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직 -1- >
상륙했던 변이체들은 이능력자들이 잘 막고 있었다. 쓰나미텐구는 핵이 민종에게 잡힌 상태여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핵이 깨졌다.
지금까지 그토록 애를 먹었던 게 거짓말 같았다.
“구우우우우!”
긴 울음소리만 허공에 남아 떠돌았다.
한때는 석유가 유출된 것처럼 시꺼멓게 물들었던 섭지코지의 앞바다.
이제는 원래의 푸른 빛깔을 되찾았다.
깨진 핵에서 끈적끈적한 녹색 체액이 흘러나왔다.
남은 것은 수십 마리의 변이체들 뿐.
“끼이이이!”
“키익!”
변이체들이 괴성을 질렀다.
자기들 보호자 노릇을 하던 쓰나미텐구의 죽음에 일순 당황한 것이다.
그것도 잠시였다.
더 악다구니를 부리며 바다로 돌아가려고 했다.
섭지코지 앞바다에 흘러나온 쓰나미텐구의 피,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이능력자들이 잘 막았다. 그런데 먹이를 앞에 둔 변이체들이 몸으로 밀고 나오자 더 이상 막지 못했다. 한두 명씩 부상당하기 시작했다.
“갑시다!”
멈췄던 고속정들이 다시 전진했다.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해안가 가까이 다가간 후, 지원 공격을 퍼부었다.
수한은 마비 속성과 유도 속성 위주로 총을 쏘았다. 그때마다 변이체들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러면 다른 이능력자들이 공격을 퍼부어 변이체를 끝장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민종.
해안가로 올라가더니 거대화하여 변이체들을 걷어찼다. 기껏 바다에 다다른 변이체들이 육지쪽으로 뻥뻥 날아갔다.
육지와 바다, 두 방향에서 둘러싸이자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강력한 변이체들이 하나둘 숨통이 끊어져 땅 위에 몸을 뉘었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윽고 모든 변이체가 쓰러졌다.
“후!”
수한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다 끝났다.
최근 며칠, 대한민국과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쓰나미텐구 사태가 종료되었다.
마법 소총을 거뒀다.
조종간을 안전으로 돌린 후, 고속정의 난간에 몸을 기댔다.
“수고했어.”
“자기도 고생했어.”
새미가 수한에게 머리를 기댔다.
힘을 많이 소모한 모양이었다. 얼굴이 새하얬다.
수한은 새미를 안고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 민종이 복귀했다.
이능력자들이 박수를 쳤다.
“대단하십니다!”
“역시 대한민국 최강의 이능력자답습니다.”
“아주 감명 깊었습니다.”
“하하, 별 말씀을.”
민종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멀찍이 대기하고 있던 화물선이 천천히 다가왔다. 인부들이 달려들어 쓰나미텐구의 핵을 화물선에 실었다.
육체가 대부분 비물질화된 뒤라 건질 건 그거밖에 없었다. 그래도 크기가 크고 막대한 힘을 품고 있어. 정제하면 높은 확률로 S급 힘의 결정을 얻을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이능력자들이 푸념을 했다.
“오늘은 완전히 손해를 봤네. 덜렁 핵 하나가 전부라니, 이게 말이 돼?”
“이건 뭐 수호자 연맹이랑 해군, 공격대 10개까지 나누고 나면 푼돈 밖에 안 떨어지겠는데?”
“어쩔 수 없지. 애초에 손해 그만 보려고 작전에 참가한 거니까.”
“그나마 다른 변이체들 시체는 남아 있어서 다행이야.”
그럭저럭 정돈되는 분위기였다.
섭지코지에서 헬기 한 대가 날아왔다. 김성민과 이세윤 등 수호자 연맹의 핵심 이능력자들이 헬기에서 고속정 위로 뛰어내렸다.
가장 먼저 민종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나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 가지를 묻는다.
“혹시 아까 쓰나미텐구의 핵에 강조 효과를 거신 분이 누굽니까?”
강조 효과?
수한의 유도 속성을 말하는 모양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빛이 대상을 감싸는 것처럼 보이니까.
이능력자들의 시선이 수한을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간 성민의 얼굴이 확 펴졌다.
“아, 수한씨 아닙니까? 저번에 지부장실에서 뵀지요?”
“예. 이제 한 시름 놓으셨겠습니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수한씨가 강조 효과를 쓰나미텐구에게 거셨다고요?”
“강조 효과가 아니라 유도 속성입니다. 단순히 눈에 잘 보이는 게 아니고, 인근의 원거리 공격을 그곳으로 집중시킵니다. 광역 공격도 마찬가지고요.”
“아하, 어쩐지!”
성민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제야 아까의 전투 양상이 이해가 갔던 것이다.
전투의 향방을 결정지은 것은 민종이었지만, 사실 그 전에 핵이 하얗게 변하던 순간부터 추가 기울었다.
성민은 입맛을 다시며 수한을 보았다.
세상에, 공격하기 쉽게 강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변의 공격을 끌어들이기까지 한다고?
활용하기에 따라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었다.
저번에 만나고 나서 이능 인증 결과는 살펴보았지만, 유도 속성이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 유도 미사일처럼, 저절로 날아가 맞추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의 공격을 끌어들이다니……
수호자로 끌어들이면 좋겠는데, 그걸 공격대들이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당장 주변에 늘어선 이능력자들의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정말 유용한 이능입니다. 더구나 2킬로미터 밖에서도 명중시킬 수 있으니, 말이 다 안 나오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이런 종류의 이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부장으로 있다 보면 별별 이능을 다 보게 되니까요. 하지만 2킬로미터 밖까지 날릴 수 있는 이능은 얼마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성민은 금방 물러났다. 다른 이능력자들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눈 후, 다시 헬기를 타고 제주시를 향해 날아갔다.
갈태수 사장이 친근하게 수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휴, 수한씨랑 새미씨 덕에 체면치레는 한 것 같습니다. 이거 사장씩이나 되어서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으니 좀 부끄럽네요.”
태수는 신속 계열 이능력자.
힘의 장갑으로 원거리 공격을 할 순 있지만 어디까지나 근접 공격이 주특기였다. 그러다 보니 쓰나미텐구를 상대할 때는 뒤에서 구경만 했던 것이다.
나중에 변이체들을 상대할 때야 톡톡히 제 역할을 했지만, 가장 중요할 때 제 몫을 못한 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고속정이 머리를 돌렸다.
섭지코지에서 성산항까지는 지척.
금세 성산항 부두에 도착하여 이능력자들이 뭍으로 내렸다. 며칠간 멈췄던 원정을 재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 얼굴이 밝았다.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아까의 격전도 방송 헬기를 이용해 전부 보고 있던 참이었다. 꼭 헬기가 아니더라도 망원 렌즈를 이용해 촬영했다. 수호자 연맹에서 접근을 막았지만, 특종을 노리는 기자들까지 걷어낼 수는 없었나 보다.
기자들이 민종에게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한 사장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거신 강림을 사용하셨을 때 심정이 어떠셨습니까?”
“쓰나미텐구는 얼마나 강했습니까?”
“원정은 언제부터 재개할 생각이십니까?”
“하하하.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물어보세요.”
기자들이 보기에도 민종의 거신 강림이 눈에 확 띄었던 것이다.
민종은 여유롭게 기자들을 상대했다.
그 사이, 수한은 새미의 손을 잡고 기자들 옆을 빠져나왔다.
새미가 입을 삐죽였다.
“오빠도 쓰나미텐구 잡는데 기여한 게 많은데 기자들은 다 눈이 삐었나 봐.”
“내 능력은 눈에 잘 안 보이잖아. 한 사장님은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니까 달려들만 하지. 구도도 좋잖아? 인간 대 괴물의 싸움이니까.”
“그야 그렇지만.”
장시간 긴장하고 있어서일까.
수한은 상당히 피곤했다. 얼른 집에 돌아가 쉬고 싶었다.
다른 알바트로스의 이능력자들도 그랬나 보다. 제주시에서 대기하고 있던 헬기를 불렀다.
기상 상황은 괜찮았다.
제주시로 먼저 이동한 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다.
벌써 서울시 전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쓰나미텐구를 쓰러뜨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휴, 이제 겨우 두 발 뻗고 자겠네!”
“아니, 저렇게 간단한 것을 부산과 여수에서는 왜 놓쳤대?”
“거기서는 그냥 기습 당했다잖아. 제주도에서는 미리 알고 대비했으니 잡은 거지. S급 이능력자만 7명이 동원됐다고 하잖아!”
“하긴 그 정도로 많이 나갔는데 못 잡으면 접시물에 콱 코 박고 죽어야지.”
쓰나미텐구는 잡았지만, 더욱 복잡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뒷정리.
1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재산 피해가 엄청나게 났다. 인명 피해도 상당했다. 그것을 보상하고, 이재민들을 지원하려면 정부가 상당히 고생을 할 것이다.
거기다 공격대에게도 전리품을 분배해줘야 하니,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한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어찌 되든 좋았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수호자 연맹에서 나올 보상금만 타먹으면 된다.
대신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었다.
이직 문제.
알바트로스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으니, 타이탄과 구체적인 조건만 협의하면 끝이 난다.
저번에 얼굴을 봤던 타이탄 공격대의 인사부장이 미소를 지으며 수한을 바라보았다.
“저희 사장님께서 수한씨를 아주 극찬하셨습니다. 이번 쓰나미텐구 사냥에서 활약이 크셨다고요.”
“한 사장님이 최고였지요. 한 사장님에 비하면 전 별 거 아니었습니다.”
“하하, 겸손하시네요. 사장님 말씀으로는 본인이 기여하신만큼 수한씨도 기여하셨다고 하시던데요? 수한씨가 없었으면 쓰나미텐구를 그렇게 쉽게 잡지는 못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뭐, 그건 그랬지요.”
수한은 씩 웃었다.
새미가 옆에서 거들었다.
“우리 오빠는 총 18가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어요. 이번에는 몇 가지만 사용했지만요. 다른 속성들까지 사용하면 굉장할 걸요?”
“정말 그렇겠습니다.”
인사부장이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혹시 각 속성 별로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무슨 속성을 쓰실 수 있는지는 압니다만, 정확한 효과는 몰라서 그렇습니다.”
“어렵지 않지요.”
수한은 자신의 속성에 대해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알바트로스 공격대에만 밝히고 다른 공격대나 수호자 연맹에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 내용.
예광, 섬광, 연막, 조명, 관통, 파괴, 분열, 강타, 화염, 빙결, 폭발, 유도, 약화, 실명, 마비, 중독, 광명, 암흑, 붕괴.
자세한 설명을 들은 인사부장이 혀를 내둘렀다.
“이거 수한씨 혼자 거의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겠습니다. 정신 공격에는 좀 취약한 것 같지만, 변이체 중에는 정신 공격을 하는 녀석이 거의 없으니 상관없는 일이지요.”
수한은 그저 웃어 보였다.
타이탄에서 제시한 조건은 저번과 같았다.
연봉 10억에 배당 50몫.
대신 여러 가지 옵션이 붙었다.
방탄차를 렌트해주고, 장학금을 주고, 의료비도 지원해주고, 개인 세무사도 알선해 주겠다는 것이다.
수한의 귀가 펄럭였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돈 들어갈 일이 많던 참이었다. 저런 옵션들의 가치도 상당했다.
“음, 좋네요. 하지만 한 가지 항목을 더 넣고 싶습니다.”
“더 넣고 싶은 항목이라면……”
“전 조만간 A급 힘의 결정을 살 거고, 힘의 결정 흡수에 도전할 겁니다. 성공하면 A급 이능력자가 되겠지요.”
“너무 성급하신 거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 B급 이능력자가 된지 얼마 안 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 오빠. B급 힘의 결정 몇 개 흡수해서 가능성을 높인 다음에 도전하는 게 좋을 거야. 나도 그렇게 했어.”
하지만 수한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미 3차 진화를 마친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이능 인증에서 A급이 나올 확률이 높은데, 괜히 가능성을 올린답시고 수십억씩 낭비할 수는 없지 않나.
수한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 나도 서두를 생각은 없어. 최대한 준비를 하고 흡수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