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나미텐구 -1- >
2016년 3월 9일.
거대한 변이체가 일본의 후쿠오카를 공격했다.
대부분의 해양 변이체가 큰 덩치를 자랑하지만, 이번 변이체는 한 술 더 떴다. 거의 항공모함 수준의 크기를 자랑했다.
문어와 닮아, 촉수 형태의 다리를 휘두르는 변이체.
후쿠오카에 있던 모든 이능력자가 총동원되었지만, 이건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다.
군대를 동원하고, 본토에서 고위 이능력자를 실어 나른 다음에야 간신히 쫓아냈다. 막대한 전력이 동원되었음에도 사냥하는 것은 실패한 것이다.
말로만 듣던 S급 변이체.
그런데 수한이 노르헤임 행성에서 봤던 변이체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물 속성 변이체였기 때문이다.
바닷물과 결합하여 덩치를 불린 변이체. 몸을 이룰 재료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상처를 입어도 수복하면 그만이었다. 바다에서는 놈을 상대할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희소식이 하나 있었다.
차원의 틈을 봉인하는데 성공한 것.
적몰지의 해저 지면을 샅샅이 뒤졌다. 결국 차원의 틈을 발견했고, 수호자들이 잠수함을 타고 내려가 봉인하고 돌아왔다. 다른 곳에서도 그러했다.
후쿠오카가 공격당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
대부분 차원의 틈은 S급 변이체가 지키고 있었다. 상당한 희생을 치렀지만, 그것들을 죽이고 차원의 틈을 봉인하는데 성공했다. 몇 군데에선 사냥에 실패하여 두 번째 시도에 성공하는 곳도 있었다.
쑥대밭이 된 후쿠오카의 영상을 보고 수한은 침을 삼켰다.
어찌나 피해가 컸던지, 변이체에게 이름까지 붙었다.
쓰나미텐구(津波天狗).
이름처럼 해일이 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보이는 모든 게 파괴되고, 곳곳에 이재민들이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이틀 뒤에는 부산에 나타났다. 해군과 수호자 연맹이 동원되었지만 이번에도 놓쳐 버렸다. 덕분에 부산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후쿠오카와 다른 것이 있었다. 후쿠오카는 혼자 덮쳤는데, 부산을 공격할 때는 수십 마리의 A급, B급 변이체를 동반한 것이다.
상어 형상의 변이체들.
비상이 걸렸다.
특별 휴가 중이던 공격대원들 전원이 비상 호출을 받았다. 아직 징집령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다음 공격 받을 곳도 대한민국 영토 내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심각하네요.”
상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쓰나미텐구는 지금 어디 있답니까?”
“수호자 연맹과 한일 양국이 합동 수색 작전을 벌이는데도 못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해저까지 샅샅이 뒤졌는데도 오리무중이라네요.”
“그럼 다른 해역으로 이미 이동한 게 아닐까요?”
“모르지요. 일단 마라도에서 변이된 것으로 결론이 나서, 우리나라 영해에 있을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것 같습니다.”
수한은 노르헤임 행성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그때 어둠 속에 숨은 변이체를 찾아내기는 했었나?
그렇지 않았다. 수한이 광명 속성으로 어둠을 걷어냈을 때나 볼 수 있었지, 그게 아니면 A급 투시 계열 이능력자도 눈 뜬 장님이 되었다.
“탐지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수한이 불쑥 말하자, 시선이 수한에게 쏠렸다.
“노르헤임 행성에서 만났던 변이체도 그랬잖습니까? 당시 동굴 탐사를 같이 했던 드워프 중에 A급 투시 계열 이능력자가 있었는데, 일단 변이체가 숨으면 그 드워프도 변이체를 찾아내지 못했어요.”
“맞아. 그랬었죠.”
“어어? 그럼 쓰나미텐구도 못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잖아요. 안 그래도 투시 계열 이능력자가 부족한데, 최소한 AA급이 나서야 된다는 거니까요.”
“말이 그렇게 되네요.”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수호자 연맹, 정부, 공격대 모두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시간만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여론이 악화되었다.
부산이 공격당하고 딱 사흘 만에, 몇 년 전 엑스포가 열리기도 했던 여수신항을 쓰나미텐구가 덮쳤기 때문이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호텔, 식당 등 위락시설이 상당히 많고, 상주하는 인구도 상당했다.
그들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다.
지금까지 다친 사람들까지 합치면 수천이 넘어가는 피해.
상어 떼에 더하여 AA급 개복치 변이체 두 마리가 더해졌다. 수호자들이 급히 달려왔지만, 여수신항을 파괴해놓고 도망치는 것을 구경만 해야 했다.
민심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뭐하는 거냐?]
[세금을 받았으면 받은 값을 해라!]
[수호자들은 다 집에서 잠만 자고 있냐?]
[똑바로 안 하면 다 쏴 죽인다!]
이 정도는 약과.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인터넷을 도배했다.
수호자 연맹이나 정부 부처는 물론, 각 공격대의 게시판도 마비되었다. 노르헤임 행성에서 죽을 뻔하며 차원의 틈에 대해 알아온 수한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새미가 입을 삐죽였다.
“사람들 진짜 너무한다.”
“수천 명이나 죽었잖아. 화낼 만도 하지.”
“그래도 우리한테 그러는 건 너무하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쓰나미텐구를 잡기 전까지는 모든 공격대가 원정 나가는 것을 중지하기로 했다.
손해가 막심했다.
결국 대한민국의 상위 10개 공격대들이 하나로 뭉쳤다.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일단 쓰나미텐구부터 잡고 보자는 대원칙에 합의한 것이다.
수호자 연맹과 정부와는 별개로, 공격대끼리 회의를 했다.
각 공격대 지원부 최고의 두뇌들만 모였다.
알바트로스에서는 지원부장과 지원 1, 2, 3과의 과장, 그리고 수한이 나갔다. 최근 일련의 활약으로 눈도장을 꽉 찍어놓은 게 주효했던 것이다.
“가장 급선무는, 쓰나미텐구의 위치를 찾아내는 겁니다. 그게 아니면 공격 받을 곳을 예측하든지, 유인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미끼를 써볼까요?”
“제가 알기로는 수호자 연맹과 정부 모두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들었습니다. B급 변이체의 시체를 미끼로 썼는데, 시간만 버렸답니다.”
“아니, 애초에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무 곳에서나 시체를 물에 담가 봐야 낚시가 될 리가 없잖습니까? 최소한 쓰나미텐구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에 시체를 담그던가 해야지요.”
“동의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각 공격대의 실질적인 두뇌라고 할 수 있는데, 뭐 좋은 생각 있는 분 없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방법이 있었다면 진작 써먹었을 것이다. 이토록 상황이 악화되게 놔두지 않았겠지.
수한이 손을 들었다.
“알바트로스 공격대 소속, 이수한입니다.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한 번 말씀해보세요.”
수한은 잠깐 목을 가다듬었다.
“후쿠오카, 부산, 여수…… 쓰나미텐구는 이렇게 세 군데를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도시를 공격할 때마다, 한 가지 변화가 보이고 있습니다.”
“부하들이 늘고 있다는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흠, 확실히 이상하긴 합니다.”
원래 서로 다른 종에서 변이되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쓰나미텐구는 문어 변이체이면서도, 상어 변이체와 개복치 변이체를 이끌고 있었다.
일반적이지는 않은 현상.
수한은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 보았다.
“후쿠오카를 습격한 다음에는 상어 떼, 부산을 습격한 다음에는 개복치 두 마리, 그 다음에는 여수. 공통점이 보이지 않습니까?”
“공통점이라……”
“항구라는 거 말고 공통점이 있나요?”
수한은 양해를 구해 컴퓨터를 조작했다.
대형 스크린이 세 개의 화면을 나란히 비췄다.
쓰나미텐구가 후쿠오카, 부산, 여수 세 도시에 막 나타나 공격을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바로 그 시점을 담자,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물에서 모습을 드러낸 쓰나미텐구가,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을 향해 다리를 뻗고 있다는 것.
가만히 앉아 있던 상군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쿠아리움? 저 세 건물 모두 아쿠아리움 아닙니까?”
수한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쓰나미텐구는 세 도시의 아쿠아리움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습격에서, 이전 도시의 아쿠아리움에 있던 해양 생물이 변이체가 되어 나타났지요.”
“허!”
“그러네요?”
“개복치를 보고 눈치 챘어야 했는데……”
“그리고 분명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뭡니까?”
“쓰나미텐구의 다음 공격 목표 말입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타이탄 공격대 지원부장이 자기 무릎을 쳤다.
“제주도! 제주도에도 아쿠아리움이 있지 않습니까?”
“예. 제주도 동쪽 섭지코지 근처에 아쿠아리움이 있습니다. 진행 경로 상으로 볼 때, 그곳이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를 보면, 마라도에서 동쪽으로 쭉 가면 사세보를 거쳐 후쿠오카가 나온다.
거기서 대마도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면 부산.
다시 서쪽으로 가면 여수.
거기서 남서쪽으로 쭉 내려오면 제주도의 섭지코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일그러진 반원을 그리고 있다고 할까.
누군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됩니다. 마라도에서 가장 가까운 제주도가 아니라, 왜 멀리 후쿠오카까지 가서 아쿠아리움을 공격했겠습니까? 아쿠아리움을 감지할 수 있고, 공격할 의도가 있다면 가까운 곳부터 공격했겠지요.”
“그건 그렇습니다.”
“아쿠아리움이 목적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졌다.
수한은 그냥 보고만 있었다.
과열된 분위기가 좀 가라앉자, 수한은 다른 사람들을 보며 한 마디를 했다.
“제 생각에는 쿠릴 열도로 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의 훗카이도 북동쪽부터, 러시아의 캄차츠키 반도까지 길게 늘어진 쿠릴 열도.
그곳도 대한민국의 마라도처럼 변이체가 남아있던 곳이었다. 이번에 차원의 틈도 열렸고, 마라도 보다 한 발 더 앞서서 봉인되었다.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차원의 틈은 모두 같은 크기가 아니었다. 조금씩 편차가 있었다. 마라도는 개중 작은 편이었고, 북해나 쿠릴 열도에 생긴 차원의 틈은 가장 큰 편에 속했다.
틈이 크면 X-0와 새로운 신체 변형 물질도 많이 나온다.
그것을 느낀 쓰나미텐구가 쿠릴 열도로 이동하다가, 봉인된 후 마라도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한다.
세계 각지에서 이뤄진 차원의 틈 봉인.
그 중 S급 변이체가 근처에 없던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것들이 곧 인류를 습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회의에 참석한 자 중 한 명이 침착하게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제주도가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일단 그 대비부터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여수가 공격당한 게 어제니까, 이르면 내일 제주도가 공격당할 수도 있습니다.”
“수호자 연맹에 얼른 문의를 넣어 봅시다. 고봉수 수호자의 미래 예지 능력이면 섭지코지가 공격당할지 아닐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좋은 생각입니다.”
고봉수는 AA급 투시 계열 이능력자.
어떤 특정한 장소의 미래를 사진 찍듯 볼 수 있었다. 한 사흘 정도 뒤 제주 아쿠아리움의 상황을 본다면, 수한의 예측이 맞는지 틀렸는지 알아내는 게 가능했다.
금방 답신이 왔다.
수한이 맞았다.
고봉수는 제주 아쿠아리움이 쑥대밭이 된 모습을 예지했다. 오늘부터 사흘 사이, 어떤 형식으로든 재앙이 닥친다는 것이다.
이걸 광범위하게만 쓸 수 있다면 부산과 여수의 참사도 막았을 텐데 아쉬운 대목.
다음 공격 장소를 알아냈으니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섭지코지 인근에 대피령이 떨어졌다.
군함이 새까맣게 바다를 뒤덮었다. 수호자들이 섭지코지에 잔뜩 몰려왔다. 심지어 S급 이능력자인 김성민과 이세윤까지 와서 진을 쳤다.
공격대의 정예들로 섭지코지로 이동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근에 있는 성산항 쪽으로.
수호자 연맹과 해군은 제주도를 방어하고, 공격대의 정예들이 퇴로를 차단할 예정이었다. 벌써 2번이나 놓친 뒤라서, 이번에야말로 잡아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