 알바트로스 공격대가 받아가기로 했던 물건 중 하나기이도 했다.

수한은 이를 갈았다.

[이런 개만도 못한 것들!]

[증거를 확보했으니 일단 돌아갑시다. 쿠시아르에 있는 작자들부터 억류를 해야겠소.]

쿠시아르에 돌아온 뒤, 시장과 기라니아에게 알아낸 사실을 알렸다.

둘이 분개하며 수염을 뻣뻣이 세웠다.

[이럴 수가! 설마 했는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하다니!]

[이건 우리 쿠시아르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본때를 보여줘야 되요.]

[당장 오르페 행성인과 슈뒤 행성인들을 잡아들이세요. 쿠시아르에 체류 중인 자들은 무조건 다!]

시장이 노하여 소리를 질렀다.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이능력자들도 소집되어 그들을 따라갔다.

오르페 행성인들과 슈뒤 행성인들이 줄줄이 엮어왔다. 반항을 하긴 했지만, 전력상 너무 밀렸다. 더구나 온갖 대형 병기까지 동원하여 공격해대니, 결국 손발이 묶이고 이능이 제압당한 채 무릎 꿇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을 제압해 놓고, 시장은 다른 여섯 종족을 불렀다.

지구인들은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다른 종족들은 아는 게 없었다. 다만 시가지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을 보고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시장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범인을 잡았습니다.]

[억울합니다!]

[우리를 왜 범인으로 모는 겁니까?]

잡혀온 자들이 소란을 피웠다.

시장이 눈짓을 했다.

그들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이 몽둥이로 그들을 후려갈겼다. 비명이 몇 번 터지고 난 다음 저절로 조용해졌다.

할리온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까지 밝혀낸 사실을 모두 나열했다. 증거로 원정대에서 슬쩍한 광선포와 차원문 통과 장부 등을 제시했다.

다른 종족들이 술렁거렸다.

[그게 진짭니까?]

[아무리 분배에 불만을 가졌어도 훔칠 생각을 하다니……]

[그렇다고 쿠시아르에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을 내려다보며 시장이 강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우리 쿠시아르는 이 간악한 작자들에게 처절한 단죄의 칼날을 내릴 겁니다. 사실을 확인한 이상 타협도, 자비도 없습니다.]

즉시 군대가 출정했다.

이능력자들과 기병들만 나갔다. 시장과 기나리아가 뒤따르고, 다른 종족들도 멀찍이 따라가기로 했다.

정말로 두 종족이 전리품을 빼돌렸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하루 뒤, 두 원정대를 따라잡았다.

군대를 본 원정대가 부산스러워졌다. 고지대에 자리를 잡더니, 항전할 태세를 갖추었다.

뒤가 구리지 않고서야 보이지 않을 반응.

의미가 없었다. 세 S급 이능력자들이 주축이 되어 덤비자, 오래지 않아 결판이 났다. 오히려 반항하다가 사상자만 무더기로 발생했다.

병사들이 짐을 바닥에다 흩뿌렸다.

찰캉, 창창!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기계 괴수를 사냥하고 얻었던 전리품들. 빼도 박도 못할 완벽한 증거였다.

다른 종족들이 흥분하여 달려들었다.

[맙소사! 정말이잖아?]

[이 똥물에 튀겨 죽일 자식들!]

꽤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모두들 흥분을 가라앉혔다.

먼저 전리품의 수를 확인했다.

도난당한 전리품의 목록과 일치했다. 다행히 그 사이 어디 숨겨놓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걸 확인한 후 쿠시아르로 복귀했다.

수한의 옆에 있던 기나리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네요. 같은 기계 괴수와 맞서 싸운 전우인데, 설마 이럴 줄은 몰랐어요.]

[지구에는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거지요. 그걸 억제하지 못한 저들의 잘못입니다.]

어쨌든 물건을 되찾았으니 됐다.

시장은 오르페 행성인과 슈뒤 행성인에게 주기로 했던 몫을 압수했다.

정확히 5%.

나름대로 활약을 했던 종족들이라 이만큼씩 받아가기로 했던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으니 이젠 무효가 되어 버렸지만.

자기들이 가지나 했는데, 그걸 몽땅 지구인들에게 내밀었다.

[지구인 여러분이 범인들을 잡는데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저희의 성의입니다. 모쪼록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헛, 이런 것을 바란 건 아닙니다만……]

[받으세요. 사실 저희가 가지기도 어렵습니다. 전리품을 노리고 누명을 씌웠다고 할 지도 몰라요.

[그것도 그렇겠습니다. 그럼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원정대는 두 행성인의 몫을 냉큼 받았다.

기계 괴수 전리품의 5%면 수백 억이 넘는 가치가 있었다. 받을 수 있으면 어떻게든 받아내야 했다.

다른 종족들이 지구인들을 부럽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행동에 들어가는 종족은 없었다. 이번 절도 사건에 대한 쿠시아르 측의 대처를 봤기 때문이다.

그냥 전리품만 압류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모조리 손을 하나씩 자른 뒤 추방했다. 이능력자는 극독을 먹여 반쯤 폐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목숨을 거두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기라고 일갈했다.

케르베스 인의 잔혹한 면모가 드러난 처벌.

여기서 끝인 줄 아나?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격노한 시장이 케르베스 행성 전체로 이런 사실을 알렸다. 덕분에 다른 도시에서도 두 행성인이 추방당했다.

며칠 지난 다음에는 아예 오르페 행성과 슈뒤 행성과의 교류를 끊었다. 그 두 행성에서는 누구도 케르베스 행성으로 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타이누 행성이 지구에게 그랬던 것처럼, 관계가 회복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터였다.

상군이 그걸 보고 혀를 찼다.

“쯧쯧, 작은 걸 탐하다가 큰 걸 잃었네요. 원주민 세력과 척을 져선 될 일도 안 되는 법인데, 세상에는 그걸 모르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안 들킬 줄 알았겠죠.”

“며칠만 견디면 자기 행성으로 돌아가게 되니 그걸 믿었나 봅니다. 탐욕에 눈이 멀면,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것은 지구인이나 외계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긴 우리들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네요.”

“그렇죠. 씁쓸하게도, 지구인은 외계 범죄율이 가장 높은 종족 중 하나니까요.”

알바트로스 원정대도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이곳에 온 지 딱 2주가 지났다.

예방 접종 기간은 충분히 남아 있지만, 기계 괴수와 직접 싸웠다는 게 좀 불안했다. X-0는 신체를 변형시키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극미량만 체내에 남아 있어도 훗날 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얼른 지구로 돌아가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했다.

귀환하기 바로 전날.

기나리아가 할리온과 함께 수한을 찾아왔다.

둘은 친근하게 수한의 뺨을 핥았다. 새미가 눈에서 불을 켰지만, 케르베스 인에겐 이게 일상적인 인사인 것 같았다.

[내일 떠난다면서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아쉽소이다. 언젠가 또 볼 일이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시간이 나면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문전박대나 하지 마세요.]

[하하, 당연한 것 아니겠소.]

한담을 나누다가, 기나리아가 작은 상자를 꺼냈다.

수한은 엉겁결에 상자를 받아들었다.

이게 뭐지?

기나리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 신세를 진 것에 대해 감사 의미로 드리는 거예요.]

[아, 그거라면 압류된 전리품을 받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건 귀측 공격대에 대한 거고요. 이건 따로 드리는 거예요. 저희 케르베스 인은 은혜와 원한을 확실히 갚는답니다.]

무게나 부피로 봐서는 힘의 결정이 아니다.

수한은 슬쩍 상자를 열어보았다.

작고 투명한 렌즈가 두 개 들어 있었다. 매미날개처럼 가볍고 투명해서, 잘못 만졌다간 그냥 깨져버릴 듯했다.

흡사 컨텍트 렌즈와 비슷한데, 그보다는 훨씬 컸다. 수한의 눈을 거의 다 뒤덮을 정도의 크기였다.

할리온이 설명을 해주었다.

[타이호크 영감님이 젊을 때 쓰시던 물건이라오. 눈에 쓰면 알아서 장착이 되는데, 투시 계열 이능의 효과를 보정해준다오. 겉으로 봐서는 착용했는지 어쨌는지 알 수가 없고, 쓰고 다녀도 불편한 게 없다고 하더이다. 분명 투시 계열 이능이 있는데도 물체 투시가 힘들다고 해서 이걸 준비했소.]

[A급 장비에요. 흔치 않은 투시 계열 장비니까 도움이 될 거예요.]

A급 장비!

할리온의 설명보다도, 기나리아의 언질에 확연히 그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수한은 조심스럽게 두 눈에 렌즈를 부착했다.

얼음물로 씻은 듯 차가운 느낌이 전해졌다. 렌즈 두 개가 녹아내리더니, 수한의 눈으로 흡수되었다.

벽을 보며 주시자의 눈을 끌어올렸다.

원래는 환상이나 이능을 간파하는 것 말고는 좀 약한 편이었던 주시자의 눈.

그런데 이제는 반대편이 투시가 되었다. 선명하게는 아니어도, 뭐가 있는지, 누가 하품을 쩍쩍 하는지 구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지 능력이나 독심 능력도 상승했겠지.

수한은 정중히 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게 정말 필요하던 물건입니다. 감사합니다.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다행이네요. 타이호크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대가 우리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오. 하마터면 크나큰 불명예를 얻을 뻔 했소이다. 언제라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만 주시오. 바로 달려가겠소.]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참 좋은 물건을 얻었다.

그런데 기나리아는 좀 아쉬워했다. 원래는 무기류나 방어구류를 주려고 했는데, 수한이 쓸 만 한 게 없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칼이나 창 같은 근접 무기이고, 방어구도 갑옷 종류였다나.

상관없는 일이다.

수한에겐 그런 것보다 이 렌즈 한 쌍이 훨씬 가치가 있었으니까.

도둑을 잡으면서 레벨도 1 오르고, 직감도 1이 올랐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새로운 장비까지 얻었다.

둘은 금방 돌아갔다. 옆에 있던 새미도 찡그렸던 얼굴을 풀고 축하해주었다.

수한은 장비창을 확인했다.

새로운 물건이 보였다.

케르베스 식 투시 렌즈.

희귀 등급.

지금 수한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 가장 좋은 것은 새미가 선물해준 양품 권총이었다. 그것보다 높은 등급인 것은 확실한데, 사이에 뭐가 더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좋다.

이번 원정은 대성공이었다.

알바트로스의 입장에서 봐도 그렇고, 수한 개인의 입장에서 봐도 그러했다.

더구나 이번 원정에서 수한의 역할이 지대하지 않았나.

그런 만큼 알바트로스에서 배당만큼만 돈을 줄 가능성은 적었다. 사기 진작 측면에서라도 상여금을 팍팍 주거나 다른 뭔가를 주는 형태로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다.

드디어 귀환일이 다가왔다.

쿠시아르 측 인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시장, 기나리아, 할리온, 고위 이능력자들, 고위 직원들, 고위 장교들……

그들이 열렬히 환송을 해주었다.

다른 공격대들은 받지 못했던 대우.

정중히 인사를 하고, 2주 간의 여정을 뒤로 한 채 케르베스 행성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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