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94화 (95/254)

< 기계용 -1- >

수한은 상자를 열었다.

작은 상자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은 수한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허!”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힘의 결정 세 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모두 A급.

계열도 다채로웠다.

투시, 신속, 의지 계열.

수한이 필요한 것을 딱 맞게 준 것이다.

그리고 세 힘의 결정 사이에, 작은 기계용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응? 기계용?

꼭 장난감 같이 생겼다. 서양에서 구전되는 드래곤과 닮았는데, 겨우 수한의 손바닥 크기였다. 지금은 눈을 감고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질문을 하자, 하티아가 희게 웃었다.

[헤븐 행성의 학술원에서 이번에 개발한 물건이다. 부디 유용하게 써 주었으면 한다.]

단순히 애완용이나 관상용은 아닐 것 같은데……

나중에 조용한 곳에서 힘을 주입해 보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면 기계용의 정체를 알 거라던가.

레벨 업 도우미로 기계용의 등급을 엿보았다.

전설+ 등급.

군림자의 눈으로 관찰했다.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안개에 가로막힌 듯 모호하기만 했다.

그래도 딱 하나는 확실했다.

성장형 장비였다.

지금도 S급. 그런데 무슨 방법을 쓰면 더 성장해서 그 상위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 같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대박이다!”

“최고야!”

“돈 벌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새미도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수한만큼은 아니지만, AA급 힘의 결정을 하나 얻은 것이다.

다른 팀원들도 상당했다.

일반 지원 요원도 B급 힘의 결정을 받았다. 이능력자는 기본적으로 A급 힘의 결정을 받았고, 세라프 종족 특유의 보호복을 받은 이도 많았다.

각자 받은 것에 차등이 있는 게, 세라프 종족이 판단하기에 더 활약한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준 모양.

하티아가 수한을 손짓해 불렀다.

가까이 다가가자, 허공에 손을 휘젓는다.

금색으로 빛나는 실이 그 손에서 풀려나왔다. 자기들끼리 엉키고 풀리는 것을 반복했다. 마침내 하나의 종이가 되어 하티아의 손에 내려앉았다.

[받아라.]

수한은 조심스럽게 종이를 받아들었다.

편지였다.

지구의 권력자들에게 보내는 것.

세라프 종족이 가브낙 행성이라고 명명한 이 행성의 전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간단히 읽어보았는데 좋지는 않다.

가이낙 행성은 대륙과 바다가 대략 4:6 정도 비율인데, 바다는 기계 괴수가 완전히 점령했다고 했다. 대륙도 70% 이상을 기계 괴수가 불사른 뒤였다. 세라프 종족이 곳곳에 흩어져 항전하고 있지만, 이대로는 수에 밀려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구의 조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뜻.

하티아가 수한을 보고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종족 연합의 중앙군을 여기로 불러왔을 것이다.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하도 많은 행성들이 동시에 공격 받고 있으니까. 그대의 고향 행성은 우리와 인연을 맺은 지 오래되지 않아 상급 이능력자가 적다고 들었다. 하지만 군사 기술이 발전해서, 하급 변이체 상대로는 강점을 보인다지? 가능한

한 많은 전력을 파병해줬으면 좋겠다. 이 행성의 종족들을 보호해주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수한은 편지를 받아들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이틀 후부터 귀환 절차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기계 괴수의 시체와 동력핵부터 보냈다. 그걸 처리하는데 장장 사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들은 이제 뭐하냐?]

[심심하다.]

변이체들이 수한을 찾아와 칭얼거렸다.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 도시를 지키고 있으라는 것. 그러고 있으면 지구에 다녀온 뒤 또 기계 괴수를 잡자고 했다.

변이체들이 수한의 제안을 승낙했다.

안 그래도 피난민들이 도시 주민들과 섞이면서, 그들을 숭배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었다. 도시를 지키는 경비병들도 출근할 때마다 기계 변이체들에게 절을 하곤 했다.

먼 훗날에는 이들이 반신 대접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변이체들도 숭배 받는 게 속으로는 기꺼웠던 모양이다. 툴툴거리면서도 도시 주민들과 곧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수한은 그걸 보고 흐릿하게 웃었다.

좋은 일이다.

이시테의 정신 제압 때문에 도시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야, 이렇게 정을 붙이는 게 낫겠지.

이런저런 일을 처리했다.

원정팀이 지구로 돌아간 것은 원정을 시작하고 딱 25일 만의 일이었다.

7월 30일.

차원문을 통과하여 지구로 돌아왔다.

“고생하셨습니다!”

타이탄 공격대의 이사 한 명이 마중 나왔다.

이능력자는 아니다. 경영 담당 이사였다.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 요 며칠 원정팀이 보냈던 게, 타이탄 공격대 설립 이래 최대의 수확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대박입니다. 게다가 그 행성에 기계 괴수가 아주 많다면서요?”

“예. 적어도 반경 5백 킬로미터마다 한 마리씩은 있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많네요.”

다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이상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입원할 것도 없이, 바로 활동해도 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수한은 하티아의 편지를 한민종 사장에게 전달했다.

민종은 그걸 펼쳐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뭡니까?”

세라프 문자로 써놓아서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한은 자세히 설명을 했다. 아예 편지를 한국어로 번역하며 읽어주었다.

민종이 팔짱을 끼었다.

“대규모 파병이라…… 이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 공격대 선에서 원정을 가는 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냥할 기계 괴수가 최소 수백 마리는 넘게 남아 있으니까요.”

“후후, 당연한 말씀이지요. 이미 준비 중입니다. 2주 후 공격대 전체가 차원문을 넘을 겁니다.”

“공격대 전체요?”

수한은 깜짝 놀랐다.

최소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원정대를 보낼 거라고는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격대 전체라니?

타이탄 공격대에 소속된 이능력자만 300명이 넘었다. 그들을 보조할 지원 요원들까지 합치면 거의 1천명에 가까운 수가 원정을 떠나는 것이다.

마침 특수 원정 1팀이 모두 동석한 자리였다. 민종은 그들을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말씀 드렸듯 이번 원정에는 우리 공격대 전체가 참가합니다. 전투부와 지원부는 물론, 정보부와 분석부에서도 인원을 차출할 겁니다. 적어도 1천 명, 많으면 1천 5백 명이 참가하는 원정이 되겠지요.”

이 정도면 소형 기계 괴수 한 마리는 상대할 전력이었다.

“여러분에게는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원정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쉬고 싶은 분께는 특별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원정팀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수한은 원정 참가를 희망했다.

당연하다.

그 행성에는 다섯 마리의 변이체가 남아 있었다. 수한과 신뢰를 쌓은 탓에, 당분간은 수한이 직접 가는 게 좋았다. 이시테의 제안도 있었고.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나 보다. 하긴 대박이 눈앞에 있는데 외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번 원정까지 성공시키면 아예 은퇴해서 편히 살 수 있을 테니까.

불참하겠다고 한 것은 기껏해야 몇 명. 그나마 대세에 영향이 없는 지원 요원들이었다.

민종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일단 2주 동안은 푹 쉬세요. 다음 원정에서도 여러분의 손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원정팀은 뿔뿔이 흩어졌다.

수한도 나가려고 했는데, 민종이 손을 들었다.

“아, 이 대리님은 저 좀 보고 가세요. 김 과장님도요.”

일어서려다 말고 자리에 앉았다.

새미가 수한에게 눈짓을 했다.

밖에서 기다리겠다는 것. 수한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자리에서 나가자 민종이 편지를 집어 들었다.

“이것, 지구의 권력자에게 주라고 했지요?”

“예. 맞습니다.”

“그럼 제가 받는 것은 좀 의미가 없고, 수호자 연맹에 갖다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차피 세라프 종족이 바라는 규모의 파병은 우리 공격대에서는 처리가 불가능합니다. 수호자 연맹과 UN이 개입해야 할 겁니다.”

석구의 말에 민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수한씨가 수호자 연맹에 이 편지를 가져다주세요. 저도 파병 요청서를 쓰겠습니다. 제 비서가 전달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겁니다. 수호자 연맹에서도 현지를 다녀온 사람의 의견이 필요할 거고요.”

“알겠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요청서를 쓰겠습니다.”

민종이 키보드를 두들겼다.

잠시 후, 한쪽의 프린터에서 종이 몇 장이 출력되어 나왔다. 비서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종이에 민종의 직인을 찍었다. 그걸 흰 봉투에 넣어 수한에게 건넸다.

“그럼 2주 후에 봅시다.”

“예, 사장님. 그때 뵙겠습니다.”

석구와 함께 사장실에서 나왔다.

“수한씨는 휴가 동안 꽤 바쁘겠네요.”

“예? 제가요?”

“수호자 연맹이랑 정부에서 계속 불러댈 겁니다. 골치 좀 아플 거예요.”

“이런……”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다.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하티아가 수한을 지목해서 한 부탁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시간은 좀 빼앗기겠지만, 대신 온갖 고위직 인물들을 만날 테니 인맥을 쌓을 기회이기도 하고.

수한은 새미와 함께 타이탄 공격대 사옥을 벗어났다.

새미를 집까지 데려다주자, 집 앞에서 새미가 수한의 뺨에 입을 맞췄다.

“우리 엄마 아빠 보기로 한 거 잊지 마!”

“아, 맞다. 언제라고 했지?”

“아마 다음 주 정도? 다음다음 주는 바쁠 것 같으니까 그때가 좋을 것 같아. 4월 초에는 귀국하실 거야.”

“알았어. 시간 비워둘게. 언제든 말해.”

“응. 얘기해보고 연락할게.”

2주 동안 할 일이 많다.

하나하나 따져 보았다.

편지 전달, 힘의 결정 흡수, 정신 감응 초능의 3차 진화, 기계용에게 힘 주입, 새미의 부모님 만나기 등등.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것은 편지 전달.

아직 하루가 끝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차를 돌려 여의도로 갔다.

수호자 연맹에서 지부장 면담 요청을 했다.

하티아의 편지와 민종의 요청서를 내밀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지부장실로 들어갔다.

쓰나미텐구 사건 때 봤던 성민과 세윤이 안에 앉아 있었다.

성민이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쓰나미텐구 잡고 나선 오랜만이지요? A급 이능력자가 됐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두 분 다 잘 지내셨지요?”

“하하, 물론이죠. 그나저나, 이걸 직접 받아오셨다고요?”

성민이 하티아의 편지를 가리켰다.

세라프 어에는 문외한인지라, 그 옆에 홀로그램으로 한글 번역본이 떠 있었다.

“예. 며칠 전에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행성…… 가브낙 행성이라고 했지요? 그곳 사정이 많이 안 좋은 모양입니다. 카이저 공격대는 귀환할 시간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고, 리프 공격대는 50명이 가서 겨우 5명이 돌아왔습니다.”

“심각하네요.”

“그렇지요. 안 그래도 종족 연합에서 지구의 참전을 종용하고 있는데, 타이탄 공격대가 정보를 모아왔으니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성민과 세윤이 가브낙 행성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수한은 아는 대로 설명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기계 괴수가 많고, 가끔 세라프 종족도 당해내기 힘든 대형 기계 괴수가 출현한다는 것.

세윤이 한숨을 쉬었다.

“너무 위험한데요? 잘못 파병을 했다간 지금까지 쌓은 전력이 모두 무너질 지도 몰라요.”

“그러게 말입니다. 차라리 제토 행성이나 피울로 행성에 파병을 하는 게 낫겠습니다. 거기도 기계 괴수가 많지만, 가브낙 행성 정도는 아니에요.”

“일단 본부에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수한씨, 편지를 받아와서 감사합니다. 며칠 뒤 출석해주셨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요. 하루 전에만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말하는 투를 보니 파병은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거야 이들이 알아서 할 일.

수한은 자기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가볍게 인사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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