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79화 (80/254)

< 보물 창고 -2- >

그걸 보고 있노라니 기가 질렸다. 나중에는 그냥 구경만 했다.

[왜, 술이 입에 맞지 않나?]

영주가 묻자,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여러분처럼 술을 마셨다간 간암 걸려서 죽을 겁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즐겁습니다.]

[흠, 그래? 역시 지구인들은 허약하군.]

하루는 그렇게 술독에 파묻힌 후, 다음날이 되어서야 정산을 시작했다.

그제 하루 동안 잡은 변이체는 꽤 많지만, 개중 가치가 있는 것은 AA급 변이체 5마리와 S급 변이체 한 마리.

케르베스 행성에서처럼, 하루 종일 밀고 당기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드워프들은 예상보다 화통했다. 회의를 시작하기 무섭게, 영주가 원정대를 보며 말했다.

[일단 분배 비율부터 정해야겠지? 7대 3이 어떤가? 동굴 속에서 활약이 컸으니,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네.]

후한 비율이었다.

8대 2를 목표로 하고 들어왔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가려운 데를 긁어주니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 이상을 요구하기엔 알바트로스 측에서 참여했던 이능력자의 수와 등급이 모자랐고.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AA급 변이체 두 마리의 시체를 알바트로스가 온전히 가져가기로 했다.

대신 S급 변이체 심장은 드워프들이 가져갔다. 시체 중 일부만 알바트로스가 챙겼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당초 목표를 몇 배는 더 추가 달성한 거니까. 전리품만 따지고 보면, AA급 변이체 다섯 마리를 잡기 전에 이미 충분하지 않았나.

원정대 모두가 만족감을 표시했다.

[감사합니다. 만족스러운 거래입니다.]

[우리도 고맙네. 산맥에 나타나던 변이체들 때문에 한동안 골치가 아팠거든. 원인을 알았으니, 왕국 내의 다른 곳도 곧 해결이 되겠지.]

협상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

그런데 이렇게 끝낼 생각이 없나 보다.

영주가 회의실 밖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봐! 준비하라고 한 것 좀 가져와 봐!]

드워프들이 커다란 궤짝을 낑낑대며 가져왔다.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크기.

회의실에 들어와 있던 원정대원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서로에게 보냈다.

궤짝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드워프들이 회의실 중앙에 궤짝을 내려놓았다.

조심스럽게 궤짝을 열자, 찬란한 보광이 뻗어 나왔다.

“우와!”

누군가 탄성을 질렀다.

각종 보물이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온갖 보석을 박아 넣은 은빛 갑옷, 척 보기에도 위압적인 손대포, 번개가 깃든 미늘창, 거창한 뿔이 달린 투구, 대지의 힘이 깃든 보석 등등.

노르헤임 행성 특산 중 유명한 것은 다 모였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영주가 원정대의 얼굴을 살피더니 씨익 웃었다.

[어떤가? 보기 좋지 않나?]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건 왜 보여주시는 겁니까?]

[자네들에게 이걸 선물로 주려고 하네. 이놈들도 창고에서 썩고 있느니, 좋은 주인을 만나는 게 좋을 거야.]

그러자 원정대의 얼굴에 난처한 표정이 떠올랐다.

지금 나온 것들은 확실히 보물들이었다. 만약 지구로 가져가 판다고 하면 엄청난 가격을 받을 터였다.

문제는 직접 쓰기에는 마땅치가 않다는 것.

말하는 투를 보아하니, 팔아 치웠다간 뒷감당이 안 된다. 다시 안 볼 사이라면 모르겠으나, 지금 원정대는 단발성 사냥만 생각하는 게 아니지 않나.

수한은 한쪽 뺨을 긁적였다.

대부분 강체 계열이나 거력 계열 이능력자들을 위한 물건으로 편중되어 있었다.

손대포 같은 경우엔 더 어색했다. 수한을 염두에 둔 물건 같은데, 막상 수한은 그걸 쓸 수가 없었다. 수한의 능력은 총알로만 발현되니까.

영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안 드나?]

[굉장히 가치 있는 물건이긴 합니다만, 저희가 쓰기에는 좀 맞지 않는 물건들입니다.]

[그래? 내 보물 창고에서 가장 좋은 것들만 꺼내왔는데……]

영주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워프들이 이런 점에선 은근히 섬세함이 부족한 모양이다.

바리스가 옆에서 곰곰이 생각하더니, 영주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영주님. 차라리 지구인들 보고 갖고 싶은 것을 선택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들에게 직접?]

[예. 우리 행성 반대편의 디셈 공화국에서 한 번 그런 적이 있답니다. 공화국인들이 최고급품을 골라줬는데 다 거절하고, 창고에서 그렇고 그런 물건들만 골라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좀 미안한데……]

[부족해 보이면 정화석과 정화 망토를 좀 챙겨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지구인들은 X-0 대비를 이상하게 하던데, 그걸 주면 좋아할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짓을 하자, 시종 드워프가 당장 달려왔다.

뭐라고 말을 하자, 시종 드워프가 깊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러더니 원정대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영주가 둘을 보며 말했다.

[내 보물 창고에 가서 원하는 것들을 가져가게. 뭐든지 좋네. 단, 1사람 당 1개만 가져가도록 하고, 동굴 안에 들어갔던 사람만 들여보내겠네. 대신 다른 사람들, 아니 자네들 숫자만큼 우리 행성 특산의 정화석과 정화 망토를 주지. 앞으로 X-0에 노출될 일이 있으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드워프들이 착용하던 브로치와 망토를 말하는 것 같았다.

영구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고, 일정 시간 사용 후에는 드워프들에게 가져와 충전해야 하는 물품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비상 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물건인데.

그 소식을 듣고 원정대 전원이 기뻐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당시 동굴에 들어 갔던 고위 이능력자들만 시종 드워프의 뒤를 따라갔다.

보물 창고는 영주성 지하에 있었다. 경비대 숙소를 중간에 통과해야 해서, 도둑에게 당할 일은 거의 없어 보였다.

“@%^$%[email protected]#”

시종 드워프가 큰 철문을 가리켰다.

저곳이 보물창고라는 것 같았다.

철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을 감지했는지 쇳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열렸다.

상당히 큰 규모의 공간이 드러났다.

그 안을 가득 채운 보물들이 수한의 눈을 어지럽혔다.

일개 영주가 모은 보물들인데, 일견하기에도 그 가치가 상당했다. 하나하나가 수십억에 달하는 물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새미가 다이아몬드, 진주, 루비, 사파이어 같은 것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우와아……”

여자라 그런지, 보석류에 먼저 눈길이 가나 보다.

시종 드워프가 가볍게 인사하고 사라졌다. 문이 쿵 하고 닫히지만, 천장에 달린 구슬들이 빛나고 있어 창고 안은 어둡지 않았다.

각 물건마다 옆에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등급은 안 매겨져 있지만, 어떤 능력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가능했다. 노르헤임 문자와 세라프 문자가 병기되어 있어 세라프 문자를 알고 있으면 읽는 게 가능했고.

함께 들어온 이능력자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굉장하네요.”

“드워프들이 부자라고 하더니 정말인가 봅니다.”

“으헉, 뭘 골라야 할 줄 모르겠습니다.”

새미가 한동안 보석들을 구경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뭘 가져가지?”

“글쎄, 그냥 설명 보고 고르는 수밖에 없겠다.”

“그렇겠지?”

어쨌든 본인이 결정해야 했다.

수한은 창고 안을 한 바퀴 쭈욱 돌았다.

지금 필요한 게 뭘까.

총?

지금 쓰는 마법 소총도 충분히 쓸 만 했다. 아직은 다른 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손대포가 대부분이라 선택하기도 힘들었다. 권총과 소총 몇 점이 보이는데, 이미 있는 것들이라 선뜻 손이 가지를 않았다.

기왕이면 없는 것으로, 그러면서 등급이 높은 걸 가져가는 게 좋지 않겠나.

창고 안의 물건을 구경하다가, 한 가지 등급을 알아냈다.

명품 등급.

레벨 업 도우미는 일반, 양품, 명품, 희귀, 영웅 순으로 물품을 분류하고 있었다.

창고 안에 있는 물건 중 영웅 등급 물건은 기껏해야 십여 점이 안 되었다. 수한이 쓸 만 한 물건은 훨씬 더 적었다.

그 중 수한의 시선을 끄는 게 하나 있었다.

단검, 그림자 칼날.

마법 소총에 착검이 가능한 종류였다. 음침한 회색 검신에, 까만 선이 한 줄기 그어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음험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용자를 은신시켜 주는 기능이 있었다. 그냥 시각적으로 주변 환경에 동화시키는 게 아니라, 거의 투명화에 가까웠다. 심지어 기계 괴수의 탐지 장치에서도 자유롭다고 했다.

저격할 때 써도 좋고, 만일의 사태에 도망칠 때도 좋겠다.

이걸 선택했다.

수한이 단검을 고르자 새미가 옆으로 다가왔다.

“오빠, 다 골랐어?”

“응. 자기는?”

“나도 다 골랐어.”

새미가 선택한 것은 짧은 흰색 지팡이였다. 그 끝에서 강렬한 힘의 파동이 물씬 풍겼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한데, 겨우 명품 등급이었다.

이런, 기왕 가져갈 거면 좋은 것을 가져가야지. 굳이 등급 낮은 것을 가져갈 필요가 있나?

수한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새미야, 내가 보면서 괜찮은 것들 몇 개 찾았는데 한 번 보지 않을래?”

“그럴까?”

새미도 자신이 고른 게 그리 좋은 물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나 보다. 별 미련 없이 수한을 따라왔다.

수한은 거무튀튀한 반지 하나를 골라주었다.

영웅 등급, 무한한 힘.

구현 계열 이능력자의 힘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하루에 1번 구현 계열 공격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생긴 게 투박해서 그렇지, 최고의 장비라고 할 만 했다.

새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좋은 거야? 등급이 낮은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이게 진짜야.”

수한은 자기 눈을 톡톡 두드렸다.

새미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시자의 눈, 그리고 케르베스 행성에서 받은 수정 렌즈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말 하지 않고 반지를 집어들었다.

“오빠를 믿어볼게.”

“그래.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다른 사람들도 선택을 끝냈다.

참 다양했다.

짧고 두터운 검, 보석이 박힌 장갑, 밋밋한 허리띠 등등.

선택을 끝내고 창고 밖으로 나왔다.

시종 드워프가 그들을 데리고 회의실로 돌아갔다.

[그래, 다 골랐나?]

영주가 둘을 보고 물었다.

고른 것들을 보여주자, 바리스가 중얼거렸다.

[상당한데요?]

[그러게 말이야. 지구인들도 보는 눈이 있어.]

[우리가 보는 눈이 없었다고 해야지요. 저것들을 줄 생각은 못 했지 않습니까?]

보물들을 내주면서도, 드워프들은 전혀 아깝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히려 좋은 거 잘 골랐다고 기꺼워하고 있었다.

[그럼 잘 가게!]

[몇 달 후면 우리 행성도 안정을 찾을 테니까, 그때 한 번 놀러와! 거하게 대접해 주지!]

아침이 되자, 드워프들이 원정대를 열렬히 배웅했다.

드워프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영주성 밖으로 나왔다.

이미 지구로 전갈을 보낸 상태였다. 거기에 차원의 틈에 대한 정보도 써서 보냈지만, 아무래도 직접 보고하는 것보다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어둠의 동굴 밑바닥에서 채취한 공기도 가져가야 하고.

귀환 시간은 바로 내일.

노르헤임 행성으로 원정을 오고 정확히 열흘만이다.

마지막 날은 세라프의 전당 인근 여관에서 묵었다. 대부분 숙취가 채 가시지 않아서 골골대며 누워 있었다. 반면 수한은 새미와 함께 하크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지구로 돌아가기 전날 밤, 수한은 노르헤임 행성에서 얻은 것을 확인했다.

우선 능력치가 좀 올랐다. 감각과 직감이 1씩 올라 각각 25, 22에 도달했다. 어두운 동굴을 헤매면서 S급 변이체의 기습을 경계하느라 그런 것 같았다.

그렇다면 레벨은?

마침내 160레벨을 찍었다.

초능 능력치도 160이 되었고, 기다렸다는 듯 4번째 초능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정말로 많은 것을 얻었다.

전리품, 차원의 틈에 대한 정보, 영웅 등급 단검, 레벨과 능력치까지, 매우 만족스러운 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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