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가브낙 행성 -1- >
세라프 종족은 참, 이름을 못 짓는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브낙 행성이 뭐냐?
행성 내에 위치한 대륙 3개 이름의 앞글자만 따서 지은 이름 아닌가.
가브낙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세라프의 전당 밖으로 나갔다. 5분 후면 또 후속대가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수한은 감회가 새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확히 2주 만이다.
외계 행성으로 원정을 나온 게 아니라, 지구로 휴가를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저번 원정이 워낙 인상 깊어서 그런가 보다.
“캬아악!”
하늘을 날던 거대한 새가 원정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냥 내려다보기만 했지만, 어느 순간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주변의 이능력자들이 놀라 무기를 들었다.
수한이 얼른 그들을 제지했다.
“제가 아는 변이체들입니다. 경계하실 필요 없어요.”
다름 아니라 기계 형태 S급 변이체였다.
그 중 새 변이체.
새가 급강하하더니 겨우 몇 미터 상공에 정지했다.
큰 날개를 휘저으며, 수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너! 왜 이렇게 늦었냐? 기다리느라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
[하하. 오랜만이야. 다른 친구들은 어디에 있어?]
[이 근처에 있다. 조그만 놈들이 배고프다고 빽빽 거려서 그놈들 줄 먹이를 찾는 중이지.]
조그만 놈들?
수한은 실소를 머금었다.
가브낙 행성인들의 숭배를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나 보다. 저렇게 툴툴거리면서도 챙겨주는 것을 보면.
[그래? 그럼 나 좀 안내해 줘.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좋다.]
민종에게 양해를 구했다.
어차피 당분간은 가져온 물건들을 전개하느라 시간이 필요했다. 거기에만 하루에서 이틀은 금방 소요될 터였다. 얼른 가서, 변이체들을 데려오라는 허락을 받았다.
새미도 동행했다.
어차피 여기 있어봐야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수한은 새미를 데리고 새의 등에 탔다.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자, 새미가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주머니에 숨어 있던 기계용이 고개를 내밀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하늘 위인 것을 깨닫고 날개를 퍼덕였다.
[이야, 하늘 위다!]
[이건 뭐하는 물건이냐?]
새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거칠게 날고 있지만, 기계용은 겁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한의 품을 벗어나 새의 머리 위로 총총 올라갔다.
그러더니 수한과 새, 둘에게 동시에 속삭였다.
[이상한 녀석이다!]
[뭐? 이 발톱보다 작은 놈이?]
수한은 집단 의식을 통해 셋의 정신을 연결했다. 그래서 누가 생각을 하든 모두 그 생각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기계용과 새 변이체가 신경전을 벌였다.
수한은 피식 웃었다.
[용아, 그만 장난 쳐. 새, 너도 그만 하고. 이런 꼬맹이랑 싸우고 싶니?]
[꼬맹이 아냐!]
[으흐흐, 그 말이 맞아. 내 체면에 이런 꼬맹이랑 드잡이질을 벌일 수는 없지.]
“키잉!”
약이 오른 기계용이 기이한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토라진 듯 등을 돌리고 구름만 쳐다보았다. 그게 귀여워 수한은 기계용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름은 그냥 간단하게 용이, 라고 지었다.
새미가 작명이 이게 뭐냐고 꿍얼거렸지만, 수한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수한이 용이를 달래는 사이 새 변이체가 하늘을 쌩 날았다.
금세 인근의 산에 도착했다. 제법 큰 골짜기 안으로 비행해 들어가자, 집채보다 큰 변이체 네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곰, 살쾡이, 원숭이, 뱀.
2주 전 지구로 돌아가던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새미가 수한의 품에 안긴 채 속삭였다.
“쟤들은 변한 게 없네?”
“변했으면 더 이상하지.”
새가 천천히 계곡에 내려앉았다.
변이체들이 수한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금방 온다며, 뭐 이리 늦게 왔어?]
[먹잇감들이 널려 있는데,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변이체들의 생각이 물밀 듯이 수한에게 밀려들었다.
수많은 영상이 수한의 머릿속에 주입되었다.
하늘 위를 날며 주위를 살폈던 새의 기억, 산을 뛰며 주변 기계 괴수들의 동정을 파악한 살쾡이, 그리고 다른 세 마리의 기억도.
막대한 정보가 한꺼번에 파고들자, 귓가에서 웅 하고 이명이 울렸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그 정보를 받아들였다.
그 덕에 도시 주변에 기계 괴수들이 어디쯤 있는지, 등급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매우 유용한 정보들.
수한은 슬쩍 변이체들을 떠보았다.
[너희들끼리 한 번 도전해 보지 그랬어?]
[킁!]
[쩝!]
그 말에 고개를 돌리는 게, 진작 한 번 더 실패를 맛본 모양이었다.
수한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일단 도시로 가자. 내 동료들도 같이 왔으니까, 이번에는 더 많은 기계 괴수를 사냥할 수가 있을 거야.]
[진짜?]
[좋아! 이번에는 더 큰 놈을 잡아먹어야겠어!]
[맞아, 맞아. 작은 놈들만 잡아먹었더니 성이 안 차. 큰 놈을 잡자!]
[내가 괜찮은 놈 봐뒀어. 저번에 칼 휘두르던 놈이랑 비슷하게 큰 놈이야!]
광선검 기계 괴수와 비슷하면 대형 기계 괴수다.
수한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처음부터 그런 놈 잡으려고 하면 힘들지. 천사님들이 힘을 합쳐서 겨우 잡는 거 못 봤어? 일단은 쉬운 놈부터 하자.]
[끄응.]
[그 놈 진짜 맛있게 생겼는데……]
변이체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새가 다시 날개를 활짝 펼쳤다. 다른 육상 변이체들이 대지를 쿵쿵 울리며 도시로 돌아갔다.
새미가 수한을 돌아보았다.
“얘들이랑은 정신 계열 이능으로 대화하는 거야? 보니까 말이 통하는 것 같은데. 저번에는 이시테님 축복을 받았었잖아.”
“응. 나 이젠 정신 계열도 A급이라서 그냥 대화할 수 있어. 너도 이어줄까?”
“나도? 그게 돼?”
“내 능력은 여럿의 정신을 함께 연결하는 거야. 몇 번 승급하니까 그렇게 되더라.”
“신기하다. 그런 나도 좀 연결시켜 줘. 얘기해보고 싶어.”
“알았어.”
저번 원정 때는 불가능했던 일.
변이체들과 정신이 연결되자, 새미가 조잘조잘 떠들었다. 변이체들은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반응했지만, 사근사근하게 다가오는 새미의 매력에 금방 마음을 열었다.
산으로 올 때보다 속도가 느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시에 도착했다.
도시 외곽에 타이탄 공격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커다란 천막이 수십 개가 넘게 늘어서고, 트럭과 SUV, ATV들이 굴러 다녔다. 심지어 야전지휘용 장갑차도 한 대 보였다.
가브낙 행성인들이 그것을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문명 수준이 지구 중세 유럽 정도에 불과한 가브낙 행성이었다. 기계 괴수에게 당해 궁지에 몰려있던 참이라, 기계 괴수와 흡사한 점이 있는 지구 문물에 공포심을 느끼는 것이다.
변이체들이 접근하자, 타이탄 공격대가 깜짝 놀랐다.
이능력자들이 변이체들 앞을 막고, 지원 요원들이 온갖 중화기를 전개했다. 휴대용 미사일을 겨누는가 하면 무반동총을 배치했다.
수한이 새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접니다! 이수한이에요! 아군이니까 공격하지 마세요!”
그제야 타이탄 공격대가 변이체의 정체를 깨달았다.
원정 계획서에 이미 언급이 되어 있던, 특수 원정 1팀이 가브낙 행성에서 포섭했다는 S급 변이체들.
사진과 동영상으로는 익히 봤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변이체 특유의 존재감까지 더해지니, 자연히 몸이 먼저 반응했던 것이다.
변이체들이 타이탄 공격대를 위협하며 진지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저번에 함께 한 적이 있는 특수 원정 1팀이 나섰다. 그들이 변이체들을 달래자, 변이체들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그때를 노려, 민종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것들이 수한씨가 말한 변이체들입니까?”
“예. 참, 사장님. 얘들은 머리가 굉장히 좋습니다. 부르실 때 유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혹시 지도 있으면 보여주시겠습니까? 얘들이 지난 2주 동안 주위를 탐색해서 기계 괴수를 찾아 놓은 게 있는데, 그 위치를 기록하겠습니다.”
“오, 마침 잘 됐네요. 이쪽으로 오세요.”
변이체들은 진지 한쪽에 있으라고 한 뒤, 민종을 따라 가장 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새미와 용이가 수한의 뒤를 따라갔다.
막사 중앙에 커다란 탁자가 있었다.
도시 주변을 정교하게 묘사한 홀로그램 지도가 보였다.
수한은 지도에 점을 몇 개 찍었다. 손을 허공에다 찍자, 저절로 붉은 점이 찍히는 것이다.
점 여섯 개, 그리고 엑스 표시 하나.
민종이 수한의 하는 양을 보다가 질문했다.
“점은 알겠는데, 엑스 표시는 뭡니까?”
“대형 기계 괴수입니다. 저번 원정에서 확보했던 대형 기계 괴수와는 다른 종류인데, 등급은 같습니다.”
“많기는 많네요. 대형은 놔두고 소형만 잡아도 충분히 대박입니다.”
민종이 눈을 빛냈다.
수한은 변이체들을 한 번 보고 말했다.
“그나저나 변이체들에겐 얼마나 주실 겁니까? 저번에는 동력핵만 저희가 갖고, 시체는 통째로 변이체에게 줘서 데리고 다니기 쉬웠습니다만.”
“문제네요. 동력핵도 막대한 가치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원정을 온 보람이 없으니까요.”
원정대가 백 명, 2백 명 수준이었다면 동력핵만 가져가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1천 명을 넘어가니, 동력핵만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들었다.
지구에서 미리 비율을 정해 놓고 와서 다행.
“시체의 2/3만 변이체들에게 넘기는 것으로 하지요.”
“동력핵과 시체의 1/3은 우리가 갖고요?”
“예.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변이체들이 납득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사장님과 최 이사님이 참전하신다고 해도 자기 몫이 줄어드는 걸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후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2마리를 한꺼번에 잡으면 되니까요.”
“예?”
수한이 반문하자, 민종이 자세히 설명을 했다.
“저와 변이체 두 마리, 그리고 최 이사와 변이체 세 마리, 이렇게 나눌 겁니다. 여기에 우리 공격대의 AA급 이능력자들도 참여합니다. 그럼 충분히 기계 괴수를 잡을 수 있어요.”
“우리 공격대에 A급 정신 계열 이능력자는 저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두 군데에서 동시에 진행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수한씨의 이능은 집단 의식이잖습니까? 수한씨가 두 곳을 동시에 인지할 수 있다면 두 곳 다 이능이 적용될 겁니다.”
민종이 지휘용 장갑차를 가리켰다.
수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저걸 굳이 가져왔나 했더니, 수한을 태워 집단 의식 능력을 발휘하게 하려고 했나 보다.
새미가 옆에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멀리서도 이능 발현이 돼요?”
“정신 계열이나 투시 계열에는 그런 이능이 흔합니다. 혹시 모르니 시험은 해봐야겠습니다만.”
민종과 함께 지휘 장갑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수 킬로미터 밖에 공격대 지원 요원들이 ATV를 타고 나가 있었다. 드론이 하늘을 날며 그 장면을 지휘 장갑차로 전송했다.
수한은 의자에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화면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주시했다.
틀렸다.
이런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정신에 접속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민종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수한은 금방 대안을 내놓았다.
먼저 자신과 정신을 접속한 뒤, 멀리 보내보자는 거였다.
그 방법은 성공했다.
변이체도, 그리고 지구인도 일단 정신을 연결한 뒤에는 쉬웠다. 수한의 인지에서 벗어나면 집단 의식이 해제되지만, 화면을 보면서 다시 발현하는 건 가능했다.
민종의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이렇게 하면 되네요? 좋습니다. 바로 시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단 손발을 맞춰보고 하지요. 변이체들에게 전술도 설명해야 하고요.”
“그게 좋겠습니다.”
타이탄 공격대의 S급 및 AA급 이능력자, 그리고 S급 변이체 다섯 마리가 한 곳에 모였다. 수한의 집단 의식 덕분에, 변이체가 끼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변이체들이 눈을 번뜩였다.
[우리한테는 시체의 2/3를 준다고?]
[그래. 두 마리를 동시에 잡으니까, 결국 1마리에 더해서 1/3을 받는 셈이다. 나쁘지 않을 거다.]
변이체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새 변이체가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가 너무 손해를 보는 것 같은데? 천천히 잡으면 어차피 우리가 다 가질 건데, 너희들한테 1/3이나 떼어줘야 되는 이유가 있어?]
[있지. 2마리씩 잡으면 얼마나 빨리 잡을 수 있겠어? 하루에 1마리씩 잡아서 그걸 다 먹는 것보다, 하루에 2마리씩 잡아서 1마리 1/3씩 먹는 게 이익이야. 6마리만 잡고 끝낼 게 아니잖아?]
[몇 마리나 잡을 건데?]
[눈에 보이는 건 다.]
[그래?]
변이체들이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