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워프 -1- >
새미에게 선물 받은 권총과, 불과 며칠 전 프랑스와 영국 두 곳으로부터 받은 소총을 생산한 곳이 바로 노르헤임 행성 아닌가.
반가우면서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거긴 기계 괴수 몽땅 잡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변이체도 기껏해야 D등급 나온다고 들었습니다만.”
“정보부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지금은 B급 변이체와 A급 변이체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다른 공격대에서 진출하기 전, 우리가 먼저 원정을 가는 게 어떻겠냐고 임원 회의에서 말이 나왔답니다.”
“기계 괴수가 나온 것도 아닌데 고위 변이체들이 나타났다고요? 이상하네요.”
“예. 이상하지요. 어디서 본 상황 아닙니까?”
상군의 말에 분위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지구도 그러했다.
가면 갈수록 고위 변이체들이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었다.
아직 변이체들의 활동 범위가 넓지 않고, 수호자 연맹과 각국이 나서 적극적으로 토벌하고 있어 피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 피해가 커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노르헤임 행성의 변이체들은 바위산 높은 곳에서 출현한답니다. 기왕 원정 가는 김에, 어째서 고위 변이체들이 갑자기 나타났는지 알아오면 좋을 겁니다. 이번 원정에는 전투 2과, 지원 2과, 지원 3과가 포함됩니다.”
그 정도면 현재 갈태수 사장과 원정 중인 전투 1과, 지원 1과를 제외한 알바트로스의 핵심 전력 전부가 나가는 거였다.
“우리 공격대에서 주도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수한이 묻자, 상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수호자 연맹에서 들어온 의뢰입니다. 현재 지구 말고도 고위 변이체가 갑자기 출현한 행성이 꽤 있는데, 그곳에 원정가서 원인을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지구 방어는요?”
“수호자 연맹이 총동원되었으니 기계 괴수들이 수십 마리 공격해 오지 않는 한 무리는 없을 겁니다. 공격대의 모든 전력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지요.”
지원 2과와 지원 3과가 함께 하는 원정이었다. 거의 매일 같이 합동 회의가 열렸다.
기세 싸움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둘 다 알바트로스 지원부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기 때문이다. 가끔은 유치한 말다툼을 벌여서, 수한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도 원정 계획은 차곡차곡 준비되었다. 노르헤임 행성으로 원정가기로 결정한지 겨우 1주일 만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모레 출발합니다. 그때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세요. 예방 접종은 다 맞으셨죠?”
“예. 출발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원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변수가 많습니다. 본인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3과보다 앞서 나가야 합니다. 아셨죠?”
특수 원정팀 구성이 코앞에 있어서일까.
상군의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평소에는 그런 기색이 없었는데, 지원 3과에 대한 경쟁심도 언뜻 보였다.
수한은 드워프 제 소총과 권총을 쓰다듬었다.
둘 다 노르헤임 행성 산이다.
그 중에서도 토프레 가문의 부자가 만든 것.
공교롭게도 알바트로스가 진입한 차원문은 드워프 왕국 내에 위치해 있었다. 토프레 가문의 영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못 찾아갈 정도는 아니었고.
어느새 출발하는 날이 되었다.
정확히 50명.
ATV 25대가 출발했다.
여의도의 대로를 가로질렀다. 차원문을 통과하여 노르헤임 행성에 도착했다.
노르헤임 드워프 왕국의 제 3 도시, 하크라.
거대한 석조 건물들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얼핏 보면 지구의 건물과 비슷한데, 곡면으로 처리되어 있어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것 같았다.
주변에는 드워프들이 삼삼오오 돌아다녔다.
수한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한때 지구에 유행했던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게임 속 모습과 판박이였다. 키는 대략 1미터 정도 되고, 하나같이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었다. 금속 재질이나 가죽 재질의 옷을 걸치고, 망치니 정이니 하는 도구를 가지고 다녔다.
다른 외계 행성에서는 지구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한 번 알바트로스 원정대를 쳐다보고는 관심 없다는 듯 제 갈 길을 갔다.
상군이 원정대를 보며 말했다.
“먼저 영주에게 갑시다. 수한씨? 저랑 같이 갔다 오죠.”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저도요.”
과장 셋, 그리고 수한만 따로 떨어졌다. 다른 원정대원들은 미리 하크라의 북쪽에 있는 기차역에 가 있기로 했다.
영주 저택을 찾는 것은 쉬웠다. 하크라의 가장 높은 곳, 중세의 성처럼 생긴 고아한 저택이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약속을 해놓은 덕에 접견은 금방 이루어졌다.
영주는 높은 의자에 앉아 원정대를 내려다보았다.
[지구에서 왔다고 하셨소이까?]
[예. 근자에 하크라 근처에서 A급 변이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A급?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요? 이미 AA급 변이체가 나타났는데?]
[예?]
수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통역을 해서 전달하자 세 과장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현재 원정대의 A급 이능력자는 네 명, B급 이능력자는 일곱 명에 달했다. 이 정도면 AA급 변이체를 잡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
더구나 노르헤임 행성에서 AA급 변이체가 나타났다면, 지구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 아닌가.
[그렇습니까? 저희가 이미 지난 정보를 듣고 온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희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습니다. A급 이능력자 넷, B급 이능력자 일곱을 보유하고 있으니 아무리 AA급 변이체라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호오, 그 정도나 되오?]
영주가 눈을 번뜩였다.
원정대의 전력은 영주가 보기에도 상당했다. 하크라의 전력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위협적인 수준이라고 할까.
잠깐 무슨 생각을 하더니, 한층 온화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정도면 특별히 무리는 없겠구려. 좋소. 사냥을 허가하겠소. 노비크 산맥에는 내가 파견한 기사단이 있으니, 그들과 협력하는 게 좋을 거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영주가 손을 휘젓자, 넷은 그 앞에서 물러나왔다.
얼마간 기다리자, 시종장이 서류를 꾸며 넷에게 가져왔다. 서류 아래쪽에 영주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안내인도 한 명 붙여주었다.
수련 기사 중 한 명으로, 노비크 산맥 태생이라고 했다. 그곳 지리에는 빠삭하게 알고 있다던가.
기사라고 해서 말을 타고 칼이나 창을 들고 있을 줄 알았는데 상상과 좀 달랐다. 뿔이 구불구불한 산양을 타고, 마법 나팔총과 보석을 박은 도끼창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일랑 가문, 귬트의 아들 흄트라고 합니다.]
흄트가 억센 손을 내밀었다. 손을 맞잡자, 손아귀 가득 강한 힘이 느껴졌다.
전원과 악수를 한 다음, 흄트가 ATV를 눈여겨보았다.
[희한한 탈것이네요. 저걸 타고 갈 겁니까?]
[노비크 산맥 초입까지는 기차가 연결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자세한 것은 몰라서 그러는데, 저걸 실을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지요. 일반 여객 기차는 안 되고, 화물 기차에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노비크 산맥으로 가는 기차가 언제 출발할지 모르겠네요.]
다행히 기차는 30분 후면 출발한다고 했다.
이미 화물이 꽉 차 있었지만, 기차에 몇 량을 연결하는 것으로 대처를 끝냈다. 25대를 빼곡하게 채운 후, 줄로 잘 고정시키자 출발시간이 되었다.
새미가 수한에게 속삭였다.
“여긴 문명이 꽤 발전했나 봐. 기차도 있네?”
“그러게. 하긴 전 차원계에서 가장 좋은 총을 생산하는 곳이잖아. 산업이 어느 정도는 발전해 있을 거야.”
“정말 그렇겠다.”
기차를 타고 가니 2시간 정도 걸렸다.
지구의 고속 전철보다는 느리지만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노비크 산맥 초입에 있는 역에 도착하자 꽁무니에 달았던 량들을 분리시켰다.
흄트가 안내하겠다고 먼저 나섰다.
산양이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평지에서도 잘 달렸다. ATV 보다 약간 느린 정도였다. 산지로 접어들자 제 세상 만난 듯 험준한 지형도 제멋대로 뛰어다녔다.
그 뒤를 쫓아가느라 애를 먹었다.
산은 갈수록 험해졌다. 조금 들어가자 깎아 지르는 듯한 절벽이 나타났다. 산양은 무리 없이 절벽을 탔지만, ATV는 그렇지 못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한참 흄트의 안내를 따라가자 작은 분지 같은 지형이 나왔다. 대규모로 참호가 파져 있고, 곳곳에 나팔총을 든 드워프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하크라의 기사단 진지.
원정대가 접근하자 드워프들이 긴장하며 총을 겨눴다. 흄트가 앞에 나선 뒤에야 총을 내리고 경계를 풀었다.
“^*%@!”
“%^*(^#$%#$!”
노르헤임 공용어로 떠드는 통에,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흄트가 원정대에게 손짓을 했다.
[기사단장님이 안에 계신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ATV는 일단 밖에 놔뒀다. 통역을 할 수한과 세 과장만 안으로 들어갔다.
진지는 2차 세계대전 무렵 지구에서 쓰이던 것과 비슷했다. 거미줄과 같은 참호가 사방을 연결하고 있었다. 다만 철조망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참호 바깥에 희미한 빛을 뿌리는 석판 같은 게 꽂혀 있었다. 이게 유사시 변이체들의 난입을 저지하는 것 같았다.
드워프들이 넷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수한이 들고 있는 마법 소총을 보고 있었다.
그들끼리 수군거리는 게, 소총이 자기네 행성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눈치 챈 듯했다.
기사단장은 분지 가장 깊숙한 곳의 막사에 있었다.
차림새는 다른 병사들과 비슷했다. 다만 나팔총 대신 작은 권총을 한 자루 차고 있었다. 두 주먹이 유난히 큰데, 손을 움직일 때마다 공간이 일렁이는 게 인상 깊었다.
상군이 영주의 직인이 찍힌 서류를 내밀었다. 기사단장이 그걸 보더니 원정대를 쳐다보았다.
[변이체를 잡으러 오셨다고요?]
[예. 하크라 영주님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A급 4명에 B급 7명이라고요? 그럼 좀 위험할 것 같습니다만.]
기사단장이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계속해서 변이체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몇 달 전에는 C급 변이체만 한두 마리 나타나던 것이, 지금은 A급 변이체도 곧잘 보인다던가.
좋지 않은 소식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전투 2과 과장이 질문했다.
[갑자기 변이체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십니까?]
기사단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걸 알아내려고 파견된 겁니다. 아직까진 소득이 없었습니다.]
기사단과 공조 체계를 펴기로 했다.
원래는 따로 행동할 예정이었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분지 귀퉁이에 천막도 쳤다. 탐지기와 경보기를 설치하고 철조망도 둘렀다. 한편 참호를 파서 드워프들의 진지와 이어지게 교통호도 만들었다.
덕분에 사냥하는 변이체의 일부를 주기로 했지만 손해는 아니었다. 보다 안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득이 더 있었다.
[아니, 왜 다들 힘이 그렇게 없어요? 허벅지에 힘을 주란 말입니다!]
드워프들에게 산양을 대여한 것이다.
노비크 산맥은 워낙 험준한 곳이라 ATV로는 다니기 힘들었다. 도보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느니 값을 치르고 산양을 빌리는 게 나았다.
말도 아니고 산양을 타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원정대는 고생을 하며 산양을 타는 법을 배웠다.
솔직히 말해서 매우 어설펐다. 기껏해야 매달려 있는 수준이었다. 이래서야 빨리 달릴 수는 없고, 그냥 이동 정도만 가능할 듯했다.
그런데 유독 산양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