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고 >
지구로 돌아왔다.
기본적인 검사만 마치고 공격대 사옥으로 직행했다.
갈태수 사장과 임원진이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노르헤임 행성으로 갔던 원정대 전원이 회의실에 들어갔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무섭게, 갈태수 사장이 불쑥 물었다.
“갑자기 고위 변이체가 나타난 이유를 알아냈다고요?”
“예. 이걸 보시면 금방 이해하실 겁니다.”
수한이 고글에서 메모리 카드를 꺼내 컴퓨터에 꽂았다.
벽면의 스크린을 작동시켰다. 영사기를 활용하여, 자신이 동굴로 진입하던 시점부터 나오던 시점까지 빠르게 설명했다.
임원진은 눈을 부릅뜨고 수한의 설명을 들었다.
갈태수 사장이 소파에 대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차원의 틈이라, 이젠 하다하다 별 이상한 방법까지 다 사용하네요.”
“큰일입니다. 그 넓은 바다에서 어떻게 저렇게 작은 틈을 찾는답니까?”
“새로운 신체 변형 물질도 발견되었다고요?”
배현애 이사가 눈을 크게 뜨고 질문을 던졌다.
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그 말을 했던 드워프 이능력자 바로 앞에 있어서, 그 말을 똑바로 들었던 것이다.
“예. 제 추측으로는, S급 변이체 생성에 특화된 물질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 그 물질을 담아 왔습니다.”
수한은 완전히 밀봉한 플라스틱 병을 꺼냈다.
동굴 밑바닥에서 공기를 담은 작은 병.
임원진이 심각한 얼굴로 그 병을 노려보았다.
“S급 변이체라……”
“곤란하네요. S급 변이체는 상대하기 힘들다던데.”
“아무리 새로운 신체 변형 물질이 있어도, 하루아침에 S급 변이체가 나타나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이 걸릴 게 뻔해요. 어서 지구에 나타난 차원의 틈을 봉인해야 합니다.”
“그나마 마리아나 해구 같이 심해 인근에서는 변이체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다행이지요. 일단 수호자 연맹에 알립시다. 이제부터는 수호자 연맹과 각 국가 정부들이 해결할 문제지, 우리 손을 떠난 것 같습니다.”
갈태수 사장이 직접 움직였다.
과장들은 원정 뒷정리를 하게 놔두고, 수한만 동행했다. 직접 현장을 보고 온 사람의 증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렵지 않은 일.
대한민국에서 열 명도 안 되는 S급 이능력자를 대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수한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갈태수 사장과 수한, 이렇게 둘만 수호자 연맹 대한민국 지부로 향했다.
이미 연락이 되어 있나 보다. 갈태수 사장의 차량이 들어서자, 수호자들이 뛰쳐나와 한쪽으로 안내했다.
둘이 향한 곳은 지부장실.
30대 초반의 건장한 남자와, 30대 후반의 고혹적인 여자가 이들을 맞이했다.
둘 다 S급 이능력자.
남자는 감각 계열, 여자는 영혼 계열이었다. 대전쟁 당시 세라프 종족의 도움을 받아 각성했고, 무수히 많은 공을 세웠다. 몇 년 전 결혼하여 지금은 깨가 쏟아진다고 했다.
“그간 격조했습니다. 잘 계셨지요?”
태수가 먼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남자, 성민이 웃으며 태수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오랜만입니다. 사장님도 잘 계셨지요? 자, 모두 앉으세요.”
비서가 차를 내왔다.
언젠가 수한이 사장실에서 얻어마셨던 엘프 차.
하지만 그 차에 관심을 기울이는 아무도 없었다. 태수가 꺼낸 메모리에 온통 시선이 집중되었다.
태수가 수한을 보고 눈짓을 했다.
수한이 앞으로 나서자, 성민과 그 옆에 앉은 여자, 세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노르헤임 행성에 원정 갔다 온 요원 중 한 명입니다. 지금 알려드릴 정보를 알아냈지요. B급 이능력자 이수한씨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지부장 김성민입니다.”
“부지부장 이세윤이에요.”
“저도 반갑습니다. 사정이 급하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사장실에서 했던 설명을 똑같이 했다.
설명을 들은 성민과 세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둘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정말 중요한 정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인류를 위해 큰일을 하셨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겠습니다. 이번 일에 대해 수호자 연맹에서 알바트로스 공격대를 위해 소정의 감사 표시가 있을 겁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메모리 안에 든 내용을 복사하여 수호자 연맹에게 넘겼다. 플라스틱 병도 아예 그들에게 주었다. 이제 수호자 연맹에서 그것들을 정밀 분석하여 대비책을 세울 것이다.
여기까지 하자 수한의 마음이 푸근해졌다.
다른 나라에서 정보를 구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큰 산을 넘었다는 생각에서였다.
태수가 그들에게 넌지시 질문했다.
“다른 공격대에도 의뢰가 들어간 것으로 아는데, 그들에게선 소식이 없었습니까?”
“예. 원정에서 돌아온 공격대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잠시 한담을 나누다 지부장실에서 물러나왔다.
수호자 연맹 전체가 분주해졌다. 수호자들이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직원들이 전화를 거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갈태수 사장의 차를 타고 알바트로스 사옥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태수가 수한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에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아까 영상을 보니, 수한씨 속성 부여가 공헌한 게 큰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하하, 운이 좋다는 말만으로는 모자라지요. 보고서를 받아보고 포상금을 결정할 텐데,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힘의 결정을 더 사야 하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잠시 대화가 끊겼다.
차가 지독히 막혔다. 차라리 걸어가는 게 더 빠를 지경이었다.
태수가 창밖을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참, 수한씨. 저번에 제가 말씀드린 것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막 생각났다는 태도.
하지만 이게 본론이었다.
다른 과장들을 데리고 가도 될 것을, 굳이 수한을 데리고 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수한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말을 아꼈다.
그 동안 시간은 많았지만, 노르헤임 행성을 다녀오느라 생각은 제대로 못했다. 특별 휴가 기간 동안 생각해볼 작정이었다.
태수가 자기 뺨을 긁적였다.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는데…… 타이탄 공격대에서 제시한 조건이 괜찮은가 봅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타이탄은 우리나라 공격대의 블랙홀 같은 존재거든요. 괜찮은 사람만 있으면 무조건 데려갑니다. 대우도 좋고, 성적도 잘 내니 안 가는 사람이 드물지요. 백호 공격대도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긴 하지만, 타이탄 정도는 아니고요.”
“거기까진 몰랐습니다.”
“많이 알려진 얘깁니다. 특히 공격대장들 사이에선 아주 유명하지요.”
태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타이탄 공격대에 알게 모르게 맺힌 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일반 사무직 직원, 지원 요원, 이능력자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 인재를 빼앗기고 있으니까.
한참 타이탄 공격대를 성토하더니, 수한에게 당부했다.
“어디 가서 제가 이런 얘기 했다고는 하지 마세요. 괜히 이상한 소리 듣고 싶진 않습니다.”
“하하, 걱정 마세요.”
“하여간 타이탄 공격대는 보면 볼수록 부러워요. 수한씨도 아시겠지만, 우리 공격대는 좀 주먹구구식이 많잖아요? 처음에 우리 다섯이 뭉쳐 시작한 거다 보니 체계적이지가 못했지요. 고치려고 노력은 해봤는데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타이탄은 한민종 사장이 작정을 하고 만들어서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뭐, 솔직히 말해서 외국의 상급 공격대나 타이탄 공격대에 비교하면 알바트로스는 구멍가게 수준입니다. 수한씨 정도면 그랜드 공격대나 천룡 공격대에서도 욕심을 낼 테니, 우리 공격대에서 붙잡기는 힘들겠지요.”
태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했다.
수한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수한씨가 우리 공격대에 남아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굳이 붙잡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수한씨 레이드 인생의 시작이 우리 알바트로스였다는 것만 기억해 주세요.”
“말씀 감사합니다.”
수한은 마음속의 부담감이 확연히 덜어지는 것을 느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인간적으로 보면 알바트로스의 임원진은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젊은 나이에 그 위치에 올라갔는데도 거들먹거리지 않았고, 일개 부하 직원들에게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으니까.
그 덕에 알바트로스는 눈부시게 발전을 했다. 조만간 대한민국 공격대 중 5위권 안으로 진입할 게 확실시 되었다.
딱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한다면.
S급 이능력자의 부재.
대한민국의 S급 이능력자는 정확히 9명이었다. 그 중 2명은 수호자 연맹에 속해 있고, 7명이 상위 5개 공격대에 분포되어 있었다.
알바트로스는 AA급 이능력자가 다섯이나 된다는 게 강점. 대신 S급 이능력자가 없어 5위권 밖에 머물렀다.
S급 힘의 결정은 돈이 많아도 구하기가 힘들어서 문제였다. S급 변이체는 극히 희귀하고, 기계 괴수는 잡기가 무척 힘드니까.
그래도 이번에 기계 괴수들이 공격하는 것 때문에 S급 힘의 결정이 좀 풀릴 터였다. 어쩌면 몇 달 후에는 알바트로스에서도 S급 이능력자가 나올지 몰랐다.
사옥에 도착했다.
원정 기간은 짧았지만, 특별 휴가는 넉넉히 받았다. 그래도 비상 연락은 꼭 받으라고 했다.
노르헤임 행성으로 원정을 다녀온 사이, 마라도에 B급 변이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직 발견만 안 됐다 뿐이지, 바다 깊은 곳에는 A급 변이체가 돌아다니고 있을 지도 몰랐다.
정말로 일이 생기면 공격대도 징집될 터.
내심 걱정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대낮인데 동생들이 집에 있었다. TV를 보다말고 수한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어, 형? 벌써 돌아왔어?”
“원정 실패한 거야? 아직 며칠 안 됐잖아.”
한 번 나가면 몇 주가 기본이었는데 벌써 왔으니 이상했나 보다.
수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엔 빨리 끝났어. 목표를 초과 달성했거든. 그런데 너희 둘은 낮인데 왜 집에 있어? 학교 안 갔어?”
“에이, 오늘 일요일이잖아.”
“그래? 원정 갔다 오니까 요일 관념이 없어진다. 평일인 줄 알았어.”
“드워프 행성에 갔다온댔지? 변이체는 많이 잡았어?”
“그럼!”
수한은 노르헤임 행성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단, 차원의 틈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냥 드워프들이 골머리를 싸매던 문제를 해결했다고만 알려주었다.
평온한 나날이 지나갔다.
새미와 데이트도 하고, 용돈 달라고 할 때만 공손해지는 동생 녀석들에게 응징도 좀 하고……
그러는 동안 4번째 초능 개발이 끝났다.
수한이 택한 것은 절대 의지 항목 중에서 초능 강화.
그 외에도 결계 형성, 방어막 생성, 저항력 증강 등 많은 초능이 있었다. 수한은 공격 능력에도 보탬이 되는 것을 원했기에 이걸 선택했다.
아직은 미약하기 짝이 없지만, 나중에 힘의 결정으로 강화시키면 꽤 보탬이 될 것이다.
수한 본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강화시키고, 수십 명씩 강화시킨다고 생각해 보라. 어떤 위력을 발휘하겠나.
“좋았어.”
수한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받을 배당금으로는 A급 힘의 결정을 사야겠다.
SPT 결과가 나온 뒤가 좋겠지.
A급 이능력자에, SPT 2급이면 어느 정도 연봉과 배당을 받을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형, 뭐 좋은 일 있어?”
“그러엄!”
“참나, 깨소금이 쏟아지네. 그렇게 좋으면 아예 결혼해서 들어앉히던가.”
“하하하.”
기한이 오해했는지 이상한 소리를 했다.
수한은 그저 웃어 넘겼다.
그런데 평화로운 일상은 며칠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어느날 저녁, 세 형제가 모두 모인 자리.
수한은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숟가락질을 멈췄다.
TV의 뉴스 화면.
그 안에서 S급 변이체가 날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