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가브낙 행성 -2- [4권 끝] >
[그럼 큰 놈도 잡는 거야? 그 놈도 우리한테 2/3를 주는 거지?]
[그 놈은 절반만 줄게. 우리 수를 봐. 다른 것은 두 마리를 함께 잡으니까 괜찮은데, 큰 놈은 우리도 절반은 있어야 손해를 안 봐. 어때?]
[절반?]
[절반이라고 해도 다른 놈들 보다 먹을 게 훨씬 많아. 녀석은 다른 놈들 보다 몇 배는 더 크잖아. 안 그래?]
[좋아! 너희 제안을 받아들이겠어.]
기계 괴수의 시체도 중요하지만, 지금 타이탄 공격대에겐 대형 기계 괴수의 동력핵이 절실히 필요했다.
소형 기계 괴수의 동력핵을 가공하면 S급 힘의 결정이 튀어나온다. 중형은 확률적으로 SS급 힘의 결정이 나오고, 대형은 무조건 SS급 힘의 결정이 만들어진다.
SS급 힘의 결정, 특히 강체 계열이나 거력 계열이 나오면 한민종 사장이 승급에 도전할 수 있다.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거래.
조건 합의가 끝나자, 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미리 얘기한 대로, 크게 두 패로 나누었다.
민종과 살쾡이, 뱀이 1조.
최 이사와 새, 곰, 원숭이가 2조.
원정에 참가한 타이탄 공격대의 AA급 이능력자는 정확히 10명이었다. 그들이 5명씩 나누어 양측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손발이 안 맞았다.
하지만 집단 의식을 통해 실시간으로 서로의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졌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한 몸처럼 움직이게 되었다.
“이제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2개 조가 트럭과 SUV, ATV를 끌고 길을 떠났다.
새 변이체가 보기에는 겨우 몇 시간 거리지만, 타이탄 공격대 기준에서는 모두 이삼일 거리씩 떨어져 있었다. 나중에 연락이 오면 드론으로 그들을 보면서 집단 의식을 발현하면 된다.
[이거 탐난다. 내가 가져도 돼?]
그러는 와중에 용이가 지휘 장갑차에 눈독을 들였다.
처음에는 작은 모니터만 융합했다. 나중에는 아예 운전석으로 들어가 지휘 장갑차 전체와 융합하려고 했다.
잘 되지는 않았다.
운전석 부근만 융합되었다. 덕택에 장갑차 앞쪽이 까맣게 변하며 용의 비늘 같은 문양이 돋아났다.
야영지 건설이 끝나 무료하던 참이었다. 타이탄 공격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장갑차를 보고 지나갔다.
몇 번의 도전 끝에 성공했다.
장갑차 전체가 변형되었다. 겉에서 보면 용이 한 마리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용의 눈을 연상시키는 유리창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용이는 장갑차를 완전히 장악했다. 덕분에 주위의 드론들이 보내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취합할 수 있었다.
수한의 머릿속에 커다란 지도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도 곳곳에 변이체들이 어디 있는지, 어떤 변이체인지 하는 정보가 새겨졌다.
이거 괜찮은데?
수한은 속으로 감탄을 했다.
전술 이사를 찾아갔다.
이번 원정을 총지휘하는 사람이었다. 원정 계획을 짜는 것도 전술 이사가 주축을 담당했고, 민종이 부재하거나 일선에 뛰어들면 직접 지휘를 하기로 했다.
수한의 방문에, 지도를 들여다보던 전술 이사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용이의 능력을 이야기했다.
사실 전술 이사는 지휘 장갑차를 수한이 차지한 것도, 용이가 지휘 장갑차를 변형시킨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들으니, 그 활용 방법이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솟구쳤다.
전술 이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저도 그 정보를 알 수 있겠습니까?”
“어려울 것 없지요.”
수한은 전술 이사에게도 집단 의식을 걸었다.
용이가 분석한 정보가 수한을 통해 전술 이사의 뇌로 주입되었다. 전술 이사는 심호흡을 하며 그 정보를 받아들였다.
정보 전달이 끝났다.
“후! 굉장하네요.”
“저 녀석, 꽤 쓸 만하지 않습니까?”
“이건 쓸 만한 정도가 아닙니다. 혁명입니다, 혁명!”
전술 이사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A급 이하의 이능력자들을 지휘하여 근방 변이체를 잡는 것은 전술 이사의 책임이었다. 용이의 능력을 활용하면, 순식간에 도시 주변을 청소할 수 있다.
전술 이사가 특수원정팀과 전투부, 지원부를 차례로 불렀다.
가장 효율적으로 변이체를 잡게끔 부서를 배치했다. 도시가 공격당할 수도 있으니 절반 정도는 야영지에서 쉬도록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타이탄 공격대 야영지에서 쉬지 않고 ATV들이 달려 나갔다.
[도착했어.]
변이체 하나가 수한의 머릿속에 속삭였다.
기계 괴수들을 잡기 위해 원정대가 떠났는데, 드디어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수한은 당장 지휘 장갑차로 들어갔다.
지휘 장갑차가 전신을 진동시켜 묘한 소리를 냈다. 용이가 수한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1조랑 2조 영상 띄워줘.]
[응, 잠깐만.]
모니터가 분할하며 두 개의 영상을 비췄다.
수한은 그것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드론이 내려다보는 광경.
정신을 집중하자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싸늘한 공기가 뺨을 후려치고, 긴장감에 겨운 숨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능력을 발현했다.
수한의 정신에서 그물처럼 힘이 뻗어나갔다. 변이체들과의 연결이 강화되고, 새로운 연결이 생겼다.
12명의 타이탄 소속 이능력자들.
이능력자들은 자신의 정신에 누군가 접속하는 것을 알았다. 익숙한 느낌이라, 정신을 활짝 열고 수한을 받아들였다.
수한을 기점으로 18 존재의 정신이 연결되었다.
이걸 그대로 놔두면 두 팀의 작전에 방해가 된다. 수한은 머릿속에서 연결을 둘로 나누었다. 1조는 1조끼리, 2조는 2조끼리만 의식을 공유하도록 했다.
두 조의 상황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오로지 수한 뿐.
거리가 멀어서일까. 능력을 유지하는 게 상당히 힘이 들었다. 수한의 정수리에서 희뿌연 김 같은 것이 솟았다.
눈을 감았다.
더 이상 화면을 보지 않았다. 집단 의식을 유지하는 것에 전력을 쏟았다.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싸우는 이들의 감각이 선명하게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죽어!”
민종이 노호하며 달려들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민종의 이능이 최고도로 발휘되었다. 그것들이 얽히고설키며, 민종의 육체를 강화시켰다.
지금 민종의 앞에 있는 것은 말 형태의 기계 괴수.
크기가 컸다. 아파트 한 채가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민종도 그에 맞먹을 정도로 커졌다. 정면으로 달려들며, 기계 괴수의 목을 붙들었다.
“부우우우!”
기계 괴수가 전신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두 눈에 설치된 광선포를 쏘아대지만, 민종은 그걸 다 무시했다.
S급 강체 계열 이능과 S급 거력 계열 이능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 탓에, 이 정도 공격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민종이 기계 괴수를 잡고 있는 동안 S급 변이체들이 달려들었다. 살쾡이가 발톱으로 방어막을 찢자, 뱀이 멀찍이서 그 안으로 광선포를 날렸다.
AA급 이능력자들도 합세했다. 기계 괴수의 방어막이 빠르게 소모되었다. 더구나 따라온 지원 요원들이 중화탄과 약화탄을 쏴대자 전세가 급격하게 기울였다.
2조도 잘 하고 있었다.
곰 변이체가 최전선에서 기계 괴수의 공격을 받아냈다. 위험해 보이면 원숭이가 기계 괴수의 시선을 끌었다. 새가 쉬지 않고 공격을 하고, 최 이사도 불과 얼음을 연거푸 날렸다.
민종 같이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존재는 없었다. 대신 S급이 넷이나 되었다. AA급 이능력자들이 돕고, 중화탄과 약화탄을 쏟아 부으니 오래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훗!”
수한은 승리를 확인하고 집단 의식 사용을 종료했다.
격렬한 전투 내내 능력을 써서 머리가 꽤 아팠다. 이마에 손을 가져가자, 식은땀이 손바닥에 잔뜩 묻어나왔다.
“오빠, 괜찮아?”
A급 변이체를 사냥하고 돌아온 새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응,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하다.”
“좀 쉬어. 며칠 뒤면 또 기계 괴수를 잡아야 되잖아.”
“그래야겠어.”
타이탄 공격대가 기계 괴수 사냥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금세 여기저기 퍼졌다.
다른 공격대에서 야영지를 알짱거렸다. 하지만 타이탄 공격대가 접근을 허용치 않아 정확한 방법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했다. 얼마 전 합류한 S급 변이체들을 이용했을 거라고만 추측할 수 있었다.
며칠 뒤 기계 괴수를 사냥한 사람들이 귀환했다.
많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수십 명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X-0 방비도 쉬웠다. 화생방 장비가 지나치게 오염되면 아예 불태워버리고, 정화 이능이 있는 이능력자들이 따라가 기계 괴수를 잡자마자 정화했기 때문이다.
시체 중 1/3만 챙긴 뒤였다. 그것만으로도 가져갔던 트럭과 SUV, ATV가 꽉 찼다.
민종이 수한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아주 대박입니다!”
겨우 며칠 만에 동력핵 2개를 얻었으니까.
더구나 더 잡을 수 있는 기계 괴수도 근처에 있었다. 죄다 소형 기계 괴수이니 이번처럼 무난하게 잡을 것이다.
변이체들도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야영지 한쪽에 내려앉았다.
[다음 사냥은 언제 갈 거야? 얼른 또 먹고 싶어!]
오래 걸리진 않았다.
딱 하루를 쉬었다.
그 동안 야영지에 있던 지원 요원들이 전리품을 챙겼다. 세라프의 전당으로 가서 지구와 교신을 했다. 전리품을 바로 지구에 보내려는 거였다.
“이번에도 잘 부탁합니다.”
“걱정 마세요.”
다시 기계 괴수를 사냥하러 떠났다.
이번에도 훌륭하게 사냥에 성공했다. 며칠 후 온갖 기계 괴수의 부품을 담은 차량들이 야영지로 돌아왔다.
“도대체 비결이 뭡니까?”
“독식하지 말고, 같이 먹고 삽시다.”
다른 공격대의 사장들이 찾아왔다.
그들도 변이체 정도는 사냥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이탄 공격대처럼 체계적이지는 않았다. 원정 규모도 차이가 컸기 때문에, 쌓이는 변이체 시체의 양은 타이탄 공격대가 훨씬 더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변이체의 활용.
다른 공격대도 변이체를 써먹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몇몇 공격대가 기계 형태로 진화 중인 변이체를 발견하고, 이시테의 정신 제압까지 받았는데 뜻대로 부리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변이체가 난동을 부리고, 처음에는 말을 따르다가 도망치는 사건이 계속 벌어졌다.
이시테가 혀를 찼다.
[아무리 정신 제압을 했어도 변이체를 다스리는 게 그리 쉬울 줄 알았나? 우리 종족도 오랫동안 말썽 없이 변이체를 제어하는 것은 힘들다. 타이탄 공격대의 이능력자가 특이한 거다.]
그 뒤로는 아예 변이체를 정신 제압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각 공격대의 전력으로만 변이체를 사냥했다.
이렇게 되니 타이탄 공격대가 앞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민종은 생각에 잠겼다.
일반적인 원정이라면 말이 필요 없었다. 눈에 보이는 기계 괴수는 몽땅 사냥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종족 연합 최고 평의회의 결의에 따라 파병을 온 참이었다. 다른 공격대를 배려해야 했다.
“좋습니다. 저희가 파악한 기계 괴수 2마리의 소재를 알려드리지요. 저희는 자리를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민종은 기계 괴수 2마리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대형 기계 괴수까지는 정보를 넘겨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
그놈이 타이탄 공격대의 첫 번째 목표였다. 아무리 소형 기계 괴수를 많이 잡아 돈을 벌어도, 그걸 잡지 못하면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다.
민종은 타이탄 공격대의 임원진을 불러 모았다.
그 중에는 수한도 있었다.
비록 임원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이번 원정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감안하여 회의에 참석시킨 것이다.
“이 근처에 남은 기계 괴수 중 2마리는 다른 공격대에게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요새 다른 공격대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던 참입니다.”
“세라프들에게 물어봐서, 소형 기계 괴수가 많은 곳으로 아예 떠나버리죠.”
“차원문이 근처에 있어야 할 텐데요. 안 그러면 시체 처리하기가 곤란해요.”
“정 뭐하면 동력핵만 빼가도 됩니다. 일단 많이 잡고 볼 일이에요.”
사람들이 많은 터라, 한 마디씩만 해도 시간이 꽤 흘렀다.
민종이 손을 들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도 이 도시에서 떠나는 것에 찬성입니다. 변이체도 많이 줄었고, 기계 괴수도 3마리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전에 한 마리는 잡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커다란 강이 하나 나온다.
그 강을 건너면 넓은 평야지대가 나오는데, 그곳에 대형 기계 괴수가 한 마리 머물고 있었다.
인간을 닮은 상체에, 뱀을 닮은 하체를 가진 기계 괴수.
광선검은 없다. 대신 두 손에서 분해 광선을 뿌렸다. 거기 닿으면 물질만이 아니라 이능으로 만든 방어막도 소멸되었다.
분해 광선을 사용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한 번 사용하고 재사용이 가능해지기까지 대기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공격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민종이 눈을 빛냈다.
“놈을 잡고 이동하겠습니다. 가브낙 행성에 온 우리 공격대의 모든 힘을 투입하도록 하지요.”
“쉽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하지요.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소형 기계 괴수도 아니고, 대형 기계 괴수인데요. 하지만 S급 이능력자 둘에 S급 변이체 다섯이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활발하게 논의가 오갔다.
세라프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일이 간단해지겠지만, 그 선택지는 처음부터 빼놓았다.
대가로 동력핵을 제공해야 할 테니까.
한동안 격론을 거친 끝에 한 가지 계획을 수립했다.
현재 타이탄 공격대가 보유한 전력과 S급 변이체들만으로 기계 괴수를 상대하는 전술.
당연히, 수한의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전술이었다.
[4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