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02화 (103/254)

< 대형 기계 괴수 -2- >

방어막에 구멍이 뚫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났다.

총알은 방어막을 뚫은 것으로 위력을 다했다. 기계 괴수의 몸에 박혔는데, 금속 장갑에 흠집만 겨우 남겨 놓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계 괴수의 눈에 청색 광채가 번뜩였다.

이리저리 돌아가며 주위를 탐색하더니, 금방 수한을 발견했다. 그 즉시 광선포를 무차별적으로 쏘아댔다.

수한은 아음속을 발동했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탈것도 속도를 올려주는 초능.

새 변이체의 속도가 몇 배로 빨라졌다. 정말 음속에 가깝게 움직였다.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광선을 요리조리 피했다.

수한은 널을 뛰는 기계 괴수 위에서 또 총을 발사했다.

아주 잠깐 안정된 틈에 쏜 일격이었다. 감각적으로 쏜 총알이 기계 괴수의 다리에 박혔다.

“부우우우우!”

기계 괴수가 묘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쿵쿵쿵.

걷는 속도를 빨리 했다. 나중에는 뛰다시피 했다.

그 크고 무거운 덩치가 달리니 대지가 들썩였다. 내딛는 곳마다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바위가 쪼개지고 나무들이 폭발하듯 으깨졌다.

기계 괴수는 쉬지 않고 광선포를 쏘았다. 미사일도 날렸다. 미사일이 지근거리에서 폭발하자 파편이 쏟아졌다.

수한도 대비하고 있었다.

박명까지 사용했다. 새의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날개를 떨쳐 급강하하여 파편을 급히 피했다.

한편 허리띠를 매만졌다.

허리띠에 박힌 보석이 찬란한 빛을 뿜었다. 투명한 방어막이 생성되면서, 우박처럼 쏟아지는 파편을 막았다.

광선도 위험하지만 미사일도 위험했다. 허리띠의 능력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사일을 막느라 멈칫했다간 광선에 직격당할 수도 있었다.

곡예 비행을 하며 남쪽으로 날아갔다.

기계 괴수가 그 뒤를 쫓아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타이탄 공격대에서도 기계 괴수의 접근을 알아차렸다.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고글의 배율을 조정하자 기계 괴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휘 장갑차 안에 들어 있던 지원부장이 무전기에 대고 속삭였다.

[놈이 접근합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해주세요.]

민종은 전장 중앙에 구덩이를 파고 숨어 있었다. 온갖 이능 물품을 사용하여 기계 괴수에게 탐지되는 것을 피했다. 수한이 기계 괴수를 유인하여 근처로 오면, 거신 강림을 사용하여 기계 괴수를 붙잡을 작정이었다.

스스로도 땅의 진동을 느꼈다. 그 와중에 무전까지 왔으니, 주먹을 불끈 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수한이 전장으로 접어들었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기계 괴수가 잘 쫓아오는 게 보였다.

‘이제 곧.’

그렇게 다짐하며 새에게 고도를 낮추라고 속삭였다.

지면이 가파르게 다가왔다.

민종이 숨어 있는 곳을 지나쳤다.

저 앞쪽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본 수한이 허리에 꽂아놓은 단검을 매만졌다.

기계 괴수가 지척까지 접근했다.

새가 마구 몸을 틀며 낮게 비행했다. 커다란 나무가 눈앞을 가득 메웠다.

‘지금!’

수한의 손이 단검에 닿았다.

단검 전체가 음침한 빛을 뿌렸다.

그 빛이 수한을 집어삼켰다. 빛에 닿은 수한과 새 변이체의 몸이 일순 투명해졌다. 더군다나 존재감까지 흐려지고, 탐지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기계 괴수가 정지했다.

나무를 지난 수한이 다시 보여야 하는데,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까닭이었다.

눈이 파란 빛을 뿜었다.

갖가지 탐지 장치가 가동되었다.

수한이 사용한 죽음의 그림자는 영웅 등급 단검이다. 어지간한 기계 괴수의 이목도 속일 수 있지만, 대형 기계 괴수는 그게 힘들었다.

기계 괴수가 수한을 포착했다.

광선포를 겨누고 쏘려는데, 세상을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이 터졌다.

“죽어라, 괴물아!”

기계 괴수의 바로 발 밑.

한 남자가 뛰쳐나왔다.

모습을 드러낸 즉시 황금색 빛이 터졌다. 남자의 몸이 쭉쭉 확대되더니, 기계 괴수의 절반 정도까지 키가 커졌다.

남자가 주먹을 날렸다.

방어막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남자가 찬 팔찌가 보라색 빛을 뿜자 국소적으로 구멍이 뚫렸다. 주먹이 구멍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기계 괴수의 팔이 공격에 직격 당했다.

우지끈!

남자, 민종이 힘을 모아 날린 회심의 일격이었다. 팔이 나무젓가락처럼 똑 부러져 버렸다.

기계 괴수의 최대 무기인 분해 광선은 손에서 쏘아진다. 두 손 중 하나를 쪼갰으니 그 위험도가 급감한 것이다.

계획대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기계 괴수가 민종을 주목했다. 가슴 부위의 장갑이 열리고, 작은 미사일들이 폭발하듯 발사되었다. 미사일이 민종의 전신을 두들기자, 민종은 자기 몸 앞에 두 팔을 X자로 교차하며 뒤로 물러났다.

수한은 새에 탄 채 하늘 높이 떠올랐다.

타이탄 공격대, 그리고 변이체들이 숨어 있던 자리에서 나오는 게 눈에 보였다.

“크아앙!”

곰 변이체가 가장 먼저 뛰어갔다.

기계 괴수의 남은 손에 흐릿한 회색이 넘실대고 있었다. 민종도 그걸 눈치 채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분해 광선.

저걸 맞았다간 S급 이능력자건 뭐건 단번에 가루가 되어 흩어질 테니까.

기계 괴수가 손을 젓는 찰나, 곰 변이체가 기계 괴수의 등을 들이받았다. 방어막이 출렁이며 충격이 물결처럼 퍼졌다. 그 바람에 분해 광선이 엉뚱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퍽! 퍽퍽!

민종이 다시 주먹질을 했다.

목표는 기계 괴수의 다른 손.

저것만 박살내고 나면 공략 난이도가 급감한다.

기계 괴수도 멍청하게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거대한 다리를 들어 민종을 걷어찼다. 양 팔로 방어하긴 했지만, 워낙 무게가 많이 나가는 탓에 붕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광선포 수십 문이 일제히 민종에게 발사되었다.

민종이 팔로 앞을 막으며 힘을 집중했다. 장엄한 황금색 서기가 어리며 광선포의 집중 공격을 막아냈다.

그 사이 S급 변이체들이 기계 괴수를 덮쳤다.

곰이 흔들어대고, 살쾡이가 방어막을 찢었다. 원숭이가 시선을 교란하고, 뱀이 멀찍이서 광선포를 쏘았다. 수한을 내려놓은 새가 하늘에서 폭탄을 떨어뜨렸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수한이 나설 차례다.

새가 내려준 곳은 전장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고지대 위.

뭉툭한 바위에 편하게 몸을 기댔다. 공격대에서 제공 받은 물건들을 늘어놓으며, 전장을 굽어보았다.

전술 이사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들렸다.

[지금입니다.]

푸른 병에 든 황금색 액체를 마셨다. 하늘색 월계관에 불을 붙인 후 머리에 썼다. 정신 지배가 특기라는 어떤 외계 종족이 만든 수정 구슬을 두 손으로 쥐었다.

스스로에게 박명을 걸었다.

집단 의식을 발현했다.

수한의 정신이 바다처럼 넓어졌다. 확장된 정신이 수백 가닥의 촉수를 뻗었다. 무형의 촉수가 수한이 내려다보는 이들의 정신과 접촉했다.

서로의 정신이 수한의 능력을 매개체로 연결되었다. 거대한 그물이 전장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수한은 투명한 눈으로 기계 괴수를 노려보았다.

아직까진 할 만 했다.

하지만 이 능력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이다. 박명의 유지시간이 끝나고, 황금색 액체와 하늘색 월계관의 효력이 떨어지면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그 전에 끝장을 봐야 한다.

[공격!]

전술 이사가 의식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변이체들이 뒤로 물러났다.

기계 괴수를 노리고 있던 모든 화력이 불을 뿜었다.

심어 놓았던 폭탄도 폭발시켰다.

막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흙먼지가 저 하늘 높은 곳까지 솟구쳤다. 폭음이 터지며 귀가 먹먹해졌다.

중화 폭탄과 탄두가 기계 괴수의 방어막을 무효화시켰다. 덕택에 기계 괴수도 제법 타격을 입었다. 마력포가 깨지고, 금속 장갑이 벗겨졌다.

폭발 속에서 불쑥 회색 광선이 쏘아졌다.

기계 괴수의 반격.

하지만 타이탄 공격대는 그것을 다 보고 있었다.

사냥에 참가한 투시 계열 이능력자들 덕분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했고, 그로 인해 기계 괴수의 모든 의도를 낱낱이 파악했다.

지금 타이탄 공격대는 수천 개의 눈과 팔을 가진 한 마리 괴물과 같았다.

그 효과는 무시무시했다.

일반적인 전술로 싸웠다면 타이탄 공격대가 밀렸을 것이다. 그러나 밀리기는커녕 압도하고 있었다. 방어막에 구멍이 송송 뚫리고, 금속 장갑이 벗겨져 그 안의 부품이 흉악한 몰골을 드러냈다.

더구나 기계 괴수의 움직임이 저번에 봤던 광선검 기계 괴수에 비하면 좀 굼떴다. 움직임도 느리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부족해 보였다.

타이탄 공격대에게는 잘 된 일.

수한은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전투가 시작되고 몇 분이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코피가 흐르고 찌이잉 하는 이명이 들렸다.

수한은 눈을 감았다.

싸우는 이들의 생각과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가장 앞에서 싸우는 민종이 느끼는 긴장감과 투지, 간혹 하늘을 올려다보는 새미의 걱정과 불안, 변이체들이 불태우는 순수한 야성……

그 감정의 격류를 수한이 홀로 감당해야 했다.

이젠 눈과 입, 귀에서도 피가 흘렀다. 고지대에 앉아 있는 수한이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수한이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 더, 더!]

민종이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

기계 괴수의 분해 광선이 막 허공으로 흩어진 참이었다. 집단 의식 종료가 눈앞에 다가와 있으니, 지금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이미 기계 괴수는 만신창이.

최 이사가 손을 떨쳤다. 청색과 적색의 빛이 뱀처럼 서로를 휘감으며 날아갔다. 기계 괴수의 하체를 맞추더니,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다.

때를 맞추어 살쾡이가 은밀하게 스며들었다.

폭발 때문에 기계 괴수의 주의가 분산된 시점이었다. 살쾡이는 기계 괴수 뒤로 돌아갔다. 등에 올라탄 채, 앞발을 세차게 휘둘렀다.

그 공격이 기계 괴수의 손을 때렸다.

민종의 공격처럼 일격에 으스러뜨리진 못했다. 대신 깊은 흔적 5줄기가 깊게 났다.

기계 괴수가 분해 광선을 쏘려고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회색 빛이 어리는 대신 타닥타닥 전기만 튀었다. 살쾡이의 공격이 효과를 본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다 된 거다.

전술 이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수한씨. 이제 지원 요원들은 집단 의식에서 제외하셔도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한은 심호흡을 했다.

뻗어나갔던 무형의 촉수를 거뒀다. 수한이 쓰고 있던 것의 7할에 달했다. 자연히 수한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눈과 귀, 코와 입에서 흐르던 피가 멎었다. 두통도 상당히 개었다. 아직도 힘들기는 하지만, 충분히 견딜 정도가 되었다.

수한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수정 구슬에서 손을 뗐지만 괜찮았다. 월계관만 계속 쓰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총을 집어 들었다.

기계 괴수의 방어막이 거의 박살난 시점이었다. 수한의 공격도 충분히 통했다.

수한은 단 한 발을 쏘았다.

유도 속성과 관통 속성의 조합.

총알이 기계 괴수의 가슴에 박혔다. 본래 두터운 금속 장갑이 보호하고 있었지만, 지금 상태로는 총알에 담긴 힘을 견뎌낼 수 없었다.

기계 괴수의 가슴 부위가 하얗게 물들었다.

내부에 동력핵을 품은 지점.

그곳으로 타이탄 공격대의 화력이 집중되었다.

금속 장갑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동력핵이 발하는 찬연한 빛이 새어나왔다.

기계 괴수가 몸부림을 쳤다. 뱀의 하체가 사방을 후려쳤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이 쏟아졌다.

그 서슬에 민종이 피를 토하며 튕겨져 나갔다. 곰 변이체가 꼬리에 얻어맞고는 앞다리 하나가 으스러졌다. 살쾡이도 겨우 피하긴 했는데, 빳빳하게 서 있던 꼬리가 그만 잘리고 말았다.

마지막 발악이다.

당황하지 않고 느긋하게 공략했다. 원거리 공격만 날렸다. 그러면 수한의 유도 속성이 그 공격을 끌어들여 동력핵에 충격을 주었다.

동력핵에 가해지는 충격이 계속 누적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었다.

기계 괴수가 세차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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