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71화 (72/254)

< 유럽 여행 -3- >

소총을 연발로 놓고 갈겼다.

총구가 불을 뿜자 변이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육중한 몸이 무색하게, 변이체들이 볼링공에 맞은 핀처럼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흡사 거인이 하나 있어 변이체들을 후려친 듯한 광경이었다.

강타 속성의 위력.

실질적인 공격력은 발휘할 수 없어도, 이런 상황에서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수한은 권총을 들어 낙하하는 변이체들을 하나하나 공격했다. 유도 속성이 또 발현되며, 놈들의 몸이 희멀건 한 빛에 감싸였다.

“합!”

새미가 기합을 질렀다.

아까의 번개 폭풍만큼은 못해도 강렬한 빛줄기가 꽂혔다.

더구나 금세 소총의 탄창을 교환한 수한이 사격에 가담했다. 파괴 속성으로 마음껏 갈기자, 변이체들이 산산조각 나며 녹색 액체가 잔뜩 번졌다.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몇 마리가 도망치려고 했지만, 모조리 끝장을 냈다.

바다 깊은 곳으로 잠수하여 도망친 녀석도 있었다.

문제는 아가미가 없어 결국은 숨을 쉬러 올라와야 한다는 것.

1시간이나 넘게 잠수했지만, 헬기는 탐지기를 이용해 집요하게 변이체를 쫓았다. 호흡을 하러 수면까지 올라왔다가 수한의 총알 1방에 목숨을 잃었다.

“끝난 겁니까?”

프랑스 인 이능력자들이 경의에 찬 얼굴로 물었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탐지했던 무리는 다 제거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헬기가 기수를 돌렸다.

군함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변이체가 잠수에 주력한 까닭에, 많이 도망치지는 못했던 것이다.

헬기가 군함에 내려앉자, 일단의 군인들이 다가왔다.

수한은 가장 앞에 선 군인을 눈여겨보았다.

40대 초반의 남자.

닻 모양 표식 아래, 노란 줄 세 개와 흰 줄 두 개가 교차하는 계급장을 차고 있었다.

호위 함장(Capitaine de fregate), 한국식으로 치면 중령.

중령이 손을 내밀었다.

“호위 함장 에밀 클레르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수한은 호의적으로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 어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 기색을 눈치 챈 중령이 영어로 다시 말했다. 그제야 수한은 중령의 말을 알아들었다.

새미까지 인사를 하고, 중령이 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두 분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두 분이 아니었으면 큰 일이 났을 겁니다.”

“뭘요. 할 일을 한 건데요.”

“저희가 도움이 돼서 다행이네요.”

둘은 겸양의 말을 몇 번 했다.

중령은 둘의 옷을 한 번 살폈다. 그러더니 지나가듯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프랑스에는 관광하러 오신 겁니까?”

“예. 여행 중입니다.”

“그럼 저희가 두 분을 초청해도 되겠습니까?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조금이나마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수한과 새미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새미의 얼굴에, 미세하게 꺼려하는 기색이 나타나 있었다.

오붓하게 둘이서 여행을 왔는데, 굳이 다른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지 않은가 보다.

수한은 중령의 청을 거절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는 둘만 있고 싶습니다. 오래 체류하기도 힘든데, 여기저기 끌려 다니고 싶지는 않네요.”

“아!”

중령이 탄성을 지르더니 둘을 번갈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하긴 소중한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법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연락처는 알려주시겠습니까? 저희도 상부에 보고할 것은 있어야 하니까요.”

둘은 중령에게 인적 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래야 프랑스 측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중령은 군용 헬기로 둘을 칼레까지 태워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항구에 도착하면 군용차로 역까지 옮겨다 주겠다고 까지 했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어, 그 제의를 수락했다.

뻥! 뻥!

헬기가 남동쪽을 향해 날자, 프랑스 군함이 포를 들어 허공에다 대고 발사했다.

새미가 깜짝 놀라 수한에게 덥석 안겼다.

수한이 낮게 웃었다.

“하하, 예포 터뜨리는 거야. 무서워할 거 없어.”

“누가 무서워했다고 그래?”

“그럼 왜 안긴 거야?”

“안기고 싶어서 그랬다, 뭐!”

“하하하하.”

발갛게 달아오른 새미의 얼굴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수한은 새미의 뺨에 대고 쪽 하고 입술을 맞췄다.

칼레에 도착한 후, 역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수호자 연맹 칼레 지부에 들렀다. 도버 해협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칼레 지부도 이미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당사자들의 말을 직접 듣는 것보다는 못할 것이다.

“큰일이야. 다시 제국의 공격이 시작된 걸까?”

지부를 나오면서, 새미가 근심어린 얼굴로 말했다.

“모르겠어. 지금까진 항상 기계 괴수를 앞세워서 공격했었는데……”

속이 답답했다.

하지만 지금 수한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방금처럼 수호자 연맹 지부에 들려 사실을 제보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 날 저녁, 도버 해협에서 있었던 일이 영국과 프랑스 전역에 대서특필되었다.

B급 돌고래 변이체에 의해 공격당한 세잔 호.

세잔 호의 사람들을 구출하고, 연이어 습격한 변이체들을 퇴치한 동양의 이능력자들.

수한과 새미의 사진이 양 국가에 알려졌다.

다음날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더니, 호텔 총지배인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귀빈들께서 머물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예.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두 분의 객실을 상위 등급으로 바꿔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룸 업그레이드요? 좋죠.”

“낮 동안 파리 시내를 관광하실 계획이시죠? 그 동안 저희가 짐을 옮겨 놓겠습니다. 들어오시면 카운터에 잠깐 들러주세요.”

관광 안내인까지 붙여주겠다는 것을 거절했다.

세계적으로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언제 새미와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지 알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을 끼워 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관광하는 동안 둘을 알아보는 이들이 몇 있었다.

사진을 찍는다, 사인을 받는다, 야단이었다. 심지어 기자 몇 명이 쫓아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에펠 탑에 올라가보고, 세느 강 유람선도 타고, 개선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었다.

호텔로 돌아오자, 으리으리한 스위트룸이 둘을 반겼다.

“우와! 방이 너무 예뻐!”

새미가 탄성을 질렀다.

호텔 꼭대기 층에 위치한 방이었다. 파리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거실에 고급스러운 가구가 즐비했다. 침실과 화장실도 여러 개여서, 마음 놓고 개인적인 일을 볼 수가 있었다.

새미가 수한을 돌아보았다.

“오빠 어디서 잘 거야?”

그 얼굴에 서린 장난기에 수한은 피식 웃었다.

“글쎄, 자기 품속에서 잠들고 싶은 걸?”

“뭐? 에잇, 변태!”

새미가 수한을 꼬집었다.

프랑스 체류 마지막 날.

둘은 프랑스 정부의 초청을 받았다.

어지간하면 무시하고 다음 일정으로 떠나겠는데, 발신자가 문제였다.

프랑스 대통령.

일국의 원수가 직접 초청장을 보냈다. 그런데 그냥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독일 일정을 뒤로 미루고 엘리제 궁으로 들어갔다.

프랑스의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했다.

식사를 하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대한민국의 알바트로스 공격대 소속이시라고요?”

“예. 작지만 실속 있는 공격대입니다.”

“두 분을 보면 알바트로스도 어떤 공격대일지 짐작이 갑니다. 아직 결혼은 안 하셨고요?”

“네. 둘 다 젊어서요.”

“24살, 21살(만 나이)이라고 하셨는데…… 전 25살에 결혼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굳이 미룰 필요 없어요.”

대통령이 영부인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영부인이 수줍게 웃었다.

둘 다 머리가 하얗게 새었는데도, 금슬이 좋기로 소문난 잉꼬 부부였다. 수한은 프랑스 대통령 부부가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두 분께 모든 영국 국민을 대신하여 감사드려요.”

오찬에는 금발의 미녀 한 명이 함께 참석하고 있었다.

누군가 했는데, 영국의 공주라고 했다.

이름이 메리라던가.

마침 모종의 일로 프랑스에 체류 중이었다. 그래서 영국 정부와 왕실에서도 둘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메리 공주를 보냈다.

대통령이 호의적인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바로 독일로 가신다고 했지요?”

“예. 일정을 좀 빡빡하게 잡아서요.”

“두 분께서 도버 해협에서 하신 일은 말로 감사의 표현을 다 못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소정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대통령이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앙증맞은 꼬맹이들이 길쭉한 상자를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정확히 두 개.

수한과 새미가 각자 상자를 받아들었다.

대통령이 웃으며 상자를 가리켰다.

“풀어보세요.”

뭐가 들어 있을까?

영국과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5위권을 다투는 이능력자 강국이었다. 그건 나라에서 보상 격으로 주는 선물인데, 간단한 것을 줄 리 없었다.

수한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상자를 개봉했다.

순간, 맑은 광채가 수한의 눈을 찔렀다.

“아!”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화려하게 장식된 총 한 자루가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

지구의 돌격소총과 비슷하다.

두툼한 개머리판이 뒤쪽에 위치하고, 총열이 시원스럽게 뻗어 있었다. 온갖 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보석들이 박혀 빛을 뿌렸다.

총 자체에서 은은한 빛이 퍼져 나왔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상쾌해지는 빛이었다. 꼭 자신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총 스스로가 웅변하는 것 같았다.

수한은 홀린 듯 총을 집어 들었다.

버릇처럼 약실 안을 살피자, 세라프 문자 몇 개가 보였다.

[노르헤임의 토프레 가문, 바자크의 아들 바일라.]

응?

익숙한 이름이다.

새미가 선물해 준 권총에도 비슷한 이름이 쓰여 있지 않나.

그러나 권총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성능이 천양지차였기 때문이다.

몇 가지 마법이 걸려 있었다.

총알에 힘을 부여하여 총알의 위력을 강화하는 마법, 더 멀리까지 날아가게 하는 마법, 고장이 나도 가만히 놔두면 스스로 복구되는 마법 등등.

탄창 세 개가 딸려왔다.

노르헤임 행성의 기술력이 집중된 물건이었다. 크기는 지구의 소총 탄창과 비슷한데, 용량은 2배가 넘었다. 탄창 1개마다 총알 60발씩이 들어갔다. 더구나 바닥난 탄창에 이능력자가 힘을 주입하면 총알이 저절로 보충되었다.

지구의 화약총과는 그 개념 자체가 다른 총.

굳이 이름 붙이자면 마법 소총 정도 될까.

정확도가 지구의 유명 저격총보다 몇 배 더 뛰어난 물건이었다. 앞으로는 굳이 저격총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스코프도 주시자의 눈으로 대체가 가능하니까.

“우와!”

옆에서 새미도 감탄을 터뜨렸다.

새미의 상자에 들어있던 것은 장신구 세트 한 벌. 목걸이와 귀걸이, 반지 한 개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뚜렷하게 고정된 형체가 없다는 점이다.

대신 다른 것들이 장신구 끄트머리에 맺혔다.

화사한 불꽃, 차가운 냉기, 소용돌이치는 바람.

구현 계열 이능력자들이 흔히 구현하곤 하는 자연 현상이었다. 신기하게도 그것들이 장신구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장신구 세트의 이름을 읊조렸다.

“천지격변 세트?”

유명한 A급 이능 장비였다.

불, 얼음, 바람 이 세 속성의 힘을 제한적으로나마 사용하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인기가 무척 높았다.

수한이 받은 마법 소총, 새미가 받은 천지격변 세트.

둘 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물건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감사해요, 대통령님. 공주님.”

“천만의 말씀을. 두 분께서 우리 프랑스에 베푼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두 분 덕에 우리 영국 국민들이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몰라요. 지구에 태양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그날까지, 우리 영국은 두 분의 도움을 기억할 거예요.”

한동안 덕담이 오갔다.

수한은 소중하게 마법 소총과 마법 탄창을 갈무리했다.

레벨 업 도우미가 판명한 마법 소총의 등급은 희귀.

이능력자만을 위한 장비는 아니지만, A급 이능 장비에 준한다는 뜻이다.

변이체를 잡아 레벨이 오른 것도 좋은데, 이렇게 총도 얻자 기분이 꽤 상쾌했다.

현재 수한의 레벨은 142.

잘하면 다음 원정에서 4번째 초능을 개방할 수도 있겠다.

만찬이 끝나고 독일로 이동했다.

독일에서의 일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동안, 지구 전역에서 B급과 C급 변이체가 목격되었다.

모두 바다.

대규모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구의 언론은 마치 10년 전 대전쟁이 재현될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어느새 2주가 모두 지났다.

유럽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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