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93화 (94/254)

< 의뢰 완료 -2- >

이시테가 기계 괴수 조종을 수한에게 맡겼다.

정신 계열 이능으로 조종할 수 있을 거라나.

변이체는 그냥 생각만 전달하면 됐는데, 기계 괴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네 개의 다리를 일일이 움직여 줘야 했다.

앞의 다리를 하나 내밀고, 뒤쪽의 다리를 움직이고, 다시 앞의 반대쪽 다리를 내딛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몇 시간이 지나자, ATV와 비슷한 속도로 움직였다. 피난민들이 도보로 움직이는 것과 비교한다면, 거의 10배에 가까운 속도였다.

이 속도라면 1주일 내에 목표 지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기계 괴수를 타고 움직이니 덤벼드는 변이체도 없었다. 멀리서 기계 괴수를 보고는 놀라 꽁무니를 뺐다.

슬슬 해가 졌다.

수한은 기계 괴수의 팔을 휘둘렀다. 광선검은 작동하지 않지만, 그 육중한 무게에 나무들이 죄다 쓰러졌다.

순식간에 작은 공터가 만들어졌다.

피난민들이 공터에 불을 피우고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다. 몇몇은 솥을 걸고 죽을 끓이는데, 대부분은 쫄쫄 굶고 있었다.

“사냥이라도 좀 해올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우리 목표는 피난민들을 데려가는 거니까요. 영양실조로 죽어 버리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원정팀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한은 기계 괴수의 어깨 위에 앉아 편히 쉬었다. 여기까지 계속 기계 괴수를 조종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새미가 거기까지 올라왔다. 비록 신속 계열 이능력자는 아니어도, 지속적인 수련으로 몸이 가벼워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빠 괜찮아?”

“응. 난 문제 없어. 자기도 쉬지 여기까지 올라왔어?”

“어차피 아래쪽에 있어도 할 것도 없는 걸.”

둘은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석양을 바라보았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원정팀이 사냥감을 잡아왔다. 드론으로 정찰하고 생체 감지기로 훑어대니, 사냥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걸 피난민들에게 내어주자, 공터 전체에 활기가 돌았다.

솥에 고기를 잘라 넣는다, 꼬챙이에 끼워 굽는다, 흙 속에 묻어 굽는다, 아주 정신이 없었다.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공터 안을 감돌았다.

고기 굽는 냄새는 정말 감칠맛이 났다.

하지만 원정팀은 피난민들이 고기를 먹는 것을 구경만 했다.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져온 전투 식량을 먹었다.

정화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간 외계 질병 감염의 우려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

“$#%(#$%!”

피난민들이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들었다.

배부르게 식사를 해서인지 조금은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최소한 아까처럼 축 늘어져 있지는 않았다.

밤이 되자 굉장히 싸늘했다. 원정팀이 익히 아는 대로였다.

모닥불을 곳곳에 피우고, 기계 괴수의 몸을 바람막이 삼아 밤을 보냈다.

다행히 밤 동안 별 일은 없었다.

해가 떠오르자, 어제 남겨 두었던 고기로 죽을 만들어 식사를 했다. 그리고 기계 괴수에 올라타 길을 나섰다.

며칠이 순식간에 흘렀다.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기껏 변이체들이 다가오다가도, 기계 괴수나 다섯 S급 변이체를 보고 도망쳐 버렸다.

그래서였을까.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피난민들이 변이체들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가 하면, 자기들도 부족한 음식을 바쳤다.

변이체들이 이상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쟤들 왜 저래?]

[몰라.]

그래도 자기들을 숭배하는 피난민들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근처 숲으로 들어가 사냥을 해오거나, 날아가는 새떼를 잡아 피난민들에게 주었다.

이때쯤 수한도 기계 괴수 조종에 익숙해졌다. 기계 괴수 조종을 전담했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무기를 발사하거나,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출발한지 정확히 사흘이 지난 시점.

수한은 멀리서 옅은 섬광이 번쩍이는 것을 관측했다. 기계 괴수의 탐지 장치를 조작하여 살펴보니, 소형 기계 괴수가 배회하는 것이 보였다.

베르나가 말없이 적색 검을 빼어들었다.

수한은 베르나를 제지했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가만히 계세요.]

베르나가 수한을 한 번 보더니 검을 도로 꽂았다.

수한은 변이체들에게 정신을 연결했다.

[저기 저거 보이지? 저놈을 잡자.]

[잡으면 우리한테 뭐 줄 건데?]

[동력핵 빼고는 다 줄게. 어때?]

[진짜?]

변이체들이 솔깃해하는 게 느껴졌다.

수한은 녀석들을 살살 꾀었다.

[겨우 1마리야. 너희들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저번에 도마뱀이랑 지네도 그렇게 해서 잡았잖아. 또 너희들 심심하다며. 간만에 힘 좀 쓰고 별식도 먹으면 완전 이득이지. 안 그래?]

[그건 그래.]

변이체들이 쑥덕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잠깐만. 그런데 동력핵은 왜 가져가? 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

새 변이체가 날카로운 반문을 했다.

수한은 피식 웃었다.

[너희들끼리만 잡을 수 있어? 그럼 우리한테 아무 것도 안 줘도 돼.]

[당연하지!]

[딴 소리 하지 마!]

변이체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수한은 기계 괴수의 탐지 장치를 이용해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변이체들이 우세해 보였다.

곰이 앞장을 서고, 새와 원숭이가 시선을 교란했다. 틈만 보이면 살쾡이가 방어막을 찢고, 뱀도 광선포를 쏘아붙였다.

그런데 한 가지가 모자랐다.

협동.

손발이 제대로 안 맞았던 것이다. 더구나 다섯 마리 모두 너무 저돌적이었다. 뻔히 후퇴해야 할 시점에도 돌진해서 공격하다가 공격을 얻어맞기 일쑤였다.

그래도 처음보단 나았다. 며칠 전 기계 괴수와의 전투에서 변이체들도 깨달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키아아악!”

“크르릉!”

변이체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피난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수한은 정신 감응 능력으로 그들에게 별 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속삭였다.

격전 끝에, 변이체들이 패퇴 당했다.

그 다섯이라면 소형 기계 괴수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단, 서로 유기적으로 잘 움직였을 때 얘기였다. 아직 그게 안 되다 보니 사냥에 실패한 것이다.

수한은 적절한 시점에 개입했다.

변이체들이 부상을 입긴 했지만 치명타는 아니었다. 몸의 대부분이 기계화된 터라 충분히 싸울 수 있었다.

[곰! 앞으로 두 발짝만 나서. 그만! 더 갔다간 다리에 얻어맞잖아. 새 너는 폭탄 좀 떨어뜨리면서 시선만 끌어. 접근하지는 말고. 살쾡이 너는 지금 나서지 말고 좀 숨어 있어. 내가 말하기 전까진 은신하란 말이야. 원숭이는 잘 하고 있네. 뱀 너는 광선포만 쏘면 되지 왜 자꾸 가까이 가려고 해?]

폭풍처럼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 덕에 변이체들의 움직임이 섬세해졌다. 교활하게 기계 괴수를 공략했다. 다섯 개체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일이 쉬웠다.

채 몇 시간도 지나기 전 기계 괴수가 쓰러졌다. 발악하듯 사방으로 광선포를 갈겨 댔지만, 수한의 명령을 듣고 멀찍이 피한 뒤였다.

변이체들이 숨을 할딱였다.

[뭐야, 도대체 뭐가 이렇게 다른 거야?]

[왜 저 조그만 녀석의 말대로 하면 이렇게 쉬운 거지?]

[이상하다, 이상해.]

원정팀이 ATV를 타고 달려갔다.

변이체들과 협의한 대로, 기계 괴수의 가슴을 가르고 동력핵만 꺼냈다.

구 형태에, 스스로 빛을 내며 진동하고 있었다.

석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동력핵을 확보하는 게 이렇게 쉬울 줄이야, 변이체들과 협상하길 잘 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하나면 S급 힘의 결정을 100% 얻을 수 있잖습니까?”

“이번 원정 배당은 얼마나 받을지 궁금하네요.”

“변이체 잡은 것도 대박이었는데, 기계 괴수 잡아서 완전 초대박을 터뜨리네요.”

기계 괴수의 시체는 변이체들에게 돌아갔다.

변이체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시체를 뜯어먹었다. 중간에 싸울 뻔해서 수한이 또 개입해야 했다.

녀석들이 돌아오자, 수한은 다짐하듯 말했다.

[어때, 너희들끼리 잡을 수 있겠어?]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좋아. 그럼 동력핵은 우리가 가지는 거다. 대신 많이 가르쳐 줄게.]

길을 가는 동안 기계 괴수 1마리를 더 만났다.

이번에는 변이체들이 수한의 명령을 잘 들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어렵지 않게 기계 괴수의 목을 꺾었다.

이번에도 동력핵은 원정팀의 몫. 나머지는 변이체들의 몫.

전투 지휘 기술도 1레벨이 올랐다. 수한이 여러모로 이득을 본 것이다.

이시테가 인상 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신기한 방법을 사용하시네요. 기계 괴수 건도 그렇고, 저 아이들을 다스리는 것도 그렇고.]

[하하,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거리가 얼마나 남은 겁니까?]

[이 속도면 내일 해가 질 무렵 도착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얼마 안 남았네요. 그곳에는 세라프의 전당이 있지요?]

[예. 바로 귀환하실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요.]

[바로 귀환하는 것보다 이 행성에 남아서 저희를 도와주시는 게 어때요?]

[예?]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수한은 눈을 깜빡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갔다.

수한은 세라프의 도움 없이도 기계 괴수 사냥이 가능했다. 이 행성에서 기게 괴수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세라프들로서는 당연히 탐이 날 터였다.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좋아요.]

다음날, 예정대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상당히 큰 도시였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단단한 성벽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번쩍이는 창과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그 위를 돌아다녔다.

도시 한쪽에 커다란 성이 보였다. 그리고 눈에 익은 건물이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라프의 전당.

원정팀이 그걸 보고 활짝 웃었다.

“이제 다 끝났네요.”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으으, 따끈한 물에 몸 담그고 한 숨 잤으면 좋겠다.”

피난민들도 얼굴이 밝아졌다.

매일 고기를 먹어 영양을 보충하고, 기계 괴수에 타서 편히 온 탓에 부쩍 살이 붙어 있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거지꼴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일행의 접근을 알아차린 도시가 분주해졌다.

병사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각종 대형 병기를 준비했다. 겉모습만 보고 자기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착각했나 보다.

다행히 도시에서 세라프 하나가 나타나면서 오해가 풀렸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세라프였다. 꿀처럼 빛나는 머리칼을 곱게 땋았다. 특별한 장신구는 없이, 금색의 팔찌만 양쪽 손목에 찼다.

베르나와 이시테가 그 세라프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티아님.]

[오랜만이구나. 저 시체는 왜 가져온 것이냐? 동력핵은 이미 빼낸 것 같은데.]

[지구인들의 생각입니다. 피난민들 탈것으로 쓰자고 해서 그러기로 했습니다. 이제 용도가 다했으니 지구로 가져가려고 할 겁니다.]

[알겠다.]

[그런데 저들을 꼭 살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지시하시니 따르긴 했습니다만, 차라리 다른 기계 괴수들을 죽이는 게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나누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구나.]

하티아의 눈이 주변 지구인과 행성인들을 스쳤다.

베르나와 이시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정신 감응만 나누며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수한은 기계 괴수를 도시 밖에 세워두었다.

피난민들이 알아서 그 주변에 누더기 같은 천막을 세웠다. 대표 격인 몇 명만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석구가 몇 명만 데리고 세라프의 전당으로 향했다.

귀환 시점을 조율해야 했다. 특히 기계 괴수가 너무 커서 한 번에 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까지 감안하면 최소한 며칠에 걸쳐 차원문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 사이, 수한은 이시테에게 받은 제의를 털어놓았다.

새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닐까? 벌써 3주가 다 되어 가잖아. 이제 귀환해서 예방 접종도 맞아야 할 것 같은데.”

“예방 접종이야 세라프들이 어떻게 해주겠지. 손만 대서 이능을 강화시키는 종족이잖아.”

“그건 그렇겠다.”

“너무 오래 체류하고 있는 것보다는 지구에 다녀오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넘기고, 아예 사장님까지 모셔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좋겠네요!”

올 때 다시 오더라도 지구에 가는 게 좋을 성 싶었다.

지금 수한의 레벨은 240.

여섯 번째 초능이 개발되려면 멀었다. 하지만 힘의 결정을 구입하여 정신 감응 능력을 얼른 3차 진화까지 끝내는 게 필요했다.

그래야 세라프의 도움 없이도 변이체들과 소통할 수 있을 테니까.

타이탄 공격대의 두 S급 능력자와, 다섯 S급 변이체가 협력하여 기계 괴수 사냥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여기에 다른 AA급 이능력자들까지 합쳐지면, 소형이 아니라 중형 기계 괴수도 사냥이 가능했다.

S급이 아니라, SS급 힘의 결정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

어쩌면 타이탄 공격대, 그리고 대한민국의 오랜 숙원이 이 행성에서 풀릴 지도 몰랐다.

일단은 귀환했다가 두 번째 원정을 오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때는 대규모 원정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원정팀 하나만 오지는 않겠지. 수한이 보기에 타이탄 공격대의 전력 절반 이상이 동원될 가능성이 컸다.

몇 시간 후 세라프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수한은 지구에 갔다 오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기왕 돌아가는 김에, 내 서찰도 그대 행성의 대표에게 전해주었으면 한다.]

이거 어째 일이 커지는 느낌이다.

하티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한쪽에 쌓여 있던 상자들이 원정팀의 앞을 향해 날아왔다.

보상이다.

한 명 앞에 하나씩이었다.

기다렸던 시간.

과연 그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이전에 언급한 대로, 세라프 종족은 뭔가 일을 시키면 후하게 보답하기로 유명하다.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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