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입 제안 >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멀고 먼 유럽에서 벌어진 일인데, 벌써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모양이었다.
기자들이 몰려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도버 해협의 영웅들 맞으시죠?”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한바탕 홍역을 겪은 후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새미가 진저리를 쳤다.
“저 사람들 너무 심하다. 적당히 하고 놔주지 좀.”
“그러게 말이야.”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숨을 돌렸다.
헤어지기 직전, 새미가 수한의 등을 토닥였다.
“시험 잘 봐! 준비 제대로 못 했는데 괜찮겠어?”
“걱정 마. 평소 실력대로 보는 거지 뭐.”
수한은 진작 SPT 2급 시험을 신청했다.
그게 시행되는 게 바로 내일, 2월 14일이었다.
별로 걱정하진 않았다.
수한의 세라프 어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으니까.
시험은 14일 하루 종일 치러졌다.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모든 문제를 수월하게 쭉쭉 풀어나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잠깐 생각하다가 세라프 어와 세라프 문자 기술 모두 15까지 투자했다. 어차피 세라프 어는 잘 하면 잘 할수록 좋으니까.
그 뒤로는 막힘이 없었다.
수한은 합격을 확신했다.
저녁은 새미와 함께 보냈다. 어제까지도 계속 붙어 있었지만, 서울에서 데이트를 하니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다음날 수한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모르는 전화 번호.
그냥 끊어버리려다,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알바트로스의 이수한씨 핸드폰 맞습니까?]
[맞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타이탄 공격대의 인사부장을 맡고 있는 고경두라고 합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어떠십니까?]
타이탄 공격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대였다.
지구의 모든 공격대를 다 따져 봐도 상위 20위권 안에 들었다. 지금 수한이 몸담고 있는 알바트로스와는 비교를 불허했다.
타이탄 공격대에서 수한에게 무슨 일일까?
설마 영입?
하긴 수한처럼 세라프 어에 능통한 이능력자는 드물었다. 지원 요원으로서의 능력까지 있으면 더욱 그러했다.
수한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타이탄 공격대요? 타이탄 공격대에서 저한테 전화 올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무슨 일입니까?]
[유선상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그런데,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뭐, 좋습니다. 언제 뵐까요?]
만나서 얘기하는 것쯤이야.
수한이 승낙하자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전 지금 당장이라도 좋습니다. 지금 갈까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인사부장이면 바쁘실 텐데요.]
[그 정도 시간은 있습니다.]
1시간 뒤, 수한의 집 앞에서 보기로 했다.
경두는 수한이 강북에 산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주소는 몰랐다. 수한은 집 근처에 있는 한 카페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수한은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카페에서 얼마간 기다리자,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중년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가 수한을 보더니 똑바로 걸어왔다.
“반갑습니다. 고경두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수한은 경두와 가볍게 악수를 했다.
경두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직접 보니 정말 훤칠하십니다. 남자답게 잘 생기셨어요.”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커피라도 한 잔 하실래요?”
“어휴, 제가 사야지요.”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경두가 운을 떼었다.
“수한씨에 대해서는 익히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에 도버 해협에서 변이체들로부터 시민들을 구하셨다고요.”
“운이 좋았지요.”
“하하, 저희도 귀가 있습니다. 단순히 운이 좋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저번에 세라프 재판을 성사시킨 것도 수한씨고, 이번에 기계 괴수의 부품을 많이 챙겨온 것에도 수한씨의 공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알바트로스 내에 정탐꾼이라도 있는 걸까.
수한의 행적을 죄다 알고 있었다.
한동안 수한의 얼굴에 금칠을 했다. 대단하다느니, 감동 받았다느니 하여 수한의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짐짓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수한씨가 본인의 능력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흠, 그렇습니까?”
“예. 아무리 수한씨의 경력이 일천하다고 해도 일개 사원에 머물러 있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겨우 지원 2과에 있는 것도 그렇고요. 당연히 특수 원정팀에 들어가야지요.”
경두의 화술은 상당히 빼어났다.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그 화술에 빠져 허우적댈 것 같았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경두가 하자는 대로 끌려가겠지.
“그래서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단번에 핵심을 짚자, 경두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간단합니다. 연봉 10억에 배당 50몫, 그리고 저희 공격대에 있는 특수 지원팀의 주임으로 모시겠습니다.”
알바트로스가 저번에 제시했던 게 연봉 6억에 배당 40몫이었다. 주임을 다는 것은 같지만, 조건이 꽤 차이가 난다.
더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더 있었다.
알바트로스의 특수 지원팀은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다. 반면 타이탄은 3개나 되는 특수 지원팀을 굴리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무난하게 순서대로 원정을 나갈 수 있다는 소리다.
솔직히 말해서 꽤 솔깃했다.
타이탄 공격대의 특수 원정팀이다. 대한민국 내에서 쌓을 수 있는 경력으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바트로스도 매력이 있는 공격대였다. 임원진 및 동료들과 사이도 좋고, 돈도 충분히 벌고 있어 별로 떠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기계 괴수를 못 잡고 있다는 것.
A급, AA급 힘의 결정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한다. 그에 반해 S급 이상 힘의 결정은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지금이야 상관없지만, 나중에는 어쩔 줄 모르는 일.
어차피 당장 결정할 수는 없었다.
좀 더 생각을 해봐야지.
“좋은 조건이고, 좋은 직무네요. 그런데 제가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서 아직 계약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압니다. 오는 6월에 계약 종료지요? 그 전에 미리 운만 띄우러 온 겁니다. 다른 공격대에게 놓치기 싫을 정도로 재주 있는 분이어서요.”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심사숙고해서 결정하시는 게 좋지요. 대신 한 가지만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대는 다름 아닌 타이탄입니다! 뭘 해도 타이탄과 함께 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말을 남기고, 경두는 자리를 떴다.
수한은 한참 동안 카페에 혼자 앉아 있었다.
타이탄 공격대로부터 들어온 제안에, 내심 매우 들뜨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민스러웠다.
조건만 따지고 보면 타이탄이 압승.
하지만 알바트로스에서 쌓은 것이 있으니 좀 아까웠다.
세르엘 종족과의 친분도 그렇고, 나날이 확대되어 가는 본인의 입지도 그렇고.
한참 고민 중인데, 수한의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전화가 몇 통 더 걸려온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백호 공격대 인사부장, 최석군이라고 합니다. 잠시 통화 어떠십니까?]
[레비아탄 공격대의 인사부장 강균입니다. 이수한씨 핸드폰 맞습니까? 꼭 드리고 싶은 제안이 있어 전화했습니다.]
타이탄 공격대까지 하면 무려 다섯 번의 전화.
혹시나 싶어 만나보자, 모두 수한을 자기들 공격대로 영입하고 싶다고 했다.
조건은 비슷했다.
연봉이나 배당에서 약간 차이가 있긴 했다. 대부분은 대동소이했고, 직급은 완벽하게 똑같았다.
알바트로스까지 합쳐서 총 여섯 개 공격대가 거의 같은 조건을 제시한 셈이다.
수한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이번 도버 해협 사건으로 시선을 많이 끌긴 끈 모양이다. 이능 인증을 받았을 때만 해도 특별한 연락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영입 제안이 폭주하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닐 걸?”
“그래?”
새미가 수한의 고민을 듣더니 말했다.
“응. 오빠도 이번에 제국이 전방위적으로 공격해 온 건 알지?”
“응. 우리가 갔던 케르베스 행성도 그렇게 당한 거잖아. 수호자넷 보니까 다른 행성도 많이 공격 당한 것 같더라.”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가봐. 케르베스 행성은 소형 기계 괴수만 나타나잖아? 그런데 중형이나 대형, 거대 기계 괴수가 나타난 행성도 많대. 몇 군데는 아예 멸망해버린 것 같아.”
“정말? 큰일 났네.”
“그게 다가 아니래. 새로운 종족이 사는 행성도 발견했다는데? 지구랑 비슷한 환경이라는 것 같아.”
“아하, 무슨 일인지 알겠다.”
거기까지 듣자 감을 잡았다.
기계 괴수들의 공격, 새로운 외계 행성의 출현.
그 때문에 공격대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특수 원정팀은 이 경우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으니까.
새미가 생글생글 웃었다.
“오빠 능력 있는데? 오빠 데려가려고 공격대들이 전부 달려드는 거잖아.”
“운이 좋아서 그런 거지. 기계 괴수들이 공격한 거 아니었으면 그냥 조용히 지나갔을 거야.”
“그러게.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결정했어?”
“더 생각해 봐야지. 인사부장님이랑 얘기도 해봐야 되니까.”
“오빠한테 가장 유리한 쪽으로 결정해. 난 항상 오빠 편이야.”
“그래, 고마워.”
각 공격대의 인사부장들을 만나는 동안 특별 휴가가 모두 끝이 났다.
오랜만에 알바트로스 사옥으로 출근하자, 동료들이 수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 수한씨. 어서 와요. 유럽은 잘 다녀왔어요?”
“완전 유명인사가 됐던데요?”
“안 다쳐서 다행입니다. 영상 보는데 조마조마했어요.”
지원 2과 사람들도 대부분 출근해 있었다.
몇 주 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반갑기 짝이 없었다.
당분간 한담을 나누다가 상군이 수한을 불렀다. 사무실 밖으로 데려가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데 수한씨, B급 이능력자가 됐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어디선가 정보를 입수했나 보다.
하긴 뉴스 영상만 봐도 알 터였다.
그 동안 외계 원정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케르베스 행성 원정으로 번 돈으로 B급 힘의 결정을 샀거든요. 다행히 진화에 성공했습니다.”
“허어, 축하드립니다. 수한씨는 성장이 굉장히 빠르네요. 각성한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B급이라니……”
상군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인사부장님과는 얘기해보셨습니까? 등급 올라갔으니 재협상해야지요.”
“예전에 조건은 맞춰 놨습니다. 따로 제의 받은 게 있어서, 요즘은 그거 고민하는 중입니다.”
“따로 제의 받은 거? 아하, 뭔지 알겠습니다. 그거죠?”
상군이 눈을 찡긋거렸다.
특수 원정팀.
본인이 팀장 후보다 보니 상군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한은 그냥 웃어 보였다.
그래도 다음 원정 시작 전에 인사부장과 의논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자기 몫을 제대로 못 받을 테니까.
오전 중에 인사부장과 연봉 협상을 했다.
조건이 더 좋아졌다.
처음 이능력자가 되었을 때, 수한은 한 가지 옵션을 받았다. 이대로 B급 이능력자가 될 경우, 기본급 6억에 배당 40몫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져서인지, 인사부장은 그때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연봉 9억, 배당 45몫.
“연봉과 배당 모두 최고 수준이에요. 우리 공격대 소속 B급 이능력자 중에서는 최고 대우입니다.”
넌지시 얘기하기를, 상군보다 더 좋은 대우라고 했다.
타이탄 공격대를 위시한 여러 공격대에서 수한에게 영입 제의를 한 것을 알았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한이 굳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조건을 올려줄 리 없었다.
미현과 상담한 후, 인사부장의 조건을 수락했다.
계약기간은 여전히 6월 30일까지.
그 이후 수한은 자유의 몸이 된다. 그때까지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몸값을 불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밀고 당기기를 하는 동안, 다음으로 원정 나갈 행성이 결정되었다.
노르헤임 행성.
수한에겐 익숙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