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82화 (83/254)

< 쓰나미텐구 -2- >

수한도 거기 참여했다.

새미가 주위를 둘러보곤 놀랍다는 듯 말했다.

“사람 진짜 많다. 이 정도면 쓰나미텐구도 그냥 잡겠는데?”

“변이체들이 변수가 될 거야. 한 마리도 놓쳐선 안 돼. 그랬다간 나중에 문제가 생길 테니까.”

“맞는 말이야. 그런데 여수에선 어떤 동물이 변이 됐을까?”

“벨루가일 것 같아.”

“벨루가?”

“고래의 한 종류야. 내 생각대로라면 AA급 변이체가 됐을 것 같은데…… 두고 봐야 알겠지.”

최소 B급 이능력자로만 수백 명이 모였다. S급 이능력자도 왔으니, 이 사람들이 한 번씩만 공격해도 쓰나미텐구의 방어막이 박살날 듯했다.

성산항에는 570톤급 고속함 몇 척이 대기 중이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이능력자들을 실어 나르려는 것이다.

투타타타타타.

헬기들도 떠다녔다. S급과 AA급 이능력자들은 저걸 타고 전투를 치를 것이다.

“저기 봐! 타이탄 공격대 사장님도 오셨어!”

갑자기 새미가 호들갑을 떨었다.

헬기 하나가 성산항으로 날아들었는데, 몇 명의 이능력자들이 거기서 뛰어내렸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20대 중반의 남자.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손가락마다 낀 씨알이 굵은 반지가 화려한 빛을 뿌렸다. 금빛 갑옷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유독 돋보였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강의 이능력자였다

S급 강체 계열 이능과 S급 거력 계열 이능을 가지고 있었다. 공격과 방어 모두 극에 달했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든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일각에서는 일인 군단이라는 평을 하곤 했다.

한민종 사장.

먼저 와 있던 공격대 사장들이 민종에게 다가갔다. 원래부터 친분이 있는 터라, 웃으면서 얘기하는 게 상당히 화기애애했다.

새미가 그들을 보더니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우와, S급 이능력자가 네 명에 AA급 이능력자가 20명이 넘어! 우린 부하들만 잡아도 되겠다! 못 잡을 수가 없겠는 걸?”

“그러게. 수호자 연맹까지 하면 S급 이능력자 여섯 명이잖아? 이건 진짜 지기도 힘들겠어.”

하긴 이기는 것보다 숨통을 끊는 게 중요했다.

민종이 얼마간 대화를 하고 발을 돌렸다. 고속정에 먼저 타려는 것인지, 수한과 새미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그러다 둘을 보고 멈춰 섰다.

“혹시, 알바트로스 공격대의 이수한씨와 윤새미씨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하, 이거 반갑습니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타이탄 공격대의 한민종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수한입니다.”

“안녕하세요? 윤새미라고 해요.”

셋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민종이 둘을 보며 호의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두 분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정말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도버 해협에서도 그렇고, 차원의 틈에 대해서도 그렇고, 요즘 두 분이 저희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합니다.”

저희들이라?

타이탄 공격대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고위 이능력자들을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민종은 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겨놓고 떠났다.

“큰 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이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고위 이능력자가 되면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더니……

수한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알바트로스도 그렇고, 타이탄도 그렇고 각 공격대의 사장까지 나서서 인재를 끌어들이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예정된 이능력자들이 모두 도착했다. 이제 쓰나미텐구의 출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온갖 탐지기가 제주도 인근 바다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한이 보기엔 이런 탐지기로 쓰나미텐구를 잡아내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수한의 예상이 빗나갔다.

아직 포성이 터지지도 않았는데, 별안간 붉은 빛과 함께 경보가 울린 것이다.

뭔가 대비책을 찾아낸 모양.

왜앵 왜앵 왜앵!

이능력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제나저제나 대기하고 있던 참이라, 탑승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탑승이 완료되자마자 3척의 고속정이 수면을 박찼다.

바다로 좀 길게 돌아갔다. 원을 그리면서 아쿠아리움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구우우우웅.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소리.

바다 전체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고래가 숨 쉴 때 나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저음.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찔해진다.

쓰나미텐구가 나타나려는 것.

방금 전만 해도 맑은 쪽빛이던 바다가 검은색에 가깝게 변했다. 집채 같은 파도가 마구 넘실거렸다.

수한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쓰나미텐구 출현 전에 보이는 전조 현상이 아니다.

쓰나미텐구는 이미 도착했다.

섭지코지 앞, 아쿠아리움이 정면으로 보이는 바다.

그 바다 자체가 쓰나미텐구였다.

“우우우우우우!”

거대한 물줄기가 솟구쳤다.

물줄기?

아니다. 다리였다.

빨판이 달리고, 우둘투둘하며, 뾰족한 가시가 수없이 돋아 흉악하기 없는 다리.

그게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단번에 아쿠아리움을 내리쳤다.

쿠아앙!

아쿠아리움 중앙 건물이 무너졌다.

방어막을 펼치고 어쩌고 할 사이도 없었다.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공격이었다.

“키히익!”

“끼이이이!”

검은 바다 속에서, 수십 마리의 변이체들이 솟구쳤다.

벨루가, 개복치, 상어 변이체들.

쓰나미텐구의 몸 안에 숨어 있어, 이들도 탐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들 무척 기괴했다. 원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다 위에 기름을 칠한 것처럼 빠르게 미끄러지더니, 아예 육지 위로 기어 올라왔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이능력자들이 반격했다. 온갖 화려한 빛이 쏘아지고, 검이나 창을 든 이능력자들이 칼질을 했다.

쉽지는 않았다.

변이체들만 공격해 왔으면 대처하기가 쉬웠다. 방어 준비가 튼튼했으니까. 그런데 쓰나미텐구의 다리까지 더해지니, 이건 정말 혼돈의 도가니였다.

더구나 다리의 숫자가 점차 늘었다. 처음에는 하나만 공격하더니, 삽시간에 수십 개까지 불어났다.

“조심해!”

“피해!”

앞에는 변이체, 위에는 쓰나미텐구의 다리.

그래도 잘 막아내고 있었다. 부상당하는 사람도 없고, 변이체들에게 조금씩 유효타를 먹였다.

쾅! 쾅쾅!

대기하고 있던 군함들이 포격을 가했다. 이능력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접근하여 공격을 퍼부었다.

육지가 아닌 섭지코지 앞바다.

바다 자체가 활활 타올랐다.

기묘한 저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고래가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 같았다.

효과가 있는 걸까?

수한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주시자의 눈으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쓰나미텐구의 존재감은 여전히 막강했으니까.

전신이 거의 물로 이뤄진 괴물.

그러나 어딘가에는 그 핵이 있을 터였다. 핵을 공격하면 쓰나미텐구도 피해를 입겠지.

수한은 섭지코지의 이능력자들이 유독 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약화 포탄과 중화 포탄을 쏘아대는 군함의 포격도 그곳에 몰렸다.

수호자 연맹의 투시 계열 이능력자가 그곳에 쓰나미텐구의 핵이 있다고 파악한 모양.

효과가 있었다.

바다에서 연신 기음이 흘러나왔다. 검게 물든 바다가 푸른색이 되었다가, 검은색이 되는 것을 반복했다.

“우우우우웅!”

쓰나미텐구가 길게 소리를 질렀다.

다리를 하나 뻗었다.

유독 까맣고 길쭉한 다리.

그 다리가 지면을 기며 제주 아쿠아리움 안으로 들어갔다. 꿈틀거리며 기묘한 빛을 내자, 심상치 않다고 느낀 이능력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쓰나미텐구의 시도는 금방 격퇴 당했다. 얼마 못 버티고 다리가 소멸한 것이다.

그러자 변이체들이 달려들었다.

AA급 네 마리, A급은 12마리, B급은 50마리에 달했다. 특히 선두에 선 네 마리의 AA급 변이체들이 무시무시했다.

크기가 우선 컸다. 버스 몇 대를 합쳐 놓은 듯한 크기였다. 벨루가와 개복치가 변형되었는데, 원래 큰 생물이 변이되자 그 크기가 엄청났던 것이다.

변이체들은 목숨을 도외시하고 공격했다.

덕분에 이능력자들이 밀렸다. 그러면서 작은 틈이 생겼다.

쓰나미텐구가 다시 다리를 뻗었다.

이번은 못 막을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이능력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아쿠아리움에 다리가 닿을 듯했다.

구우웅!

바로 그때, 고속정들이 속도를 높였다.

반원을 그리며 돌아가 막 반전한 참이었다. 엔진을 최대 출력으로 올리자 금방 섭지코지 앞바다에 도착했다.

AA급 투시 계열 이능력자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11시 방향 거리 3000, 수면 아래에 쓰나미텐구의 핵이 있습니다! 2800, 2700, 2600……”

구술로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수한은 갑판의 난간에 기대어 몸을 내밀었다.

투시 계열 이능력자가 불러주는 방향과 거리를 머리에 담은 뒤, 지금 어디쯤 있을 거라고 계산했다.

심호흡을 한 뒤 마법 소총을 겨눴다.

아직도 거리는 2 킬로미터 이상.

보통의 이능력자라면 사거리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수한은 달랐다. 저격총이나 마법 소총을 든 상태에서는 어렵긴 해도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원래는 방어막에 막히겠지만, 지금은 군함들이 중화탄을 쏟아붓고 있으니 상관 없고.

수한의 손이 보라색으로 빛났다.

미리 부여해둔 관통 속성에 유도 속성을 더했다.

방아쇠를 당기자 육중한 총성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탕!

바다가 잠깐 하얗게 물들었다.

쓰나미텐구는 기본적으로 너무 컸다. 흰 빛이 얼마 지나지 않아 스러져 버렸다.

유독 더 하얗게 빛나는 부위가 있었다.

쓰나미텐구의 핵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

수한은 그 지점을 머릿속에 똑똑히 박아 넣었다.

‘저기구나!’

그 부분을 향해 집중적으로 총을 쏘아붙였다.

대부분은 쓰나미텐구의 물 속성 몸에 막혔다. 덕택에 바다가 하얗게 몇 번이나 반짝거렸다. 하지만 몇 발은 쓰나미텐구의 몸을 관통하고 핵을 맞추었다.

비록 핵의 방어막은 뚫지 못했으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쓰나미텐구의 핵에 새하얀 빛이 선명하게 깃들었다.

문어의 대가리 형상을 한 핵.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승용차 하나 크기였다. 멀리서 보면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한은 다른 이능력자들을 향해 외쳤다.

“저곳이 쓰나미텐구의 핵입니다! 저곳을 공격하세요!”

“너무 멀어요!”

“접근하길 기다려야 됩니다!”

다른 이능력자들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부르짖을 때, 새미는 배 가장 앞에 선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공기 중의 수분이 응결되고 있었다.

청명하던 하늘에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이 생겼다. 아주 작은 조각구름이지만, 섭지코지 앞바다를 뒤덮을 정도는 되었다.

새미가 눈을 번쩍 떴다.

가볍게 박수를 쳤다.

간단한 손짓.

그러나 그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우르르릉, 꽈과과광!

번개가 친다.

먹구름 안에서 태어난 빛의 창이 바다를 꿰뚫었다.

최소한 수십 개.

어쩌면 수백 개.

번갯불이 쉬지 않고 떨어져 내렸다.

그 많은 공격이 온통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쓰나미텐구의 핵을 향해.

“구오오오오오!”

쓰나미텐구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었다. 천지격변 세트는 물론, 무한한 힘의 반지까지 사용했다.

그 막대한 힘이 오로지 한 곳으로 쏟아졌으니……

쓰나미텐구가 몸부림을 쳤다.

그러느라 아쿠아리움으로 다리르 뻗던 것을 멈추었다. 육지의 이능력자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다리를 잘랐다.

쾅! 쾅!

포성이 울렸다.

군함들이 핵을 조준하고 대포를 쏘아붙인 것이다.

모조리 명중했다.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일반적인 포탄이라면 효과가 없겠지만, 지금 군함들이 사용한 탄두에는 방어막 중화탄이 섞여 있었다. 덕분에 유효한 타격을 입히는 게 가능했다.

녹색 체액이 검은 바다로 번졌다.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쓰나미텐구가 물로 자신의 핵을 감쌌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잠수했다.

“끼이이익!”

변이체들도 몸을 돌렸다.

쓰나미텐구에게 합류하려는 것.

“막아!”

상황이 역전되었다.

육지의 이능력자들이 변이체들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갖고 있는 속박이나 둔화 계통 이능을 몽땅 걸었다.

수한이 다시 총을 들었다.

이번에는 마비 속성.

급히 잠수하려던 쓰나미텐구의 몸이 봉쇄당했다.

등급 차이가 나니 금방 깨졌지만, 그 정도야 무시할 수 있었다. 수한의 연사 능력은 여기 모인 이능력자들 중 단연 최고봉이었으니까.

정말로 천금 같은 시간을 벌었다.

“핫!”

민종이 가볍게 몸을 날렸다.

반지 중 하나가 빛을 발하더니, 투명한 날개가 양 어깨에 돋았다. 날개가 몇 번 허공을 박차자 민종의 몸이 어느새 쓰나미텐구의 위에 도달했다.

민종은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첨벙!

물보라가 튀었다.

흡사 자살하는 듯한 모양새.

그런데 민종이 바다로 들어간 직후, 금색 찬란한 보광이 뻗어 나왔다. 이내 빛이 걷히며, 금색으로 빛나는 거인이 불쑥 나타났다.

“거신 강림이다!”

보고 있던 이능력자 중 하나가 소리쳤다.

수한은 거인을 눈여겨보았다.

S급 이능 2개의 조합.

대한민국에선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거인이 쓰나미텐구의 핵을 붙잡았다. 그리고 높이 들어 올리더니, 공격대 쪽으로 끌고 왔다.

거대한 다리가 거인을 후려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이능력자들이 공격을 퍼부었다. 형형색색의 빛과 화살이 날아가 쓰나미텐구의 핵을 강타했다.

“꾸어어엉!”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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