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67화 (68/254)

< 승급 >

수호자 백화점.

예전에 힘의 결정을 사기 위해 왔던 곳이다.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이능력자들이 아주 드글드글 했다. 외계 종족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도 두 번째 오는 거여서 그런지 예전보다는 신기한 감정이 덜했다. 수한은 평소처럼 덤덤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미는 긴장되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

“14층으로 가야 하지?”

“응. 아, 떨린다.”

“여기서 바로 흡수할 거야?”

“응. 집에 갖고 가다가 도둑질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 뒤처리하기도 힘들잖아. 그냥 여기서 흡수하고 가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하긴 수한도 처음 힘의 결정을 흡수할 때 뒤처리를 하느라 고생했었지.

힘의 결정을 흡수하다가 똥오줌을 지린 사람도 있다고 했다. 수한처럼 피범벅으로 끝나면 오히려 양호한 거라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까지 직행했다.

14층에서는 B급과 A급, AA급 힘의 결정을 팔았다.

가장 싼 게 수십억을 호가하는 물건이었다. 자연히 손님은 몇 명 없었다. 소파에 앉아 직원의 설명을 듣거나,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힘의 결정을 구경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근처의 직원이 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힘의 결정을 보러 왔는데요, A급 구현 계열 힘의 결정 1개랑 B급 변조 계열 힘의 결정 1개를 구입하려고 합니다.”

“아, 그러십니까? 혹시 1분이 구입하시는 겁니까?”

“아뇨. 따로 구입할 거예요.”

그 말에 직원 한 명이 더 달라붙었다.

변조 계열 힘의 결정은 조금 비싼 편이었다.

예전에 투시 계열 힘의 결정을 살 때는 다른 계열 힘의 결정보다 조금 싼 가격에 샀다. 그런데 변조 계열 힘의 결정은 대충 5%는 더 돈을 줘야 했다.

하긴 새미가 사려고 하는 구현 계열보다는 나았다. 구현 계열은 일괄적으로 10%가 비쌌기 때문이다.

수한은 정확히 31억짜리를 샀다. 신속 계열 힘의 결정도 사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돈이 모자랐다.

그 다음은 새미 차례.

각자 힘의 결정 하나씩을 챙긴 후, 백화점 내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당장 흡수를 시도할 수는 없지 않겠나. 최소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해야지.

둘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긴장 된다.”

“휴, 그러게.”

“그런데 오빠는 C급 몇 개 더 사지 않아도 괜찮겠어? 난 B급 힘의 결정을 몇 개 흡수해서 확률을 높였는데, 오빤 그러지도 않았잖아.”

“그렇긴 한데, 이상하게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감이 온다고 할까?”

“오빤 감이 좋은 편이긴 한데……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비상 버튼 눌러. 알았지?”

“걱정 마. 나도 목숨 무거운 줄은 알아.”

“어휴, 왜 이렇게 안심이 안 되지.”

“둘 다 멋지게 성공해야지. 그래야 기분 좋게 유럽도 갖다 올 거 아냐.”

“맞아. 승급 실패하면, 유럽 가도 재미가 없겠지?”

“하하. 성공하면 기분 좋게 가고, 아니면 기분 전환하고 오면 되지 뭘. 마음 편하게 도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오빠 말이 맞아. 이제 시작할까?”

“좋아. 들어가자.”

“오빠, 파이팅!”

“자기도 힘내! 웃으면서 보자!”

각자 배정된 밀실로 들어갔다.

밀실 안에서 수한은 옷을 벗고 누웠다.

부드러운 침대보가 수한을 푹신하게 받아주었다.

벌써 몇 번이나 겪는 상황이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벌거벗고 수갑과 족쇄를 찼다. 마우스피스도 입에 문 뒤, 나무 상자를 열었다.

강렬한 힘을 뿜는 결정 하나가 보였다.

B급 변조 계열 힘의 결정.

그것을 보자 입안이 바싹 말랐다.

이걸 흡수하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렸다.

수한은 힘의 결정을 가슴 위에 올렸다. 차가운 금속성 감촉에 심장이 꽁꽁 얼어붙는 것 같았다.

심호흡을 몇 번 했다.

두 손으로 힘의 결정을 감쌌다.

한 동안 정신을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두 손에 힘을 줘 힘의 결정을 부수었다.

파직!

수수깡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투명한 액체가 점점이 흘러나왔다.

얼음처럼 차디찬 액체.

그것이 수한의 가슴을 통과했다. 피부고 갈비뼈고 상관 없이 수한의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두근!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수한은 이를 악물고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격통이 수한을 점령했다.

예전에 C급 힘의 결정을 흡수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전신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칼로 살점을 하나하나 져미고, 신경을 마구 헤집는 듯했다.

핏물이 흘렀다.

몸부림치는 수한의 몸에서 번진 피가, 침대보를 시뻘겋게 물들였다.

몇 시간이 지났다.

수한의 몸이 축 늘어졌다. 한동안 엎드려 있다가, 겨우 몸을 굴려 천장을 보았다.

“헉, 허억, 헉, 헉.”

가쁜 숨이 마구 토해졌다.

세상이 노랬다. 마구 빙글빙글 돌았다.

한참이나 대자로 뻗어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흡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한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천천히 레벨 업 도우미의 초능창을 확인했다.

만물 변환 점수 60점.

역시 하급 힘의 결정이 들이는 돈에 비해 올라가는 점수는 더 많았다. 문제는 회색 송곳니 부족에게 받았던 힘의 결정을 흡수했던 때처럼, 2번째 같은 계열 같은 등급 힘의 결정을 흡수하면 그만큼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

별 수 없었다.

앞으로도 돈을 벌어서 상급 힘의 결정을 산 다음 흡수하는 수밖에.

수한은 구속구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밀실 구석에 있는 샤워실에서 몸을 씻은 후, 옷장에 넣어둔 옷을 입었다.

문득 방금 전까지 누워 있던 침대를 돌아보았다.

아주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새삼 몸이 떨렸다.

정말이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차라리 힘의 결정을 그만 흡수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도 B급 이능력자였다. 그만하면 평생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사회 상층부에 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 수 있었다.

굳이 이런 고통을 겪어가며 승급할 필요가 있나?

“아냐.”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먹고 살기만 할 거면 이렇게 힘들게 외계 행성으로 원정 다닐 필요 뭐가 있나. 그냥 세라프 어 실력 살려서 공무원으로 취직하고 말지.

레벨 업 도우미로 얻은 기회.

기적처럼 습득한 이 기회를, 그냥 풍족하게 사는 정도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에 우뚝 서고 싶었다.

미국의 그랜드 공격대나 중국의 천룡 공격대처럼 강하고 거대한 공격대를 창설하여, 지구는 물론 전 차원계에 이름을 날리는 것이 수한의 새로운 인생 목표였다.

옷을 입고 밀실 밖으로 나왔다.

만물 변환 점수는 몽땅 상급 속성 부여에 집어넣었다.

이것으로 상급 속성 부여는 99레벨.

진화까지는 1레벨만 남겨두고 있었다. 수한이 아껴둔 초능 점수가 좀 있으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진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랬다가 이능 인증에서 A급이 툭 나와 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흡수한 힘의 결정 보다 높은 등급으로 승급할 수 없다는 것은 종족 연합 전체의 상식이다. 지구만이 아니라 어떤 종족에서도 그런 경우가 보고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수한은 이능 인증을 받을 때 등급을 조절하곤 했다. 괜한 시선을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한쪽에 앉아 새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점심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백화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딱 맞춰 왔는데, 오전이 다 지나간 것이다.

몇 시간이 더 지나야 새미가 나올 듯했다.

A급 힘의 결정을 흡수하고 있으니까. 등급이 높은 힘의 결정을 흡수하면 그만큼 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정확히 두 시간이 지났다.

밀실의 문이 열리며, 새미가 초췌한 얼굴을 하고 나왔다.

수한은 급히 새미를 부축해 주었다.

“괜찮아? 많이 힘들었지?”

“응, 죽는 줄 알았어. 으으으, 난 그냥 여기서 멈춰야지. AA급은 죽었다 깨나도 안 되겠어.”

그 말에 수한의 손이 잠깐 멈췄다.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수한은 자기가 A급 이능력자가 된 것처럼 기뻐했다.

“성공했구나! 축하해! 그럼 이제 A급 이능력자야?”

“응. 그런 것 같아. 자세한 건 인증 받아봐야 알겠지. 오빠는 어땠어? 성공한 것 같아?”

“나도 성공했어. 그런데 B급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피이, 성공했으면 B급 이능력자지, 잘 모르는 건 또 뭐야?”

“인증 받아보면 알겠지. 좀 쉬었다가 인증 받아보자. 너 시간은 괜찮아?”

“응. 오늘 하루 종일 비워놨어. 밥부터 먹자. 나 배고파.”

그 소리를 들으니 수한도 갑자기 배가 심하게 고팠다. 둘은 근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오후 내내 수호자 연맹 지부에서 이능 인증을 거쳤다.

인증 결과를 확인한 수한이 씩 웃었다.

[이능 인증 결과]

이름 : 이수한 나이 : 26  성별 : 남

신장 : 185cm 체중 : 90kg

주민등록번호 : 910315-1284953

종족 : 인간 진영 : 지구

등급 : B* 속성 : 사격

거력 Z* 강체 Z* 신속 E* 감각 Z* 정신 Z* 의지 Z*

구현 Z* 외능 Z* 소환 Z* 변조 B* 투시 C* 영혼 Z*

이능 : 총알 속성 부여(B), 주시자의 눈(C), 급속 이동(E)]

옆에서 결과를 같이 본 새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뭐야 이거? 나 이런 거 처음 봐. 12 계열 전부 다 별표가 박혔네?”

“이게 힘의 결정 흡수했을 때 각성 확률 절반 넘어야 나온 댔지?”

“응. 자연 각성자라 그럴까? 신속 계열 이능 좀 승급시킨 다음에 다른 계열도 각성하면 좋겠다.”

“그래야지.”

새미도 이능 인증에서 A급 이능력자로 판명났다.

B급 이능력자도 대단하지만, A급 이능력자는 더 대단했다.

알바트로스에서도 10명 정도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보아도, 기껏 300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더구나 새미는 이제 갓 22살에 불과했다. 앞으로 AA급, S급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어쩌면 지구인의 한계라는 SS급까지 나아갈지도 몰랐다.

수한이 새미를 축하해주었다.

“축하해! 이제 자기도 공격대들 등살에 시달리겠는 걸?”

“그러게. 차라리 실패했으면 그냥 포기하고 수호자 연맹 들어갔을 텐데……”

“외계 행성 더 돌아다니라는 운명의 계시인가 봐.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다니자. 알바트로스도 특수 원정팀 만든다고 하니까 거기 들어가면 돼. 특수 원정팀은 지원 요원이랑 이능력자를 같이 뽑잖아.”

“그럴까?”

“저번처럼 또 떨어져서 위험해지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 같이 다녀야 서로 도와줄 수 있지.”

“그건 그래.”

승급 사실은 먼저 서로의 가족들에게만 알렸다.

조촐한 파티가 벌어졌다.

수한의 가족들과 새미, 그리고 미현이 참석했다. 새미의 부모님은 외교관이라 해외에 거주 중이니 어쩔 수 없었고.

“승급을 축하합니다!”

“형, 축하해!”

“누나도 축하해요. 우와, 22살에 A급 이능력자라니 정말 대단하네요!”

“호호, 고마워.”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뭔데?”

“누나 같이 예쁘고 능력도 있는 분이 어째서 우리 형 같은 흔남이랑 사귀는지…… 아야! 형! 아파!”

수한은 기한의 귀를 힘껏 잡아 비틀었다.

기한이 죽는다고 엄살을 피웠다.

귀를 놓아주자, 수한을 피해 탁자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꿍얼거리며 탁자를 긁었다.

“여친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흥, 나는 새미 누나보다 더 예쁜 여자랑 사귀어야지.”

“우리 새미보다 더 예쁜 여자가 세상에 있을까?”

“우와! 말하는 것 좀 봐!”

“우리 형이 원래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었어? 여친 생겼다고 사람이 완전 달라졌네!”

최근 좋은 일이 연달아 있었던 까닭에 분위기는 좋았다.

수한의 경우도 그렇고, 기한도 목표로 삼았던 S대 세라프 어문 학과에 최종 합격을 했던 것이다.

발표는 진작 났지만 수한이 입원해 있던 참이라 제대로 축하해 주지는 못했다. 이 자리는 수한과 새미의 승급을 축하하면서, 동시에 기한의 대학교 합격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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