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95화 (96/254)

< 기계용 -2- >

“형 왔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동생들이 수한을 맞이했다.

방학이라 둘 다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옷도 제대로 안 갈아입었는지 속옷이 누리끼리했다.

저번에도 이러는 걸 본 것 같은데, 하여간 수한만 없으면 아주 가관이었다. 그나마 잔소리를 박박 하고 갔더니 청소는 좀 해놔서 다행이라고 할까.

“별 일은 없었지?”

“응. 기한이 놈 여친 생긴 거 말고는 별 일 없었어.”

“어? 뭐라고?”

“형!”

빨래처럼 널브러져 있던 기한이 벌떡 일어났다.

악을 빽 지르지만, 명한은 낄낄 웃기만 했다.

수한은 혀를 내둘렀다.

“그 새 여친 생겼어? 대단하네. 그럼 이번이 네 번째야?”

“여섯 번째야.”

“뭐?”

“저놈 완전 카사노바라니까? 저번 여친은 1주일 만나고 헤어졌대. 게다가 지금 여친은 미성년자라던데?”

“미성년자가 뭐? 나랑 겨우 1살 차이인데?”

“어휴, 난 모르겠다. 연애 문제는 너희들 알아서 해.”

수한은 대충 씻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저녁은 가볍게 족발과 보쌈을 시켜먹었다.

허구한 날 전투 식량만 먹다가 오랜만에 먹는 음식다운 음식이었다. 꿀맛이었다. 수한은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동생들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번에는 돈 얼마나 벌었어?”

“A급 이능력자로 간 거니까, 많이 벌었지?”

“당연하지. 대박 터뜨렸어. 최소한 300억은 넘게 벌 걸?”

“우와! 진짜?”

“장난 아니다.”

“역시 이능력자가 최고야.”

“그래봤자 힘의 결정 몇 개 사고 나면 끝인데? A급 힘의 결정은 1개에 100억이 넘어가.”

“비싸긴 비싸다.”

“나 평생 동안 벌어도 형이 이번에 번 거 10분의 1도 못 벌 것 같은데…… 진짜 대단하다.”

아직 전리품 정산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막 기계 괴수 시체와 동력핵을 보냈으니, 최소 몇 주는 지나야 모든 금액이 정산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수한의 통장은 빵빵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도착했던 움막촌에서 출발할 때, 미리 지구로 보내놓았던 변이체 시체들.

그 배당금이 입금되었기 때문이다.

무려 170억 원.

진짜 대박은 개봉하지도 않았는데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그리고 특별 휴가 기간 내에 나머지 금액도 입금될 테니, 당분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저녁을 다 먹고, 늘어져서 TV를 보았다.

쭉쭉 빵빵한 걸 그룹이 나와 몸을 흔들고 있었다.

동생들은 화면이 뚫어져라 TV를 노려보았지만, 수한의 얼굴은 무심하기만 했다.

‘별로 예쁘지도 않네.’

심하게 콩깍지가 씌어 있어서일까.

새미 생각만 났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 함께 있었는데도 또 보고 싶었다.

수한은 주머니에 넣어둔 기계용을 꺼냈다.

당장 할 일도 없고, 이시테가 말했던 대로 기계용에 힘을 주입해 볼 생각이었다.

꼭 애들 장난감 같이 생긴 기계용.

앉은뱅이 탁자 위에 올려놓자, 동생들이 그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뭐야?”

“기념품 사온 거야?”

“아니. 세라프 종족한테 받은 거야. 잠깐만 조용히 해볼래? 이거 깨워보게.”

동생들이 알았다고 TV의 소리를 줄였다.

수한은 정신을 집중했다.

전신의 힘을 끌어올려 기계용에게 주입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분명히 힘은 흘러가고 있는데, 몸을 웅크린 상태 그대로였다.

수한이 자신의 힘을 절반 가까이 주입했을 때 변화가 시작되었다.

웅웅웅웅.

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가 하면 감긴 눈에서 적색 빛이 새어나왔다. 몸 전체가 진동을 일으켜, 앉은뱅이 탁자가 덜커덕거렸다.

시간이 꽤 지났다.

수한이 탈진 직전까지 갔을 때, 기계용이 눈을 떴다.

기계용은 붉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앙증맞은 날개를 들어 홰를 치더니, 수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더니 묘한 소리를 내뱉는다.

“키이잉!”

기계용이 겅중겅중 뛰어 수한에게 다가왔다.

무심코 손을 내밀자, 애교 부리듯 수한의 손에 대고 머리를 비볐다. 수한이 손을 거둔 뒤에도 주변을 알짱거리며 떠나지 않았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행동 같았다.

동생들이 눈을 반짝였다.

“이야, 이 녀석 진짜 귀엽다.”

“인공지능이겠지?”

“근데 세라프 종족이 준 게 애완 기계용이야? 먹이 값은 안 들 테니까 좋긴 하다.”

“이 녀석이?”

수한은 짐짓 눈을 부라렸다.

기계용이 가볍게 날갯짓을 했다. 수한의 한쪽 어깨로 날아오르더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가락으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눈을 감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분명 금속으로 만들어졌는데도 생물을 만진 것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조그마한 녀석 주제에, 상당히 섬세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 녀석을 어디다 쓰지?

설명서도 없고 참,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넌 뭘 할 줄 아니?”

그렇게 속삭여 보지만, 기계용은 하품만 쩍쩍 했다.

세라프 어로 말을 걸어도 마찬가지. 다만 정신 감응으로 뭔가 명령을 내리면 곧잘 따라 했다.

재주를 부린다거나, 리모콘을 가져오는 등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것 정도.

가끔 기계용이 수한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

어떤 간질간질한 기분이 수한의 감각을 긁었다.

변이체들처럼 뭔가 의사를 전달하려는 모양이다.

현재 수한으로서는 녀석과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 정신 감응 초능이 1차 진화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신 감응을 충분히 진화시킨 다음 도전해봐야겠다. 어차피 변이체들과 대화를 하려면 3차 진화는 끝내야 되니까.

하루가 지났다.

날이 밝자마자 기계용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한쪽 어깨에 기계용을 올려놓자, 주변 행인들의 시선이 온통 집중되었다.

“어머, 저거 봐!”

“귀엽다!”

얌전히 앉아 있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기계용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괜히 수한의 목덜미를 깨물었다가,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고, 다시 어깨 위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니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에 탄 다음에야 수군거림이 그쳤다.

“어휴, 좀 얌전히 있어라.”

“키잉!”

수한이 녀석을 타박하자, 항의하듯 소리를 질렀다.

일단 조수석에 태웠다. 그러자 기계용이 날개를 펼쳐 센터페시아 위로 올라갔다. 그곳이 마음에 드는지 날개를 접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려니 하고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기계용과 자동차가 융합된 것이다.

날개를 활짝 펴고, 몸통을 센터페시아에 묻는다. 자동차가 부르르 진동하더니, 외부에 용의 비늘 같은 무늬가 생겼다. 차체가 유선형으로 바뀌고, 창문이 용의 눈처럼 변화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저절로 시동이 걸렸다. 수한이 가기로 마음먹은 수호자 연맹까지 네비게이션이 설정되었다. 동시에 내부 모니터에 기계용을 형상화한 로고가 떠올랐다.

수한은 놀라 센터페시아 위의 기계용을 보았다.

[이거 네가 한 거니?]

[……]

이번에도 묘한 감각만 느껴졌다. 새삼스레, 정신 감응을 얼른 진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가 자기 혼자 도로 위를 미끄러졌다.

수한이 굳이 운전할 필요가 없었다. 기계용이 스스로 자동차를 조종하고 있었다.

한 가지 기능을 알아낸 것이다.

자동 조종.

비단 자동차에게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교통수단에게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

그런데 이 기능 하나 때문에 전설 등급인 건 아니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호자 연맹에 도착했다.

기계용이 자동차와의 융합을 풀었다. 수한의 눈앞 운전대 위에 내려앉더니, 수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흡사 공을 물고 돌아온 강아지를 보는 듯하다.

수한은 기계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계용이 눈을 감고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다.

[일어나자. 이리 와.]

기계용을 데리고 차 밖으로 나왔다.

차는 원래대로 돌아간 상태였다. 아까 그렇게 변형되었던 게 거짓말 같았다.

지금 수한에게 있는 힘의 결정은 총 3개.

이것들을 흡수하고, 배당금으로 정신 계열 힘의 결정까지 사서 흡수하면 A급 이능 5가지로 무장하게 되겠지.

솔직히 이능이 좀 많다.

슬슬 부담스러워지는 상황.

2개만 이능을 각성해도 대단하다고 하고, 3개 이상이면 하늘이 내렸다고 하는데 A급만 5개라……

그나마 전례가 없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언젠가 새미가 언급했던 마크 사뮤엘이나 왕먀오 같은 경우 A급이나 AA급 이능을 대여섯 개씩 가지고 있으니까.

어쩌면 그들도 레벨 업 도우미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한 번 만나면 좋겠는데……

잡념을 뒤로 하고, 차원 백화점을 들렀다.

정신 계열 힘의 결정을 샀다.

E급부터 A급까지 1개씩, 총 5개.

이 한 번 쇼핑에 정확히 141억 원이 소모되었다.

흉악한 액수였다.

그렇다고 레벨 업 도우미로만 초능을 강화시켰다간 발전 속도가 너무 느리니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밀실로 들어갔다.

오늘 안에 3차 진화를 끝낼 작정이었다.

사실 하루 만에 A급 이능으로 승급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래서 진작 핑계거리를 생각해 두었다.

이시테.

1주일 넘게 정신 계열 이능이 강화되고, 그걸 활용했더니 힘의 결정을 수월하게 흡수할 수 있었다고 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대전쟁 당시 그렇게 A급, B급 이능력자가 된 인물들도 있었으니까.

[여기 얌전히 있어. 알았지?]

“키이잉!”

기계용을 밀실 한쪽에 내려놓고 당부하자, 기계용이 알았다는 듯 기성을 질렀다.

벌거벗고 침대 위에 누웠다.

E급 힘의 결정을 깨뜨렸다. 옅은 고통이 스치고, 레벨 업 도우미의 초능창에 우월한 정신 점수가 3점 생겼다.

이어서 D급, C급, B급, A급.

A급 힘의 결정을 흡수할 때는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3번째여서 그런지 더 수월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우월한 정신 점수가 정확히 225점.

그걸 몽땅 정신 감응에 들이부었다.

1차 진화, 2차 진화, 그리고 3차 진화.

정신 감응이 정신 접속으로, 정신 연결로, 집단 의식으로 바뀌었다. 이제 수한은 단순히 텔레파시만 보내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아, 힘들다.”

수한은 침대에 누운 채 중얼거렸다.

[괜찮아?]

기계용이 깡총깡총 뛰어 옆으로 다가왔다.

어라?

수한은 기계용을 돌아보았다.

[네가 말한 거니?]

기계용은 조그마한 머리를 끄덕였다.

피에 절은 수한의 몸을 한번 살펴보더니, 또 텔레파시를 시도했다.

[내가 호 해 줄까?]

“뭐? 하하하.”

수한은 그만 웃어 버렸다.

치료 능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누워서 쉬다가, 기계용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로부터 3일.

수한은 수호자 연맹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힘의 결정을 수호자 연맹 금고에 맡긴 탓에, 그걸 찾아서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5개의 모든 이능을 A급으로 올리는데 성공했다.

속성 조합, 초월자의 눈, 아음속, 박명(薄命), 집단 의식.

A급 이능 다섯 개라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능 인증을 받았다.

12가지 모든 계열에 별표(*)가 찍혀 있었다. AA급 힘의 결정을 성공적으로 흡수하여 승급할 확률이 절반 이상이라는 뜻이다.

“오빠 장난 아니다.”

새미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빨리 승급한 편인데 오빠는 진짜 역대 급이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각성 확률 1억 분의 1이 나왔지? 그것도 자연 각성 확률도 아니고.”

“하하, 그러게.”

“키이잉!”

기계용이 둘의 이야기를 듣다말고 홰를 쳤다.

새미가 귀엽다는 듯 기계용을 쳐다보았다.

“근데 얘는 이름이 뭐야?”

“이름? 아직 안 지었어.”

“벌써 며칠 전에 깨웠다며? 그런데 아직이야?”

“힘의 결정 흡수하느라 정신이 없었지.”

“그랬구나. 나도 힘의 결정 흡수해야 하는데……”

새미는 턱에 손을 괴었다.

이번에 새미는 세라프 종족에게 AA급 힘의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흡수를 시도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아직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한 탓이다.

이번에 변이체 배당금으로 받은 게 124억 원. 그 중 120억 원을 사용해 A급 힘의 결정을 샀다고 했다. 그걸 흡수한 게 바로 어제 일이었다.

새미가 수한을 보며 말했다.

“난 A급 한두 개 정도 더 흡수하고 도전해보려고. 이번에 기계 괴수 배당금 생각하면 A급 힘의 결정 두 개는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겠지? 잘 하면 나란히 AA급 이능력자가 될 수도 있겠다.”

“AA급 힘의 결정까지는 백화점에서 살 수 있을 거야. 저번에 보니까 계열 별로 몇 개씩은 있더라.”

“S급은 힘들겠지?”

“응. 나도 한 번 물어봤는데 백화점 안에 3개 밖에 없대. 그나마 3개 다 기정 결정이어서 인기가 좀 없나 봐.”

“그렇겠지.”

하급이라면 모를까, S급 힘의 결정을 구입할 정도로 부유한 이능력자라면 기존의 이능을 강화시키는 것을 원한다. 기정 결정을 잘못 흡수했다가 기존 이능이 사라지는 경우까지 있으니, 아무래도 기피하곤 했다.

수한은 잔에 남은 커피를 말끔히 비웠다.

기계용이 잔에 머리를 넣어 냄새를 맡더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거 왜 먹어?]

수한은 가볍게 웃으며 기계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참, 부모님은 귀국하셨어?”

“내일 귀국하신대. 다음 주 월요일이 어떠냐고 하시던데.”

“원정 시작 딱 1주일 전이구나. 그래, 그때 뵙자.”

“응. 나도 그렇게 알고 있을게.”

조금 떨리긴 했지만 그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한 참이었다.

이제는 담담하기만 했다.

하지만 새미의 부모님을 뵙기 전, 한 가지 일이 생겼다.

수호자 연맹에서 수한을 호출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