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의 동굴 -1- >
드워프 군대가 분지 안으로 들어왔다.
척척척척.
발을 맞추어 걸으니, 둔중한 발구름 소리가 났다.
총 세 부대.
가벼운 도끼 두 자루와 수류탄으로 무장한 부대, 길쭉한 저격총을 든 부대, 그리고 뭔가를 산양에게 싣고 걸어오는 부대가 하나씩 있었다.
척탄병, 저격병, 포병.
이능력자가 심심찮게 보였다. 더구나 가장 앞장 서서 걸어오는 부대장들은 모조리 AA급 이능력자였다.
기사단장까지 하면 AA급 이능력자만 5명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흰색으로 빛나는 산양을 타고 드워프 하나가 도착했다.
수한의 옆에 서 있던 기사단장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전신을 가리는 은빛 갑옷을 입고 온갖 화려한 장식을 달고 있었다. 무기라고는 창 한 자루가 전부인데, 창 끝에 조각된 흉악한 용이 눈을 번뜩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수한은 그 드워프를 보고 침을 삼켰다.
막강한 기세가 물씬 풍겼다. 강철로 만들어진 성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저 드워프가 바리스인 모양이다.
바리스는 기사단장과 한 번 힘껏 껴안았다. 분지 안을 둘러보더니 알바트로스 원정대 쪽으로 걸어왔다.
[그대들이 이번 원정에 참가한다는 지구인인가? 제법 수가 많군.]
[예. 저희 원정대 모두 이번 작전에 참가하기로 해서 그렇습니다.]
[그래? 거 고마운 일이야.. 그런데 그대는 우리 일족이 만든 총을 쓰는군?]
바리스가 수한의 총을 보고 말했다.
수한은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그 의미를 깨달았다.
[토프레 가문의 일족이십니까?]
[그렇다네. 솜씨를 보아하니 내 사촌이 만든 총인 것 같은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다들 들어가세.]
바리스는 앞장 서서 기사단장의 막사에 들어갔다.
알바트로스에서는 세 명의 과장과 수한이 동석했다. 드워프는 6명이 참석했으니, 총 10명이 막사 안에 둘러앉은 것이다.
막사 안의 원탁에 둘러앉았다.
이미 전략은 다 수립되어 있었다.
기사단장이 새로 온 드워프들을 위해 세밀하게 설명했다.
바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언제 출발할 건가?]
[내일 아침을 먹자마자 출발하겠습니다. 전력으로 질주하면 2시간 만에 변이체들이 있는 곳에 도착할 겁니다.]
[전력 질주라, 오랜만에 엉덩이 좀 까지겠군.]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산양을 타고 달리는 거였다.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수한은 드워프들을 따라가는 게 가능하다. 그런데 원정대의 다른 이들은 불가능했다. 새미 정도는 수한이 같이 태우고 가더라도, 원정대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원정대원들이 그 소리를 듣고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하죠? 못 따라갈 것 같은데.”
“최대한 노력해 봐야죠.”
“드워프가 엉덩이 까질 정도면 우리는 엉덩이가 터지겠는데요? 아니, 그냥 아작이 나겠네.”
하룻밤이 지났다.
혹시 몰라 야영지에 지원 요원 몇을 남겼다. 지원 3과 과장도 자청해서 야영지에 잔류했다.
아침을 먹자마자 출발했다.
바리스가 지구인들을 보고 묘하게 웃었다.
[어디, 얼마나 따라오는지 볼까? 전군 출발!]
고함을 지르며 가장 먼저 달려나간다.
지형이 지형이다 보니 전군이 산양에 탑승한 상태였다. 기사단처럼 산양 축구를 할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달릴 수 있었던 것.
수한은 새미를 앞에 태웠다.
“조심해. 알았지?”
“걱정 마. 균형 정도는 잡을 수 있어.”
“좋아, 출발한다.”
산양이 기운차게 울부짖으며 몸을 날렸다.
다른 원정대원도 산양의 배를 박찼다. 그 동안 수한에게 배운 대로 몸을 이완시킨 채 고삐를 세게 잡았다.
전력 질주라고 하더니 장난이 아니었다.
산양이 입에 거품을 물건 말건 계속 달렸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어넘었다.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을 마구 올라갔다. 장애물 따위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쭉 달렸다.
2시간.
어지간한 수한도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엉덩이가 깨진 듯이 아프고, 땀이 비오듯 흘렀다.
새미는 더 심각했다. 정신을 잃다시피 했다. 그나마 수한이 꽉 껴안고 있어서 낙상하지는 않았다.
다른 원정대원들은 어쨌냐고?
죄다 나가떨어졌다. 처음 30분은 그래도 좀 쫓아오더니, 1시간이 지나자 거의 낙오되었다. 지금에 와선 단 한 명도 쫓아오지 못했다.
바리스가 가까이 오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지구인들은 다 허약할 줄 알았는데 은근히 강골인 걸? 우리 일족의 총을 써도 될 만 한 남자야!]
드워프 군대가 정렬한 곳은 커다란 절벽 앞이었다.
그나마 평탄하긴 한데, 곳곳에 둔덕이 있어 움직이기에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드워프들은 이런 지형이 익숙한지 산양에서 내리고도 빠르게 돌아다녔다.
모두 제 자리를 찾아갔다.
기본적인 전투 교리는 지구의 공격대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바리스를 비롯한 고위 이능력자들만 둔덕 위에 서 있고, 다른 이들은 모두 모습을 숨겼다.
수한은 뒤를 돌아보았다.
원정대원들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야 괜히 회의해가며 참가해야 하느니, 돌아가야 하느니 의논했던 게 의미가 없다.
[시작합니다!]
AA급 신속 계열 이능력자인 부기사단장이 소리를 질렀다.
가볍게 몸을 날리자, 부기사단장의 모습이 쌩하니 사라졌다. 그 속도가 매우 빨라 꼭 바람이 불어가는 것 같았다.
수한은 마법 소총을 매만졌다.
드워프와의 공격에서 맡은 역할은 간단했다.
공격 유도.
수한의 유도 속성은 원거리 공격을 한 군데로 모으는 능력이 있었다. 여기 모인 드워프들은 원거리 공격력이 강하니, 그 화력이 집중되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
“^*#@[email protected]&%$&$#%$%^!”
갑자기 드워프들이 부산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저 앞쪽에서 부기사단장이 껑충껑충 뛰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5마리의 AA급 변이체가 쫓아오는 게 보인다.
전투가 시작되는 것.
수한은 소총의 탄창에 유도 속성을 부여했다.
이윽고 드워프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 AA급 변이체가 도착했다.
“크르르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것일까.
변이체들이 으르렁대며 자리에 멈추었다.
바리스가 씩 웃더니, 창을 꼬나쥐고 다가섰다.
[이 놈들, 어디 본때를 보여…… 어라?]
변이체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보였다.
등을 보이더니 달아난다.
아까 부기사단장을 쫓아올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실로 번개 같았다. 아차 싶은 순간 꽁무니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이익!]
바리스가 얼굴을 붉히고 방방 뛰었지만 이미 변이체들이 떠나간 뒤였다.
부기사단장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놈들의 지능이 생각보다 높은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리스님을 숨겨 놓고 시작할 것을 그랬습니다.]
[숨겨 놓고 시작할 것을 그랬다고?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면 뭐하나!]
[차라리 잘 됐습니다.]
바리스가 악을 지르는데, 수한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드워프들이 멀뚱멀뚱 수한을 쳐다보았다.
[잘 됐다니요?]
[변이체들이 바리스님을 무서워하는 것 같으니, 놈들이 뭉치지 않게 방해하면서 각개격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각개격파라……]
즉석에서 전략을 다시 짰다.
드워프들이 작은 구체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구체가 반짝이자 관측병들이 든 네모난 화면에 인근 지역 전체가 나타났다. 꼭 위성사진을 보는 듯했다.
군대는 절벽에 잠시 머무르기로 했다. 필요하면 산양을 타고 달려와 합류할 터였다.
이때쯤 알바트로스 원정대도 합류했다.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작전에 함께 하겠다고 전의를 다졌다.
바리스가 그들을 한 번 보고는 알아서 하라며 손을 저었다.
어쨌든 전력이 보강되었다. S급, AA급, A급 등 고위 이능력자들만 단출하게 떠났다.
[한 마리만 먼저 확실하게 잡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수정한 전술은 간단했다.
최대한 강력한 공격을 퍼부어 한 마리씩 죽이자는 거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전술이 먹혔다.
이능력자들을 발견한 변이체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제대로 된 진형 없이 싸우게 되었지만 고위 이능력자로만 이뤄진 참이었다. 오히려 변이체를 몰아붙였다.
다른 변이체들이 그 기색을 눈치 채고 덤볐지만, 때를 같이하여 바리스도 참전했다. 바리스를 본 변이체들이 죽을 똥 살 똥 도망쳤다. 먼저 공격했던 두 마리만 발목이 붙잡혀 전신이 해체 당했다.
과정이 어찌됐든, 두 종족이 힘을 합치자 화력이 엄청났던 것이다.
바리스가 잔뜩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되겠는데? 한 번 더 몰아보지!]
[저놈들 똑똑해서 한 번 당한 전술에는 안 당할 겁니다. 조금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수한의 말에 바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군, 일리가 있어.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바리스님을 놈들에게 노출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놈들이 달려들 겁니다.]
[그럼 나 없이 변이체들을 상대해야 할 텐데 괜찮겠나?]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요.]
바리스를 빼도 AA급만 따져서 5대 3이었다. 방심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다.
과연 생각대로였다.
바리스가 멀리 있는 것을 확인한 변이체들과 싸움이 붙었다. 수한이 유도 속성을 명중시킨 변이체부터 집중 공격하자, 승리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뒤에 있던 군대가 시체를 수거해갔다.
첫 번째 난관은 넘었지만, 진짜는 이제부터였다.
변이체들이 있던 곳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절벽 사이로 커다란 동굴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수한이 찬 고글에 경고가 하나 떴다.
X-0가 검출되는 것.
수한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미리 챙겨왔던 화생방 복장을 갖췄다. 다른 지구인들도 화생방 복장을 입자, 드워프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자네 행성은 X-0 방비를 참 이상하게 하는 군?]
드워프들은 망토 하나를 뒤집어쓰고, 마법 브로치를 작동시킨 게 고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준비를 끝마치고, 동굴 앞에 나란히 섰다.
동굴은 무척 컸다. 직경 10미터는 족히 될 것 같았다. 아까 싸웠던 변이체들이 드나들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바리스가 앞에 서서 말했다.
[들어갑시다.]
동굴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드워프들이 빛나는 구를 허공에 띄웠다. 그러자 동굴 안이 대낮처럼 환하게 변했다.
“음……”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냈다.
바짝 긴장해 있던 새미가 수한을 돌아보았다.
“오빠, 왜 그래?”
“변이체가 엄청 많아.”
“그래?”
“응. 대부분은 E급이랑 F급이긴 한데, 조금만 들어가면 C급 이상이 많이 나올 것 같아.”
드워프들도 그것을 알아차렸나 보다.
바리스가 코웃음을 치며 앞장섰다. 가볍게 창을 날리자, 창끝의 용머리에서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불길이 동굴 안을 한 번 휘어감자, 수한이 봤던 변이체들이 일격이 죽어 나갔다.
총을 쏴서 변이체들을 죽여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주 간단히 해결된 것이다.
역시 S급은 S급.
그 후로도 바리스의 창이 빛을 발했다. 호호탕탕 전진하며 변이체들을 휩쓸었다.
호쾌하던 진군이 멈춘 것은 동굴 내에서 커다란 구멍을 발견한 뒤였다.
작은 체육관 하나 정도는 들어갈 만큼 넓은 공간.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내려다보면 시꺼먼 어둠만이 보이고,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바람소리가 싸늘하게 들려왔다.
드워프 하나가 빛나는 구슬을 구멍에다 던져 넣었다.
빛나는 구슬이 금세 멀어졌다. 고개를 최대한 내밀고 봤는데도 구슬이 어디까지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여기가 진원지인가 봐.”
“그러게. X-0 수치가 엄청 높다. 차원문이 열린 걸까?”
“그렇겠지?”
수한과 새미는 쑥덕쑥덕 의견을 나눴다. 다른 대원들도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드워프들이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더니 구멍 안으로 내려가 보겠다고 했다.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기계 괴수가 있는지 차원문이 열려 있는 건지는 확인해 봐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들어온 원정대원은 모두 드워프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끝을 보자는 것이다.
드워프들이 구멍 위에 지지대를 만들었다. 가늘고 질긴 밧줄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걸 타고 내려가려는 의도였다.
동굴 안에 넘쳐나는 X-0만 아니어도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손재주가 전 차원계 제일이라는 드워프 종족 답게 뚝딱뚝딱 작업을 끝마쳤다.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