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워프 -3- [3권 끝] >
[우리 행성에는 기사가 없습니다. 전 부사관 출신입니다.]
[부사관? 아하, 어쩐지 절도가 느껴지더라니!]
사실 그렇게 따지면 지원 요원들 대부분이 부사관 출신이었다. 그런데 드워프는 어떤 동질감을 느꼈는지 껄껄 웃었다.
오후 쯤 드워프들과 어울려 산양 축구를 했다.
산양에 타고, 나무 막대기로 고무공을 때려 작은 골대에 넣는 경기였다. 사실 축구보다는 고려 시대에 귀족들의 스포츠였다는 격구와 비슷했다.
그런데 절벽 사이에 골대가 설치되어 있어 난이도는 비교하기 힘들었다. 수한도 분전했지만, 드워프들의 실력에 밀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승마 기술을 올리면 눌러버릴 수 있겠지만, 잠깐의 유희를 위해 기술 점수를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 즐겁게 땀을 뺀 것으로 만족했다.
산양 축구 후, 수한을 보는 드워프들의 시선이 확연히 바뀌었다.
괜히 다가와 친근한 척을 했다. 정화 처리한 맥주를 내밀기도 하고, 산양 육포를 먹어보라고 주었다. 수한도 답례로 전투 식량을 건넸다.
해가 질 무렵 사냥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낭패한 모습이다.
“새미야, 괜찮아?”
“응. 괜찮긴 한데 너무 피곤해.”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새미만이 아니라, 사냥 나갔던 사람들 모두 그러했다.
그나마 다친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전리품은 기껏해야 B급 변이체의 심장 일곱 개가 전부였다.
상군이 지원 3과 과장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많이 고생하셨나 봅니다.”
“말도 마십쇼. 도로가 없어서 절벽을 달리다 보니 온 몸이 다 쑤십니다. B급 변이체랑 싸울 때도 적당한 장소가 없어서 고생했어요. A급 변이체 세 마리를 찾았는데 대원들이 다 녹초가 되어 있어서 포기했고요.”
“고위 변이체들이 많긴 하네요. 다른 행성 같았으면 이름까지 붙었을 텐데.”
“그도 그렇지요. 어휴, 좀 쉬어도 되겠습니까? 몸이 부숴질 것 같아서요.”
“아, 그러시죠. 제가 피곤한 사람 붙잡고 있었네요.”
다음날은 지원 2과 차례였다.
두 번째 사냥이라 수한도 관록이 붙었다. 멀찍이 앞서 나가며 움직이기 쉬운 쪽으로 원정대를 인도했다. B급 변이체가 보이면 먼저 죽여놓고 해체만 원정대에게 맡겼다. A급 변이체가 나타나면 적당한 장소에 진을 친 후 힘을 합쳐 사냥했다.
그렇게 잡은 게 A급 변이체 일곱 마리, B급 변이체 서른 세 마리.
“이거 효율이 너무 차이 나는데요?”
“그러게요. 어젠 정말 힘들었는데 오늘은 별로 힘든 줄도 모르겠어요.”
사냥을 종료하던 시간, 수한은 유독 강렬한 기운을 느꼈다.
바위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밀고 그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쪽을 정찰했다.
거대한 변이체.
호랑이를 닮은 변이체가 바위 그늘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 크기가 거의 코끼리에 버금갈 정도로 컸다. 등에는 보풀거리는 날개가 달려 있고, 송곳니가 길쭉하게 입 밖까지 튀어나와 있었다.
수한은 탐지기를 보고 침을 삼켰다.
AA급 변이체.
제대로 전략을 짜서 상대해야지, 그러지 않았다간 원정대가 몰살 당할 수도 있었다.
수한은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산양도 수한의 마음을 알았는지, 발굽 소리 한 번 안 내고 절벽을 탔다.
돌아와서 보고하자, 상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AA급 변이체라고요?”
“예. 검치호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등에 날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여기 사진 찍어왔습니다.”
사진을 본 원정대원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 눈에 보기에도 만만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발견 장소를 지도에 표시하고, 당분간 그곳을 피해다니기로 했다.
AA급 변이체를 발견한 지점은 드워프들과도 공유했다.
드워프 기사단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가 발견한 AA급 변이체까지 하면 총 3마리입니다. 큰일이네요.]
[3마리라……]
1주일 간, 끊이지 않고 사냥을 나섰다.
넷째 날부터는 아예 수한은 매일 사냥에 따라갔다. 지원 2과와 함께 하든, 지원 3과와 함께 하든 그들을 선도했다. 그러자 사냥이 훨씬 더 쉬워졌다.
원정대의 야영지에 변이체 시체가 그득하니 쌓였다. A급 변이체 시체는 거의 마흔 마리에 가까웠다. B급 변이체 심장도 3백 개는 넘게 확보했다. 이 정도면 아무리 토막을 낸들 ATV에 싣고 갈 수가 없는 숫자였다.
그래서 일부는 드워프들에게 팔기로 했다. 시체를 통째로 넘기는 대신, 노르헤임 특산 드워프 제 총이나 힘의 결정을 받기로 한 것이다.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알바트로스 원정대는 물론, 드워프들도 함지박만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 동안 AA급 변이체 2마리를 더 발견했다. 더불어, AA급 변이체들이 한쪽에 몰려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곳에 뭔가 있다.
지구인과 드워프 모두 그 사실을 직감했다.
드워프 기사단장이 알바트로스 원정대에게 합동 작전을 제의했다.
[우리 기사단은 조만간 AA급 변이체들을 토벌할 겁니다. 그때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사실 이번 원정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이뤘다. 지금 사냥한 변이체의 값어치만 따져도 2천억은 너끈할 것이다.
수한의 배당률이 6.51%니까, 공격대에서 가져가는 것을 제하더라도 65억 정도를 받게 된다.
거기에 수한의 활약이 워낙 컸으니, 포상금까지 생각하면 최소 70억, 많으면 80억 정도까지 되겠지.
초대박.
자연히 슬슬 지구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동조하는 원정대원이 꽤 많았다. 그런데 새미가 반대했다.
“전 반대에요. 드워프들과 AA급 변이체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째서입니까?”
“지구에 변이체들이 어째서 이렇게 많이 나타나는지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잖아요? 벌써부터 해상 교통에 정체가 빚어져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있어요. 그게 오래 지속돼서 해상 교통이 완전히 마비되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 날 거예요.”
그건 그렇다.
지원 3과 과장이 새미를 한 번 보고 말했다.
“AA급 변이체만 다섯 마리입니다. 게다가 놈들이 너무 가까이 위치해 있어요. 전투가 시작되면 다섯 마리 다 몰려들 가능성이 높은데, 아무리 드워프들과 힘을 합쳐도 AA급 다섯 마리는 무리에요.”
드워프 기사단의 전력은 AA급 2명, A급 5명, B급 15명이었다. C급도 꽤 있지만 그들은 도움이 안 될 테니 빼도록 하고.
알바트로스 원정대가 합류해도 A급 9명, B급 22명으로 늘어나는 정도에 불과하다. AA급 세 마리까지는 사냥할 만 하고, 네 마리는 위태위태한데, 다섯 마리는 도저히 힘들었다.
새미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크라 영지로 지원을 요청했다고 하니까, 조만간 이능력자들이 더 도착할 거예요. 그들까지 힘을 합치면 해 볼 만하지 않겠어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너무 위험합니다.”
“대신 AA급 변이체의 지분도 얻고, 변이체가 왜 이렇게 많이 나타나는지 원인도 알 수 있는 기회잖아요? 우리는 돈만 벌러 여기 온 게 아니라고요!”
새미가 열정적으로 작전 참가를 주장했다.
원정대의 반응은 뜨듯미지근했다. AA급 변이체 5마리로 끝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S급 변이체가 출현하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스치기만 해도 사망할 텐데.
분위기가 좋지 않자, 새미가 수한을 돌아보았다.
“오빠! 뭐라고 말 좀 해 봐!”
좌중의 시선이 수한에게 집중되었다.
지난 1주일 간 수한은 원정대 전원에게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다. 수한이 없었으면 2천억은커녕 그 반의 반도 벌지 못했을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따라서 수한의 영향력은 예전과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수한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양쪽 의견에 다 일리가 있었다. 안전 위주로 가자는 의견도 옳고, 지구 전체를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옳다.
심사숙고 끝에 새미의 손을 들어주었다.
“저는 드워프들과 함께 AA급 변이체를 사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지만, 수호자 연맹의 의뢰는 해결하지 못했으니까요.”
지원 3과 과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수호자 연맹의 의뢰는 우리 공격대에만 주어진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상위 공격대는 물론, 전 세계 유명 공격대에 모두 들어갔어요. 꼭 우리가 아니라고 해도 다른 공격대에서 단서를 가져올 겁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러라는 법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정말로 아무 공격대도 단서를 못 가져오면 어떻게 합니까?”
“에이, 설마요.”
“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모두들 나 하나쯤이야, 다른 누가 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말로 지구가 망할지도 모릅니다.”
원래 수한은 다른 사람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동생들을 건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힘에 벅찼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고방식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본인의 친지들이 가장 중요했다. 지구 전체, 인류 전체보다 자기 가족들이 더 소중했다.
그런데 막상 지구가 멸망해버리기라도 하면 자신은 물론 새미와 두 동생도 멀쩡하진 않을 거 아닌가.
도버 해협에서 변이체들이 세잔 호를 습격하는 것을 봐서일까.
수한의 시야가 더 넓어졌다.
“이유는 또 있습니다.”
수한은 원정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 일은 우리 공격대에게 있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타이누 행성 때를 생각해 보세요. 하마터면 원수가 될 뻔한 것을 동맹 관계로 바꿨잖습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도와주면 친분을 톡톡히 다질 수 있어요. 노르헤임 행성은 각종 문물이 발전한 곳이니, 나중에 차원 무역을 성사시키면 변이
체 잡는 것보다 더 큰 수익이 발생합니다.”
일리가 있었다.
“으음.”
상군은 자신의 턱 아래를 쓰다듬었다.
면도를 하지 못해 까끌까끌한 수염이 만져졌다.
일반적인 원정 같았으면 3명의 과장 중 2명이 찬성했을 때 이미 결정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수한이 이룬 게 너무 커서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난상 토론이 이어졌다.
원래는 돌아가자는 의견이 우세했는데, 수한의 얘기에 마음을 바꾼 사람이 많았다. 이젠 두 개의 의견이 거의 비등비등한 것 같았다.
상군은 결단을 내렸다.
“드워프들을 도웁시다.”
당장 제동이 걸렸다.
“너무 위험합니다.”
지원 3과 과장.
“그러다 누구 하나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우리 원정대에게 중요한 건 우리 원정대원들의 목숨입니다. 대의도 중요하지만, 생명은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또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다.
지금까지 나왔던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거기서 거기인 소리를 몇 시간째 하고 있었다.
그러다 전투 1과 과장의 말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저는 수한씨 의견에 찬성합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마디를 한 것이다.
지원 3과 과장이 몇 번 더 의견을 개진했지만 소용 없었다.
대세가 굳어졌고, 그렇게 결정되었다.
지원 3과 과장이 혀를 찼다.
“좋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설전을 지켜보면서, 수한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원 2과와 지원 3과의 알력 싸움이 끼어 있었다. 특수 지원팀장을 둘러싸고, 둘이 줄다리기를 하는 것 때문에 쉽게 의견 통일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거 참, 싸울 때 싸우더라도 성과는 올려놓고 싸워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하기야 지원 3과 과장 입장에서는 다급하기도 할 것이다.
이번 원정에서 확연히 지원 2과가 앞서 나가고 있으니까. 눈앞까지 다가왔던 팀장 자리가 멀어지니 몸이 달겠지.
수한이 기사단장에게 가서 작전 참가를 선언했다.
그러자 기사단장이 반색을 했다.
[잘 됐습니다. 바리스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바리스님이요?]
[아, 여러분은 모르시겠네요. 하크라 최강의 기사 칭호를 받은 분입니다. 그 분이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수한은 얼떨떨한 눈으로 기사단장을 보았다.
하크라 최강? 그게 뭐?
기사단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왕국에서도 유명하신 분이지요. S급 이능력자입니다.]
S급 이능력자.
그 말을 들은 순간, 수한은 작전 성공을 확신했다. S급 이능력자 혼자서도 AA급 변이체 두셋쯤은 가볍게 상대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최악의 상황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거니까.
이곳 노르헤임 행성에서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은 무엇일까.
둘 중 하나.
기계 괴수를 만나는 것, 혹은……
S급 변이체와 조우하는 거겠지.
[3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