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91화 (92/254)

< 변이체와 함께 -3- >

“캬악!”

살쾡이가 공격의 물꼬를 텄다.

땅을 박차더니 순식간에 접근했다. 도마뱀이 입을 벌리자 잽싸게 재주를 넘었다. 푸른 광선이 덧없이 허공을 가르고, 살쾡이는 도마뱀의 뒤로 돌아갔다.

강철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초진동 칼날 손톱이 순식간에 도마뱀의 방어막을 찢어발겼다.

지원 사격을 시작했다.

뱀이 광선포를 쏘고, 원숭이가 미사일을 날렸다. 원정팀에서도 원거리 공격이 날아가고, 근접 무기를 가진 이능력자들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우르르릉.

하늘 높이 먹구름이 모이고 있었다.

새미가 쓰나미텐구에게 사용했던 공격을 또 쓰려는 것이다. 공격력으로 따지면 원정팀에서도 손꼽히니까.

유도 속성만 걸어놓고, 수한은 지네에게 총알을 날렸다.

실질적인 피해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AA 등급이 된 후나 가능할 것이다.

대신 주의는 확실히 끌었다.

분열 속성과 섬광 속성을 조합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방어막에 막힌 총알이 화려하게 불을 뿜었다. 미친 듯이 섬광이 터졌다. 잘못 봤다간 눈이 멀어버릴 정도의 광량(光量)이 지네를 덮쳤다.

지네가 머리를 휘저었다.

처음에는 바로 옆에서 공격당하는 도마뱀을 도우려고 했다. 그런데 수한이 섬광을 터뜨리고, 허공에 폭발을 일으키고, 연막을 피우는 등 난리를 피우자 참지 못했다.

마침 지상 가까이 내려와 있던 수한을 향해 덤볐다.

새가 잽싸게 하늘로 솟구쳤다. 동시에 주변에서 알짱대던 곰이 지네와 맞붙었다. 덩치 차이 때문에 밀려나긴 했지만, 단시간에 어떻게 될 것 같진 않았다.

유 계장이 멀리 서서 곰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흰 빛이 번뜩이며, 곰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꾸어어엉!”

곰이 울부짖으며 기계 괴수와 싸움을 벌였다.

아무래도 밀리는 형국이었다.

수한은 관통 속성과 조합하여 계속해서 총알을 쏘았다.

속박을 걸고 마비도 시켰다. 실명 상태로 만들기도 하고 약화 속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대부분 1초도 유지되지 않았다. 건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벗어났다. 다시 팔팔하게 움직이며 곰을 몰아붙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속성이 0.5초 만에 해제된다면, 0.5초마다 총을 쏘면 되는 거니까.

수한은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을 쏘고, 변이체들을 통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원정 팀은 자기들이 알아서 잘 했다. 변이체들이 문제였다. 특유의 야성 때문에 상대가 되지 않는데도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때론 을러대고, 때론 윽박질러가며 공격을 시켰다. 변이체 지휘와 사격을 동시에 하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새미가 두 손을 하나로 모았다.

거무튀튀한 반지가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더구나 새미의 몸에 타닥타닥 전깃불 같은 게 번뜩였다.

수한이 멀리서 초능 폭발까지 걸어준 것.

새미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반지에서 섬광이 솟구쳤다. 빛줄기가 일직선으로 뿜어지며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번개 폭풍이 밀어닥쳤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끌어낸 공격이었다. 그 동안 계속 연습해서 쓰나미텐구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

벼락이 세상을 뒤집었다.

그 무시무시한 힘이 도마뱀에게 쏟아졌다.

살쾡이 변이체의 발톱 때문에 방어막이 군데군데 조각난 상황.

도마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몇 개의 부품이 그대로 타버렸다. 몇몇 장비가 이상을 일으켰다. 이 한 번 공격으로 어떻게 되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입은 피해보다 더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이다.

A급 이능력자의 공격으로는 보기 힘든 일격.

덕분에 전황이 유리하게 흘러갔다. 번개 폭풍을 맞은 뒤 도마뱀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기 때문이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또 번개 폭풍을 불러냈다.

그렇게 총 세 번.

도마뱀이 볼 성 사납게 변했다.

방어막은 완전히 소실되었다. 금속 장갑도 몽땅 벗겨졌다. 흉한 내부 구조가 고스란히 노출되고, 동력핵이 내는 빛이 그 사이로 새어나왔다.

변이체들과 원정팀의 합작품.

그러나 쉽게 당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전신이 붉게 물들었다.

위턱과 아래턱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더니, 사방으로 미친듯이 광선포를 쏘아댔다.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바위가 녹아버리고, 나무는 가루가 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또 달랐다.

섣불리 접근할 수가 없었다.

별 수 없이 공격의 고삐를 늦췄다.

그때, 새가 수한을 돌아보았다.

수한의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새가 정신 감응으로 이렇게 공격하자고 하는 것.

위험한 방법이다.

하지만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가자!]

수한은 아음속 초능을 활성화했다.

초록색 빛이 맹렬하게 솟구쳤다. 그 빛이 수한과 새 변이체를 동시에 감쌌다.

새가 길게 울부짖었다.

날개를 떨치자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육중한 몸이 번개처럼 떨어졌다.

급강하 공격.

도마뱀이 뒤늦게 그것을 감지했다. 머리를 쳐들어 광선을 날리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새가 도마뱀의 머리를 콱 후려쳤다.

콰악!

도마뱀의 머리가 단번에 꺾였다.

몸무게에 더하여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든 참이었다. 그 충격은 무시무시했다. 방어막도 없고, 금속 장갑도 벗겨진 상태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덕분에 수한이 등 위에서 떨어져나갈 뻔 했다. 목을 붙잡고 겨우 버텼다.

다른 변이체들이 달려들었다.

살쾡이가 도마뱀의 위에 올라탔다. 뱀이 도마뱀의 몸통을 감았다. 원숭이가 도마뱀의 다리를 잘라냈다.

수한은 강력하게 정신 감응을 보냈다.

[그만! 이제 지네를 공격해!]

[이건 우리 몫이야!]

[분배는 나중에 할 거야. 천사님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말 안 들으면 아무 것도 안 준다?]

변이체들이 통제를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이미 도마뱀은 무력화되었다. 가슴을 파헤치고 동력핵만 꺼내면 된다. 그렇다 보니 변이체들이 욕심을 부렸다.

수한은 이시테의 모습을 강하게 상상했다.

특유의 고아한 분위기까지 심상에 박아 넣자, 변이체들이 마지못해 몸을 돌렸다.

[쳇, 알았어. 간다, 가!]

[으으, 엄청 맛있을 것 같은데!]

그 짧은 사이, 곰이 상당히 피해를 입었다.

이곳저곳에 상처가 났다. 상처 위로 기름 같은 연녹색 체액이 질질 흘렀다.

그래도 전투가 불가능하진 않았다.

네 마리의 변이체가 합세했다. 수한은 아예 땅 위로 내려왔다. 완전히 탈진한 새미를 대신해, 자신에게 직접 초능 폭주를 걸고 사격을 했다.

아까보다 총알이 훨씬 잘 들어갔다. 속성이 유지되는 시간도 1초 정도로 늘어난 것 같았다.

새미는 빠졌어도 S급 변이체 다섯 마리가 전부 투입된 참이었다. 지네가 강하기는 했지만 이것들의 합동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지네도 동력핵을 적출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광선검을 휘두르는 기계 괴수 뿐.

수한은 변이체들을 추슬러 격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갔다.

도마뱀이나, 지네 형상 기계 괴수와 싸웠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꽈과광!

빗나간 광선 하나가 땅을 훑고 지나갔다.

광선이 지나간 자리에 깊은 균열이 생겼다. 바위와 모래가 녹아내렸다.

베르나가 달려들어 적색 검을 휘둘렀다.

광선검과 적색 검이 맞부딪쳤다. 그 즉시 맹렬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멀찍이 서 있던 나무들이 충격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스스 쓰러졌다.

자칫 잘못하다간 뼈도 못 추리게 생겼다.

변이체들이 수한을 돌아보았다.

[저길 가자고?]

[난 못 가!]

이 녀석들 보기보다 겁이 많다.

수한은 다시 새의 등에 올라탔다. 하늘 높은 곳에서 두 세라프와 기계 괴수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겉보기에는 백중지세.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달랐다.

기계 괴수는 시종일관 공세를 퍼붓는 반면, 베르나는 위태위태하게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적색 검의 기세도 처음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

이대로 진행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나가 당할 것이다. 도망칠 수는 있겠지만, 당장 수한과 원정팀이 위험해진다.

여기서 끝을 봐야 했다.

수한은 그 사실을 주지시켰다.

[너희들. 여기서 꽁무니 말면 저놈이 너흴 가만히 둘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저 괴물 녀석이 너희들도 죽이려고 할 걸? 너희들 같으면 어때? 너희보다 약한 놈들이 너희를 공격했는데, 그냥 놔두겠어?]

[죽여 버려야지!]

[저 괴물도 똑같아. 지금 끝장을 내야 돼.]

[끄응. 알았어.]

그렇게 변이체들을 독려하고 있는데, 갑자기 낯선 이의 정신이 끼어들었다.

[기계 괴수의 시선만 끌어줄 수 있겠나? 그러면 내가 해결할 수 있다.]

묵직한 어조.

베르나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뭔가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다들 들었지?]

[알았어.]

[응! 천사님 말대로 할게!]

수한은 머릿속으로 영상을 그렸다.

그걸 변이체들에게 정신 감응으로 전달하자, 변이체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알았다는 답변을 했다.

새가 수한을 타고 날아올랐다.

수한은 기계 괴수가 휘두르는 광선검을 노려보았다.

핵심은 바로 저거였다.

광선검을 든 팔만 하나 떼어내도 충분했다. 최소한 베르나가 기계 괴수와 대등하게 맞서 싸울 터였다.

원정팀은 뒤로 빠졌다.

소형 기계 괴수라면 모를까, 이 기계 괴수와 싸우기에는 너무 위험했던 것이다.

새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수한을 쳐다보았다.

“잘 돼야 할 텐데……”

걱정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변이체들이 움직였다. 부채꼴처럼 퍼진 채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기계 괴수의 눈 중 하나가 변이체들을 훑었다.

광선검을 날릴 것도 없이, 몸에 장비하고 있는 광선포를 어지럽게 쏘아댔다.

변이체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지럽게 날뛰었다.

가볍게 쏘아대는 광선포가 도마뱀의 주포와 비슷할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정통으로 맞았다간 아무리 S급 변이체라도 끝장이 날 것이다.

수한은 변이체들에게 당부했다.

[시선만 잘 끌어. 알았지?]

[알았어.]

[그 정도는 해주지.]

지상의 변이체 네 마리가 공격을 개시했다.

그냥 멀리서 깔짝거리는 거였다. 위험은 최대한 피했다.

베르나에게 방어막이 약화된 상태라 제법 공격이 통했다. 금속 파편이 튀고 연거푸 폭발이 일어났다.

기계 괴수가 성가신지 광선포를 쏘고 미사일을 날렸다. 위험하긴 했지만 다들 잘 피했다.

그러자 숨통이 좀 트였다.

가끔 수한을 태운 새가 위협적으로 날아갔다. 그러면 수한이 초능 폭주까지 쓴 상태로 총알을 난사했다.

이시테가 뒤에서 기계 괴수의 탐지 장치를 교란했다. 그에 힘입어 점차 기계 괴수의 시선이 다섯 변이체와 수한에게 옮겨갔다. 여전히 베르나를 가장 주의하고 있었지만, 그만 한 가지를 놓치고 말았다.

베르나의 눈이 번쩍 빛났다.

왼손을 가슴에 파묻더니, 빛나는 보석 같은 것을 꺼냈다. 보석을 적색 검에 가져가자 검이 투명하게 변했다.

수한은 마른 침을 삼켰다.

막강한 힘이 느껴졌다.

산도 바다도, 모조리 두 조각낼 것만 같은 강력한 힘.

기계 괴수가 그 힘을 감지했다.

급히 모든 탐지 장치로 베르나를 살폈다.

순간, 베르나의 몸이 사라졌다.

적색 검과 같았다. 완전히 투명해졌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지던 존재감이 씻은 듯이 지워졌다.

이게 승부수.

지금이 가장 중요했다.

수한은 변이체들과 함께 최대한 기계 괴수의 시선을 교란했다.

기계 괴수는 변이체들을 무시했다. 탐지 장치를 최대한 가동하여 베르나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수한이 온갖 속성을 다 사용하고, 이시테의 정신 계열 능력도 작용한 탓에 끝내 베르나를 찾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베르나가 나타났다.

기계 괴수의 머리 바로 위.

급히 팔을 들어 올리지만, 베르나가 한 발짝 더 빨랐다.

검이 기계 괴수를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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