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탄 공격대 >
차가 접근하자, 경비 초소의 차단봉이 저절로 올라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30대 초반의 경비원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수한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대로 경비 초소를 지나쳐, 주차장에 차를 놔두었다.
새미의 손을 잡고 인사부로 이동했다.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둘을 힐끔거렸다.
복장과 명찰을 보니 이능력자인 것 같은데, 어째 낯이 설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 언론을 탄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알아볼 만큼 유명인사는 아니었으니까.
새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인사부가 어디 있는 줄은 알아?”
“응. 저번에 왔을 때 봐뒀어.”
“저번에?”
“쓰나미텐구 때문에 여기서 회의가 열렸었잖아.”
“맞다, 그랬지.”
인사부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낯익은 인사부장이 둘을 맞이했다.
“하하, 반갑습니다! 드디어 두 분을 우리 공격대에서 뵙게 됐네요.”
“오랜만입니다. 잘 계셨지요.”
“저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술이나 먹고 커피나 마시는 게 일인 걸요. 자자, 두 분 다 앉으세요.”
인사부장은 수한에게 축하부터 해주었다.
“수한씨. A급 이능력자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수한씨가 최단기록이죠? 제가 알기로는 5월 말 정도에 각성하셨으니까요.”
“최단기록은 아닐 겁니다. 당장 한 사장님만 해도 6개월만에 A급 이능력자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긴 그렇지요. 백호 공격대의 안경미 사장님도 6개월 정도 걸렸으니까요. 그래도 1년이 안 걸리셨다는 얘긴데……”
인사부장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뻔했다.
아마 성장이 여기서 멈추지는 않을 거라고 보겠지. AA급은 금방 찍을 테고, 어쩌면 S급까지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SS급은 지구 전체에서 다섯 명밖에 없으니 아직 논외이긴 하지만.
간단히 한담을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민종 사장이 얼굴을 한 번 보겠다고 한 것이다.
“오, 반갑습니다!”
사장실에 앉아 있던 민종이 자연스럽게 둘을 맞이했다.
자리를 잡고 앉자, 비서가 연녹색의 차를 내왔다.
수한은 코를 벌름거렸다.
향긋하면서도 청량하여, 폐부까지 시원해지는 냄새.
맡아본 적이 있었다.
“엘프 차네요?”
“드신 적이 있나 보죠?”
“예. 알바트로스 갈태수 사장님이 좋아하셔서요. 몇 번 얻어마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능력자들은 다 엘프 차를 좋아합니다. 장복하면 이능을 더 쉽게 발현할 수 있거든요. 힘의 결정을 흡수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고 하네요.”
“어머, 정말요?”
“하하, 그럼요. 두 분도 이제 벌 만큼 버실 텐데, 커피나 녹차 대신에 엘프 차를 드시는 걸 추천합니다.”
얼마간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민종이 어느 순간 얼굴을 굳혔다.
그러자 가볍던 분위기가 대번에 무거워졌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나 보다.
“두 분 다 특수 원정팀에 속하게 되는 건 아시지요?”
“예. 압니다.”
“우리 타이탄 공격대에는 총 3개의 특수 원정팀이 있습니다. 두 분 다 그 중 1팀에 들어가실 겁니다.”
“1팀이라……”
“원래는 3팀으로 배속시키려고 했지만 저번 쓰나미텐구 사건을 겪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두 분에게 정말로 기대가 큽니다.”
“감사합니다.”
“급변하는 시기입니다. 기계 괴수들이 새롭게 공격했고, 제국의 새로운 공격 방법도 등장했으니까요.”
민종은 보기보다 말이 많았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부분 수한과 새미가 아는 내용.
특히 새로 발견된 행성에 대한 것을 말할 때는 거의 열변을 토하다시피 했다.
“지금은 비록 우리 공격대가 대한민국 1위를 하고 있지만, 언제 따라잡힐지 모릅니다. 반대로, 세계에서 10위권 안으로 진입할 수도 있는 거고요. 두 분이 특수 원정팀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 공격대를 위해 많이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셋 다 찻잔을 비운 것을 확인하고, 찻잔을 치우며 민종에게 눈치를 주었다.
민종이 그걸 보더니 시계를 한 번 보았다.
“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예지씨. 다음 일정이 뭐였죠?”
“페롱 이사님과 면담이 잡혀 있습니다.”
“맞아. 그랬죠?”
민종이 고개를 끄덕이고 수한과 새미를 돌아보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시간이 안 되네요. 다음 기회에 다시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시간을 너무 빼앗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예지씨! 수한씨랑 새미씨를 특수 원정 1팀에 데려다 주세요.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두 분은 절 따라오세요.”
육감적인 몸매의 비서가 둘을 향해 손짓했다.
사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 덕에 서성이던 외계인과 눈이 딱 마주쳤다.
얼핏 보면 지구인 같지만, 눈동자가 두 개씩 있고 머리 위에 뾰족한 뿔 같은 게 몇 개 달린 외계인.
주페르 행성인이었다.
AA급 이능력자로, 특수한 계약에 묶여 타이탄 공격대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고 했다. 예방 접종 문제는 미드가르드 행성에서 가져온 세계수의 가지로 해결했다던가.
서로 눈인사를 하며 지나쳤다.
특수 원정 1팀은 사장실 바로 2층 아래에 있었다. 인원은 총 30명 정도라고 들었는데, 사무실 면적은 알바트로스의 지원 2과와는 비교가 안 된다.
층 하나를 통째로 쓰는 것이다.
둘을 본 팀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인사하세요. 다들 얘기는 들으셨죠? 오늘부터 1팀에 배속된 이수한씨와 윤새미씨에요.”
“아, 저번에 쓰나미텐구 잡을 때 봤지요? 반갑습니다. 팀장 김석구입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윤새미에요.”
차례차례 인사를 했다.
사람이 많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다.
원정 1팀의 전력은 상당했다. AA급 이능력자 2명에, A급 이능력자가 5명, B급 이능력자 5명 C급 이능력자 2명으로 이뤄져 있었다.
단독으로 AA급 변이체 사냥도 충분할 정도.
평소에 일이 없을 때는 잘게 쪼개어 일반 원정에 섞여 가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엔 원체 특수 원정팀이 필요한 일이 많아서, 팀 전체가 행동할 때가 많았다.
“다음 주에 바로 원정을 시작할 겁니다.”
“빠르네요. 어느 행성입니까?”
“행성 이름은 모릅니다.”
“예?”
수한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으로 석구를 쳐다보았다.
석구는 쓰게 웃었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행성입니다. 무인 탐사로 대기 조성이나 세균, 바이러스 같은 건 파악을 했는데 토착 종족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변이체들이 어디에 분포해 있는지, 기계 괴수는 남아 있는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허어, 완전히 맨땅에 헤딩이네요?”
“그러려고 특수 원정팀이 있는 거죠. 잘 되면 대박이고, 못 되면 전멸하기도 쉬운 부서입니다.”
“세라프 종족에게서도 정보를 얻지 못하신 겁니까?”
“예. 질의는 넣어 놨는데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질의가 많이 쌓여서 순번이 뒤로 밀린 모양입니다.”
“답답하네요.”
차라리 어디 전투부에 들어갈 걸 그랬을까?
아니다. 특수 원정팀이 나았다.
단순 사냥으로는 레벨이 잘 오르지 않던 참이었다. 그 증거로, 쓰나미텐구를 잡은 뒤 2번의 원정을 거쳤어도 레벨이 고작 30 오르는데 그쳤다.
돈도 중요하지만 레벨이 더 중요하다. 개척되지 않은 행성을 탐험하다 보면 정체된 레벨도 금방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석구가 수한에게 USB를 하나 건넸다.
“자, 여기 저희가 그 동안 수집한 자료입니다. 일단 이거라도 보세요.”
“수호자 연맹에서는 받은 게 없습니까?”
“그 사람들도 요새는 바쁩니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독일의 카이저 공격대와 캐나다의 리프 공격대가 이 행성에 진출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카이저 공격대, 리프 공격대…… 둘 다 만만한 곳은 아니네요.”
“그렇지요. 하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릿수는 부족할지 몰라도 실력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긴 이번에 발견된 곳이라서 사냥감이 풍부할 테니까, 굳이 그들이랑 부딪칠 일도 없어요.”
수한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갔다.
이수한 대리, 다섯 글자가 적힌 명패가 있었다.
새미는 주임 직급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능력자라도 AA급은 되어야 계장 직급을 다는 것 같았다.
석구에게 받은 USB를 꽂고 실행시켰다.
각종 자료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데 잘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한 마디로 말해 중구난방이었다.
차원문이 위치한 도시의 사진, 동영상, 대기 조성 측정 결과, 토질 분석, 중력 분석, 시간 분석 등등.
수한은 머리를 쓱쓱 휘저었다.
옆에서 같이 자료를 본 새미가 질색을 했다.
“우와, 이것만 보고 어떻게 원정을 가?”
“어쩔 수 없지. 정보가 이거밖에 없다고 잖아.”
잘 정리된 계획서가 있어도 어려운 게 외계 행성 원정이었다. 그런데 이건 가장 기본적인 정보들밖에 없으니, 왜 특수 원정팀 운영이 어렵다고 하는지 알 만 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근처 병원으로 가 예방 접종을 했다.
알바트로스에서 맞던 대상 행성 특화 예방 접종이 아니었다. 이능이 가미되어, 모든 질병의 침투를 막는 예방 접종이었다. 따라서 가격도 수십 배가 더 비쌌다.
매일 같이 회의가 열렸다.
원정 바로 전날 회의.
석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수한을 보았다.
“참, 이번 행성에서는 말이 안 통할 겁니다. 이제 막 발견된 행성이라서요.”
“그렇겠죠. 세라프 종족이 진출한지도 얼마 안 됐을 테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임여울 주임과 홍시예 주임에게 기대가 큽니다. 두 분이 있어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까요.”
두 명의 C급 이능력자.
흔치 않은 정신 계열 이능력자였다. 둘 다 텔레파시가 가능해서, 세라프 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크게 도움이 된다.
석구의 시선을 받은 두 이능력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오랜만에 밥값 할 수 있겠네요.”
“통역은 저희한테 맡기세요!”
“믿음직스럽네요. 좋습니다. 내일 출근 즉시, 원정을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준비는 됐습니까?”
“준비 됐습니다.”
“저도 준비 끝났어요.”
“이만 오늘은 모두 일찍 퇴근하고, 내일 보도록 합시다.”
하루는 금방 지났다.
의지할 계획서도 없이 떠나는 거지만, 수한은 어째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저 가슴만 두근거렸다.
그런데 옆에 누운 새미는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새근새근 잘도 자더니, 오늘은 계속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안 와?”
“응. 꼭 처음 원정 가던 날 전날 같아.”
“그래도 빨리 자야 내일 편하게 가지. 자장가 불러줄까?”
“에이, 안 그래도 돼. 참, 우리 부모님 다음 달에 한국에 들어 오신다는데 어때?”
“뭐가?”
“우리 엄마아빠가 오빠 보고 싶어 하셔서.”
“아, 그래?”
수한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둘 사이를 비밀로 했다. 하지만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언론에 노출되는 바람에 새미의 부모님도 둘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번에 아예 날짜를 잡은 모양이다.
“좋아. 그렇게 하자.”
“정말이지?”
“그럼. 굳이 피할 이유는 없잖아?”
“아마 우리 원정 갔다오고 나면 우리 엄마아빠도 귀국하실 거야. 한 며칠 있다가 보면 되겠다.”
“그래. 이거 벌써부터 긴장되네.”
“호호, 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저번에도 몇 번 봤었잖아.”
“에이, 그때랑 지금이랑은 다르지. 그때는 그냥 회사 동료였지만, 이젠 사귀는 사이잖아.”
“그래? 그냥 부담 없이 만나면 돼. 굳이 의식하지 마.”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그냥 친구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여자 친구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건데……
어쩌면 결혼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
새미는 이제 잠이 잘 오는 모양이었다. 금세 잠이 들었다.
어차피 나중 일.
빨라도 1달 뒤에 마주하게 될 터였다. 지금은 바로 내일로 다가온 원정이 더 중요했다.
수한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