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96화 (97/254)

< 파병 결의 -1- >

전화가 한 통 왔다.

본인을 대한민국 지부의 전략부장이라고 소개했는데, 내일 수호자 연맹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회의라고요?]

[예. 세라프 종족이 요청한 파병에 대한 회의입니다. 수한씨의 의견을 참고하려고 합니다.]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네요. 알겠습니다.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가겠다고는 했는데, 수한은 속으로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 증언을 들을 이유가 있나?

어차피 타이탄에서 확보한 자료를 수호자 연맹으로 다 넘겼을 것이다. 원정 보고서도 기밀 사항만 제거하고 줬을 텐데, 왜 부르는지 모르겠다.

뭐 어쩌겠나.

가보기는 해야지.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의 시간은 아침 10시였다.

정확히 집을 나섰다. 기계용을 자동차에 결합시키자 막히는 도로를 피해 잘도 달렸다.

수호자 연맹으로 들어가자, 수호자 한 명이 다가왔다.

“타이탄 공격대 이수한씨 맞지요?”

“예, 맞습니다.”

“절 따라오세요. 곧 회의가 시작할 겁니다.”

회의?

성민과 세윤이 부른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수호자는 상당히 큰 회의실로 안내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알바트로스의 갈태수 사장, 타이탄의 한민종 사장.

거기다 다른 공격대의 사장들과, TV에서나 보던 국방부 장관, 국군 장성들도 있었다. 파병 관련해서 뭔가 논의를 하려는 것 같았다.

수한은 회의실 구석 자리였다. 딱 봐도 발언권이 없는 자리였다. 안내해 준 수호자도 지명되기 전엔 발언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실이 꽉 찼다.

성민이 입을 열었다.

“초청한 분은 다 오신 것 같습니다.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요? 이미 파병하기로 결의했고, 세부 계획만 짜면 될 텐데요.”

근엄한 표정의 국방부 장관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민이 살짝 머리를 숙이고는 말했다.

“상황이 변했습니다. 자료 화면부터 보시죠.”

허공에 손을 젓자, 회의실 중앙에 거대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기계 괴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수한이 이번 원정에서 목격했던 광선검 기계 괴수와 비슷한 정도였다.

다만 생김새가 좀 특이했다.

왕관형의 하체에, 무수히 많은 다리가 그 몸을 받쳤다. 다이아몬드 형태의 커다란 구조물이 얹혀 있는데, 그 구조물에 붉은 눈동자 같은 것이 맺혀 있었다.

수한은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하다.

단지 홀로그램으로 보고 있을 뿐인데,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본능이 맹렬히 수한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대형 기계 괴수입니까?”

“그렇다고 하기엔 뭔가 이상한데요.”

“기존 기계 괴수들과는 생김새가 너무 다릅니다.”

“신형 기계 괴수일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곧 모두 입을 다물었다.

세라프 종족들이 기계 괴수를 공격하는 장면이 나왔다.

적어도 다섯 이상.

편대를 짜서 하늘로부터 날아들고 있었다. 방어막도 충실하게 전개해 놓아서, 기계 괴수가 금방 박살날 것 같았다.

그런데 예상을 어긋나는 일이 생겼다.

쭈앙!

붉은 눈동자에서 적색 광선이 일직선으로 뿜어졌다.

광선이 세라프들을 휩쓸었다. 방어막이 단박에 소멸되었다. 잽싼 둘만 간신히 몸을 피하고, 나머지 셋은 광선에 직격당하여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여기저기서 기가 막히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맙소사!”

“저게 뭐야?”

“말도 안 됩니다!”

남은 세라프들이 간신히 도망쳤다.

기계 괴수는 멀찍이서 또 적색 광선을 쏘았다.

한 명은 거기에 맞아 죽고, 한 명은 날개를 하나 잃었다. 그러자 동영상을 찍던 이들이 얼른 그 세라프를 ATV에 태운 뒤 도망쳤다.

영상을 본 이들의 얼굴이 심하게 찌그러졌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어떤 기계 괴수도 세라프 종족을 저렇게 농락하지 못했다. 가장 강력했던 거대급 기계 괴수라도 마찬가지였다.

성민이 부연 설명을 했다.

“연락이 끊겼던 카이저 공격대의 생존자 몇 명이 지구로 귀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영상입니다.”

“저놈은 대체 뭡니까?”

“모르겠습니다. 아까 어떤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국의 신형 기계 괴수일 확률이 높습니다.”

“미친, 그런 놈이 가브낙 행성에 있다는 겁니까?”

성민이 가브낙 행성의 지도를 공개했다.

세라프 종족을 통해 입수한 지도.

그걸 보니 가브낙 행성은 모두 3개의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리오 대륙, 브뮤 대륙, 낙베일 대륙.

수한이 원정을 다녀온 곳은 가리오 대륙이었다. 그리고 화면에 뜬 거대 기계 괴수는 낙베일 대륙에 있었다.

다른 대륙이라고는 해도, 겨우 10 킬로미터 간격의 해협을 통해 건너갈 수 있는 곳.

모인 사람들이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파병을 취소해야겠습니다.”

“대형 기계 괴수도 벅찬데 신형 기계 괴수? 우리에게는 무리입니다.”

“세라프 다섯을 저렇게 쉽게 해치우는데, 저걸 어쩌겠어요. 포기해야죠.”

“차라리 제토 행성이나 피올로 행성 파병 계획을 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성민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렇게 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카이저 공격대의 생존자들이 세라프 종족의 편지를 가져왔습니다. 더구나 종족 연합 최고 평의회에서도 결의서가 내려왔고요.”

“설마 가브낙 행성에 파병하라는 겁니까?”

“예. 이제 우리 지구도 먹고 살 만 하니, 그 동안 지원 받은 값을 하라는 거지요.”

“끄응.”

하긴 지구는 여태껏 대규모 파병을 한 적이 없었다. 공격대들이 활발하게 원정을 나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수십 명 단위 소규모 원정에 불과했다. 가끔 기계 괴수를 잡으려고 나가도 수백 명 정도였다.

세라프 개인의 요청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최고 평의회에서 결의서가 내려올 정도면 무시할 수가 없다.

합당한 이유 없이 최고 평의회의 결의를 무시했다가, 종족 연합에서 제명되기라도 하면 큰 일이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기계 괴수를 직접 대적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건 어디까지나 세라프 종족이 맡겠다고 했다.

듣고 있던 공격대장 중 하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은 UN에서 논의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우리나라 단독으로 가봐야 기계 괴수를 잡기 힘들 텐데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UN에서 표결을 거치고, 파병을 결의하고, 다시 각 국가 의회의 승인을 받고…… 그러는 동안 가브낙 행성이 멸망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파병에 응하지 않았다고 최고 평의회의 추궁을 받겠지요.”

“흠, 그러니까 수호자 연합과 각 공격대, 그리고 국방부 소속 특수군이라도 먼저 보내자, 이 말입니까?”

“예. 국군은 움직이려면 절차가 복잡하지만, 수호자 연맹과 공격대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최고 평의회에서 압박하고 있으니 일단 얼마라도 보내서 생색을 내자는 걸까?

너무 위험하다.

누군가 그것을 지적했다.

“그러다가 파병 간 이들이 전멸당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상위 공격대들이 보유한 전력은 우리나라의 핵심입니다. 그들이 없으면 국가 안보도 위태로워져요.”

“어차피 우리는 보조 전력입니다. 주요 전력이 아닙니다. 거대급 기계 괴수는 세라프들에게 맡기고, 소형 기계 괴수를 사냥하거나 변이체들만 청소하면 됩니다.”

그게 말처럼 쉽나.

대한민국의 뭇 공격대 중 자력으로 소형 기계 괴수를 사냥할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다섯 개를 넘지 못하는데.

냉담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성민이 다른 이야기를 했다.

“평소 같았으면 어떻게든 파병 규모를 줄이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 타이탄 공격대의 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달리 했습니다.”

성민이 수한을 보았다.

“가브낙 행성에서, 타이탄 원정대는 S급 변이체들을 정신 제압하여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들을 이용해서 기계 괴수를 수월하게 사냥했지요. 다들 아시잖습니까? S급 이능력자 다섯이면 기계 괴수를 잡을 수 있다는 거.”

가벼운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30대 초반, 보석 안경을 쓴 여성이 눈을 상큼하게 치켜올렸다.

백호 공격대, 안경미 사장.

타이탄 공격대와는 1, 2위를 다투는 관계였다.

“그게 가능해요? 저희 공격대 백준 이사님이 변이체 정신 제압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C급만 되어도 잘 안 먹히던데요? D급도 시도하면 반만 성공했어요.”

백준 이사라면 AA급 정신 계열 이능력자다.

그걸 타이탄 공격대에서 성공했다고 하니, 의아하면서도 경쟁 심리가 발동하는 모양이었다.

성민이 수한을 보고 말했다.

“당사자가 와 있으니 직접 듣기로 하지요. 수한씨? 당시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뭔가 변이체 관련해서 꿍꿍이가 있나 보다.

수한은 한쪽에 앉아 있는 한민종 사장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입을 열었다.

“타이탄 공격대 소속 이수한입니다. 변이체를 제압한 것은 저희가 아닙니다. 세라프 종족 중 정신 계열 이능이 특기를 가진 세라프가 있었는데, 그 세라프가 변이체를 제압했습니다. 저희는 정신 계열 이능으로 변이체들을 조종하기만 했습니다. 세라프 종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미 제압이 끝난 상

태인데도, 조종하려면 A급 이능이 필요했습니다.”

“A급 이능이요? 타이탄 공격대에서 A급 정신 계열 이능력자도 영입했나 보네요?”

공격대 기밀에 속하는 내용이라, 수한은 민종을 돌아보았다.

민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된다는 것.

수한은 마음 편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아뇨. 당시 저희 원정팀에는 A급 정신 계열 이능력자가 없었습니다. C급과 D급만 있었는데, 그 세라프가 초능을 승급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한시적인 A급 이능력자가 생겨서 변이체들을 조종할 수 있었지요.”

“허, 역시 세라프 종족답네요.”

“누군진 몰라도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네요. 이거 몇 달 후면 타이탄 공격대에 A급 정신 계열 이능력자가 생기겠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상하네요. 왜 자기들이 직접 조종 안 하고 타이탄 공격대에 맡겼대요?”

“그게 중요합니까? 그러니까 지부장님 말씀은, 세라프들에게 협조를 구해서 변이체 군단을 만들어 끌고 다니자는 거지요?”

경미가 의문을 표시하자, 민종이 얼른 한 마디를 했다.

사전에 수호자 연맹 측과 교감을 나눈 모양이었다.

“한 사장님 말씀대로입니다. 타이탄 공격대가 그랬던 것처럼, S급 변이체 5마리씩만 끌고 다녀도 소형 기계 괴수 잡는 것은 무난합니다. 힘을 합치면 중형, 대형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말처럼 쉬울까요? 세라프 종족이라고 무한정 변이체들을 정신 제압할 수는 없을 텐데.”

“안 사장님께서 착각하시는 게, 저희가 파병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일정 규모 이상의 병력을 가브낙 행성으로 보내야 합니다. 변이체 제압은 그 와중에 짜낸 궁여지책이지, 처음부터 저희에게 선택권은 없습니다. 아니면 백호 공격대는 여기서 빠지실 겁니까?”

자꾸 사기를 떨어뜨리는 발언을 하자 내심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성민은 한 마디를 쏘아붙였다.

수호자 연맹과 사이가 틀어지면 좋을 게 없다.

경미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확실히 하고 가자는 거죠. 누가 안 간대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가야 희생도 줄이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지 않겠어요?”

“하긴 그건 그렇지요.”

“안 사장님이 치밀한 성품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아닙니까? 다시 짚고 넘어가자는 뜻에서 하신 말씀일 겁니다.”

다른 공격대 사장들이 중재를 해서, 잠시 싸늘해졌던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갈태수 사장이 성민을 보고 질문했다.

“언제까지 파병해야 하는 겁니까? 저희 공격대는 절반 이상이 원정을 나가 있어서, 일단 그들이 귀환해야 뭘 해도 할 수 있습니다.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이번에 만든 특수 원정팀 밖에 없어요.”

다른 공격대 사장들도 차례로 발언했다.

“저희도 사정이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부터 파병 준비해도 빨라야 2주 후고, 지부장님이 원하는 규모로는 불가능합니다.”

“저희도 똑같습니다.”

성민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경미가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차피 다른 나라에서도 파병할 텐데,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그래서 문제입니다.”

성민이 한숨을 쉬었다.

수한은 금방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안 그래도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위 강대국에게 뒤쳐진 참이었다. 이번 파병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발언력이 약해진다. 그럼 나중에 이런저런 손해를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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