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85화 (86/254)

< 이직 -3- >

수한은 솔직하게 감상을 이야기했다.

“괜찮겠는데요? 그런데 눈에 너무 띄네요. 광택 좀 죽일 수는 없나요?”

“아,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광학 병기 방어랑 이능 공격 방어가 안 돼요.”

“그럼 그냥 이 위에다 옷을 껴입어야겠네요.”

수한이 먼저 옷을 가져가자, 다른 요원들도 하나둘 옷을 집어 들었다.

지훈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허리를 굽히더니 수레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수한은 잽싸게 그 뒤를 쫓아갔다.

지훈이 의아한 눈으로 수한을 돌아보았다.

“수한씨, 무슨 일 있습니까?”

“별 건 아니고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점심시간에 잠깐 어떠세요?”

“수한씨가 사시는 거죠?”

“하하, 그래야죠.”

“그렇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간단히 공격대 사옥 앞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메뉴는 초밥.

맛은 있지만 꽤 비쌌다. 대한민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여의도였기 때문이다.

“이야, 정말 맛있겠네요. 수한씨, 잘 먹겠습니다.”

“많이 드세요.”

초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거의 식사가 끝나갈 무렵, 수한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신형 보호복이 기계 괴수 내부에서 발견한 옷을 복제했다고 하셨지요?”

“예. 맞습니다. 국방부에서 군 소속 이능력자들에게 보급하겠다고 개발을 의뢰했지요.”

조용한 방에 둘만 앉아 있어서일까. 아니면 개발이 완료되어 기밀 엄수 의무가 해제된 것일까.

지훈은 순순히 대답했다.

“혹시 그거, 제국인들이 입는 옷 아닙니까?”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이상한 거요?”

“예.”

지훈이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목소리를 낮추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저희도 최근에 알아낸 건데, 옷에 유전자 인식 기능이 있습니다.”

“그래요? 하긴 제국은 기술이 발전했으니까 그게 가능하겠네요. 그런데 그게 이상한 겁니까?”

“유전자 인식 기능이 있는 건 이상하지 않죠. 그런데 인식하는 유전자가 지구인의 유전자라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예?”

이게 무슨 소리지?

수한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지훈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다시 말해서, 기계 괴수에 타고 있던 게 바로 지구인이었다는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수한은 옛 기억을 상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체형이 지구인과 매우 흡사하긴 했다. 가슴에 세라프의 적색 검이 박혀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사람 시체인 줄 알았겠지.

심드렁한 태도에, 지훈이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기계 괴수에 제국인만 타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배신자일 수도 있고, 세뇌 당한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쩝!”

입맛을 다시더니, 몇 마디를 더했다.

“사실은 제국인과 지구인이 같은 종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나간 다른 가지? 뭐 그런 거요.”

“하하하. 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수한은 그저 웃어 넘겼다.

그런데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졌다.

레벨 업 도우미.

그게 자신에게 옮겨온 뒤에도 멀쩡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물건이니 유전자 인증이든 뭐든 보안 장치가 있을 텐데 작동하는 것은 보지 못했고.

실은 유전자 대조 후에 작동한 거지만, 수한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확인해 봐야겠다.

다른 외계 행성에서도 기계 괴수 안에서 제국인의 시체를 발견했을 터.

그 시체가 어떤 것인 줄 알면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

어쨌거나 좋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긴 했지만, 오늘 지훈을 만나자고 한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니었다.

수한은 가볍게 화제를 돌렸다.

“저거 연구하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언뜻 봐도 상당히 좋은 물건 같던데요.”

“어휴, 말도 마세요. 입사하고 지금까지 야근을 밥먹듯이 했습니다. 주말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언제 우리 동기들끼리 한 번 뭉쳐야죠.”

“맞다. 수한씨 곧 타이탄으로 이직한다고 하셨죠?”

“거기까지 소문이 돌았습니까?”

“당연하지요. 수한씨는 우리 공격대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아닙니까. 가만히 있어도 수한씨 소식이 들립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수한은 웃고 말았다.

3월 말, 새롭게 원정을 떠났다.

이사 두 명이 합류한 원정이었다. AA급 변이체가 목표였고, 훌륭하게 성과를 거두었다. 수한도 40억이 넘는 배당금을 받았다.

“이번 원정도 대박이네요!”

“AA급 변이체를 2마리나 잡은 게 컸죠. 그나저나 수한씨 이능 장난 아닌데요?”

“역시 타이탄에서 데려갈 만 합니다.”

“하하, 뭘요.”

5월쯤 알바트로스에서 마지막 원정을 떠날 줄 알았는데, 뜻밖의 일로 좌초되었다.

공격대 내에서 대규모 인사 이동이 있었던 것이다.

특수 원정팀.

외계 행성 지사 설립과 더불어, 알바트로스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다.

그 팀장으로, 지원 2과 과장인 상군이 발령을 받았다.

“과장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다들 고맙습니다.”

팀장 자리를 놓고 지원 1, 2, 3과 과장들이 경쟁했는데, 최근 실적이 눈에 띄게 높았던 상군이 낙점된 것.

지원 2과의 경사였다.

자연히 술판이 벌어졌다.

오랜만에 허리띠를 풀고 마음껏 마셨다. 벌써 상군은 고주망태가 되어 뻗어 있었다.

“과장님이 팀장으로 영전해서 가시면, 우리 과는 어떻게 될까요?”

“몇 명은 특수 원정팀에 가지 않을까요?”

“그렇겠죠. 한 서너 명 정도?”

“다른 공격대 보면 특수 원정팀은 대충 3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이능력자 10명에 지원 요원 20명으로 이뤄지니까 어쩌면 지원 1, 2, 3과 중에 하나는 없어질 수도 있어요.”

“아예 없애지는 않을 걸요? 신입을 받든지, 다른 부서에서 발령을 내든 하겠죠.”

“어쨌든 당분간은 시끄럽겠네요. 원정도 못 가겠고.”

“가도 AA급은 못 잡죠. 잘 해봐야 A급 정도?”

“과장님은 누가 될까요?”

“그러게요. 대리님도 과장님이 데리고 가신다고 하셨으니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알바트로스의 지원 1, 2, 3과는 이능력자면서 지원 요원인 사람이 맡는 게 관례였다. 비단 알바트로스만이 아니라, 많은 공격대가 그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워낙 적다 보니, 인재를 확보하는데 꽤 어려움을 겪었다.

“하하, 마셔요! 마셔!”

정학주 주임이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영전한 것은 상군인데, 그 자신이 영전한 것처럼 굴고 있었다.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이리저리 술을 먹이고 다녔다.

추 계장이 옆에서 속삭였다.

“학주씨는 본인이 과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보네요.”

“예? 연공 서열에서 한참 밀리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기존 과장 중에 한 명이 오거나,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을 영입할 것 같아요.”

“하긴 그렇겠죠. 누가 올지 궁금하네요.”

“업무 파악하는데 2, 3주는 걸릴 테고, 원정 시작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6월 중순은 될 것 같습니다.”

5월 1일이 되자 예고한 대로 대규모 인사 이동이 이뤄졌다.

상군은 특수 원정팀으로 떠나며 자기 수족들을 다 데려갔다. 1명 뿐인 대리는 물론, 계장 2명과 2명이 빠져나가니 지원 2과는 순식간에 속빈 강정이 되고 말았다.

남은 것은 14명. 그나마 대부분 연차가 낮은 주임과 일반 사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며칠 후, 새로운 과장이 지원 2과를 찾았다.

이광표.

본인을 B급 신속 계열 이능력자라고 소개했다.

보유한 이능과는 다르게, 투실투실하게 살이 쪘다. 얼굴은 물론 몸도 공처럼 동글동글했다.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해봅시다.”

둔해 보이는 외양과 다르게, 광표는 일처리가 꽤 빨랐다. 채 며칠 지나지 않아 업무 파악을 끝냈다.

반면 며칠 기세등등했던 학주는 기가 팍 죽었다.

정말로 과장 직함을 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조금만 생각해도 그게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알 텐데, 참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5월 중순이 되자, 삐걱거렸던 지원 2과가 겨우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광표만이 아니라, 지원 2과로 발령 받은 사원들도 적응했던 것이다.

수정한 계획서에 따르면 원정 시작은 5월 30일. 돌아오는 것은 6월 26일. 정확히 4주짜리였다.

이번이 알바트로스에서의 마지막 원정이 될 터.

새미도 그랬다. 전투 2과의 과장과 대리가 모두 특수 원정팀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한동안 홍역을 앓은 것이다.

“같이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게.”

전투 2과와 지원 2과 모두 전력이 크게 감소한 상태였다.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A급 변이체와 B급 변이체만 몇 마리 잡고 돌아왔다. 수한의 수익도 좀 줄어서, 약 30억 정도 버는 것에서 그쳤다.

저번에 벌었던 것까지 합치면 약 70억.

쓰나미텐구를 잡고 받은 보상금도 있지만 그건 얼마 받지 못했다.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하도 잘게 쪼개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억은 되지만, 지금의 수한에겐 그냥 그랬다.

원정에서 돌아온 뒤, 수한의 송별회가 열렸다.

“그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수한씨, 수고했어요.”

“타이탄에 가서도 우리 잊으면 안 되요!”

친한 사람들만 참석한 자리.

단출했다. 하지만 그래서 마음이 더 편했다. 괜히 시끄럽게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송별회가 끝나고, 알바트로스 사옥 앞으로 갔다.

새의 날개 모양을 닮은 알바트로스 사옥.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면접 보러 와서 잿빛 학살자에 대한 사냥 계획을 발표했던 일, 처음으로 출근하여 잡일만 하던 때, 첫 원정, 휘니크로아, 지원 2과로의 발령과 그 이후 벌어진 일들……

새미가 수한에게 몸을 기댔다.

“1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지 않아?”

“그랬지. 벌써 1년이나 되었구나……”

사직서는 진작 제출했다.

내일부터는 특별 휴가 기간이다. 이대로 끝이라는 얘기.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그래서 복잡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오늘도 야근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공격대 사옥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것을 한동안 보고 있다 몸을 돌렸다.

“그만 가자. 어차피 타이탄 공격대 사옥 근처라서, 앞으로도 지겹게 볼 거야.”

“그렇겠지? 아쉽긴 하다. 이상한 사람도 많았지만 괜찮은 사람도 많았는데……”

“어딜 가나 마찬가지지 뭐.”

타이탄 공격대로 출근하는 것은 7월 1일.

이제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

수한은 그 시간을 유용하게 썼다.

힘의 결정을 추가로 구입했다. 의지 계열 B급과 C급 하나씩이었다. 그것들을 싹 흡수하자, 초능 강화가 초능 증폭으로, 초능 폭발로 진화했다.

이제 수한은 명실상부한 A급 이능력자이면서, 3개의 b급 이능을 추가로 가진 강력한 능력자가 된 것이다.

시간은 물 흐르듯 빠르게도 흘러갔다.

어느덧 7월 1일이 되었다.

수한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전투복 대신 양복을 잘 차려 입었다. 단검과 권총 2자루만 허리에 찼다.

알바트로스에서 지급 받은 복제 보호복은 반납한지 오래. 돈을 모으는 대로 보호복을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들이 마중을 나왔다.

“잘 다녀와, 형!”

“몸 조심해!”

“그래. 너희는 잘 놀고 있어.”

둘 다 대학생이라 이미 방학을 했던 것.

수한은 타이탄 공격대에서 내준 승용차에 탔다.

독일의 유명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차였다. 방탄 기능은 기본이었다. 앞으로 타이탄 공격대에서 퇴사할 때까지, 자유롭게 이 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중간에 새미의 집을 들렀다. 새미를 태우고 다시 자동차를 몰았다.

여의도에 도착했다.

저 멀리 세 쌍둥이 건물이 보였다.

주변에 밀집한 공격대 사옥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건물.

타이탄 공격대.

수한의 인생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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